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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의 정석-26화 (26/184)

환생의 정석 26화

붉은 악귀를 토벌하고 새로운 홍련을 손에 넣었다.

이후 두 개의 가호와 특성을 발현시켰다.

빈첸은 모든 시간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사용했다.

매일같이 빈첸을 도와준 레일사조차 빈첸의 집념에는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곧 붉은 요새로 가시겠군요.”

“그동안 고마웠어.”

사실 빈첸이 ‘붉은 요새’에 갈 수 있다고 생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빈첸은 변했고, 결국 붉은 요새로 가게 되었다.

이 소식은 아덴카 내에서 꽤 흥미로운 얘기였다.

빈첸은 방으로 돌아와 명상을 하면서 한 차례 마력자전을 끝냈다.

‘내일인가.’

마음의 준비 외에 다른 걸 할 필요는 없었다.

준비는 세리와 윌슨이 도맡아서 해주었다.

윌슨은 약간 겁을 먹은 상태였다.

“고, 공자님, 저도 꼭, 반드시 가는 거죠?”

그의 머릿속에서 ‘붉은 요새’는 괴물들이 득실거리는 곳이었다.

아덴카에 친화적인 무가들의 자제들이 보이는, 말하자면 무인집합소 같은 느낌이었다.

“싫다면 오지 않아도 된다.”

“지, 진짜요?”

“그래.”

“고, 공자님이 허락하신 겁니다요!”

윌슨은 화색을 띠었으나 결국 도망치지는 않았다.

커다란 배낭을 메고 빈첸 옆에 섰다.

“도망 안 쳤구나?”

“그, 그래도 제가 사나이 아니겠습니까!”

그런 것 치고는 여전히 겁에 질려 있기는 했으나 어쨌든 윌슨은 빈첸의 곁을 지켰다.

특이한 건 세리의 복장이었다.

세리는 평소에 입지 않는 가죽 재질의 옷들을 입었는데, 그 모습은 마치 사냥꾼 같기도 했다.

“그곳에서도 절대 공자님을 굶기지는 않을 거예요.”

세리는 지난 6개월간, 사냥기술과 야전 요리를 익혔다.

오지에 떨어지더라도 빈첸의 배를 곯게 하지 않겠다는 다짐이었다.

마중 나온 제론이 피식 웃고서 말했다.

“그럴 필요 없어. 분명 외진 산맥 속이지만 꽤 문명화된 선진 교육 요새라고. 도대체 어딜 간다고 생각하는 거야?”

“제론 경은 그곳에 가보셨어요?”

“두어 번 파견 나가보기는 했지.”

제론이 고개를 숙였다.

“공자님. 그럼 훗날 뵙겠습니다.”

빈첸과 세리는 마차에 올라탔고, 윌슨이 마부석에 앉았다.

세리가 마차에 올라타며 고개를 갸웃했다.

“시종장님께서 마중을 나와 주실 줄 알았는데요.”

레일사가 빈첸을 지도해 주고 있다는 사실은 유명했다.

그래서 세리는 레일사가 마중을 나와 줄 것이라 생각했다.

“에, 에그머니나!”

마차에 누군가 이미 타고 있었다.

시종장 레일사였다.

레일사가 침착하게 말을 이었다.

“아덴카는 세상을 이끄는 가문 중 하나입니다. 칭송하는 자들도 많지만 적도 많습니다. 그러니 붉은 요새의 권역까지 제가 호위하겠습니다.”

레일사의 호위가 무색하게, 마차는 별일 없이 여러 이동관문을 거쳐 ‘붉은 용의 산맥’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곳이 마지막 이동관문입니다.”

이동관문을 타고 이동하면, 산맥의 중턱 부근에 도착할 수 있다고 했다.

그 이후에는 보안상의 이유로 걸어가야만 요새에 도달할 수 있었다.

계곡 사이를 걸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오갔는지 길이 제법 잘 나 있었다.

저만치 멀리, 계곡 사이로 거대한 붉은 성벽이 보였다.

안개가 가득 낀 저곳은 난공불락의 요새처럼 보였다.

‘저기가 붉은 요새.’

초대가주 아슬란이 세운 요새.

바할을 처치하고 그것을 기념하여 세운 곳.

아덴카의 직계라면 반드시 들러야 하며, 빈첸 역시 필연적으로 지나쳐야 하는 곳.

결국 그곳에 도착했다.

“제 안내는 여기까지입니다.”

“고마워.”

“제 일을 했을 뿐입니다.”

레일사는 그 말을 끝으로 사라졌다.

‘지금부터 시작인가.’

시종장이 사라진 지금부터가 바로 시작이었다.

붉은 요새가 보이기는 하지만, 아직 성벽에 도착한 건 아니었다.

굳이 지금 사라졌다는 건 다른 이유가 있다는 뜻.

‘요새에 입성하는 것부터가 시험이겠군.’

-맞아요. 아마 붉은 요새의 상급자들이 이쪽을 관찰하고 있을 거예요.

빈첸이 씨익 웃었다.

‘그래.’

그럼, 이래야 재미있지.

그때 짙은 안개가 서리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보여주어야지.’

못난이였던 빈첸 아덴카.

그가 자신을 증명하기로 했다.

* * *

붉은 요새의 총책임자.

요새장 헤르카는 귀찮은 일이라면 질색이었다.

“아, 빈첸? 난 그런 애 몰라. 우리 성실한 바르곤 경이 알아서 처리해 줘. 난 마물 잡으러 간다!”

그래서 그녀는 오늘도 자리를 비웠다.

“……뭘 잡으러 갑니까?”

“있어, 엄청 위험한 놈. 민가에 내려와서 피해를 끼치고 있대.”

“…….”

“얼른, 출장서류 도장 찍어줘.”

“사고 치지 마십시오.”

“걱정 마.”

헤르카를 대리하게 된 바르곤이 붉은 요새의 망루 위로 올라섰다.

바르곤은 아덴카와 계약하고 ‘붉은 요새’로 파견된 5고리의 마법사였으며, 붉은 요새의 부 책임(부요새장)이기도 했다.

그는 하늘을 향해 작은 구슬을 던졌다.

구슬에서 날개가 돋아나 하늘 높이 솟구쳐 올랐고 이내 한 방향으로 날아갔다.

바르곤은 그를 통해 시야를 확보했다.

‘오는군.’

이례적인 것은 시종장 레일사가 함께 오고 있다는 것이었다.

보통 저 정도 되는 무인이 직접 안내를 하는 경우는 흔치 않았다.

‘과연 아덴카의 못난이라 이 말인가.’

7성 무인이 보호해 주지 않으면 이곳에 도달할 수조차 없는 둔재란 말인가.

총책임자 헤르카가 자리를 비운 것도 이해가 되었다.

‘최근 조금 변했다는 소문이 있기는 하다만.’

그러나 빈첸이 대외적으로 무언가를 보여준 적은 없었다.

소문이야 늘 과장되고 와전되기 마련이다.

바르곤은 소문을 믿는 편은 아니었다.

레일사가 하늘 쪽을 힐끗 쳐다보았다.

바르곤은 레일사와 눈이 마주쳤음을 느꼈다.

‘나를 발견했군.’

이후, 레일사는 빈첸에게 허리를 숙여 보이고 떠나갔다.

이제부터는 ‘붉은 요새’의 권역인 것이다.

바르곤이 말했다.

“첫 시험을 시작한다.”

붉은 요새에 파견 나온 마법사는 도합 다섯.

로브를 뒤집어쓴 그들이 동시에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그들의 발밑으로 마법진이 형성되었다.

마법진 속에는 마법문자들이 생성되어 각종 표식을 만들어내었다가 사라졌다.

바르곤은 잠시 고민했다.

‘구현해야 하는 것은…….’

보통 아덴카의 직계가 입성하는 날에는 ‘청안 백호’를 구현한다.

청안 백호 무리를 시험자 앞에 등장시켜 어떻게 대처하는지를 확인하는 절차였고, 이것이 곧 암묵적인 입성식이기도 했다.

‘역시 청안 백호로 해야겠지.’

못난이가 온다 하여 규정을 바꿀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청안 백호 무리를 구현했다.

환상 마법으로 정교하게 구현한 것이며, 육안으로는 진짜와 구별할 수 없는 허상.

‘너무 실망스럽지 않으면 좋겠는데.’

마법과 검은 늘 경쟁해 왔다.

그 과정에서 서로를 인정해 왔다.

상대는 검의 쌍두마차 중 하나인 ‘아덴카’의 직계.

바르곤에게는 빈첸이 좋은 모습을 보여주면 좋겠다는 소망이 있었다.

‘설마 도망치지는 않겠지.’

붉은 요새가 생긴 이래, 도망자는 한 명도 없었다.

그러한 수치스러운 역사가 오늘 생기지 않았으면 했다.

* * *

인위적인 안개.

그리고 인공적인 눈보라.

‘정교한 마법이구나. 이 정도라면 상당한 실력의 마법사가 관여했을 것이다. 붉은 요새에 뛰어난 마법사는 누가 있지?’

-아마 부요새장인 바르곤일 거예요. 5고리의 마법사라고 알려져 있어요.

‘붉은 요새’의 입성식에 대해 알려진 사실은 없었다.

그러나 율리안은 상황만으로 유추해 냈다.

‘분위기를 보아하니 마물을 구현해 낼 것 같은데.’

마법으로 가짜 마물을 구성할 것 같았다.

-그걸 어떻게 알아요?

‘그냥 느껴진다.’

-하아.

빈첸은 잠자코 앞을 향해 걸었다.

마물의 냄새가 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의 기감에는 잡히는 것이 없었다.

왜냐하면 나타날 마물은 ‘환상’이었으니까.

빈첸이 육감을 통해 마물의 등장을 예감했고, 율리안이 논리적인 분석을 덧붙였다.

-눈보라와 추위를 구성했다면 그와 관련이 있는 마물이 나타날 거고.

그리고 그때,

크와아아아앙-!

거대한 포효소리가 들려왔다.

윌슨이 잔뜩 겁을 집어먹었다.

“으, 으으, 으윽!”

그의 몸이 바들바들 떨렸다.

비명을 지르면 안 된다고 생각했는지 두툼한 손으로 제 입을 가렸다.

세리도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백호’의 울음소리네요.

하얀 호랑이.

그것은 마물이 아니라 짐승이다.

-아마 마법을 구현하기 위해 매개체가 필요할 테니, 이 근방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서식하는…….

‘청안 백호의 울음소리군.’

-하아.

빈첸의 직감과 경험이, 율리안의 분석보다 빨랐다.

-형님 말이 맞는 것 같아요.

‘청안 백호’는 일반적인 백호보다 덩치가 1.5배 이상 컸으며 물어뜯는 힘이 훨씬 더 강했다.

짐승인 백호보다 훨씬 흉포했고 피를 좋아하는 놈이었다.

고블린 같은 소형 마물을 간식으로 삼기도 했으나, ‘마나’를 가진 인간을 가장 좋아하기도 했다.

크와아아앙-!

울음소리가 메아리쳤다.

‘한두 마리가 아니군.’

묘하게 이질적인 감각이 들었다.

마법으로 구현한 환상 생명체이기 때문이었다.

‘세상이 참 많이 변했군.’

시험을 하기 위해 인공적인 마물을 구현하다니.

재미있는 발상이었다.

‘청안 백호는 본래 무리 행동을 하지 않는 놈이지.’

정확한 위치를 파악할 수는 없었다.

대략적으로 10여 마리는 되는 것 같았다.

빈첸이 입을 열었다.

“청안 백호는 무리 행동을 하지 않는다.”

그리고 위를 올려다보았다.

아까 시종장 레일사가 그렇게 했던 것처럼.

빈첸 쪽을 지켜보던 바르곤의 몸이 움찔 떨렸다.

‘눈이 마주친 건가?’

그렇지만 그럴 리는 없다고 생각했다.

레일사에게는 가능한 일이겠지만, 심상도 맺지 못한 빈첸에게는 불가능한 일이었으니까.

바르곤은 그렇게 생각했다.

‘우연이겠지.’

그렇게 생각했는데 조금 이상했다.

빈첸이 자꾸 누군가에게 말을 했다.

“자연적으로는 일어나지 않을 일을 억지로 구성했다면.”

바르곤이 인상을 살짝 찡그렸다.

자신에게 하는 말 같았으나 아직까지는 긴가민가했다.

“거짓된 현상을 구현하는 데에 더 많은 계산과 복잡한 술식이 들어가야 했을 것이다.”

저 멀리, 청안 백호 한 마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눈보라 가운데 실루엣만 보이는 정도였으나 그 덩치에서 오는 위압감이 상당했다.

‘율리안, 그 복잡한 걸 가능하게 하려면 무엇을 해야 하나?’

-마법사들이 말하는, 중앙 집결 요소라는 것이 필요해요.

“그리고 이 정도 먼 거리에서 저들을 컨트롤하려면 분명 [중앙 집결 요소]가 있을 텐데.”

바르곤은 이제는 알 수밖에 없었다.

‘내게 하는 말이 틀림없어.’

중앙 집결 요소.

마법사들이 사용하는 말이었다.

원거리의 마법을 조정하기 위해서 반드시 마나를 원격으로 전달해야 한다.

마법 발현의 효율을 위하여 마나를 받아들이는 ‘중심 요소’가 있는데, 그것을 중앙 집결 요소라 부른다.

마법사들은 ‘중앙 집결 요소’에 마나를 보내고, ‘중앙 집결 요소’에서 주변으로 다시 마나를 뿌려 마법사가 원한 마법을 구동한다.

‘마법의 원리를 이해하고 있는 거야.’

바르곤이 자세를 고쳐 잡았다.

전개 양상이 다른 아덴카의 직계들과는 조금 달랐다.

“가장 먼저 포효를 내지른 놈이 아마도 중앙 집결 요소겠지.”

빈첸은 직감적으로 소리의 발원지를 느꼈다.

그러자 율리안이 수학적으로 풀어내었다.

“청안 백호의 음성전달 속도는 일반적인 음속보다 빠르고.”

청안 백호의 포효는 1초에 500미터만큼 전달된다.

그에 반해 마나의 움직임은 그보다 훨씬 빠르다고 했다.

“마법이 발현된 시점과 포효가 내게 전달된 시점의 시간 차가 약 1.8초.”

율리안이 그것을 계산했고, 빈첸이 그 말을 읊었다.

“그러니 놈과의 거리는 약 900미터.”

빈첸이 느낀 곳과 같은 지점이었다.

반경 900미터 경계 근처에 있는 놈이 바로 ‘중앙 집결 요소’로서의 청안 백호일 것이다.

빈첸의 직감과, 율리안의 계산이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빈첸이 말을 이었다.

“그중에서도 마력전달에 방해받는 요소가 적은 곳.”

바로 산맥과 산맥 사이.

계곡 사이 뻥 뚫린 곳.

계곡 저만치 멀리 떨어진 청안 백호가 바로 그놈일 터.

“저곳이겠지.”

빈첸이 ‘설인 걸음’ 특성을 발현시켰다.

바르곤이 약간은 떨떠름한 얼굴로 빈첸을 지켜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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