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생의 정석 3화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왔다.
‘설마? 내가 미래로 온 건가? 그것도 500년 후?’
얘기를 들어보면 그게 맞는 것 같았다.
너무 많은 정보들이 겹쳤다.
데이븐이라는 이름을 가진 자와 카진이라는 이름을 가진 자가 동시대에 살았으면서, 둘 다 ‘사미온가’의 혈육이면서, 데이븐이 사미온의 감옥에 갇히게 될 확률이 얼마나 되겠는가.
‘게다가 데이븐은 외팔이였고, 데이븐이 카진을 꺾은 검투장의 이름이 별들의 전장이라.’
이쯤 되면 부정하기 어려웠다.
‘500년 전 나는 감옥에서 죽었는데?’
데이븐은 감옥에서 말라비틀어져 죽었다.
사미온가(家)는 외팔이를 버리고 폭풍검을 취했다.
외팔이는 쓸쓸히 죽었고 폭풍검은 검제가 되었다.
그런데 대악마니 영웅왕이니 끔찍한 소리를 잘도 지껄였다.
‘사미온가 놈들……!’
그들은 강대한 힘을 바탕으로 역사조차 날조했다.
-영웅왕 카진은 대악마 데이븐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친구였어요. 낭만적이지요?
“미친 소리!”
-왜 화를 내지요?
“모조리 날조된 역사니까.”
-혹시 그 시대의 사람이었어요?
“아마도.”
-아, 영감님이시구나. 화내지 마세요, 영감님. 어차피 역사는 승자가 남기는 활자조합물일 뿐이니까요.
“세상이 어떻게 되려고 열세 살이 그런 말을 한단 말이냐?”
-요즘 애들은 성장이 빨라요. 영감님 때랑은 좀 다르죠.
빈첸은 왠지 모르게 머리가 아파왔다.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며 말했다.
“계속 해봐.”
-그래서 그는 눈물을 머금고, 당대 최고의 영웅이자 절친한 친구였던 태양검제와 함께 대악마 데이븐을 토벌했어요.
“태양검제는 또 누구냐?”
데이븐의 기억 속에 태양검제라는 이명을 가진 사람은 없었다.
-아슬란을 몰라요?
……뭐?
“그 코찔찔이?”
아슬란.
익히 아는 이름이었다.
그가 바로 아덴카의 초대가주란다.
-조상님 모독이라니, 혹시 후레자식이세요?
안 그래도 심했던 두통이 더 심해지기 시작했다.
* * *
빈첸의 기억 속에 아슬란은 동네 꼬맹이였다.
나는 커서 형아처럼 될 거야! 라고 따라다녔던 녀석.
‘내가 가르친 놈인데.’
비록 어린 시절이기는 했지만 아슬란은 빈첸의 제자 겸 동생이었다.
그는 빈첸이 감옥에 갇힌 이후로도 몇 번이나 면회를 왔었다.
[형은 죄를 짓지 않았어요.]
[권력은 진실을 이길 수 없어요.]
아슬란은 빈첸의 무죄를 믿었다.
[제가 그렇게 만들게요. 형의 명예를 위해 싸울게요. 비록 아주 오래 걸릴지라도요.]
그 말을 끝으로 아슬란은 더 이상 면회를 오지 않았었다.
감옥 안의 데이븐은 아슬란의 생사를 알지 못했다.
-그분이 아덴카의 초대가주고 우리에게 지고한 사명을 남기셨어요. 그게 곧 제 업적과 관련이 있지요.
“그게 뭐지?”
-사미온가(家)를 넘어서라.
둘도 없는 친우의 가문을 넘어서는 것이 사명이다.
그건 무가(武家)로서 너무나 당연한 명제였다.
-그리하여 진실과 마주하라.
빈첸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
‘우연인가.’
아슬란은 반드시 진실을 밝히겠다고 했다.
아슬란은, 외팔이 데이븐의 억울함을 알고 있었던 한 명이었다.
‘우연이 아니다.’
정확히는 알 수 없으나 한 가지는 확실했다.
아슬란 페일커는 ‘페일커’를 버리고 ‘아덴카’를 만들었다.
진실을 마주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나의 명예를 되찾아주기 위해서 만든 새로운 가문이다.’
아마도 아슬란이 살아 있는 동안 그것이 불가능하다고 여긴 모양이었다.
‘아슬란의 가문에…… 내가 태어난 것 역시 필연이겠지.’
빈첸은 일단 과거를 숨기기로 했다.
‘대악마 데이븐’의 영혼이 이 몸에 들어왔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즉결 처형되고도 남을 테니까.
빈첸이 물었다.
“너는 본래 아덴카의 혈육이고, 아덴카에게 주어진 사명을 이루는 것이 곧 네 소명이다? 소명을 이루면 너는 진짜 신이 될 수 있고?”
-맞아요. 그렇게 되면 영감님은 그 몸의 진짜 주인이 될 수 있어요. 제가 진짜 신이 되면 영감님한테 뛰어난 가호도 내려줄 수 있을지도 몰라요. 서로에게 득이 되는 거래죠. 어때요?
빈첸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무엇을 꿈꾸었는지는 모르겠다.’
아슬란은 늘 생각이 많은 녀석이었다.
어떤 방법을 그려냈고 안배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네 꿈의 방향이 나와 같구나.’
속으로 말했다.
‘고맙다, 아슬란.’
아슬란이 데이븐 자신을 위하여 남긴 가문에 환생했다.
남은 일은 이 생명을 값지게 쓰는 것이었다.
‘네가 남긴 사명을 이어받으마.’
사미온을 넘어설 것이다.
자신을 배신하고 버린 가문 위에 올라설 것이다.
‘이 가문의 일원이 되어.’
진실을 수복해야 했다.
마음에 쏙 드는 사명이었다.
“영감님이란 호칭은 바꾸면 좋겠는데.”
29살에 죽었는데 영감님 소리를 들으니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500년 전 사람이면 지극히 영감님이지.
“업적. 이루기 싫은가 봐?”
-형님.
“형이면 돼.”
-네, 형.
빈첸은 벽에 등을 기대고 앉아 눈을 감았다.
‘사미온. 너희는 그동안 얼마나 강해졌는가?’
생각만 해도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 잘난 영웅왕 카진의 후손들은 어떤 모습인가.
나를 버린 나의 가문은 얼마나 강성한가.
‘재미있겠어.’
이후, 빈첸은 몸 상태가 급격히 나빠짐을 느꼈다.
온몸의 마력회로가 닫히고 머리가 굳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며 어지러웠다.
아까 정신을 잃었을 때와 비슷했다.
일단은 회복이 필요했다.
‘마나로 몸을 다스려야 해.’
가부좌를 틀고 앉은 뒤 눈을 감고 자신의 몸을 관조하기 시작했다.
‘이게 뭐야?’
호흡을 통해 마나를 들이마셨다.
마나는 처음 감지하기가 어려울 뿐, 느낄 수만 있으면 받아들이는 것은 쉬웠다.
사미온 명상식의 길을 따라 마나를 온몸의 마력회로에 흘려보냈다.
‘몸이 왜 이래?’
데이븐이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체질이었다.
어떻게 하면 넘어설 수 있을까를 평생 연구하며 공부해 온 체질.
‘천골?’
영웅왕으로 기록된 카진의 체질이었다.
* * *
몇 시간이 흘렀다.
그사이 빈첸은 명상을 통해 심장의 마나를 온몸으로 흘려보냈다.
몸에서 노폐물이 새어 나왔고 방에는 악취가 가득했다.
머리가 개운해진 느낌을 받았다.
몸 상태가 좋아지자 다시금 목소리가 들려왔다.
-제 몸에 미약한 마나가 생긴 것 같은데요. 도대체 어떻게 한 것이죠?
사실 의아한 건 빈첸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먼저 묻지. 아덴카를 집어삼키고 싶다고 하지 않았나?”
-그랬지요. 혈육들을 모조리 무릎 꿇리고 나아가 사미온마저 넘어서는 것이 저의 소망이었어요.
“근데 왜 검을 안 익혔어?”
기억전이가 완벽하지 않아 모든 것을 알지는 못했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건, ‘율리안’은 검이 아닌 다른 길을 택했다는 것이었다.
현대 극상 마법이론.
정령 강림학.
연계 마도공학.
굳이 겁쟁이를 연기해 가면서 그렇게 했다.
-나는 검을 익힐 수 없는 장애아였으니까요.
“왜?”
-그렇게 태어났어요.
“천골을 가졌는데?”
-천골이 뭔데요?
“몸 전체에 마나를 저장할 수 있는 체질. 정확히는 뼈에 마나를 담을 수 있는 체질.”
본래 무인이 인간을 뛰어넘는 초월적인 힘을 활용할 때에는 마나를 사용한다.
마나는 곧 기적을 일으키는 힘이며, 인간은 그 힘을 ‘심장’에 담아 보관했다.
그러나 ‘천골’의 체질을 가진 이들은 뼈에도 마나를 담을 수 있었다.
-마나는 심장에 저장하는 것이잖아요.
“물론 주 저장소는 심장이지. 그러나 심장에 마나를 쌓다 보면 뼈에도 마나가 쌓인다. 그게 천골(天骨)이야. 500년 전에도 유명했던 사실인데.”
-유명하다고요? 처음 듣는 사실인데.
빈첸은 인상을 찡그렸다.
사미온가에서는 유명한 사실이었다.
‘아무리 여기가 사미온이 아니라고 해도, 천골에 대해 모를 수가 있나?’
이상한 일이었다.
‘역사도 날조되는 세상이니 정보 좀 은폐되었다는 게 이상하지는 않지만…… 영 찜찜하군.’
빈첸이 다시 물었다.
“어째서 심장에 마나를 쌓지 않았지? 명상식이 없나?”
아덴카는 500년 동안 이어진 검의 명문이었다.
페일커가의 명상식도 꽤 훌륭했었다.
아슬란의 성격상 페일커 명상식보다 뛰어난 명상식이 없었다면 아덴카를 세우지 않았을 것이다.
분명히 훌륭한 명상식이 존재할 것이었다.
-저는 심장에 심상을 맺을 수 없어요.
“심상?”
-이토록 기본적인 걸 모른단 말이에요? 가상의 심상을 만들어 거기에 마나를 쌓잖아요. 심상의 모양이 제각각이기는 하지만 통칭해서 별(星)이라 부르고요.
빈첸은 이해할 수 없는 개념이었다.
“나 때는 심장에 그냥 쌓았는데.”
일단 얘기를 더 들어보았다.
얘기를 들어보니 ‘심상’을 만들어 마나를 쌓는 방법에 장점들이 분명 존재했다.
빈첸은 저도 모르게 입을 쩍 벌렸다.
“뭐? 가문의 어른이 1개의 심상 정도는 그냥 만들어 준다고? 그럼 마나를 그냥 느낀다고? 그게 일성(一星)의 경지라고?”
1성의 무인이 되면 마나를 곧바로 느낄 수 있다고 했다.
심상에 마나가 스며들면서 공명현상을 일으킨다나 뭐라나.
-흔한 개념이잖아요. 아덴카 말고도 널리 쓰는 방식이고.
“나 때는 안 그랬다.”
본인 스스로 노력하여 마나를 느껴야 했다.
여기서 넘어지는 사람이 부지기수였다.
그런데 이제는 가문만 잘 만나면 마나를 느낄 수 있단다.
“세상, 참 편리해졌네.”
그래서 아까 만났던 ‘가문의 어른’이라는 자가 마나를 다룰 수 있으나 몸놀림이 조악했던 것이군.
그제야 의문이 풀렸다.
-심장에 그냥 쌓는 건 위험하다고 알고 있어요. 터질 가능성도 높고요. 과거 통계자료를 살펴보면 약 52퍼센트의 무인들이 사망…….
“심장이 터져 죽는 무인이 전체의 과반은 되었다.”
-맙소사. 그런 야만적인 방식으로 수련하는 사람들이 진짜 있었어요?
“나 때는 그렇게 했어.”
-설마 영감님의 수련방식도 그토록 미개한가요?
“걱정 마라. 네 심장은 튼튼하니.”
-맙소사.
빈첸은 피식 웃었다.
진정한 무인으로 거듭나기 위해 그 정도 위험쯤은 감수해야 했다.
외팔이 데이븐은 그렇게 배웠고 그렇게 성장했었다.
빈첸은 다시 한번 명상을 시작했다.
‘마나의 길이 느껴진다.’
외팔이 데이븐의 몸보다 훨씬 명확하고 깨끗한 길이 보였다.
다시 세 시간이 지났다.
그동안 혹시나 싶어 숨죽이고 싶던 율리안이 폭포수처럼 걱정을 토해냈다.
-왜 마나를 제멋대로 흘려보내는 거죠? 순서가 틀렸잖아요. 영감님 혹시 회로 공식 모르세요?
율리안은 이론에는 박식했다.
-처음에는 분명 대동맥을 따라 폐 쪽으로 마나를 이동시키는데 그때 마나의 총량은 컨디션에 따라 십 분지 일에서 이 사이로 미세하게 조절하여 도합 세 갈래로…….
빈첸은 눈을 감은 채 대화를 이어갔다.
“그건 또 무슨 소리지?”
들어보니 ‘마나흐름’ 역시도 공식화되었다고 했다.
인류는 안전하고 효율적인 방식을 택하여 진화해 왔다.
인류는 훨씬 더 안전하게 마나를 다룰 수 있게 되었다.
덕분에 무인의 숫자가 비약적으로 많이 늘었다.
평균적인 실력은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높아졌다고 했다.
“나 때는 그냥 감으로 했는데.”
-그러다 실수하면요?
“마력회로가 꼬이거나 터지겠지.”
-그럼 사망할 텐데요.
“생각보다 잘 안 죽어.”
-마나를 운용하다 과반 이상의 무인이 죽는다면서요.
“반대로 말하면 반 정도는 산다는 뜻이잖아.”
-와, 쓸데없이 긍정적이셔?
그때는 모든 명상이 곧 죽음의 기로였다.
마나흐름의 안전한 공식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100명의 무인이 있다면, 그들이 마나를 유도하는 방식은 100개였다.
심지어 같은 사람이 명상을 하더라도 어제의 길과 오늘의 길은 달랐다.
“뭐, 죽으면 거기까지가 내 실력인 거겠지.”
-제 몸은 소중하니까 소중히 다뤄주시면 좋겠는데요.
“그래. 소중하지. 그런데 왜 이렇게 해놨어?”
이 몸은 천골을 타고난 몸이었다.
게다가 심장과 마력회로도 튼튼했다.
어린 시절부터 사미온가에서 관리받고 제대로 된 길을 닦기만 했다면 대성했을 몸이 분명했다.
그러나 그 몸이 13년 동안 방치되었다.
응당 마나를 머금어야 할 뼈가 13년 동안 굶었다는 뜻이었다.
곯다 못해 삭아 있는 수준이었다.
-이렇게 해놨다니요?
빈첸이 담담히 말을 이었다.
“이대로 그냥 두면 성년을 넘기지 못하고 죽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