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생의 정석 23화
처음 한센의 반응은 지극히 상식적이었다.
“아주 웃기는 소리를 하는군.”
당연했다.
500년 전 멸종한 백룡의 뼈를 가지고 있다니.
그건 어린애도 믿지 않을 거짓말이었다.
“에이 설마.”
빈첸이 내놓은 뼈를 보고 두 눈을 크게 떴다.
“말도 안 돼.”
현실을 부정하다가,
“진짜라고?”
받아들일 수 없는 상황에 입을 쩍 벌리고 말았다.
“진짜 용골이란 말이냐?”
“목소리는 조금 낮춰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아버지를 제외한 다른 분들은 모르는 내용이라서요.”
“그, 그래, 미안하다.”
한센은 조심스레 용골을 받아들었다.
마도 편안경으로 이모저모를 뜯어보았다.
“진짜네.”
어이없다는 듯 빈첸을 바라보았다.
“이게 왜 너한테 있냐?”
“있다는 게 중요한 것 아니겠습니까?”
“허, 참.”
이쯤 되니 한센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래도 너랑 내가 만날 인연이었던 모양이다.”
한센은 용골을 다루어 검을 만들고 싶은 것이 평생의 소원이었다.
그 소원을 이룰 수 있는 단초를 여기서 이렇게 만나게 될 줄이야.
“내가 네게 은혜를 입히려 왔건만.”
홍련을 손봐주고, 명검을 만들어주려 했건만.
“내가 은혜를 입게 생겼군.”
“잘 부탁드립니다.”
“이걸 나한테 맡기겠다고?”
“예. 안 될 이유라도 있습니까?”
“내가 이거 들고 튀면?”
“안 그러실 거 압니다.”
빈첸의 눈에는 확신이 있었다.
한센은 그 확신이 낯설었다.
‘용골을 이토록 내어주는 놈이 있을 줄이야.’
저토록 근거 없는 믿음을 보여주었던 사람은 칸 이후로 처음이었다.
그 아비에 그 아들이란 말인가.
‘간만에 느끼는 이 기분이 싫지는 않구나.’
어린 시절의 칸도 저토록 단단한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한센은 용골을 받아들었다.
“2주 후에 대장간으로 찾아오거라.”
“2주면 되겠습니까?”
빈첸에게도 의외였다.
2년은 걸릴 줄 알았는데.
한센은 꽤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다.
“연구는 진작에 끝내놓았다. 용골이 없어서 진행을 못 했을 뿐. 이미 반쯤 완성된 검에 용골을 이식하기만 하면 되는 작업이라 2주면 끝날 것이다.”
“그렇다면 홍련으로도 그 작업이 가능합니까?”
“홍련으로?”
한센은 인상을 살짝 찡그렸다.
머릿속으로 그림을 그려보았고 이내 결론을 내렸다.
“가능하지만 최선의 결과를 장담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홍련에 부탁드립니다.”
빈첸은 홍련에 용골을 이식해달라 부탁했다.
“왜 이런 부탁을 하는 거냐?”
“홍련이 훌륭한 검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낯간지러운 이유 말고. 진짜 이유를 말해보아라.”
“진심입니다.”
훌륭한 검이라는 건 상대적이다.
제아무리 뛰어난 명검이어도, 사용자에게 맞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다.
수많은 검을 쥐어본 빈첸은 홍련을 쥐는 순간 느꼈다.
이 검은 내게 꼭 맞는 검이라는 것을.
“검의 목소리가 들립니다.”
이것은 직감을 넘어 확신의 영역이었고, 500년 전 무인들은 이것을 일컬어 ‘검명(劍鳴)’이 들린다고 표현했다.
“또한 홍련은 상징적인 검입니다.”
홍련은 칸의 시작을 알린 검이다.
그리고 명인 한센의 시작을 알린 검이기도 했다.
아덴카 내에서 홍련은 ‘시작’을 의미했다.
“홍련을 모르는 자는 드물죠. 어떤 의미로는 백익보다도 더, 아버지를 상징하는 검입니다. 시작이 많이 늦은 제게 홍련은 날개가 되어 줄 것입니다.”
한센은 한참 동안 빈첸을 바라보다 물었다.
“네가 목표하는 것이 무엇이냐?”
“강해지는 것을 원합니다.”
“어느 정도?”
“아덴카에게는 사명이 있지 않습니까?”
반드시 극복해야 할 가문이 있다.
검의 명가 사미온.
500년간 최고의 자리를 단 한 번도 내주지 않은 전통의 명가.
“저는 그것을 이루려 합니다.”
그것은 또한,
아덴카와 함께해 온 명인 한센의 염원이기도 했다.
“쉽지 않을 것이다.”
당대 최강의 무인 중 한 명인 칸이 이끄는 아덴카도 사미온을 넘어서지는 못했다.
물론 칸은 강했으나 사미온의 가주 역시 강했고, 전체적인 가세는 사미온이 한 수 위였다.
지나온 역사가 그것을 증명해 왔고 사미온과 아덴카의 서열은 단 한 번도 바뀐 적이 없었다.
“그렇기에 가치가 있지 않겠습니까?”
한센은 또 한참 동안이나 침묵하다가 입을 열었다.
“……3주 후에 찾아오거라.”
처음 한센이 말했던 것보다 1주일의 시간이 더 늘었다.
* * *
3주가 흘렀다.
“세리. 부탁한다.”
“걱정 마세요. 저는 공자님을 위한 사람이니까요.”
한센을 편하게 다룰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사람인 세리.
그녀와 함께라면 고된 작업으로 한껏 예민해져 있을 한센과의 대화를 쉽게 풀어갈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한센의 대장간은 마차를 타고 두 시간여 거리에 있었다.
다른 대장간들이 군락을 이루다시피 모여 있는 것과 달리, 한센의 대장간은 인적이 드문 길 끝에 위치하고 있었다.
‘불 냄새.’
대장간에 도착하기도 전에 느껴졌다.
강렬한 불 냄새가 났다.
‘오랜만이군.’
거기서 빈첸은 약간의 이상함을 느꼈다.
현대의 마나와 과거의 마나가 달랐듯.
과거의 제련술과 지금의 제련술은 달랐다.
‘불이 난폭하구나.’
-그런 게 느껴져요?
‘그래.’
여기까지 오면서 많은 대장간들을 스쳐 지나왔다.
‘정제되지 않은 느낌이…….’
굳이 표현하자면,
‘네가 말하는 야만적인 기운에 가까운데.’
-그래요?
율리안은 빈첸의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는 못했다.
이 감각은 경험에서 나오는 것이고, 율리안의 이론에 이러한 감각을 구체적으로 느낄 수 있는 방법은 없었으니까.
-문제가 생긴 걸까요?
‘글쎄. 가봐야 알 것 같다.’
빈첸 옆에 앉은 세리는 괜스레 입술을 깨물었다.
‘또 이런다, 또.’
세리는 가끔 이렇게 괜한 불길함을 느낄 때가 있었다.
한 번 나쁜 생각을 하면 그 생각이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이 불길한 생각은 사실 쓸데없는 걱정일 때가 더 많았다.
세리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오늘은 좋은 날이니까.’
빈첸이 훌륭한 검을 얻는 날이다.
이토록 경사스러운 날에 왜 이런 불길한 마음이 든단 말인가.
‘세리. 정신 차려!’
대장간 앞에 도착했다.
대장간 전체가 불타고 있었다.
세리는 찔끔 놀랐지만 크게 내색하지는 않았다.
그녀가 알기로도 대장간 전체가 불타는 일이 가끔 있다고 했다.
‘아저씨는 불의 신이 가호도 내려줬으니까.’
빈첸이 그 앞에 섰다.
‘뜨겁군.’
대장간의 열기가 느껴졌다.
빈첸은 티 나지 않게 걸어 세리 앞을 막아주었다.
화상을 입지 않도록 배려한 뒤, 뒤를 힐끗 보고 말했다.
“불이 너무 거칠어. 세리는 들어갈 수 없을 것 같네.”
“…….”
세리는 ‘저도 들어가고 싶어요’라고 말하고 싶은 욕구를 꾹 눌러 참았다.
빈첸의 말대로 불길이 너무 거세서 그녀는 안으로 들어가기 어려웠다.
“공자님은 괜찮으세요?”
“그럭저럭.”
“다치시면 울 거예요.”
빈첸은 피식 웃었다.
“세리. 한센 야장의 밑에서 자랐다고 했지?”
“네. 맞아요.”
“그때도 이런 불길을 본 적이 있어?”
“……없는 것 같아요.”
“한 번도?”
“네. 없어요. 처음 보는 불길이에요.”
세리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사고가 벌어졌음을 직감했기 때문이었다.
“걱정 마라. 별일 없을 테니.”
빈첸은 세리를 안심시킨 뒤 불길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혀, 형님, 이거 괜찮은 거죠?
한센이야 불의 신이 내린 가호를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빈첸에게는 아무것도 없었다.
‘말 시키지 말거라. 호흡에 집중해야 하니.’
빈첸은 들숨과 날숨에 담긴 화기(火氣)를 다스렸다.
불 역시 하나의 기운이었고, 통제력을 잃지 않고 잘 다스릴 수만 있다면 몸에 위해를 가할 수 없다.
과거, 극의에 이른 무인들은 불구덩이에서도 자유로이 움직일 수 있었다.
물론 지금의 빈첸이 그 정도 성취를 이룬 것은 아니었다.
‘뜨겁다.’
땀이 줄줄 흘러내렸다.
막대한 화기를 받아들인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다.
현대 무인들에게는 ‘비일상’이지만, 빈첸에게는 ‘일상’이었다.
크게 당황하지 않고 호흡에 계속해서 집중했다.
‘기운이 지나치게 난폭하고 거칠어.’
마음이 급해졌다.
이건 통제되지 않은 기운이었다.
과거 성질머리 고약한 대장장이들이 불을 가지고 무인들을 시험하는 경우는 있었지만, 그 기운은 대부분 통제되던 기운이었다.
‘앞이 보이지 않는군.’
시꺼먼 연기 때문에 숨이 막혀 왔고 앞이 보이지 않았다.
눈에서 눈물이 줄줄 흘러나왔고, 빈첸은 아예 눈을 감아버렸다.
‘가장 강렬한 화기를 찾는다.’
눈이 아니라 흐름으로 찾아야 했다.
이 기운의 밀집도가 가장 높은 곳.
이 강렬한 기운이 흐르는 발원점.
그곳을 향해 걷다가 이내, 거대한 불의 흐름을 발견했다.
너무 뜨거워 살갗이 녹는 것만 같았다.
더 이상 전진하기 어려웠다.
‘벤다.’
사미온을 베기 위하여 고안된 검.
‘이능검격’이 벨 수 없는 것은 없다.
빈첸은 그렇게 믿었고, 스승인 네디아와 함께 이 검을 만들어갔다.
홍련 대신 임의로 지니고 있던 검을 꺼내 들었다.
‘이능검격.’
결국 빈첸은 잠시나마 이 뜨거운 불길을 약화시켰다.
그 틈을 노린 빈첸이 눈을 부릅뜨고 뛰었다.
저만치 멀리, 정신을 잃고 쓰러진 한센이 보였다.
한센의 피부는 여기저기 눌어붙어 있었다.
‘이대로 두면 죽는다.’
한센쯤 되는 명인이 그냥 실수했을 리는 없다.
빈첸은 깨달을 수 있었다.
허공에 둥둥 떠 있는 저 검.
백룡의 뼈를 이식한 ‘홍련’이 너무 큰 변수를 만들어냈다.
‘율리안. 이 상황을 이성적으로 설명해 줄 수 있겠어?’
율리안이 빠르게 말했다.
-백룡의 기운은 굉장히 파괴적인 기운이라 알고 있어요. 그 기운이 대장간의 불과 만나 강력한 효과를 내고 있는 것 같아요.
‘그걸 한센이 몰랐을까?’
-알았겠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사고가 벌어졌다.
그렇다는 건, 단순한 사고가 아닐 확률이 있었다.
애초에 용골을 얻는 과정 자체도 마냥 우연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답은 하나였다.
‘아슬란이 내게 남긴 안배.’
대략적인 단서는 찾았다.
그렇다면 방법을 찾아야 했다.
이대로 두면 자신은 물론이거니와 한센도 불에 타죽을 것이다.
율리안에게 물었다.
‘이 불길을 끌 방법이 있을까?’
-혹시 형님이 아는 검술 중에 방어에만 치중한 검술 없어요?
‘방어에?’
-이렇게 강대한 불길은 영원한 불길일 수 없어요.
그 말에 빈첸은 깨달았다.
‘버티기만 하면 된다는 소리군.’
이토록 강렬한 화기(火氣)가 영원히 지속될 수는 없다.
버티면 된다.
율리안의 목소리도 다급했다.
똑똑한 그조차도 한센의 대장간에서 화마로 죽게 된다는 가정은 해본 적이 없었으니까.
빈첸이 차분히 대답했다.
‘시간을 벌 수 있는 검.’
율리안조차 생각할 수 없는 방식으로, 빈첸의 방식으로 이 화마를 막아내기로 했다.
‘오로지 방어만을 생각한 검.’
그 검이 빈첸에게 있었다.
그는 빈첸 아덴카이기 이전에, 데이븐 사미온이었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