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화. 수사 잘해요 ^^ (1)
대체 허민회가 저 대리점주한테 무슨 짓을 했길래 사람이 자기 몸을 태워 죽
을 생각을 했던 걸까?
이번 휴림유업 사태가 내가 알던 미래 지식에 살짝 비켜나간 방향으로 전개되
고 있다는 건 분명했다.
그 구체적인 내용이 뭔지는 수사를 해 보면 알겠지. 나는 검사니까. 문제는,
이 사건을 어떻게 내가 수사하냐는 건데.
전국에 검사는 많다. 시기별로 다르지만, 지금은 대략 이천 명 정도. 그리고
지금 내가 있는 서울중앙지검의 검사만 해도 수십 명에 이른다.
그리고 고소장이나 고발장이 접수된 사건 또는 경찰에서 검찰로 송치된 사건
을 어느 검사실에 배당할지에 대한 결정은 나 같은 평검사가 개입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이건 최소한 부장급 이상에서 이루어진다. 그렇다고 내가 이 수사를 다른 검
사한테 맡길 생각은 추호도 없다. 다른 검사를 못 믿어서가 아니다.
나만큼 휴림유업 사태의 본질을 꿰고 있지 않은 검사가 처리하면, 이건 대리
점주와 휴립유업이라는 법인 사이에 발생한 공정거래법 위반 사건에 한정돼
처리될 가능성이 너무 크다.
이렇게 되면 불공정 시정조치에 휴림유업에 약간의 과징금이 부과되는 데에서
끝날 뿐, 그 악행을 주도했던 경영진과 새로운 나쁜 짓을 꾸미고 있는 허민회
를 처벌할 수가 없다.
비단, 허민회를 다시 감옥에 집어넣겠다는 내 개인적인 바람뿐만 아니라, 사
회 정의를 위해서도 이건 사건은 내가 맡아야만 한다.
그렇다면 남은 건 그 방법인데 이건 의외로 간단하다. 이 사건의 수사를 내가
처음으로 시작하면 된다.
흔히 인지 사건 수사라고도 부르는데, 검사는 한 명, 한 명이 국가 기관으로
서 범죄 혐의가 의심되는 사건에 대해 수사를 개시할 권한을 갖는다.
그리하여 나는 즉각 이번 휴림 유업 사태를 사건 파일로 등록하고 가장 먼저
오늘 아침 자신의 몸을 불사지르려고 했던 그 대리점주를 찾아 나섰다.
검사라는 신분 덕분에 그 과정은 쉽게 이루어졌다. 분신 사건을 최초 보도했
던 기자를 찾아가니 사건 당사자가 입원해 있는 병원을 알려주었다.
그리고 그 병원에서 역시, 검사 신분증을 대자마자 분신 피해자가 있는 병실
로 안내받을 수 있었다.
“안녕하세요. 백동준이라고 합니다. 서울중앙지검에서 근무하는 검사입니다.”
그러자 그가 얼굴이 칭칭 감겨 있는 붕대 사이로 삐죽 튀어나온 타버린 윗입
술 때문에 다소 부정확한 발음으로 대답했다.
“아, 네. 강석동입니다.”
여기까지 왔던 과정이 너무 쉬웠기 때문일까, 내심 강석동이라는 이 사람이
자기 이야기를 술술 풀어 놓을 거라고 생각했다.
“휴림유업 갑질에 못 이겨서 스스로 극단적인 선택을 하실 뻔했다고 들었습니
다. 어떻게 되신 일인지 자세히 알 수 있을까요?”
그런데 너무나 뜨거웠을 그의 몸과는 달리 강석동의 반응은 의외로 차가웠다.
“검사요? 내가 댁같이 법 만지는 사람들 한두 명 만나 본 줄 아십니까?”
그러면서 강석동의 마음속에 있던 기억이 내게 읽혀 들어왔다. 이미 여러 법
무사와 변호사를 만났더라. 그리고 그들이 했던 답변은 하나같이 사건을 맡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계약서 보니까 찾아오신 분이 알아서 계약을 그렇게 하셨네요. 이러면 법적
으로는 해 드릴 수 있는 게 없어요.]
[이건 만약에 소송을 건다고 쳐도 이길 확률이 너무 낮아서 솔직히 말씀드려
저는 안 맡고 싶습니다. 저보다 더 잘 하실 수 있는 변호사가 있을 거예요.
제가 사건 안 맡기로 한 거니까 상담료는 안 내고 가셔도 좋습니다.]
그중 한 명은 솔직하게 자신의 심정을 털어놓기도 했다.
[이거 공정거래법 위반으로 승부 보면 이길 수는 있겠는데요, 상대가 휴림유
업 그러니까 따지고 보면 결국 HL 그룹 아닙니까? 그쪽에서 작정하고 덤비면
제가 해 드릴 수 있는 게 많지가 않아요. 꼭 이 사건이 법적으로만 결판나리
라는 보장도 없고요. 본사랑 잘 이야기해서 해결해 보시는 게 최선입니다.]
덕분에 내가 강석동을 설득하기는 훨씬 쉬워졌다.
“만나 보신 법조인 중에 이 사건 확실하게 처리해 주겠다고 장담하시는 분이
없으셨나 보네요.”
“댁은 다릅니까?”
나는 일부러 계속해서 떨리는 그의 눈앞에 내 얼굴을 가져다 댔다.
“상대가 HL 그룹이면 제가 자신 없을 수가 없죠.”
얼굴을 가리고 있는 붕대 때문에 그의 표정을 정확히 읽기는 어려웠지만, 고
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는 눈빛이 바뀐 것만은 분명했다.
“거, 혹시 일전에 뉴스에서 봤던 그 검사님이신가?”
“맞습니다. HL 중공업 대표 이사 배임 사건 기소해서 유죄 판결받아낸 백동준
이라고 합니다.”
“별일일세. 그렇게 대단하신 분이 저를 왜 찾아오셨습니까?”
가장 솔직한 대답이라면 허민회를 다시 잡아넣기 위해서라고 해야겠지만, 지
금은 두 번째 솔직한 대답이 더 좋아 보였다.
“검사한테는 사회 정의를 지켜야 할 책임이 있거든요. 그걸 도외시하면 직무
유기입니다. 휴림유업에서 얼마나 부당한 일을 당하셨는지 대강 알고 있습니
다. 그래서 이렇게 강석동 씨 몸으로 그 분노를 표출하실 수밖에 없었던 것도
이해하고요. 그 억울함 벗으실 수 있게 제가 돕겠습니다.”
“뭐, 수임료 같은 거 바라고 이러시는 거면 돌아가슈. 내가 그 큰돈 낼 수 있
었으면 선임할 변호사가 아예 없었던 건 또 아니니까.”
“저는 변호사가 아닙니다. 검사는 사건 수임료 못 받습니다. 그리고 제 월급
내 주시는 세금으로 나라에서 꼬박꼬박 잘 나옵니다.”
그러자 강석동이 뚱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다가 한마디를 툭 뱉었다.
“그럼 왜 이러시는 건데요?”
“말씀드렸잖습니까? 저는 사회 정의를 위해 휴림유업 사태를 해결할 겁니다.
본사에서 부과하는 판매 할당량 때문에 힘드셨죠? 그거 못 채웠다고 본사에서
물건 값을 올리니까 그다음부터 할당량 채우는 건 거의 불가능해지셨고요.”
붕대 사이로 강석동의 눈이 번쩍 뜨였다.
“그걸 어떻게 아셨습니까? 계약서상 비밀유지 조항 때문에 어디 가서 말도 못
하던 건데요.”
“휴림유업 저희 중앙지검 관할에 있습니다. 이 사건 예전부터 지켜보고 있었
는데, 극단적인 선택하시기 전에 저희 검찰이 움직이지 못해 죄송합니다.”
그때부터였다. 강석동은 툴툴거리면서도 마음이 한결 풀어진 듯 내게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죄송한 거 아시니까 다행이네요. 진작 좀, 이 병원 말고 저희 대리점으로 찾
아와 주셨으면 얼마나 좋았습니까? 할당량 못 채웠다고 점점 공급가액은 올라
가는데 그렇다고 묶어둔 보증금 때문에 계약을 해지할 수도 없었습니다.”
여기까지는 내가 아는 이야기이다. 이다음을 듣고 싶어서 여기까지 찾아온 건데.
“휴림유업의 여러 대리점주께서 같은 문제 때문에 힘들어하고 계시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분들이랑 연합해서 본사에 대항하는 대신에 개인적으로 큰일날
뻔했던 선택을 하셨던 이유가 있을까요?”
“긴 이야기입니다만, 그래도 줄여서 말씀드려 보자면 그 망할 놈의 보증금 때
문입니다. 대리점 개업 조건으로 본사에 1억을 내라니 처음에는 말도 안 된다
고 생각했죠. 그 큰돈을 통장애 쟁여놓고 사는 사람이 몇이나 있겠습니까? 그
런데 계약 체결을 조건으로 HL 캐피탈에서 대출을 알선해 준다고 하더라고요.”
“그 대출을 받으셨습니까?”
그러자 붕대 사이로 강석동의 눈물이 벌겋게 익은 상처를 타고 흐르는 모습이
보였다.
“그게 제 인생 최대의 실수였습니다. 저희가 본사에 납품 대금만 내면서 장사
하시는 줄 알면 큰 오산입니다. 제 기준으로는 그 보증금 1억에 대한 연이자
10%까지 내면서 장사했습니다. 이러니 어떻게 밑지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원금 상환 없이 이자만 납입한다고 하더라도 1년에 천만 원이 고스란히 통장
에서 빠져나가는 꼴이었다.
“그것 때문에 많이 힘드셨군요.”
“그래도 버티며 살려고 했습니다. 할당량도 이번 달에는 어떻게든 채워보려고
했고, 대출은 HL 캐피탈에서 어떻게든 더 내준다고 하니 버텨보려고 했습니
다. 그런데 휴림유업 사장이 바뀌었다고 하던가요? 그러고 나서 말도 안 되는
통지가 날아왔습니다.”
휴림유업의 바뀐 사장이라고 하면, 허민회였다. 드디어 내가 기다리던 이야기
가 나오려고 하고 있었다.
“허민회 사장이 무슨 짓을 했나요?”
“허민회인지 누군지는 잘 모르겠는데 아무튼 휴림유업에서 사람이 찾아오더니
그럽디다. 제가 6개월 넘게 판매 할당량을 못 채웠으니 제 귀책 사유로 인해
대리점 계약이 해지되고 기 납입된 보증금은 전액 회사에서 환수한다는 내용
이었습니다.”
허민회 이 미친 새끼가? 기존 경영진이 보증금을 대리점주들을 향한 압박 수
단으로 썼다면 허민회는 그걸 통째로 먹으려고 하는 것이었다.
“그게 말이 됩니까?”
“저도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검사님 같은 법조인들 많이 찾아
다녔는데 다들 HL 그룹이랑은 못 싸우겠다고 하니 제가 죽을 수밖에요. 뭐,
그중에 한 명은 법률 조언이랍시고 그런 얘기는 해 주더이다. 그 빚이 제 명
의로 돼 있으니까 제가 죽으면 저희 처자식들한테 넘어가지는 않을 거라고요.”
와, 이건 진짜 법이 죄를 저지르지도 않은 한 사람을 죽일 뻔했던 거 아닌가?
“그 돈, 제가 반드시 돌려받을 수 있게 해 드리겠습니다.”
“하아, 감사합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처음부터 변호사 사무실이 아니라 검찰
청을 찾아갈 걸 그랬네요.”
냉정하게 말하면, 검찰청에 찾아왔어도 나를 만나지 않는 이상 이렇게까지 확
실한 대답은 못 얻었을 것이다. 기껏해야 공정거래위원회로 가 보라는 얘기나
들었겠지.
그때, 병실로 간호사가 들어오며 우리 사이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강석동 환자분, 의사 선생님이 피부 이식 수술 상담 진행하자고 하시는데요,
면회 길어지시면 시간 늦춰달라고 제가 말씀드려 볼까요?”
“저 말씀 드렸잖습니까. 수술 못 받는다고요. 돈이 없어요.”
간호사가 난감한 표정을 짓고 있는 사이 내가 강석동에게 한마디를 건넸다.
“그 돈 돌려받으셔도 수술 못 받으시나요?”
“아, 그게 말씀입니다. 그렇게 되면. 저 일단 의사 선생님 상담 갔다 오겠습
니다. 감사합니다. 검사님.”
* * *
그러고 나서 검찰청에 돌아왔는데 박진아 사무관이 부랴부랴 나를 찾아 검사
실로 들어왔다.
“검사님 전화를 왜 이렇게 안 받으세요?”
오면서 보니까 부재중 전화를 4통이나 남겨놓긴 했더라.
“무슨 일인가요? 제가 사건에 잠깐 골몰하느라. 죄송합니다.”
“제가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니고요, 부장검사님이 아까부터 검사님 찾아오라
고 난리세요. 저 중간에서 곤란해 죽을 뻔했어요. 빨리 올라가 보세요.”
뭐, 대충 무슨 일인지는 알겠다. 내가 HL 그룹 계열사인 휴림유업 사태를 상
의도 없이 떡하니 사건 파일에 올려놨으니 부장으로서는 똥줄이 타는 중이겠지.
똑똑-.
문을 열고 들어가자 이유림 부장검사가 빽 소리를 질렀다.
“왜 이제 와요?”
“사건 피해자 만나는 중이었습니다.”
“설마 그 사건이라는 게 휴림유업 사태는 아니겠죠?”
아니라는 대답을 무지하게 원하는 것 같은데, 그렇다고 내가 거짓말을 할 이
유도 필요도 없었다.
“맞습니다. 오늘 아침에 HL 그룹 본사 앞에서 분신 시도한 강석동 씨 만나고
오는 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