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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의 정석-43화 (43/184)
  • 환생의 정석 43화

    후웅!

    커다란 파공성을 내는 몽둥이가 빈첸의 머리를 박살 낼 것처럼 다가왔다.

    빈첸은 푸락투아의 몽둥이를 받아냈다.

    ‘설인 걸음.’

    눈 위에서도 발걸음을 남기지 않는 보법.

    마력회로를 활성화시켜 몸을 가볍게 만들어 슬쩍 옆으로 비켜섰다.

    몽둥이의 압력을 옆으로 흘렸다.

    빈첸은 푸락투아의 힘을 모두 받아내지 않았다.

    비록 지금의 신체는 불완전하지만, 한 번의 공격을 흘려내는 것은 가능했다.

    “빈첸!”

    시젠이 양팔을 뻗어 빈첸의 등을 받쳐주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헤르카가 씨익 웃었다.

    ‘2인진이구나.’

    두 명이 합을 이루어 무언가를 상대할 때.

    그때에도 무인들은 진을 이룬다.

    지금 시젠과 빈첸이 보여준 것은 2인진 중 하나로서, 보조가 되는 한 명이 주가 되는 한 명에게 마력흐름을 더하여 마력과 신체의 밸런스를 지켜주는 형태의 초급진이었다.

    ‘비록 초급이기는 하나.’

    빈첸이 푸락투아의 방망이를 흘려냈고,

    시젠과 함께하여 빈첸의 균형은 무너지지 않았다.

    ‘훌륭하게 2인진을 소화했어.’

    아마도 저 둘은,

    ‘지금의 이 상황을 예상하고 미리 연습했다는 것이겠지.’

    그래서 빈첸은 일말의 두려움도 없이 푸락투아와 시젠 사이에 끼어들었을 것이고.

    시젠은 망설임 없이 손을 뻗어 마력흐름을 더한 것이다.

    ‘제법인데.’

    더욱 놀라운 것은 그 이후였다.

    알베르토 마법사단장이 마법의 오류를 확인하라 명령했던 그 찰나.

    빈첸의 눈에 마법 생명체의 검로가 보였다.

    ‘또다시 보인다.’

    마법으로 구현한 인공 생명체.

    빈첸은 이미 경험했었다.

    청안 백호를 베어낼 때, 이미 이 검로를 보았다.

    검은 실선.

    이능검격을 일으키는 빈첸만의 검로.

    ‘보이는 대로 베어낸다.’

    벤다.

    잘라낸다.

    이능검격은 이능을 베어내는 검이다.

    그러나,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없으면 이능검격을 펼칠 수 없다.

    빈첸은 빈첸 스스로를 믿었다.

    슈걱!

    홍련이 푸락투아의 오른팔을 잘라냈다.

    빈첸의 몸은 가벼웠다.

    ‘설인 걸음.’

    다시 한번 설인 걸음 특성을 활성화시켰다.

    푸락투아의 사선 공간을 차지했다.

    푸락투아는 공격할 수 없고, 빈첸은 공격할 수 있는, 무인들이 말하는 ‘검의 반경’에 들어섰다.

    호흡을 들이마셨다.

    ‘다시 한번.’

    호흡을 내뱉으며 검을 휘둘렀다.

    이 마물은 진짜 마물이 아니라 마나가 일정한 법칙과 술식을 가지고 형상화한 일종의 신기루.

    빈첸의 검로가 신기루를 잡아먹었다.

    ‘청안 백호 때와 같아.’

    이능검격은 마법으로 이루어진 이능을 집어삼켰다.

    크르르륵!

    푸락투아의 몸이 흐려지기 시작했다.

    이능검격에 의해 마법의 흐름이 끊겼고, 이내 푸락투아는 소멸되었다.

    단 세 번의 검로로 두 마리의 푸락투아를 죽였다.

    알베르토를 비롯한 마법사단은 존재하지 않는 오류를 찾기 위해 분주해졌고, 헤르카가 약간 얼빠진 표정을 지었다.

    “바르곤 경은 알고 있었던 표정인데?”

    “…….”

    “어떻게 된 거야? 설명 좀 해줘봐.”

    헤르카의 예상대로 바르곤은 이미 알고 있었다.

    “빈첸 생도에게는 특별한 능력이 있습니다.”

    “특별한 능력?”

    “인위적으로 생성한 마물을 쉽사리 베어내는 능력입니다. 조금 더 정확한 표현으로는 마법을 구동하는 마법 흐름을 베어낸 것입니다.”

    마리아는 음성 증폭 마정석을 활용하여 둘의 대화를 엿들었다.

    ‘친선교류회’가 열리기 전 빈첸이 말해주었다.

    혹시 예기치 못한 상황이 벌어지게 된다면 바르곤의 말에 집중하라고.

    ‘바르곤 경은 알고 있었다? 마법을 베어내?’

    바르곤이 말을 이었다.

    “헤르카 경께서도 아덴카의 직계가 겪는 첫 번째 시험에 대해서는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그게 뭐더라?”

    “제가 구현한 청안 백호를 베어내는 암묵적인 시험 말입니다.”

    그걸 까먹었습니까?

    헤르카 경 요새장 아닙니까?

    따지고 싶었지만 보는 눈이 많아 겨우 참았다.

    “아…… 그런 게 있었지.”

    “그때 빈첸 생도는 보여주었습니다. 상식 외의 검술로 청안 백호를 없애버렸죠. 그때 저는 알게 되었습니다. 빈첸 생도의 검은 마물을 베어내는 것이 아니라 마법을 직접 베어낼 수 있다는 것을.”

    바르곤 옆으로 알베르토가 다가왔다.

    “바르곤 경! 그게 무슨 말입니까? 마법을 베었다뇨!”

    “말 그대로입니다.”

    “마물을 벤 것이 아니라 마법을 베었다는 말을 믿으라는 겁니까?”

    검으로 마법을 벤다.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보통 2단계 이상 실력의 차이가 나면 검으로 마법을 베어낼 수 있다고 표현한다.

    쉽게 말해 7성 무인은 5환 마법사의 마법을 무력화시킬 수 있다는 소리였다.

    “빈첸 공자, 아니 빈첸 생도가 우리가 만든 마법. 심지어 제가 주도한 마법을 베어냈다고 말씀하신 겁니까?”

    알베르토의 얼굴이 붉어지며 목소리가 높아졌다.

    심상조차 가지지 못한 빈첸이 알베르토가 주관한 마법을 베었다?

    이건 7고리를 앞둔 알베르토를 모욕하는 말이나 다름없었다.

    “역정 내실 거 없습니다. 저도 똑같이 당했습니다. 빈첸 공자에게는 특별한 검이 있습니다.”

    “마법을 베어내는 성유물급 아티팩트입니까?”

    “글쎄요. 그것까지는 알지 못합니다. 다만.”

    바르곤의 눈이 빈첸을 향했다.

    “빈첸 생도의 검이 [홍련]이라는 사실만큼은 알고 있습니다.”

    홍련.

    칸의 시작과 비상을 알렸던 검으로 기록되어 있다.

    “홍련? 저 붉은 검이 진짜 홍련입니까?”

    “예. 소식이 늦으시군요.”

    바르곤의 눈이 빈첸을 향했다.

    “어쩌면 오늘도 홍련은 제 주인의 비상을 기록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군요.”

    * * *

    모든 임무를 성공적으로 끝마친 빈첸이 마법진 위에 모습을 드러냈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결과에 잠시 침묵이 흘렀다.

    모두들 이 상황을 받아들이기 어려운 모양이었다.

    그러나 이내 커다란 함성소리가 대연무장을 가득 채웠다.

    “와아아아-!”

    9급 생도들이 함성과 함께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빈첸은 진심으로 기뻐해 주는 그들을 향해 가볍게 손을 들어 올려 주었다.

    마리아가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섰다.

    조수인 수습기자를 채근했다.

    “뭐해? 영상 기록석 안 챙기고.”

    눈치 빠른 몇몇 기자들이 빈첸에게 몰려들었다.

    그들이 질문을 쏟아냈다.

    그러나 빈첸은 그들과 인터뷰를 진행하지 않았다.

    “처음부터 저를 믿어주신 기자님이 계십니다.”

    마리아가 도착했다.

    빈첸이 마리아에게 고개를 숙여 보였다.

    기자들의 시선도 마리아에게 쏠렸다.

    마리아는 가슴 벅찬 희열을 느꼈다.

    ‘후우. 침착하자, 마리아.’

    단독으로 인터뷰를 딸 수 있었다.

    그것도 모두 앞에서 생각지도 못한 반전을 일궈낸 소년에게서 말이다.

    바람소리의 1급 기자에게도 흔하지 않은 기회였다.

    “빈첸 공자는 이 상황을 예상했습니까?”

    “예.”

    빈첸이 카곤의 상황을 비춰주는 영상석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카곤 공자는 화려하고 훌륭한 검술을 보일 것이 틀림없었거든요. 그래서 3시간이라는 시간을 충분히 활용할 것이라 판단하였습니다.”

    그 말은 사실이었다.

    역사적으로도 그랬다.

    이 ‘1차 관문’의 영상은 전 대륙에 전해진다.

    사미온의 이름값을 높이는 데에 쓰이는 장치 중 하나였기에, 그들은 대중을 현혹할 수 있을 만큼 화려한 검술로 마물을 사냥했다.

    상당한 시간을 들여서 말이다.

    마리아가 맞장구를 쳤다.

    “그래서 카곤 공자가 그렇게 여유로이 움직인 것이군요!”

    빈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이제부터 카곤 공자의 진짜 저력이 드러날 것입니다.”

    “진짜 저력이요?”

    “푸락투아가 강해질 테니까요.”

    “푸락투아가 강해진다니, 그게 무슨 뜻인가요?”

    빈첸이 알베르토와 마법사단 쪽을 바라보았다.

    “해당 인공던전은 커다란 한 덩이의 마법으로 구현되었으리라 짐작합니다.”

    기자들이 알베르토에게 물었다.

    “빈첸 공자의 말이 맞습니까?”

    “그렇…… 습니다.”

    알베르토로서도 의외였다.

    무인들은 마법의 원리에 대해 잘 모를 텐데.

    알베르토조차 빈첸의 말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마리아가 질문을 이어갔다.

    “커다란 한 덩이의 마법으로 구현되었다는 것이 무슨 뜻인가요?”

    “하나의 마법 술식만을 사용하여 두 개의 인공던전을 운용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빈첸과의 인터뷰를 포기한 기자들 중 몇몇은 알베르토와의 인터뷰를 진행했다.

    “빈첸 생도의 말이 맞습니까?”

    “그렇습니다.”

    “왜 하나의 마법으로 두 개의 던전을 운용하는 건가요? 두 개의 던전을 운용하려면 두 개의 마법술식이 존재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알베르토는 잠시 침묵했다.

    “제 답은 보류하겠습니다. 빈첸 생도의 판단이 듣고 싶습니다.”

    그는 궁금했다.

    빈첸이 알고 하는 소리인지, 그냥 되는대로 말을 하고 있는 것인지.

    빈첸은 침착하게 말을 이었다.

    “커다란 마법을 하나 사용해서 두 개로 나누는 것이, 작은 두 개의 마법을 동시에 운용하는 것보다 효율적이고 쉽기 때문입니다. 마법은 마나를 사용하여 이적을 창조하는 권능이며, 창조야말로 가장 어렵고 힘든 작업으로 알고 있습니다.”

    두 개의 작은 것을 따로따로 창조하기보다는,

    한 개의 커다란 것을 창조하여 분절하는 것.

    그게 마법사들에게 훨씬 효율적이고 쉬운 일이다.

    빈첸이 그 사실을 정확하게 짚었다.

    “하나의 마법을 두 개로 나누었습니다. 마법을 이루는 마나의 총량은 여전히 똑같이 유지되고 있습니다.”

    하나의 강이 있다.

    두 갈래로 나누어져 있을 때에는 수압이 반으로 나뉜다.

    그런데 하나의 길이 사라지면?

    다른 물줄기의 수압이 두 배로 높아진다.

    마법도 그와 같았다.

    빈첸 쪽으로 분산되던 마나흐름이 오로지 카곤 쪽으로 집중될 것이었다.

    “강대한 마나 흐름이 집중되면서, 저쪽의 푸락투아는 보다 강력한 마물이 될 것입니다. 푸락투아가 강해질수록 그를 상대하는 카곤의 실력도 더욱 빛이 나겠지요.”

    그때, 알베르토가 가까이 다가왔다.

    “공자의 식견이 대단하군.”

    알베르토와 마법사단은 마법 운용에 대해 따로 공지한 적은 없었다.

    이러한 사실들은 빈첸 스스로가 알아낸 것이 분명했다.

    “따로 마법을 공부한 적이 있나?”

    “없습니다.”

    “……그렇군. 공부한 적이 없단 말이지.”

    알베르토는 수염을 쓰다듬으면서 어이없다는 듯 허허- 웃었다.

    ‘공부를 안 했다고? 그렇다면 이건 직관의 영역이겠군.’

    가끔 이런 놈들이 있다.

    원리를 따로 공부하지 않아도, 보는 순간 많은 것들을 파악해 버리고야 마는 놈들.

    ‘아덴카에 괴물이 태어났구나.’

    * * *

    빈첸의 말이 맞았다.

    카곤 쪽 인공던전으로 향하는 마나의 흐름이 강해졌다.

    카곤 역시 그것을 직감했다.

    ‘강해졌어.’

    본래는 8급 마물종이지만, 체감하기로는 7급 이상의 거인종을 상대하는 느낌이었다.

    카곤의 호흡이 가빠졌다.

    ‘두 마리는 위험한데.’

    아무리 카곤이 강하더라도 아직 3성 무인이었다.

    7급의 힘을 가진 거인종 두 마리를 한 번에 상대하는 것은 어려웠다.

    카곤은 침착하게 상황을 판단했다.

    ‘변수가 발생한 거야.’

    그의 검이 푸락투아의 오른팔을 막아냈다.

    느껴지는 압력 자체가 달라졌다.

    ‘그러나 나는 마물 따위에 지지 않는다.’

    그러나 지지 않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단순히 푸락투아를 제압하는 것이 끝이 아니기에.

    이곳에서 카곤이 보여주어야 할 것은 단순한 제압이 아니라 화려하고 압도적인 무위여야만 했다.

    그런데 그때,

    땡! 땡! 땡!

    커다란 소리가 들려왔다.

    “크륵?”

    셀비라가 청각도구를 사용했다.

    셀비라 역시 푸락투아에 대해 공부를 해온 상태.

    셀비라 덕분에 푸락투아에게 틈이 생겼다.

    카곤은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벤다.’

    그의 검에 붉은 기운이 서렸다.

    사미온의 적황미력이 서린 검이었다.

    서걱!

    그의 검은 충분히 날카롭고 예리했다.

    푸락투아 한 마리의 목을 베어내는 데에 성공했다.

    그 광경을 지켜본 알베르토는 허탈하게 웃고 말았다.

    ‘한 놈은 특수한 힘으로 마법을 베어냈고, 또 한 놈은 말도 안 되는 무력으로 푸락투아를 죽였구나.’

    자신이 알고 있던 세상이 변한 것 같았다.

    아덴카의 7공자와 사미온의 6공자는, 그가 아는 세계의 상식을 부숴버렸다.

    ‘이런 식으로 일이 흘러가다니.’

    한 마리의 푸락투아가 죽자, 남은 한 마리를 상대하는 것은 비교적 쉬웠다.

    결국 카곤 역시 보물상자를 획득하는 것에 성공했다.

    아무리 셀비라의 도움이 있었다지만, 방금 카곤이 보여준 것은 3성 무인이 보여줄 수 없는 수준이었다.

    카곤 역시 마법진 위로 모습을 드러냈다.

    그런데 바깥 상황이 영 심상치 않았다.

    ‘이게 어찌된 일이지?’

    박수갈채와 환호 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저 박수와 환호가 자신을 향하는 게 아니라는 것을.

    황당하게도,

    오늘의 승자는 자신이 아니라 빈첸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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