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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의 정석-1화 (1/184)
  • 환생의 정석

    글  김평범

    최강의 무가 사미온.

    데이븐은 사미온의 방계였고 오른팔이 없는 반쪽짜리 무인이었다.

    외팔이라는 조롱과 멸시를 딛고 사미온 직계의 천재마저 넘어섰으나.

    결국 부모와 가문에게 배신당해 가장 초라한 최후를 맞이했다.

    그러나 그게 끝이 아니었다.

    '내게도 오른팔이 있다?'

    새로운 가문의 적통.

    천부적인 재능의 육체.

    전생의 경험.

    그리고 그와 함께하는 신까지.

    환생을 했더니, 모든 것이 달라져 있었다.

    환생의 정석 1화

    “징그러운 것이 태어났군.”

    내 아버지가 나를 내려다보며 한 말이었다.

    어떻게 신생아 때의 기억이 있느냐고 묻는다면 할 말은 없지만, 아무튼 나는 그 날을 기억했다.

    그리고 같은 날, 같은 시각, 나와 달리 축복 속에 태어난 녀석이 하나 있었다.

    이름은 카진이었고 내 사촌이었다.

    검신 케샤크의 가호를 타고났고 더없이 축복받은 육체와 재능을 지닌 아이라고 했다.

    어머니는 내게 젖을 물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네가 카진이었더라면.”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지와 어머니가 왜 이렇게 나를 두고 실망했는지 알 수 있었다.

    내게는 오른팔이 없었다.

    어머니는 밤마다 내게 속삭였다.

    “그냥 죽어주면 안 될까, 내 아가.”

    나를 직접 죽이지는 못했지만 내가 죽어주길 바라는 모양이었다.

    내가 모든 얘기를 듣고 있고, 기억할 거라는 사실은 전혀 모르시는 것 같았다.

    ‘전 죽고 싶지 않아요, 어머니.’

    내가 어머니의 배 속에 있을 때, 아버지는 늘 강조했다.

    “이 아이야말로 우리의 희망이오.”

    아버지는 늘 카진의 아버지.

    그러니까 내 큰 아버지에게 깊은 열등감과 경쟁심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형에게 이기지 못했지만, 이 아이는 분명 형의 자식보다 뛰어날 거요. 아니, 반드시 그래야만 하오.”

    그렇지만 나는 외팔이였고 신이 내린 가호도 없었다.

    태어난 것만으로도 부모님의 희망을 짓밟은 불효자.

    그게 나였다.

    이제 갓 기어 다니며 몸을 뒤집기 시작했을 때에 어머니는 몹시 실망했다.

    “휴우. 카진은 벌써 걷기 시작했는데. 이 아이는 왜 이렇게 느릴까?”

    나도 겨우 일어서서 한 발자국 내디뎠을 때.

    “카진은 벌써 검을 쥐었는데. 이제 걷기 시작해서 무슨 소용이라고.”

    내가 검을 쥐기 시작했을 때.

    “카진은 마나를 느끼고 사미온 검식을 수련하기 시작했는데.”

    나는 단 한 번도 아버지와 어머니께 칭찬을 받은 적이 없었다.

    “에휴. 내 아이가 카진이었더라면…….”

    어느새 카진은 내게 동경과 시기의 대상이 되어 있었다.

    7살이 되었을 무렵, 나는 카진을 시중드는 소년들 중 한 명으로 보내졌다.

    대외적으로는 사촌인 카진을 보조하고 도와주는 ‘도움 친구’로 파견되었지만, 사실 부모님이 나를 30만 루덴에 팔아 버린 것이었다.

    그리고 내가 경험한 카진은 부모님이 그렇게 입이 닳도록 칭찬하고 부러워할 만큼 좋은 아이는 아니었다.

    카진은 처음부터 나를 마음에 들지 않아 했다.

    “너 같은 병신의 시중은 필요 없어.”

    나는 늘 그의 화풀이 대상이 되었다.

    한 번은 나를 나무에 묶어 놓고 세 시간이 넘도록 매질을 했다.

    그 날, 나는 눈물을 꾹 참아야만 했다.

    아파서가 아니었다.

    나를 지나친 수많은 어른들이 이 상황을 묵인하고 외면했다는 것이 견디기 힘들었다.

    그곳에 어른은 없었다.

    ‘큰아버지만큼은 훌륭한 분이시라던데.’

    그런데 그분은 아주 오래전 가문을 떠나 한 번도 복귀하신 적이 없었다.

    이 집안에는 카진을 제어해 줄 사람이 없었고, 카진은 망나니처럼 자랐다.

    그의 뛰어난 재능과 검신의 가호는 그에게 독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린 시절의 나는 카진이 가진 힘과 재능을 부러워했다.

    ‘나도 강해지고 싶어.’

    카진은 타고난 천재였다.

    노력하지 않아도 남들보다 늘 강했고, 모든 것을 누렸다.

    “눈에 힘 안 풀어?”

    늘 강자였던 카진은 이상하리만치 열심히 나를 짓밟았다.

    무엇이 그리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너 같은 건 평생을 노력해도 못 따라와. 알겠냐?”

    그 말의 일부는 사실이기도 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카진은 술과 여자, 그리고 마약을 가까이하며 수련을 게을리했다.

    그래도 나는 카진을 이길 수 없었다.

    그는 노력하지 않는 천재였고 나는 노력하는 둔재였다.

    카진은 늘 강자였고 나는 늘 약자였다.

    그러나 우리의 위치가 영원하지는 않았다.

    와아아아아-!

    수많은 관중의 함성 소리가 들려왔다.

    마법으로 증폭된 목소리가 또렷이 들렸다.

    “이변이 벌어졌습니다! 외팔이 데이븐이 폭풍검 카진을 꺾었습니다!”

    상식적으로 벌어질 수 없는 일이었다.

    데뷔무대부터 지금까지 나는 30년 가까이, 무려 21차례나 패배했다.

    사람들은 그만 포기하라고 말했다.

    재능 없는 머저리가 쓸데없이 우직하다고 조롱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이겼다.’

    나는 카진의 목젖에 대었던 검을 회수했다.

    사람들은 기적에 환호했다.

    검을 놓친 채 얼떨떨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카진과 눈을 마주쳤다.

    “언제까지고 네가 강자일 줄 알았나?”

    사실 이 검투경기장은 카진을 위한 무대였다.

    꿈을 가진 수많은 젊은 기사들과 기사 지망생들이 주인공인 카진을 위해 소모당하는 자리.

    누구보다 빛나야 할 카진을 내가 꺾어 버렸다.

    카진은 오늘의 상황을 믿기 어려운 듯했다.

    “내, 내가 저런 병신한테…….”

    어릴 때부터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은 말이 떠올랐다.

    카진이었다면.

    내 아들이 카진이었더라면.

    “내가 너였다면 너처럼은 안 살았겠지.”

    “다시…… 지껄여봐.”

    나는 술과 여자와 마약으로 허비하지는 않았을 거다.

    약자를 짓밟는 것보다는 훨씬 가치 있게 살았을 거다.

    “너처럼 안 살았다고.”

    나는 완전한 승리를 인정받은 뒤, 몸을 돌렸다.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했지만 나는 결국 이겼다.

    그런데 아무래도 나는 카진의 나약함과 무모함을 과소평가했던 것 같았다.

    카진이 내게 달려들었다.

    “죽어, 이 새끼야!”

    놈은 기어이 미친 짓을 벌이고 말았다.

    심판을 봐주던 상급기사조차도 예상하지 못했던 행동이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등을 돌린 결투 상대에게 검을 휘두르다니.

    그것도 사미온가(家)의 마나.

    ‘적황미력’까지 실어서 말이다.

    절대로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었고 사미온의 명예와 검투장의 법칙이 깨져버렸다.

    오늘부로 카진은 끝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나도 죽겠다는 것이었다.

    ‘심장이 찔렸어.’

    카진이 사용한 검은 사미온의 직계에게만 허락되는 명검 ‘태양’이었다.

    태양이 가진 흉폭한 검기(劍氣)가 내 몸의 내부를 진탕시켰다.

    나는 죽음을 직감했다.

    일부 관중들은 비명을 질렀고 일부 관중들은 침묵했다.

    원로들의 얼굴이 핼쑥해진 것도 보였다.

    “끝까지 꼴사납구나, 카진.”

    자기가 무슨 짓을 벌인지 그제야 이해한 듯, 카진의 몸이 바들바들 떨리기 시작했다.

    나는 그대로 몸을 돌렸다.

    내 몸에는 카진이 놓친 ‘태양’이 꽂혀 있었다.

    ‘아프다.’

    아픈 것보다 분한 게 더 컸다.

    이제야 이겨냈는데.

    겨우 카진을 이겼는데.

    ‘젠장!’

    억울해서 미칠 것 같았지만 카진에게 약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살 수는 없나……?’

    희망은 없어 보였다.

    사미온가의 강맹한 마나와 태양의 검기가 시너지 작용을 일으켜 내 몸 구석구석을 파괴하고 있었다.

    ‘기적의 성녀 레일라가 나타난다면 모를까.’

    그럴 리는 없겠지.

    나는 마나를 일으켜 내 몸과 발바닥을 밀착시켰다.

    넘어지지 않도록 단단히 몸을 곧추세웠다.

    “너는 패배자로 기록될 것이다, 카진.”

    * * *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검투장에는 기적의 성녀 레일라가 있었다.

    그녀가 검투장 안으로 뛰어 들어와 기적을 일으켰다.

    레일라는 놀라운 치유력을 발휘해 나를 살려냈다.

    비록 온몸이 망가지기는 했으나 목숨은 부지할 수 있었다.

    그런데 사건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젠장……!’

    나는 사미온 가문의 취조실에 끌려 들어갔다.

    “악마와 계약했다는 것이 사실이냐?”

    저들에게 답은 정해져 있었다.

    외팔이 데이븐이 폭풍검 카진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은 악마와의 계약뿐이었다.

    “부정해도 소용없다. 네 부모가 증언했다.”

    “네 본가에서 계약을 위한 제물들과 네 피가 담긴 병들을 발견했다. 이래도 발뺌할 테냐?”

    내 부모는 위증을 했고, 나는 누명을 썼다.

    나의 부정한 성장을 위하여 죄 없는 아이들 300명을 제물로 바친 악마가 되었다.

    소문은 곧 사실이 되었다.

    카진은 주인공이었고 나는 그를 위해 소모되는 조연이었을 뿐이었다.

    “사미온의 명예를 지키기 위하여 카진 도련님이 데이븐 놈을 벤 것이라지?”

    “어려서부터 친구였던 사촌을 베는 것이 얼마나 가슴 아팠으면 그렇게 우셨을까?”

    카진은 영웅이 되었고 나는 악마 계약자가 되었다.

    나는 카진을 이겼지만 사미온가(家)를 이겨내지는 못했다.

    나의 가문은 내가 아닌 카진을 선택하였다.

    “……하여 가문의 명예를 더럽힌 데이븐의 모든 마나를 구속하고 종신형에 처한다.”

    팔다리의 힘줄이 모두 잘리고 여러 겹의 사슬식을 통해 마나가 봉인되었다.

    나는 종신형에 처해져서 감옥에 처박혔다.

    그리고 카진은 변했다.

    그는 노력하는 천재가 되었다.

    폭풍검이라 불리던 그놈은 이제 검제(劍帝)라고 불렸다.

    “네 덕분이다, 아주 고맙군.”

    놈은 가끔 나를 찾아와 조롱했다.

    세상은 그를 기억하기 시작했고 나는 기억에서 잊혀졌다.

    ‘배가 고프다.’

    어느샌가 배급되는 식사량이 많이 줄었다.

    옷은 거의 삭아 없어졌고 갈비뼈가 훤히 드러나 보였다.

    폭풍검 카진을 꺾었던 나는 우습게도 배고픔에 시달리며 괴로워했다.

    나는 감옥 벽면에 기대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콜록, 콜록, 기침이 나왔다.

    기침에는 피가 섞여 있었다.

    ‘죽는다면…… 명예롭게 죽고 싶었는데.’

    적어도 이런 죽음을 꿈꾼 적은 없었다.

    ‘차라리 검투장에서 죽었어야 했다.’

    냉기가 밀려들었다.

    으슬으슬, 몸이 떨리고 추웠다.

    눈물을 꾹 참았다.

    카진과 나의 위치는 영원했다.

    나는 죽고 싶지 않았다.

    ‘내가 직계였다면.’

    그랬다면 달라졌을까?

    ‘나도 검신 케샤크의 가호를 가졌다면.’

    그랬다면 달랐을까?

    ‘한 번만 더 기회가 주어진다면.’

    죽음이 두렵지 않다고 생각했었는데 그렇지 않았다.

    두려웠다.

    점점 정신이 아득해졌다.

    ‘살…….’

    살고 싶다.

    ‘뭐지?’

    주변이 밝아졌다.

    나는 아무래도 죽지 않은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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