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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의 정석-8화 (8/184)
  • 환생의 정석 8화

    레반은 몸을 툭툭 털며 몸을 일으켰다.

    “어디서 괴이한 특성을 익혔나 보군.”

    “네 눈에는 내가 특성을 익힌 걸로 보이나?”

    “수치스러운 마음쯤은 이해한다.”

    “수치스러운 마음?”

    “듣도 보도 못한 잡신의 가호와 특성을 갖고 있겠지. 그러니까 네가 의도적으로 여태껏 숨겨왔던 거고.”

    레반은 손싸움의 기예를 허접한 특성 중 하나라고 생각했다.

    그는 반쯤 일그러진 표정으로 억지로 웃었다.

    “아니면, 그 목검에 장난질이라도 쳐놨나? 가호를 새긴 가호석이라도 넣어 놓았나 보지?”

    레반은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그 외에는 방금 손싸움을 설명할 수 없었다.

    “그렇게 믿어라. 네 수준이 거기까지니.”

    레반은 더 이상 표정관리도 할 수 없었다.

    ‘내가 곧 가문의 희망이다.’

    직계를 넘어설 수 있는 방계.

    이번 진검회동의 진짜 주인공.

    ‘너 따위가, 너 따위가 감히!’

    빈첸은 빈첸 나름대로 감탄 중이었다.

    빈첸에게 없는 것이 율리안에게 있었다.

    [그렇게 흥분하게 만들면, 분명 위에서 아래로 내리치는 마구잡이 공격을 사용할 것이 분명.]

    빈첸이 직관과 육감을 통해 피상적으로 파악하는 것을, 율리안은 분석적인 접근을 통해 구체적으로 읽고 예측해 냈다.

    ‘위에서 아래로.’

    희뿌옇게 보이던 추상적인 것들이 형체를 갖추고 사실이 되어 다가오는 느낌이었다.

    후웅!

    파공성이 일었다.

    빈첸은 목검을 옆으로 들어 올려 떨어지는 진검을 막아냈다.

    [움직임이 매우 커서 허점은 많겠지만, 철인의 특성과 2성의 마나가 담겨 있는 공격이라 맞부딪치면 위험.]

    빈첸도 본능적으로 느꼈다.

    맞부딪치면 안 된다.

    자신의 어깨가 바스러질 수도 있었다.

    ‘충격을 흘린다.’

    오른발을 앞으로 한 발자국 움직이며 몸도 함께 슬쩍 돌렸다.

    목검을 부드러이 회전시켜 진검의 날을 슬며시 흘려냈다.

    빈틈을 만들어 낸 빈첸이 목검을 가볍게 휘둘렀다.

    ‘큰 힘은 못 써.’

    이 몸은 비쩍 곯은 천골이었으니까.

    탁!

    레반의 목덜미에 부딪쳤다.

    “억!”

    레반이 깜짝 놀라 작은 비명성을 냈다.

    그러나 크게 아프지는 않았다.

    ‘뭐야? 하나도 안 아프잖아?’

    레반은 좀 더 자신감이 생겼다.

    저 콧대 높은 직계의 못난이를 밟아줄 수 있을 것이다.

    빈첸의 눈이 더욱 깊게 가라앉았다.

    ‘자신감이 생겼으니 똑같은 방식으로 달려들 거다.’

    레반은 자각하지 못하고 있으나 벌써 호흡이 약간 가빠진 상태였다.

    그는 호흡에 신경 쓰지 않고 다시 한번 빈첸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의 스텝에는 확신이 있어 보였다.

    빈첸은 뛰어난 집중력으로 레반의 호흡에 집중했다.

    ‘검을 들어 올리고.’

    헉!

    헉!

    헉!

    헉!

    ‘네 번째 호흡.’

    레반의 가슴이 한 점이 되어 보였다.

    빈첸의 눈에는 그 점이 검붉은빛으로 빛나 보였다.

    ‘검로가 보인다.’

    빈첸에게만 보이는 지점이 확대되어 보였다.

    호흡. 자세. 타이밍.

    상대 마력회로의 마나 흐름과 검세.

    ‘잘 보아라. 이것이 내가 익힌 검이다, 율리안.’

    모든 요소를 고려한 뒤.

    선과 점을 중첩하여 검로를 만든다.

    ‘찌른다.’

    검을 내뻗어 그의 명치를 찔렀다.

    더없이 깔끔한 찌르기.

    하나의 점(点)을 더했다.

    달려오던 제 힘까지 더해진 상태.

    윽!

    레반이 허리를 구부렸다.

    철인의 특성을 가진 그였지만 이번에는 충격이 상당했다.

    빈첸은 한 스텝 가까이 다가섰다.

    ‘아래에서 위로.’

    발바닥으로 지면을 꽉 눌렀다.

    아직 단련되지 않은 하체에 힘을 단단히 주고 허리를 회전시켰다.

    ‘지금의 이 몸으로, 기회는 많지 않아.’

    기회를 놓치지 않아야 했다.

    퍽!

    검격이라기보다는 타격에 가까운 움직임.

    빈첸의 목검이 레반의 턱을 강타했다.

    철인의 특성이 없었다면 기절할 수도 있었다.

    하나의 선(線)을 더했다.

    ‘위에서 아래로.’

    또다시 하나의 선이 더해졌다.

    붉은 점은 마치 불처럼 타오르더니 이내 검은 실선이 되었다.

    특별한 검로(劍路)를 만들어냈다.

    온전한 검로가 완성되었다.

    ‘벤다.’

    레반이 만들어낸 두 개의 굵직한 선.

    네 개의 호흡.

    빈첸이 구현한 하나의 점과 두 개의 선.

    그것이 이능을 발현시켰다.

    푸악!

    피분수가 터져 나왔다.

    “으아아악!”

    레반의 오른팔이 잘려나갔다.

    ‘한 번 더.’

    목을 향해 흑향목 목검을 휘둘렀다.

    제론이 황급히 나서 빈첸의 다음 공격을 막아냈다.

    그는 양팔을 교차시켜 빈첸의 목검을 막아냈다.

    “공자님. 이쯤에서 중재하겠습니다.”

    제론의 두 눈에는 경악이 가득 들어차 있었다.

    제론뿐만 아니라 이곳에 모인 무인들 모두가 큰 충격을 받았다.

    ‘목검으로 오른팔을 잘랐단 말이야?’

    이적.

    이적 외에는 이 현상을 표현할 다른 말이 없었다.

    현대 검술로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의 무언가가 지금 펼쳐졌다.

    빈첸이 물었다.

    “백색검대 소속 제론. 최선을 다했나?”

    아니었다.

    최선을 다했다면 제론은 빈첸의 공격을 막아낼 수 있었을 것이었다.

    “분명 불상사를 막으라고 경고했었다.”

    “죄송합니다. 이렇게까지 될 줄 몰랐습니다. 제 실책입니다.”

    빈첸의 다리가 후들거렸다.

    ‘마치 다리가 박살 난 기분이군.’

    몸이 부서질 것만 같았다.

    그러나 심장에 검이 꽂힌 상태로도 서 있었던 그였다.

    그때보다는 괴롭지 않았다.

    굳건히 버티고 섰다.

    신전에서 파견된 신관이 황급히 뛰어왔다.

    “가만히 있으세요. 회복포션을 뿌려줄 테니. 고통이 가라앉을 겁니다. 이후 바로 접합을 시행하겠습니다.”

    한편에서는 레반을 회복시키기 위한 시도가 한창이었고, 빈첸은 몸을 돌려 아버지 쪽을 바라보았다.

    칸은 무표정한 얼굴로 이쪽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저는 약속을 지켰습니까?”

    “지켰다.”

    무인들이 또다시 놀란 얼굴로 칸을 바라보았다.

    약속을 지켰다는 건 빈첸이 칸을 만족시켰다는 뜻이니까.

    “뛰어난 무예를 지녔구나.”

    칸은 아들의 성취를 읽어낼 수 있었다.

    가호나 특성의 힘을 빌린 것이 아니라 빈첸 본인이 가진 무예였다.

    ‘격을 증명하겠다고 했느냐?’

    그 가소로웠던 말이 현실이 되었다.

    ‘하였구나.’

    심상을 맺을 수 없는 빈첸이 목검으로 철인의 특성을 가진 레반의 오른팔을 잘랐다.

    단순히 기술이나 체력, 특성 등의 우위가 아닌,

    이것은 격의 차이였다.

    그런데 이 결과를 받아들일 수 없는 자가 한 명 있었다.

    “이건 말도 안 된다!”

    레반의 아버지.

    찰스 아덴카였다.

    * * *

    찰스는 아들의 오른팔이 잘린 뒤 이성을 잃었다.

    빈첸의 목검을 조사해야 한다고 언성을 높였다.

    그의 상식으로, 이건 속임수였다.

    목검에 허튼짓을 해놓은 것이 분명했다.

    “분명 사이한 사도(邪道)의 힘을 이용하였을 것이다!”

    그는 반쯤 넋이 나간 아들을 부둥켜안은 채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빈첸이 손을 들어 올렸다.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제가 대답하여도 되겠습니까?”

    “그리하거라.”

    빈첸이 잠시 숨을 골랐다.

    “이번 진검회동은 가주의 입회 아래 진행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진검회동의 모든 진행절차는 가주의 권한으로 승인받았다 할 것이며, 가주께서 뛰어난 무예라고 총평해 주셨습니다.”

    담담하게 말을 이어가는 빈첸에게 시선이 집중되었다.

    주변은 조용했다.

    “그러므로 귀하의 언행은 가주의 권위를 전면으로 부정한 것입니다. 그것도 타 무가의 귀빈들을 모신 자리에서.”

    “…….”

    “귀하는 귀하의 안목이, 가주의 안목보다 높다고 자부하십니까?”

    찰스에게도 사람들의 시선이 쏟아졌다.

    찰스의 얼굴이 잔뜩 붉어졌다.

    그의 몸이 파르르 떨렸다.

    “아덴카와 친분이 깊은 수많은 어른들이 함께하는 자리입니다. 결과에 승복할 수 없고, 제 무예에 의구심이 들었다면, 이번 진검회동 이후 정식적인 절차를 밟아 다른 날에 하여도 늦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것이 옳았을 것이고, 그것이 바른 순서였을 것입니다.”

    “…….”

    빈첸의 시선이 치료를 받고 있는 레반에게 향했다.

    “나는 패자의 재도전을 피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이놈이……!”

    빈첸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오히려 제론에게 명령을 내리기까지 했다.

    “제론. 그대는 저자를 제압하여 포박하도록.”

    제론은 순간 당황했다.

    어찌 되었든 찰스 역시 아덴카의 피를 이었다.

    촌수는 멀지만 빈첸에게는 어쨌든 가문의 어른이라는 소리였다.

    빈첸의 행보는 충분히 파격적이었다.

    잠시 침묵이 이어졌다.

    “저자라면…….”

    “그래. 나의 먼 친척. 찰스 아덴카를 뜻하는 것이다.”

    “진심으로 하시는 말씀입니까?”

    “공개석상에서 가주의 권위를 농락하였다. 더 이상 설명이 필요한가?”

    백색검대 소속의 젊은 무인 제론의 몸이 움찔했다.

    빈첸의 시선 속에서 익숙한 기운을 느꼈다.

    ‘단련된 눈빛이다.’

    그 무인의 눈빛에는 한 점 흔들림이 없었다.

    강한 확신을 가진 자의 눈빛.

    스스로를 믿는 ‘무인’만이 가질 수 있는 눈빛이었다.

    제론이 허리를 숙였다.

    “명. 받들겠습니다.”

    “무, 무슨 개소리를 하는 거야! 야! 이거 안 놔!”

    찰스는 거칠게 저항하다가 그보다 더 거칠게 제압당했다.

    빈첸이 상석을 올려다보았다.

    “가문의 법도를 바로잡아야 한다고 생각하여 이리하였습니다.”

    완벽한 계획과 신중을 중시하는 율리안의 입장에서 빈첸은 너무 극단적이었다.

    아무리 방계라지만 집안의 어른을 무릎 꿇리다니.

    그런데 가주의 반응이 예상외였다.

    “훌륭한 판단이었다.”

    다시 한번 짙은 침묵이 내려앉았다.

    “만약 7공자가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면 호법당(護法堂)이 움직였을 터.”

    가문의 법도를 수호하는 집단인 호법당.

    그들은 아덴카 내에서도 뛰어난 무인들로 구성된 무력집단이다.

    아덴카의 혈족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집단이기도 했다.

    “너는 7공자에게 은혜를 입었구나.”

    아덴카는 하나의 잘못으로 두 번 질책하지 않는다.

    7공자에게 지목당하여 포박당하고 굴욕을 맛보았으니, 더 이상의 처벌은 없을 것이다.

    율리안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이 급진적인 전개를 타박하고 싶었다.

    -결과가 너무 좋으니 뭐라 할 수도 없고.

    그는 처음 들어보았다.

    칸이 자식에게 훌륭하다고 말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그리고 그 칭찬이 자신에게 닿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아버지가 훌륭하다라고 말해주다니. 그것도 사람들 앞에서.’

    빈첸은 아무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정신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율리안의 감정이 느껴졌다.

    ‘기쁜 거냐?’

    아버지로부터 칭찬을 받은 것이 몹시 기쁜 듯했다.

    율리안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아버지에게 칭찬받고 인정받았다.

    모략가니 어쩌니 해도, 어린아이의 감정은 아직 살아 있는 듯했다.

    ‘이런 부분은 아이다워서 다행이라 해야 할지.’

    그런데 그때,

    레반을 치료하던 신관이 문득 손을 들어 올렸다.

    “문제가 조금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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