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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의 정석-48화 (48/184)

환생의 정석 48화

아덴카와 사미온의 ‘친선교류회’는 총 세 가지 관문으로 치러진다.

첫 번째는 마법사들이 구현한 인공 던전에서 정해진 목적을 달성하는 것.

두 번째는 대(對)마물 전투 능력을 증명하는 것.

세 번째는 대(對)인 결투 능력을 선보이는 것.

-사실상 백미는 세 번째인 대인전이긴 한데요.

아덴카 직계와 사미온 직계의 일대일 전투.

그것이 친선교류회의 꽃이다.

사실 첫 번째와 두 번째 관문은 세 번째 관문을 장식하기 위한 일종의 징검다리 같은 행사에 가까웠다.

-그렇지만 이번에는 양상이 조금 달라요.

이번 친선교류회는 모든 이들의 예상이 뒤집혔다.

-아마 두 번째 관문에도 어마어마한 관심이 쏟아질 거예요. 더 많은 기자들이 모일 거고요.

두 번째 관문에 나타나는 마물은 아직 발표되지 않았다.

어떤 마물이 나오더라도 본연의 실력을 발휘해야 한다는 이유였다.

-수십 년 동안의 패턴을 분석해 보면 이번에는 아마도 수마종(水魔種)이 나타날 확률이 제일 높아요.

보통 물가나 물에서 서식하는 종류의 마물을 통틀어 수마종이라 부른다.

이를테면 어인(魚人)이나 귀갑병(龜甲兵) 같은 마물들이었다.

-그러나 뭐가 나올지는 몰라요. 제 계산에 따르면 두 번째 관문은 이기기 어려울 거예요. 혹여 이기더라도 체력적으로 꽤 큰 무리가 올 거고요.

빈첸은 카곤에 비해 체력적으로 열등한 상태.

게다가 제대로 된 아덴카 검식을 배우지도 못했다.

마법으로 구현된 마물이 아니니 ‘검로’가 보이지도 않을 것이다.

-그러니 전략적으로 적당히 그럴듯한 모습만 보여주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마치 일부러 힘을 아끼는 것처럼 연출하면서 말이에요. 여유로운 척하면서 일부러 패배해 주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어차피 친선교류회의 꽃은 세 번째 관문인 대인전이다.

첫 번째 관문에서 반전을 주었고, 두 번째 관문에서 약간의 실망을 준 뒤, 세 번째 관문에서 더욱 뛰어난 모습을 연출하자는 것이 율리안의 의견이었다.

-……라고는 하지만, 이렇게 하실 생각이 있어요?

‘아니. 나는 놈에게 단 한 순간이라도 패배하고 싶지 않다.’

빈첸이 원하는 것은 완벽한 승리였다.

카곤과 만난 이후로는 그 결심이 더욱 확실해졌다.

-알았어요.

율리안은 효율적인 승리를 원했고,

빈첸은 완벽한 압도를 원했다.

율리안은 빈첸이 틀렸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사미온에게 이겨낼 길. 찾아야겠죠?

빈첸이 고개를 끄덕였다.

율리안은 잠시 침묵했다.

그 스스로도 조금 의아했다.

‘때로는 물러설 줄도 알아야 하고, 힘을 비축할 때도 알아야 해.’

그러나 카곤을 만나보았고, 지금 빈첸의 마음을 느끼고 있다.

율리안 스스로도 이상한 마음이 들었다.

‘이상하게 나도 형님과 똑같은 마음이 드네.’

무엇이 옳은가?

율리안은 정답을 내리지 못했다.

-형님, 마물은 많이 잡아보셨죠?

‘물론.’

-그 와중에 목숨을 걸고 치열하게 싸웠던 경험은요?

‘예전에는 마물 하나를 사냥하기 위해 늘 목숨을 걸어야 했다.’

지금보다 마물에 대한 정보가 없었다.

지켜주는 상급 무인들도 없었다.

그때는 맨몸으로 부딪쳐가며, 목숨을 걸고 마물과 대치해야 했었다.

-그럼 보여주실 수 있으세요?

‘무엇을?’

-500년 전 무인들이 어떻게 진짜 마물들을 상대했는지를요. 아니, 500년 전 형님은 어떻게 마물과 싸웠는지를요.

비록 조금은 비효율적일지 몰라도.

이번에는 효율이 아닌 다른 것을 보고 싶었다.

빈첸이 씨익 웃었다.

‘보여주마.’

율리안이 보고 싶어 하는 것을 보여주기로 했다.

‘어떤 마물이 나오리라 예상하느냐?’

-확률의 문제에요. 확실하지 않아요.

‘딱 하나만 짚어봐.’

-음.

율리안은 머릿속으로 많은 생각을 했다.

논리적인 명제들을 이어갔다.

1. 1차 관문에서 마탑의 마법사단이 주가 되어 진행했다.

2. 그러니 이번에는 ‘붉은 요새’에서 주가 되어 진행할 것이다. 책임자는 헤르카 경일 것이다.

3. 책임자인 헤르카가 2차 관문의 마물을 책임지고 데려와야 했다.

4. 그렇지만 헤르카 경은 일하기 싫어한다. 특히 이렇게 주인공을 인위적으로 정해놓고 대중에게 뽐내는 이런 자리는 혐오하는 편이다.

5. 그러므로 실질적인 일은 바르곤에게 모두 떠넘길 것이다.

헤르카가 아닌 바르곤이 움직일 것이라 확신했다.

그 외에도 많은 요소들이 있었다.

적당한 난이도의 마물.

적당히 가까운 거리에서 공수할 수 있는 개체.

포획되어도 자살하지 않는 류이면서, 일단 풀어주면 겁에 질리지 않은 채 흉폭하게 날뛰는 조건.

기타 등등.

하지만 결론만 짧게 말하기로 했다.

-제가 바르곤 경이라면 리자드맨을 선택할 것 같아요.

리자드맨은 두 발로 걷는 도마뱀 형태의 마물로서, 물과 육지를 자유로이 오갈 수 있는 형태의 마물이었다.

그들은 그들만의 특별한 방식으로 분비물을 사용하여 날카로운 창을 만들어 사용하는 특성을 지녔다.

‘그래.’

빈첸은 머릿속으로 리자드맨과의 전투를 그리기 시작했다.

-근데 아닐 수도 있어요.

‘맞을 거다. 나는 네 분석을 믿어.’

-그, 그러다 리자드맨 안 나오면 내 탓하려고!

율리안은 못내 황당해했다.

정신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빈첸에게서 강력한 확신이 느껴졌다.

-도대체 리자드맨이 나온다는 그 믿음과 확신은 어디서 나오는 거예요?

‘너에 대한 신뢰?’

-으악!

율리안은 일시적으로 신기를 닫고 어디론가 도망쳐 버렸다.

* * *

밤과 낮이 바뀌어 2차 관문의 날이 밝아왔다.

검투장에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빈첸의 활약을 접한 상급 생도들도 꽤 많이 모였고, 저번보다 더 많은 기자들이 집결했다.

총책임자 헤르카가 두 번째 관문의 시작을 알렸다.

“친선교류회의 두 번째 관문을 시작하겠습니다.”

빈첸은 쇠창살 밖 풍경을 바라보았다.

‘거봐라. 내 말이 맞잖아.’

-……제 말이 맞은 건가요, 형님 말이 맞은 건가요?

‘내 말이 맞은 거지.’

-……네. 그런 걸로 할게요.

저만치 멀리, 카곤 앞에 리자드맨이 모습을 드러냈다.

와아아-!

함성 소리가 들려왔다.

‘검투장은 오랜만이군.’

피가 들끓는 느낌이었다.

무인들은 늘 검투장을 갈망한다.

자신의 강함을 증명하고, 다른 누군가와 무학으로 경쟁할 수 있는, 무인들의 무대.

안에서는 카곤이 어떻게 싸우는지를 자세히 볼 수는 없었다.

그저 이 거대한 함성을 통해 카곤이 훌륭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고 짐작할 수밖에.

[“과연 검신 케샤크의 가호를 이어받은 검술의 귀공자다운 몸놀림입니다!”]

음성 증폭기를 통하여 중계자들의 목소리가 구석구석 전해졌다.

이곳은 500여 명 남짓이 모일 수 있는 소규모 검투장.

이 정도 작은 규모의 검투장 행사에 중계자가 배치되는 경우가 흔한 건 아니었다.

대륙에서 활동하는 중계자들은 몇 되지 않았고, 그들은 자부심 강한 고급인력이라 소규모 행사에는 잘 참여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오늘은 달랐다.

두 사람이 입에 침을 튀겨가며 음성 증폭기에 말을 쏟아내고 있었다.

[“부드러운 검이 강함을 극복한다. 유검제강의 검식을 완벽하게 재현합니다!”]

빈첸은 보지 않고서도 리자드맨과 카곤의 전투가 머릿속으로 그려졌다.

카곤은 카진과 같은 방식으로 싸운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카곤에게서 자꾸 카진이 느껴진다.

‘곧 끝나겠군.’

얼마 지나지 않아 또다시 함성 소리가 들려왔다.

카곤은 과연 사미온의 기재답게 엄청난 환호를 받으며 대 마물전을 끝냈다.

[“카곤 공자가 대 마물전을 마무리 하는 데에 걸린 총 시간은 6분 22초입니다. 6분 동안 우리는 그의 무학과 함께 호흡할 수 있었습니다! 다음 세대의 사미온이 기대가 되는군요.”]

500명 남짓한 사람들.

검투장의 인파치고는 너무 적은 숫자였다.

그러나,

‘뜨겁다.’

그들이 내뿜는 열기는 뜨거웠다.

빈첸은 뜨겁다고 느꼈다.

빈첸이 걸음을 옮겼다.

저만치 앞, 빛이 보이는 곳으로.

쇠창살이 조금씩 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다음은 아덴카의 7공자. 불과 얼마전까지만 해도 못난이라 불렸던 빈첸 아덴카입니다!”]

검투장에서의 대 마물 전투.

이곳은 빈첸 아덴카라는 무인을 증명하는 무대였고,

500년 전 무인들이 마물을 토벌하는 방식을 율리안에게 보여주는 자리이기도 했다.

‘새로운 검을 보일 것이다.’

-새로운 검이요?

‘몇 안 되는, 내 친구의 검이었지.’

빈첸은 검투장 밖으로 향하는 복도를 걸으며 죽은 친구를 떠올렸다.

* * *

외팔이 데이븐에게는 친구가 많지 않았다.

그는 무모하게도 사미온의 직계이자 검신 케샤크의 가호를 지니고 태어난 카진을 경쟁상대로 생각했다.

외팔이이면서.

직계도 아니면서.

가호도 없으면서.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데이븐과 친해지는 것을 꺼려했다.

그래도 데이븐과 마음을 나누었던 친구가 몇 있기는 했다.

“네가 마음에 든다.”

데이븐이 열여섯이 되던 해, 사미온 검투장에서 우연히 만났던 소년이었다.

“내 이름은 팔콘. 외팔이 데이븐의 이름은 많이 들어왔어.”

그는 데이븐과 동갑이었고 거대한 중검(重劍)을 다루었다.

몇 차례 검을 나누면서 데이븐과 팔콘은 친구가 되었다.

팔콘의 꿈은 원대했다.

“나는 사미온을 뛰어넘는 무가를 만들 거야.”

그는 사미온의 ‘철혈검대’의 검수로서 활약했다.

실제로 그는 참여하는 임무마다 혁혁한 공을 세웠고 빠르게 성장했다.

스무 살이 되던 해에 그는 철혈 검대의 부검대장이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데이븐은 팔콘의 유서를 발견했다.

[어쩌면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무인은 명령에 살고 명령에 죽는다. 나 또한 그러하다. 혹시라도 누군가 이 편지를 발견한다면, 나의 친우 데이븐이었으면 좋겠구나.]

시간이 오래 흘러 데이븐은 팔콘이 왜 죽었는지 깨닫게 되었다.

‘일부러 죽인 거야.’

그의 지나친 성장이 아니꼬웠던 세력이 있었던 것 같았다.

아마도 장로회 측이라 생각했다.

어쩌면 살해당했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미온의 무인으로서 죽었다.’

데이븐은 묵념을 통해 친구의 죽음을 애도하고 슬퍼했다.

그의 죽음을 잊지 않기 위해 팔콘의 검식을 더욱 열심히 익혔다.

그의 가문인 아밀룬가에 팔콘이 발전시킨 검식을 전해주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그조차 불가능했다.

‘멸문…… 하였구나.’

아밀룬 가문은 무너졌고 혈육들은 찾을 수 없었다.

그래도 그는 팔콘의 검을 계속 익혔다.

‘언젠가 만날지 모를 아밀룬의 혈육들에게 부끄럽지는 않아야지.’

팔콘의 검을 계승하였다는 사실이 부끄러워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사미온 검식만큼이나 열심히 수련했다.

그러나 그는 단 한 번도 결투에서 아밀룬 검식을 사용하지는 않았다.

그토록 이기고 싶었던 카진과의 결투에서도.

‘그를 죽인 사미온의 이름을 가지고서 그의 검을 사용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사미온 차원에서 팔콘의 가문인 아밀룬을 멸문시켰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데이븐은 사미온의 피를 이었다.

그래서 팔콘의 검을 사용할 수는 없었다.

그것은 명예로운 무인이자 친구인 팔콘을 모욕하는 행위이므로.

‘그러나 나는 이제 사미온이 아니다.’

사미온이 아니면서,

누구보다 사미온을 뛰어넘고 싶은 아덴카의 직계였다.

‘뛰어넘겠다.’

사미온에게 죽음을 당한 친구의 검으로,

누구보다 사미온을 뛰어넘고 싶어했던 친우의 검으로,

사미온의 직계를 넘어서기로 했다.

500년이 흐른 지금.

이곳의 사람들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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