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생의 정석 40화
아덴카와 사미온에 관하여 유명한 말이 있었다.
-아덴카에 2공녀 데이아가 있다면 사미온에는 6공자 카곤이 있다.
6공자 카곤은 검술과 관련된 최상위 등급 가호인 ‘검신 케샤크’의 가호를 가지고 있었으며, 검술에 대한 재능이 탁월하여 아직 14살의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사미온의 미래를 짊어질 재목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었다.
그가 붉은 요새에 도착했다.
많은 생도들은 물론이거니와 각종 소식지에서 파견 나온 기자들도 먼발치서 카곤을 구경했다.
“잘생겼다더니 진짜 잘생겼구나.”
몇몇은 그의 외모에 감탄했고,
“걸음걸이가 상당히 안정적인데.”
안목 있는 상급 생도들은 열네 살에 불과한 카곤에게서 상당히 정돈된 기세를 느낄 수 있었다.
“빈첸과의 친선교류는 어떻게 되려나.”
“보나 마나 답은 이미 정해져 있지.”
그 누구도 빈첸의 승리를 예측하지는 않았다.
빈첸이 9급 생도가 되어 엄청난 성과를 이룬 것은 맞았다.
붉은 비석에 이름을 올리면서 대단한 명예를 성취한 것도 맞았다.
그러나 그 본연의 무력이 카곤을 넘어설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빈첸이 의외의 선전을 하고는 있지만, 카곤에 비할 바는 못 되잖아.”
대진운이 너무 안 좋았다.
상대가 하필이면 사미온 6공자다.
카곤은 멀리서 자신을 향해 쑥덕거리고 있는 생도들을 향해 허리를 가볍게 숙여 보였다.
“아덴카의 여러 선배님들을 뵙습니다.”
기자들을 향해서도 인사했다.
“저희의 소식을 담아주시려 불철주야 애써주시는 여러 소식지 기자분들도 반갑습니다.”
카곤의 음성에는 미약한 마나가 담겨 있었다.
모두에게 균일하게 전달되었다.
상당히 세밀한 마나 컨트롤 능력을 간접적으로 보여주었다.
“모여주신 분들께 누가 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카곤은 그리 건방지지도, 그렇다고 비굴하지도 않은 태도로 붉은 요새에 입성했다.
‘친선교류회’를 취재하기 위해 유력 소식지 기자들도 많이 찾았다.
“마리아는 어디 갔어?”
마리아.
그녀는 소식지계의 아덴카라고도 불리는 ‘바람소리’ 소식지의 유력기자였다.
“글쎄요. 빈첸 쪽으로 취재 간 것 같은데요.”
소식지계의 아덴카라는 말은 곧 2인자라는 말이기도 했다.
소식지의 1인자는 ‘센트럴 소식지’였다.
센트럴의 론도는 혀를 쯔쯧, 찼다.
“빈첸 쪽으로 갔다고? 감이 그렇게 없어서야. 그러니 만년 2인자지.”
지금은 빈첸이 아니라 카곤에게 집중해야 할 때다.
이렇게 많은 기자들이 여기에 몰려 있는 것이 그걸 증명했다.
“마리아 고것도 한물갔군.”
같은 시각.
바람소리의 1급 파견 기자 마리아는 빈첸을 찾았다.
“안녕하세요, 바람소리 소식지의 마리아입니다.”
빈첸은 속으로 말했다.
‘과거의 나는 인터뷰 같은 것을 귀찮아했었다.’
그 시간에 검을 한 번이라도 더 휘두르는 것이 무인에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이제는 아니다.
억울한 죽음을 경험하고 나서 빈첸도 많이 바뀌었다.
-당연히 심도 깊은 얘기를 나눠야죠.
율리안은 외팔이 데이븐과는 세상을 보는 방식이 달랐고, 그의 방식을 빈첸에게도 가르쳐주었다.
-결국 명가라는 것은 사람들의 지지기반 속에서 만들어져요. 우리는 그들의 지지를 받아야 해요. 그러기 위해서 가장 좋은 것은 ‘서사’죠. 저자는 우리에게 큰 힘이 되어줄 거예요.
빈첸이 말했다.
“반갑습니다, 9급 생도 빈첸입니다.”
간단한 인사를 나눈 뒤 빈첸이 먼저 본론을 꺼냈다.
율리안의 도움을 조금 받았다.
“마리아 기자님께서 생각하시는 가장 아름답고 파급력이 큰 시나리오는 역시 못난이인 제가 귀공자인 카곤을 이겨내는 것이겠지요. 모두가 카곤에게 집중하고 있을 때 저를 찾아오셨다는 건 무엇인가 다른 그림을 그리고 계신다는 뜻일 테고요.”
마리아의 몸이 움찔했다.
‘내가 왜 자기를 찾아왔는지 정확히 이해하고 있네.’
보통의 무인들과는 조금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다.
무인들은 보통 고지식하고 세상 물정에 다소 어둡다는 것이 마리아의 생각이었다.
무인들은 일반적인 사람들보다 훨씬 강한 힘을 지니고 있으니 세상 물정에 굳이 밝아야 할 이유가 없기도 했고.
“그게 가능하다고 생각하나요?”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
“따라서 다른 시나리오를 제안하러 오셨을 것 같습니다.”
“다른 시나리오요? 어떤?”
마리아가 안경을 고쳐 썼다.
‘뭐야? 내 의도를 어디까지 파악한 거야?’
빈첸에게 묘한 호기심이 일기 시작했다.
“다소 부족한 자의 처절한 최선을 통한 ‘드라마’ 혹은 ‘서사’에 집중하시려는 것 아닌가요?”
“그건……!”
“그러기 위해 제게 유리한 어떤 정보를 전해줄 것이라 짐작됩니다. 예를 들어 카곤의 습관이라든지, 약점이라든지.”
“정말이지. 제 눈으로 본 빈첸 공자는 익히 알려진 소문과 너무 다른데요.”
“칭찬으로 이해하겠습니다.”
율리안이 말했다.
-다음은 어떻게 하실 거예요?
율리안은 본래 기자의 제안을 받아들이려고 했다.
그들이 연출하는 시나리오 위에서, 그들의 광대가 되어줄 용의가 충분히 있었다.
최대한 좋은 모습을 보여주어 이득을 취하려 했다.
바람소리의 마리아라면 빈첸의 모습을 충분히 아름답게 그려줄 수 있는 사람이라 판단했다.
-만약 제가 형님이라면 마리아의 제안을 받아들일 거예요. 소식지 기자들은 의외로 엄청 고급정보들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거든요. 형님 이미지 구축하는 데에도 막대한 도움이 될 테고.
‘내가 그렇게 하길 바라느냐?’
-내가 뭐라고 해봤자 최종 결정은 어차피 형님이 하고 싶은 대로 할 거면서 무슨.
겉으로는 빈정대는 것 같았으나 율리안에게서 느껴지는 것은 빈첸을 향한 짙은 신뢰감이었다.
빈첸이 말했다.
“기자님이 생각하셨던 ‘가장 아름다운 시나리오’를 그려보죠.”
“가장 아름다운 시나리오요?”
“불가능한 것이 이루어지는 시나리오를 말합니다.”
“불가능한 시나리오라면…….”
“저는 카곤을 이길 생각입니다.”
경험 많은 베테랑인 마리아조차 잠시 입을 다물고 말았다.
“진심인가요?”
“진심입니다.”
결과가 나온 다음의 소식은 가치가 덜하다.
“저의 승리를 예측하는 소식을 만들어보세요. 마리아 기자님의 사적인 의견과 경험을 바탕으로.”
“…….”
“걱정 마세요. 저는 사미온을 이겨낼 것입니다.”
이미 수많은 소식지의 유력 기자들이 이번 친선교류회가 어떻게 흘러갈지에 대해 예측하는 내용의 칼럼을 쏟아내고 있다.
당연히 모두가 카곤의 압승을 예상했다.
“공자가 카곤 공자를 이기겠다고 공식적으로 인터뷰하시는 건가요?”
“네.”
“저는 그 내용을 바탕으로 저는 공자의 승리를 예측하라는 뜻이고요?”
“네.”
“빈첸 공자가 이긴다는 기사를 쓰는 순간, 저도 공자도 세상의 비웃음거리가 될 텐데요.”
그녀는 지금까지 쉼 없이 노력하여 이 자리까지 올라왔다.
괜히 얼토당토않은 칼럼을 게재했다가는 지금까지 쌓아온 모든 것이 물거품으로 돌아갈 수도 있었다.
마리아는 한참 동안 침묵하다가 겨우 다시 입을 열었다.
“저한테 이런 제안을 하는 이유는 무엇이죠?”
“마리아 기자님도 저와 같은 곳을 보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같은 곳이요?”
“저는 사미온을 넘어설 것이거든요.”
빈첸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지금까지 해온 방식으로는 1인자를 넘어설 수 없습니다, 마리아 기자님.”
빈첸은 마리아의 가려운 부분을 정확하게 긁었다.
아덴카의 빈첸이 사미온을 뛰어넘고 싶은 것처럼.
바람소리의 마리아도 센트럴을 뛰어넘고 싶었다.
“저는 같은 제안을 몇몇 기자님들에게 할 생각입니다. 센트럴의 론도, 호센의 옴마논 기자님도 염두에 두고 있어요.”
그 말에 마리아는 괜스레 마음이 급해졌다.
“그, 그들이 공자의 제안을 과연 받아들일 거라고 생각하나요?”
“모릅니다.”
빈첸은 걸어가다 말고 멈추었다.
“그러나 제안을 받아들인 자는 기자로서의 명예를 거머쥘 수 있을 겁니다. 누구도 보여주지 못한 식견을 인정받을 수 있을 테니까.”
정말로 공자가 카곤 공자를 꺾는다면 그렇겠지요.
그러나 그럴 가능성이 얼마나 있습니까?
마리아는 그렇게 말하고 싶었으나 참았다.
“다만 저는 그게 마리아 기자님이면 좋겠군요.”
“……왜죠?”
“저를 가장 먼저 찾아오신 분이니까요.”
빈첸이 가볍게 웃었다.
“무인은 저를 알아준 자에게 보답하는 법입니다.”
“……공자의 제안이 제게 보답이 되리라는 보장은 없어요.”
“아무것도 걸지 않으면, 무엇도 얻을 수 없습니다.”
마리아는 멀어지는 빈첸을 한참 동안 바라보기만 했다.
* * *
숙소로 돌아온 마리아는 머리를 쥐어뜯었다.
객관적인 전력은 무조건적인 열세.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 안 돼.’
빈첸이 카곤을 이긴다?
그렇게 극적인 스토리는 소설로도 나오기 어려운 얘기였다.
‘그런데…….’
빈첸에게 자꾸만 마음이 갔다.
이성의 영역이 아니었다.
이것은 철저히 감성의 영역이었다.
‘왜 그렇게까지 확신하는 태도인 거야?’
빈첸의 태도는 일반적인 9급 생도의 태도가 아니었다.
그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그가 정말로 친선교류회에서 승리할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미치겠군.’
그녀는 9급 생활관에서 몇몇 생도들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얼마 전까지 대표생도였다던 셀비라는 이렇게 말했다.
-저는 빈첸이 이겼으면 좋겠어요. 빈첸은 무척 강하거든요. 음, 빈첸을 한 마디로 표현해 보라구요? 음, 으음, 아, 이거면 되겠다. 기지개를 켜기 시작한 사자요.
이후로도 몇몇 생도들과 이야기를 나누어보았다.
그들 역시도 빈첸이 이길 거라고 말은 하지 않았으나, 한 가지는 확실했다.
‘9급 생도들로부터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잖아?’
거짓말 조금 보태서 숭배에 가까울 정도의 지지였다.
‘겨우 1주일가량밖에 안 됐는데, 벌써 이렇게 신뢰를 쌓았다고?’
그게 그녀를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이렇게 강력한 신뢰관계를 쌓기에는 시간이 너무 짧았으니까.
그리고 시종 윌슨은 이렇게 얘기했다.
-당연히 우리 공자님이 이기죠. 빈첸 공자님이 얼마나 강한지 모르십니까요? 하! 기자님 세상 물정 잘 모르시네요.
시종의 눈에도 엄청난 확신이 담겨 있었다.
시종 때문에 더 헷갈렸다.
한참을 고민하던 그녀는 결국 펜을 들었다.
[몸을 웅크리고 있던 사자가 기지개를 켜기 시작하였다.]
그녀는 말도 안 되는 내용을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아덴카의 못난이 빈첸이 사미온의 귀공자 카곤을 이길 것이라는 예측성 소식이었다.
‘본사로 보내면 당연히 반려될 거야.’
이따위를 기사로 내?
미쳤어?
호된 소리를 들을 게 뻔했다.
그래서 그녀는 ‘1급 소식기자’ 권한으로 중소 소식지에 해당 내용을 배포했다.
[놀랍게도 그는 ‘각명(刻名)’ 무인이었으며, 그 작업을 아덴카의 가주 칸이 직접 진행해 주었다는 특별한 명예까지 거머쥐고 있는 소년이었다. 그는 1주일이 채 되지 않아 9급생도들의 암묵적인 대표생도가 되었고, 생도들의 전폭적인 지지와 응원을 받는 상태이다.]
중소 소식지들은 그녀의 칼럼을 순식간에 대륙 전역으로 쏟아냈다.
[……하여 나는 빈첸 공자가 최소 동률, 어쩌면 세상의 예상을 뒤집고 기적을 일으킬 것이라 감히 확신하는 바이다. - 바람소리, 1급 파견기자, 마리아 햄튼.]
빈첸에 대한 소식이 ‘붉은 요새를 넘어 대륙에 퍼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