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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의 정석-41화 (41/184)
  • 환생의 정석 41화

    사미온의 장로 중 한 명이자, 이번 ‘친선교류회’를 위하여 카곤과 함께 파견 나온 ‘홀리만’은 인상을 살짝 찌푸렸다.

    [……하여 나는 빈첸 공자가 최소 동률, 어쩌면 세상의 예상을 뒤집고 기적을 일으킬 것이라 감히 확신하는 바이다. - 바람소리, 1급 파견기자, 마리아 햄튼.]

    다시 한번 확인해 보았다.

    [바람소리, 1급 파견기자, 마리아 햄튼.]

    바람소리라면 상당히 영향력 있는 소식지였다.

    그런 소식지의 1급 파견기자가 이런 헛소리를 할 줄이야.

    사미온의 장로로서 그는 기분이 좋지 않았다.

    “홀리만 장로님. 기분이 언짢아 보이십니다.”

    “확률이 지극히 낮은 쪽에 베팅을 하기로 한 작정인 것 같구나.”

    “무슨 뜻입니까?”

    “너도 보아라.”

    카곤도 마리아의 칼럼을 읽어보았다.

    “흥미로운 내용이군요.”

    “허황된 내용이겠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빈첸의 태도가 마음에 듭니다.”

    빈첸은 마리아와 공식적으로 인터뷰하면서 사미온을 꺾겠다고 말했다.

    카곤은 상대가 그렇게 나와 주기를 바라고 있었다.

    “친선교류회는 득보다 실이 많다는 것을 늘 명심하거라.”

    “예.”

    보통의 경우, 사미온은 아덴카에게 지면 안 된다.

    이겨도 본전이고 지면 수모가 된다.

    하물며 상대가 빈첸 아덴카일 경우에는 더더욱 그랬다.

    “바람소리가 원하는 것은 열등종자의 감동적인 드라마일 게야.”

    그것도 어떤 사람들에게는 깊은 울림을 준다.

    설령 빈첸이 이기지 못하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빈첸을 지지하고 응원할 수 있는 계기를 줄 수 있다.

    “그렇다면 네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이겠느냐?”

    “확실히 압도해야겠지요.”

    헛된 희망을 품는 대중들에게 똑똑히 알려주어야 했다.

    세상에 그런 드라마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빈첸은 정말로 저를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한 걸까요?”

    “아마 아니겠지.”

    “그렇다면 빈첸은 지금 빈첸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되겠군요.”

    무력으로는 이길 수 없다.

    그러니 그 외의 다른 방법으로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유력 소식지의 1급 기자와 손잡고서 말이다.

    “그렇게 본다면 그렇게 해석할 수도 있기는 할 것이나 마음이 약해지면 결코 안 될 것이다.”

    “그럴 일은 없습니다.”

    “믿어도 되겠지?”

    “최선을 다하여 노력하는 자가 절망할 때, 가장 보기 좋은 눈을 하더군요.”

    그가 비틀린 표정으로 웃었다.

    * * *

    셀비라가 빈첸 옆에 앉았다.

    “빈첸. 친선교류회 1차 관문 내용 정해진 거 확인했지?”

    “막 확인하던 참이었어.”

    ‘친선교류회’는 사미온과 아덴카의 직계가 실력을 겨루는 교류의 장이다.

    단순히 결투로 자웅을 가리는 것은 아니었다.

    최종적으로 결투를 하여 승패를 가리기는 하지만, 그 이전에 치러야 할 관문들이 존재했다.

    1차 관문은 마탑의 마법사들이 정교하게 구현한 인공던전 내에서 그 실력을 증명하는 것이었다.

    “나타나는 마물들은 파충종, 악마종, 거인종 중 랜덤으로 나타난다고 해. 그들이 지키는 보물상자를 획득하는 것이 1차 관문의 목표래.”

    “그래.”

    “뭐가 나오면 좋겠어? 급수는 파충종이 제일 높겠지만, 그래도 파충종이 낫지?”

    악마종과 거인종 마물은 상대하기 까다로운 마물로 정평이 나 있다.

    7급 파충종보다 9급 거인종 마물이 더 강하다고 평가되는 경우도 많았다.

    “무엇이 나오든 별로 상관없을 것 같군.”

    “진짜?”

    “그래.”

    셀비라가 은근슬쩍 빈첸에게 조금 더 가까이 붙었다.

    기대감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

    “함께 진행할 생도들은 정했어?”

    “거의.”

    저번 친선교류회에서 승자는 사미온이었다.

    그래서 이번 친선교류회에서는, 패자인 아덴카 쪽에 유리하도록 설계되어 있었다.

    1차 관문에 함께 진입할 생도들 자체가 기본적으로 ‘붉은 요새’의 9급 생도들이었을 뿐만 아니라, 생도들을 먼저 선택할 수 있는 권리까지 주어졌다.

    “나를 뽑아줘.”

    “너를?”

    “나라면 큰 도움이 될 수 있을걸?”

    빈첸이 고개를 저었다.

    “아쉽지만 이번에는 아니야.”

    셀비라는 입술을 살짝 내밀었다.

    “내 실력을 못 믿어서 그래?”

    “그런 건 아닌데.”

    빈첸이 어깨를 으쓱했다.

    “보다 무인다운 것을 보여주려 마음먹었기 때문이야.”

    “내가 있으면 그게 힘들어?”

    “그게 아니라.”

    애초에 동료들 자체가 빈첸에게 유리했다.

    붉은 요새의 9급 생도들이니까.

    “저번 정기 평가에서 성적이 가장 낮았던 한 명과, 어제 복귀한 시젠을 선택할 거야.”

    “……뭐?”

    셀비라에게는 마치 ‘그냥 패배할 거야’라고 들렸다.

    성적이 낮은 생도의 실력은 말할 것도 없을뿐더러, 시젠은 최근에 양팔이 잘렸었다.

    제대로 된 실력을 낼 수 있을 리 만무했다.

    “왜?”

    “그들과 함께여도 값진 것을 보여줄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야 하니까.”

    단순한 승리는 의미 없다.

    유리한 상황에서 따내는 승리도 필요 없다.

    빈첸이 보여주고 싶은 것은 그 이상의 것이었다.

    “그러니 셀비라, 너도 최선을 다해.”

    “그건 또 무슨 말이야? 나 안 뽑는다며.”

    “내가 카곤이라면 너를 반드시 뽑을 테니까.”

    “……카곤한테 붙어서 최선을 다하라고?”

    셀비라는 인상을 살짝 찡그렸다.

    그렇지만 이어지는 빈첸의 말에 기분이 다시 좋아졌다.

    “너는 훌륭한 자질을 가진 생도니까. 분명 카곤에게 큰 도움이 되어주겠지.”

    “내가 카곤한테 방해가 되어야 좋은 거 아니야?”

    빈첸이 고개를 저었다.

    “최선을 다해줘.”

    셀비라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빈첸을 바라보았다.

    한참 동안이나 쳐다보기만 했다.

    빈첸의 눈동자는 흔들림이 없었다.

    “……아무리 봐도 진심으로 하는 말 같네.”

    “부탁해.”

    빈첸이 빙그레 웃었다.

    “네가 최선을 다하는 것이 날 돕는 거야.”

    * * *

    붉은 요새에서 가장 가까운 마탑인 6마탑에서 마법사단이 파견되었다.

    그들은 매우 정교한 인공던전을 구성할 수 있는 마법사들이었고, ‘친선교류회’의 1차 관문을 진행해 줄 사람들이기도 했다.

    붉은 요새의 총책임자인 헤르카는 ‘마법사들을 떼거리로 만나라고? 몸에 두드러기가 나겠군.’이라며 부책임자인 바르곤에게 행정적인 절차를 모두 위임했다.

    “바르곤. 마침 위험천만한 5급 마물이 나타났지 뭐야? 아이고, 긴급한 상황이 벌어지고 말았어.”

    “헤르카 경……!”

    “성실한 바르곤 경만 믿는다!”

    결국 행정절차는 바르곤이 맡게 되었다.

    그가 붉은 요새의 대표로 마법사단과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쾅!

    바르곤은 책상을 내리쳤다.

    “사미온과 계약이라도 맺었습니까? 왜요? 사미온의 6공자를 더욱 돋보이게 만들어야 한답니까?”

    “말씀이 심하시군요, 바르곤 경.”

    마법사단장 알베르토는 고개를 저었다.

    “우리는 그저 같은 환경에서 두 공자가 어떤 모습을 보여주는지 보여주고 싶을 뿐입니다.”

    “1차 관문에서 등장하는 마물은 랜덤으로 정해질 텐데요.”

    “저희에게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아 랜덤방식의 술식까지 정교하게 새겨 넣지 못했습니다. 이번에 나타날 마물은 8급 거인종 푸락투아로 픽스되었습니다.”

    “빈첸 공자가 어떻게 8급 거인종을 사냥한단 말입니까! 그는 아직 아덴카 검식조차 익히지 못했습니다.”

    “그건 카곤 공자도 마찬가지입니다. 같은 환경이고, 더군다나 빈첸 공자는 함께할 생도들을 미리 선점할 수 있는데 왜 그리 역정을 내시는 겁니까?”

    8급 거인종 푸락투아는 체력과 근력이 무척이나 뛰어난 거구의 마물이었다.

    이성이 없어서 두려움을 모르며 오로지 파괴욕만이 가득한 마물.

    또한 일정 이상 경지에 이르지 못한 공격은 그 단단한 살갗을 뚫어내지 못한다.

    즉, 어중간한 실력으로는 상처 하나 내지 못한다는 뜻이었다.

    “자자, 진정하세요. 어차피 상황은 같습니다.”

    “아뇨. 카곤 공자는 이미 4성을 목전에 두고 있지요.”

    “빈첸 공자 역시 뛰어난 활약으로 최근 각명까지 하지 않았습니까? 바르곤 경은 빈첸 생도가 실력도 없이 붉은 비석에 이름을 새긴 얼간이라 주장하는 겁니까?”

    바르곤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

    이미 저들은 결론을 다 내리고 온 모양이었다.

    그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한 번 최대한 멋진 그림을 헌정 해보십시오들. 존경하는 사미온 님들께.”

    바르곤은 확신했다.

    저들은 사미온의 개다.

    카곤이 가장 빛날 수 있는 배경을 만들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저는 등장하는 마물이 푸락투아로 확정되었다는 사실을 공지하겠습니다.”

    “그렇게 하시지요.”

    마법사단장 알베르토의 얼굴에는 비웃음이 가득했다.

    그래봤자 빈첸이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요, 그렇게 말을 하는 것만 같았다.

    바르곤은 그 즉시 1차 관문에 대한 재공지를 내렸다.

    ‘푸락투아’의 생성이 정해졌다는 공지였다.

    ‘푸락투아?’

    -8급 거인종이에요. 4성 이상의 마나를 지녀야만 그 두꺼운 피부를 뚫을 수 있어요. 사람들은 형님의 공격이 아예 먹히지 않을 거라고 예상할 거예요.

    빈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더욱 잘되었구나.’

    -뭐가요?

    ‘모두가 예상하지 못한 반전이 제일 즐거운 것 아니겠느냐?’

    빈첸이 씨익 웃었다.

    오늘의 친선교류회가 기대되었다.

    ‘가자.’

    * * *

    붉은 요새의 대연무장.

    많은 이들이 이곳에 모였다.

    생도들은 물론이거니와 교관들, 사미온의 장로를 비롯하여 사미온 측 수행원들.

    마법사단의 마법사들.

    그리고 5급 마물을 토벌하고 돌아온 헤르카와 바르곤까지.

    헤르카가 말했다.

    “붉은 요새의 총책임자로서 이 자리를 총괄하게 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곧 친선교류회가 시작된다.

    초청된 소식지 기자들이 자리를 잡았다.

    그들은 마법사들의 도움을 받아 인공던전 속을 관찰할 수 있었다.

    그들은 실시간으로 ‘친선교류회’를 중계할 준비를 마쳤다.

    “많은 분들이 아시겠지만 친선교류회의 1차 관문은 마법사분들께서 수고해 주실 예정입니다. 빈첸 생도와 카곤 공자는 단상 위로 올라오십시오.”

    빈첸과 카곤이 단상 위로 올라서서 서로를 마주 보았다.

    카곤은 은은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오랜 친구를 만난 것 같은 반가움까지 깃들어 있었다.

    “반갑다. 사미온의 6공자, 카곤이다.”

    카곤이 먼저 손을 내밀었다.

    빈첸이 그 손을 맞잡았다.

    “붉은 요새의 9급 생도, 빈첸이다.”

    두 사람이 손을 맞잡고 인사하자 많은 생도들이 박수를 쳤다.

    “빈첸의 모양새가 많이 빠질 거라 생각했는데…… 의외로 그림이 괜찮네?”

    “그러게나 말이야.”

    적어도 겉모습으로 보았을 때, 빈첸은 카곤에게 그리 뒤처지지 않았다.

    둘의 모습은 대등했다.

    카곤이 말했다.

    “네가 네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어.”

    “당연한 소리를 하는군.”

    “최선을 다하는 친구를 만나니 기분이 좋네.”

    카곤은 웃고 있었다.

    그 얼굴을 마주 보며 빈첸은 기분이 무척 나빠졌다.

    ‘불쾌하군.’

    겉으로 보기에 카곤의 태도에는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저 온화한 표정 뒤에는 기분 나쁜 무언가가 숨겨져 있었다.

    빈첸만 느낄 수 있는 무언가.

    “부디 네 무력으로 너를 증명해 주길 바란다, 친구야.”

    지금의 이 모든 대화 내용은 저만치 멀리 앉아 있는 소식지의 기자들에게도 생생히 전달되고 있는 중이었다.

    기자들의 손이 바빠졌다.

    지금 이 순간부터 이미 ‘친선교류회’는 시작된 셈이었다.

    그들은 모두가 첫 만남에서부터 모든 순간 카곤이 빈첸을 압도할 것이라 예상했다.

    “나와 생각이 같군.”

    “……뭐?”

    “무릇 무인이라면 무력으로 자신을 증명해야지.”

    빈첸이 말을 이었다.

    “너도 부디 네 실력을 증명해 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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