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검사는 재벌을 사냥한다-34화 (34/51)

34화. 코인 탑승 (2)

아직 무슨 사업인지 얘기도 안 했는데 저렇게 자신감 뿜뿜이라니. 정말 공무

원 그만두고 사업을 하고 싶었나 보다.

“바이트코인이라고, 들어봤어?”

여세린은 역시 IT 전문가다운 답변을 내놓았다.

“어? 오빠가 그걸 어떻게 알아? 바이트코인 요즘 우리끼리는 아주 핫이슈야.

이게 미래에 화폐를 대체할 거라는 이야기도 있고, 꼭 화폐 대용이 아니라도

블록체인 기술 자체가 활용 방안이 무궁무진하다는 소리도 있고 그래.”

나야 바이트코인을 모를 수가 없지. 회귀하기 전에 그거 사서 부자 된 사람이

얼마나 많았는데. 그렇다고 여세린한테 회귀 이야기까지 할 건 아니었고.

“나 경제학과 나왔잖아. 앞으로 주식보다는 그쪽에 투자하는 게 수익률이 훨

씬 좋을 것 같아서 기왕 돈도 생겼겠다 나도 미래 산업에 관심을 가져 보려고.”

“바이트코인이야 그냥 해외 거래소에서 사면 되는데, 그거 갖고 무슨 사업을

하게?”

“지금 사려고 해 봤자, 시중에 풀려 있는 물량도 얼마 안 되고 아직 초기 단

계라 채굴도 엄청 쉽다며? 그래서 나도 본격적으로 뛰어들어 볼까 해.”

내 말에 여세린이 반신반의하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이 오빠, 별걸 다 아네. 오빠 말대로 기본적인 장비만 갖추면 금방 채굴할

수는 있는데, 그거 채굴해 봤자 지금 가격으로 하나에 한 500원 하나? 기껏

매도까지 성공해도 거래소 수수료에 환전 수수료에 이것저것 다 떼면 과자도

싼 거 한 봉지밖에 못 사.”

역시 얘도 아직 바이트코인이 향후에 얼마나 큰 가치를 갖게 될지 모르는구나.

“그러니까 미래를 보고 투자한다는 거지. 나 돈 많잖아.”

“아무리 돈이 많아도 막 내다 버리는 건 너무 아깝지 않아? 그거 지금이야

500원에라도 거래되지, 애들 장난 같은 거라 아예 가치가 없어질 수도 있어.”

“그거야 투자한 내가 감수할 리스크인 거고. 너는 어때? 바이트코인 채굴하고

매집하는 사업해 볼 생각 없어?”

내 질문이 끝나자 웨이터가 메뉴판을 가져왔고 저녁에 먹을 식사를 고르는 척

생각에 잠겨 있던 여세린이 메뉴판을 덮으며 되물었다.

“일단 내 돈으로 거기 들어가긴 싫어. 그런데 오빠 말은 자금은 오빠가 다 댈

테니까 나는 사업 실무만 담당하라는 거지?”

“응. 어때? 아직도 자신 있어? 너 명색이 IT 전문가잖아.”

“IT랑 블록체인이랑 기초적인 영역 빼면 아예 다른 기술인데 어차피 아직 이

쪽 분야 전문가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어서 공부하면 금방 따라잡을

자신이야 있지. 그런데 그걸로 수익 낼 자신이 있는 거냐고 물어보면, 나는

진짜 모르겠어.”

결국, 같은 이야기가 반복되고 있었다. 돈을 대 주면 바이트코인을 채굴하고

매입하는 건 여세린이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인데, 미래에 그게 가치가 있겠냐

는 거지.

물론 이 점에 대해서 나는 아주 확실히 알고 있었다. 지금 달랑 500원 하는

바이트코인은 10년 안에 그 가치가 최소한 10만 배 이상 상승한다.

즉, 하나에 5천만 원 이상이 되며 시기에 따라서는 그 1.5배인 약 7천5백만

원이라는 어마무시한 고점에 도달하기도 한다.

여러 변수가 있어서 실제로 이렇게까지는 안 되겠지만, 지금 내가 갖고 있는

돈 30억이 10만배로 불어난다고 치면 내 자신은 무려 3천조 원에 이르게 된다.

이 정도면 기업을 넘어 왠한한 작은 나라 하나를 통째로 매입할 수도 있는 금

액이니 자금력에 있어서도 결코 내가 HL 그룹에 밀린다고 볼 수는 없다.

“안 오르면 어차피 내 돈 날리는 거니까 너는 신경 안 써도 돼. 지금 네가 해

줬으면 하는 건 아까 말했던 대로 채굴을 하든 매입을 하든 바이트코인을 최

대한 많이 끌어모으는 거야.”

“공무원보다는 재밌겠네. 그럼 오빠도 검사 그만두고 바이트코인 사업에 몰두

하는 거야?”

이게 내가 고민했던 지점이었다. 돈만 바라보면 이게 최선의 선택일지도 몰랐

다. 하지만 나는 단순히 현금 부자가 되고 싶은 게 아니라 HL 그룹을 장악하

는 데에 최종 목적이 있다.

그러려면 아직 검사 권한을 내려놓는 건 시기상조이다. 검사직을 관두더라도

변호사 자격은 남지만, 결정적으로 HL 그룹의 비리를 파헤칠 수사권이 없기

때문이다.

HL 그룹 같은 거대한 상대를 집어삼키기 위해서는 내가 크는 것도 중요하지

만, 상대에게 타격을 입히는 것도 그 못지않게 필요한 작업이다.

“아니. 나는 설립할 회사 지분만 가질 거야. 내 계획은 네가 그 회사 대표 이

사가 돼서 모든 업무를 총괄하는 거야.”

“말단 계약직 직원에서 한방에 CEO면 되게 괜찮은 승진인데? 월급은 빵빵하게

채겨 주나?”

“일단 지금 네가 받는 급여의 2배, 플러스 회사 지분 1% 어때?”

내 물음과 함께 주문한 스테이크가 나왔고 포크와 나이프를 짚는 여세린의 눈

이 번뜩였다.

“그렇게 많이 주게? 그럼 나는 콜. 그런데 회사에 나 혼자 있으면서 CEO라고

하긴 좀 그렇다.”

“아니야. 내가 생각하는 사업 규모가 어차피 너 혼자 할 수 있는 정도가 아니

야.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바이트코인 채굴장을 만들 건데 그러려면 그 시스

템 관리 직원만 해도 몇 명 붙어야 할걸? 거기다가 시중에 나오는 바이트코인

싹 사들일 거니까 재무담당 직원도 있어야 할 거고.”

“이 오빠 봐라? 통이 이렇게 큰 줄은 몰랐네? 그거 잘못하면 그냥 데이터 덩

어리 돼. 종이 쪼가리는 폐지로라도 팔 수 있지 데이터 덩어리는 아무짝에도

쓸모없어질 수 있어.”

어차피 망해도 자기는 손해볼 게 없는데 이렇게까지 걱정해 주는 게 고맙기도

하네. 그래도 내 결심은 흔들릴 이유가 전혀 없었다. 오를 걸 너무 뻔히 알고

있으니까.

어제 BJ 초향에게 했던 이야기를 여세린에게 다시 해 줘야겠다.

“요즘 인터넷에서 내 별명이 주식의 신이라잖아. 날 믿어.”

“와, 오빠 대학 때랑 좀 달라 보인다? 그럼 내가 운용할 초기 자금 얼마나 들

어오는 거야?”

“일단은 20억 정도. 이 금액이면 바이트코인 채굴장 짓고 초기 멤버 모집하는

데에 충분하겠지?”

내 말에 스테이크 한 조각을 입으로 가져가던 여세린의 손이 멈췄다.

“그렇게 많이? 그정도면 건물 하나를 통째로 채굴장으로 만들 수도 있겠는데?

그런데 나 여기서 급 질문.”

“응. 뭔데?”

“오빠 저번에 누보 사태 때 번 돈이 30억이라며. 왜 애매하게 20억만 투자해?

10억은 오빠 개인 생활 자금으로 갖고 있으려고?”

나름 날카로운 질문인데, 여기에 대한 진짜 대답은 투자할 다른 곳이 있기 때

문이다. 머지않아 세계는 제2차 대공황이라고 불릴만한 거대한 경제 위기에

직면한다.

전 세계 경제학 교과서를 다시 쓰게 만든 어마어마한 사건인데, 큰 틀에서 대

강 요약하자면 이러하다.

지금 미국에서는 집값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은행에

서는 주택 담보 대출을 거의 무제한에 가깝게 제공하고 이로 인해 수요가 높

아진 집값은 더 오른다.

하지만 주택의 실제 가치라는 건 한정적일 수밖에 없고, 무섭게 오른만큼 무

섭게 떨어지게 되어 있다.

그러니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 집을 산 사람들은 그 집을 팔아도 빚을 못 갚게

되고, 은행은 담보로 잡은 주택이 헐값이 됐으니 그 손해를 그대로 떠안는다.

이로 인해 절대 망할 것 같지 않던 미국의 대형 은행들이 줄줄이 도산하고 세

계 경제가 커다란 침체기에 들어간다.

훗날 서브 프라임 모기지 사태라고 불릴 이 악재에 한국은 그럭저럭 잘 대처

하지만, 미국 금융사들의 주가는 바닥을 때리게 된다.

나는 딱 그 타이밍에 그 주식들을 나머지 10억 원의 자금을 몽땅 들여 왕창

매입했다가 서브 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수습될 때쯤 팔아치울 것이다.

누보 사태에 투자한 게 초 단기 자금 확보책이고, 바이트코인 투자가 10년을

바라보는 장기 투자라면 이건 비교적 중기간에 대량의 자금을 확보하는 프로

젝트이다.

그렇다고 이것까지 여세린에게 미주알고주알 설명하기는 너무 길어져서 나는

대충 대답을 정리했다.

“아니. 내 생활이야 월급도 나오고 호봉도 올라가고 연금도 나올 건데 큰 문

제는 없겠지. 성골 공무원이잖아. 10억은 따로 쓸 데가 있어.”

“쳇. 성골이라 좋겠다.”

“이제 곧 네 월급이 내 월급보다 많아질 텐데 뭘 질투하고 그래?”

우물우물-.

다소 풀어진 대화 분위기에 여세린이 스테이크를 씹으며 대답했다.

“그렇네. 대주주보다 월급 많이 받는 직원. 좋다. 그런데 진짜 월급 그렇게

많이 받으면서 바이트코인 채굴이랑 매입만 하면 돼?”

여전히 그 가치를 믿지 못하는 눈치인 것 같은데, 기왕 물어봤으니 내 사업

청사진을 설명해 줄 필요는 있겠다.

“바이트코인 말고, 비슷한 다른 블록체인 암호 화폐들도 가능한 많이 매입해

줘. 아이더리움이라든가, 알지?”

“오빠 아이더리움도 알아? 나보다 더 전문가 같은데? 알았어. 바이트코인이랑

다른 알트코인(Alternative coins)도 사고, 또?”

“아까 바이트코인 사려면 해외 거래소 통해야 한다고 했잖아. 그거 아직 우리

나라에는 코인 거래할 곳이 없다는 뜻이지?”

스테이크를 삼킨 여세린이 다시 나이프질을 시작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그 코인 거래소, 우리가 처음으로 만들 거야. 이건 좀 나중 이야기이긴 한

데, 그때쯤 되면 투자랑 경영, 법률 전문가들까지 왕창 스카우트해서 회사 규

모 엄청 커질 거니까 핸들 꽉 잡고 있어.”

“그럼 내가 그 큰 회사 사장 되는 거야? 지분도 1% 준댔으니까 등기이사도 되

는 거고?”

역시 얘도 공부 무지하게 잘 했어서 그런지 이해가 빠르네.

“맞아. 거기까지 가는 데 몇 년 안 걸릴 거야. 그때는 네가 부러워하던 사업

하는 친구들보다 네가 훨씬 잘나갈걸?”

“진짜 그렇게 됐으면 좋겠다. 일단은 바이트코인 가격이 올라줘야 할 것 같은

데, 우리의 밝은 미래를 위해 건배?”

찬-.

나와 여세린은 스테이크에 곁들여 주문한 와인잔을 부딪혔다.

그로부터 한 달 여가 지났고, 우리의 대형 프로젝트가 막을 올렸다. 나는 20

억을 자본금 투자해 여세린 명의로 법인을 세웠다.

여세린 역시 즉각 대검찰청에 사표를 제출하고 서울 외곽의 5층짜리 건물 하

나를 통째로 매입하고 한 층만 사무실로 쓰고 나머지를 바이트코인 채굴기로

가득 채웠다.

기술적인 설명을 들어보니 이 정도 규모 채굴장이면 현재 채굴 난이도 기준으

로 못해도 하루에 10개, 많으면 100개까지도 수급이 가능하다고 한다.

여세린은 여전히 바이트코인 가격 상승에 대해 반신반의하는 눈치였지만, 이

걸로 미래를 아는 나로서는 이걸로 내 엄청난 자금력이 확보되었다고 자신할

수 있었다.

* * *

이제 돈 문제는 기다리기만 하면 자연스럽게 해결되겠다 싶었는데, 뜻밖의 불

길한 소식이 날아들었다.

그 발원지는 울산으로, 한때 허민회의 지시를 받아 나를 암살하려다가 실패하

고 지금은 구치소에 있는 김휘한이 보낸 편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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