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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 검사는 재벌을 사냥한다-38화 (38/51)

38화. 수사 잘해요 ^^ (2)

내 덤덤한 대답에 이유림 부장검사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희 지검으로 고소장이 제출된 것도 아니고, 오늘 아침에 일 터져서 경찰도

이제 막 초동수사 들어갔을 텐데 그걸 검사가 나서서 벌써 사건 파일 올리고

따로 움직이면 어쩌자는 겁니까?”

이유림 부장검사라면 이런 식으로 절차를 따질 줄 알았다. 회귀 후에야 서울

중앙지검으로 발령 나서 처음 보는 사이였지만, 나는 이 사람에 대해 꽤 많은

걸 이미 알고 있었으니까.

이 사람에 대한 나의 평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검사보다는 회계사를 했으면

훨씬 잘 어울릴 것 같달까?

모든 일에 아주 꼼꼼하게 절차 따지는 걸 좋아하고 문제가 생기면 자기는 정

해진 메뉴얼을 지켰다고 뒤에 숨는 편이다.

그러면서 업무 실적은 되게 따지는데, 위험을 피하려는 성격답게 큰 거 한 방

을 노리기보다 매일매일 작은 업무를 꾸준히 처리하는 걸 중시한다.

옛날의 양경동처럼 나쁜 검사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휴림유업 판을 크게 벌

이려면 내가 넘어야 하는 첫 번째 돌부리인 건 확실하다.

지금 이유림 부장검사의 입장에서 보건대, 내가 분신자살 시도 사건 하나 터

졌다고 휴림유업 사태를 덥석 검찰청으로 가져온 게 마음에 안 들 게 분명했다.

여기서 삐끗하면 그녀의 직권으로 이 사건을 경찰로 보내거나 내가 아닌 다른

검사한테 맡기겠다고 나올 공산이 크다.

물론, 내가 시작한 사건의 재배당 권한을 1차적으로 행사하는 직속 상사가 이

유림 부장검사라는 걸 알고 시작한 일이다.

그러니 당연하게도 나로서는 이미 그녀를 설득할 방법을 갖고 있었다.

“이 사건, 속도전입니다. 고소장 접수되고 경찰이 수사 마쳐서 검찰로 송치될

때까지 기다릴 수가 없었습니다.”

“속도전이요? 제가 제일 싫어하는 전투방식인데, 서두르지 않으면 어떻게 됩

니까?”

“이번 일, 단순 자살 시도 사건이 아닙니다. 휴림유업의 갑질로 인해서 한 사

람은 목숨을 잃을 뻔했고, 지금도 전국의 수많은 대리점주들이 같은 이유로

고통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희가 시간 질질 끌면 제일 좋아할 사람들이 누

구겠습니까?”

이유림 부장검사가 팔짱을 끼며 눈을 잔뜩 흘려 나를 노려보았다.

“누군데요?”

“그 갑질을 일삼고 거기서 나온 돈을 횡령까지 한 휴림유업 경영진이겠죠. 경

찰이 자살에 포커스 맞춰서 수사하는 동안 갑질 증거자료 다 빼돌리고 자기한

테 유리한 진술해 줄 대리점주들 포섭해서 꼬리 자르고 넘어갈 겁니다. 그렇

게 놔둘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놔둔다고 해서 저희 부에 오는 피해가 있습니까? 반대로 생각해 보

죠. 이렇게 들쑤셔 놓고 지금 백동준 검사님이 말씀하시는 그 갑질과 횡령 혐

의, 백동준 검사님 말이 백번 맞아서 있다고 쳐도, 못 밝혀내면 어쩔 겁니까?

휴림 유업 이전 이름이 뭔지는 아십니까?”

머지않아 HL 그룹 사냥꾼으로 불리게 될 내가 그걸 모를 리가 있나?

“HL 유업입니다. 우리나라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운 대기업 집단의 계열사죠.

그러니까 더욱 저희 검찰이 조기에 나서서 바로잡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휴림

유업 경영진의 비리 제 손으로 반드시 밝혀낼 겁니다. 그러니 부장님이 피해

보실 일도 없습니다.”

“자신감이 넘치시네요? 수사 실패해서 기소 못 하면 어떻게 하실 건지 말씀해

보시죠?”

“그럴 일 없겠지만, 혹여 나중에 문제가 된다면 부장님께서 반대하셨는데도

제 독단으로 밀어붙였다는 거 명확히 하겠습니다. 이 사건 경찰로 돌려보내지

마시고, 다른 검사한테 재배당하지도 마시고 저한테 쭉 맡겨 주십시오.”

휴우-.

이유림 부장이 팔짱을 풀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면서 그녀가 하는 생각이

내게 읽혀 들어왔다. mm 단위까지 재고 따지는 성격상 저럴 줄 알았다.

[처음부터 경찰이 먼저 수사하게 냅뒀으면 얼마나 좋아? 이미 검찰로 가져와

버린 이상, 지금 내가 경찰에 도로 맡겼다가 나중에 백 검사 말대로 경영진

선에서 비리 정황 드러나고 증거 인멸이랑 꼬리 자르기 시도 밝혀지기라도 하

면 다 내 책임이잖아?]

[나중에 검사장님한테 불려가도 백 검사가 다 책임지겠다고 자기 입으로 말했

으니 나도 할 말은 있겠지. 백 검사가 무슨 자신감으로 저러는 건지는 몰라도

이래도 도박, 저래도 도박이면 내 판돈은 최대한 적게 거는 게 맞지. 똑바로

못 처리하기만 해 봐라!]

생각을 마친 이유림 부장이 나를 정면으로 바라보았다.

“정말 자신 있는 거 맞죠?”

“그렇습니다.”

“상대는 HL 그룹이에요. 그쪽에서 사건 비틀고 윗선에 압박 넣고 하는 거 저

는 못 막아 드려요. 아까 말씀하신 경영진 비리 제대로 못 밝히실 거면 백동

준 검사님 옷 벗을 각오까지도 하셔야 할 겁니다.”

내가 언제 막아달라고 했나, 아니면 내 옷 안 벗겨지게 바느질해달라고 했나?

별걱정을 다 하시네. 방해 안 하겠다니 나로서는 그것만으로도 환영이다.

“그럴 일 없을 거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저 수사 잘합니다.”

“알겠습니다. 백동준 검사님 올해 3년 차이신 거로 아는데, 이렇게 빨리 옷

벗으시면 어떻게 되시는지도 아시죠?”

무슨 말 하려는 건지는 너무 잘 알겠다. 부장검사도 못 달고 옷 벗은 전직 검

사를 법조계에서는 선호하지 않는다.

실력 검증 결과 이미 함량 미달이라고 보는 시각이 많고, 대형 법무법인에서

전관예우를 받기는커녕 변호사 사무실 개업해서 초년 변호사들이랑 똑같이 바

닥에서 시작해야 한다.

꼼꼼한 성격 탓에 내 걱정도 꼼꼼하게 해 주는 건 알겠는데, 별로 고맙진 않

네. 이번 수사가 실패할 일도 없거니와, 내가 가진 자금이면 법무법인을 하나

만들어도 될 정도인걸?

이미 자기는 간섭하지 않겠다는 선언을 들은 이상 이유림 부장과의 실랑이를

길게 이어갈 필요는 전혀 없다.

“수사 결과로 보여드리겠습니다.”

* * *

부장검사실에서 나왔는데, 문자메시지 한 통이 와 있었다. 나오는 길에 내 명

함을 줬던 강석동이 보낸 것이었다.

- 저 수술 받기로 했습니다. 검사님 덕분이에요. 감사합니다. 저한테 무슨 일

이 있었는지 자세히 말씀드리고 싶은데 통화 괜찮으실까요?

통화라, 글쎄? 나쁘진 않은데 그보다는 다소 귀찮더라도 얼굴 보고 이야기하

는 게 좋을 것 같았다.

강석동이 아무리 나한테 고마워한다고 하더라도 어쩔 수 없이 걸러지는 이야

기가 있을 테고, 그건 마음 침투 능력을 통해서 알아내야 하니까.

- 제가 다시 병원으로 찾아뵙겠습니다.

그리하여 잠시 후, 시간이 많이 지난 게 아닌데도 다시 만난 강석동의 태도는

확연히 바뀌어 있었다.

처음 만날 때 누워서 나를 대했던 것과는 달리 힘들어 보이지만, 이번에는 앉

아서 나를 맞았고 옆에 놓인 음료까지 권하더라.

“검사님 번거로우실까 봐 전화로 말씀드리려고 했는데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게 제 일인데요, 뭐. 휴림유업 본사에서 당하신 일 말씀해 주시겠다고요?”

“네. 판매 할당량이랑 가격 올려치는 이야기는 검사님도 잘 알고 계신 것 같

더라고요. 그래서 그다음 이야기를 조금 드릴까 해서요.”

대충 무슨 말이 나올지는 알겠는데, 그래도 당사자한테 직접 들어서 나쁠 건

없겠지.

“네. 말씀해 주세요.”

“각 대리점별로 본사에서 담당하는 직원이 있습니다. 저희 쪽은 김학영이라는

녀석이었습니다. 나이는 제 아들뻘은 될까요? 제가 할당량을 연속으로 3개월

쯤 못 채웠을 때였을 겁니다. 태도가 완전히 싹 바뀌더라고요.”

“갑질이 시작됐군요.”

강석동이 숙이고 있던 고개를 미세하게 끄덕였다.

“맞습니다. 제 입장에는 마빡에 피도 안 마른 게, 반말은 기본에 욕하고 심지

어 저희 점포 물건에 대고 발길질까지 했습니다. 이것도 참기 힘들었는데, 걔

가 그랬던 이유가 있더라고요. 나중에 슬며시 제안하길 이 짓 당하기 싫으면

돈을 내면 된다고 했습니다.”

“물건값 외에 다른 돈을요?”

“네. 매달 300만 원씩만 송금하면 할당량을 깎아주겠다고 하더라고요. 대리점

운영하면서 저한테 떨어지는 돈이 달에 300이 안 되는데, 그 돈을 낼 수가 있

었겠습니까? 못 내겠다고 하니까 자기 선에서 공급가를 더 올려치더라고요.

김학영, 그 자식 꼭 처벌해 주십시오.”

본사 직원이라고 이렇게 대리점주한테 횡포 부리는 건 분명히 나쁜 짓이고 내

생각에도 꼭 처벌해야겠는데, 나로서는 살짝 싱거운 이야기였다.

대리점 관리 사원은 결국 깃털에 불과하다. 회사 방침으로 대리점주들을 쥐어

짰으니 김학영이라는 자 외에도 같은 짓을 벌인 사람이 한두 명이 아닐 테다.

어차피 몸통을 잡으면 깃털은 따라오게 되어 있고, 지금 나는 이 사태를 주도

한 경영진이 누구인지 알아내야 한다.

“그 김학영이라는 친구가 한 짓에 대해서 본사에 따로 연락은 취해 보셨습니까?”

“당연히 했죠. 하지만 소용없었습니다.”

“본사에서는 누가 나와서 구체적으로 뭐라고 하던가요?”

이번에는 강석동의 고개가 가로로 움직였다.

“김학영이 그 새끼 빼면 그냥 의사소통 자체가 거의 안 됐다고 봐 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뭔가 아는 걸 감추려는 듯한 저 꼬리가 잔뜩 길어지는 말투는 뭘까나? 강석동

이 지금까지는 저렇게 소심하게 굴지는 않았는데.

“김학영 외에 본사에 따로 아는 분은 없으시고요?”

“없습니다.”

그때, 강석동의 마음이 활짝 열리며 한 인물의 사진이 떠올랐다. 미래에서 익

숙하게 봤던 휴림유업의 부사장 황성환이었다.

그리고 연이어 강석동이 감추고 있던 마음이 읽혀 들어왔다.

[본사에 아는 사람, 있지. 내가 황성환이 아니었으면 애초에 휴림유업 대리점

같은 거 시작도 안 했을 건데. 걔는 자기가 그렇게 성공해 놓고 고등학교 동

창 등을 이렇게 처먹고 싶었을까?]

그 뒤로 쭉 읽혀 들어 온 강석동과 황성환 사이의 사정은 이러했다.

둘은 고교 동창으로서 성인이 돼서도 막역하게 지내다가, 강석동은 사업에 실

패하고 황성환은 휴림유업에서 승진을 거듭하며 부사장까지 달았다.

그러던 중 황성환이 HL 캐피탈에서 대출을 해 주겠다며 강석동을 꼬셔서 휴림

유업의 대리점을 열게 했다.

당연히 강석동이 관리사원한테 갑질을 당했을 때 가장 먼저 만난 사람도 황성

환이었다.

[“성환아 나 진짜 너무 힘들다. 도와줘라. 판매 할당량, 우리 이거 그만하자.

제발 친구로서 부탁한다.”]

[그 애걸에 황성환의 대답은 매정하다.]

[“우리 직원이 안내 안 했나? 할당량 깎고 싶으면 어떻게 하면 되는지?”]

[“내가 HL 캐피탈에 보증금 이자도 내면서 장사하는 판에 그 돈을 어떻게 내!

친구 사이에 진짜 이러지 말자.”]

[“친구 사이에 돈 떼먹으면 안 되지.”]

이게 무슨 말인지는 처음 들었을 때 나도 몰랐고, 당시 강석동도 상당히 당황

한 눈치였다.

[“그게 무슨 말인데?”]

[“네 말대로 친구니까 얘기해 주자면, 네가 할당량 깎는 대가로 내야 할 돈이

사실은 내 돈이 되는 거거든. 그러니까 그냥 곱게 돈 내고 마음 편히 장사하

자. 너 좋고, 나 좋고. 친구끼리. 어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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