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검사는 재벌을 사냥한다-20화 (20/51)

20화. 벗겨진 누명 (2)

방송이 켜지자 기존 초향의 채널에 실시간으로 참여하던 인원의 무려 세 배인

3만 명이 넘는 시청자가 접속해 있었다.

그리고 인원에 걸맞게 아직 한마디도 안 했건만 채팅창은 이미 불타오르고 있

었다.

- 와아 돈도 많고 법도 잘 아시는 백동준 검사님! 사랑해요.

- 검사님 사인회는 언제 하나요?

- 검사님 여기 봐 주세요. The LOVE

등등의 내 팬클럽이라도 출동한 게 아닌 싶은 채팅부터 반대로 나를 까려고

마음 단단히 잡수고 들어온 사람들의 채팅도 보였다.

- 쟤가 그 잘난 백동준이야?

- 솔까 두 달 만에 30억 개이득이 내부 정보 없었으면 가능하냐?

- 오늘 똑바로 설명 못 하면 내가 성해인지 송해인지 찾아가서 작살을 낸다.

그중에서도 ‘스톡GOSU’라는 한국어와 영어가 이상하게 섞인 닉네임을 쓰는 사

람의 긴 채팅이 유독 눈에 들어왔다.

- 이번 누보 사태는 누가 봐도 말이 안 되는 상승이었는데 그걸 발바닥에서

사서 머리 꼭대기에서 먹은 사람이 있다? 그런데 그 사람이 현직 검사다? 그

사람이 BJ 초향 방송에 나왔다? 호오 신기하군요. 기대 하겠습니다.

방송을 켜자마자 시청자들과 말싸움을 할 수는 없었기에 일단은 BJ 초향이 인

사와 함께 나한테 첫 질문을 던졌다.

“안녕하세요. 오늘 와 주신 백동준 검사님께도, 시청자분들께도 감사의 말씀

드립니다. 오늘 검사님과의 질의응답 시간으로 준비한 만큼, 각설하고! 가장

많은 분께서 궁금해하셨던 것부터 여쭤볼게요. 검사님 괜찮으시죠?”

“물론이죠. 그러려고 여기에 와 있는 건데요.”

“검사님이시니까 법을 잘 아시는 건 쉽게 이해가 되는데요, 경제 공부를 따로

하실 기회가 있었을까요?”

사실 이건 많은 사람이 요청했던 질문이기도 하지만, 내가 일부러 방송 첫머

리에서 대답하겠다고 했던 내용이기도 하다.

어차피 대중이 나한테 호감을 느낄지 비호감을 가질지는 내가 한 일의 실체가

아니라 겉으로 드러나는 이미지에 의해 결정된다.

그리고 나는 검사라는 직업 외에도, 강력하게 이미지를 구축할 수 있는 한 가

지 장점을 더 갖고 있다.

“경제학은 한때 전공으로 공부했었죠. 제가 사법고시 합격하고 연수원 들어가

기 전까지는 경제학과 학생이었군요.”

BJ 초향한테도 처음 공개하는 정보였는데, 역시나 사람들의 반응을 대변하듯

그녀가 놀라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법대를 나오신 게 아니셨어요?”

“네. 말씀드렸듯이 대학에서는 경제학 전공했습니다.”

BJ 초향이 슬쩍 채팅창으로 눈을 돌렸다가 그곳에서 수백 개가 동시에 올라오

는 질문을 나한테 던졌다.

“혹시 실례가 안 된다면 어느 대학인지 여쭤봐도 될까요?”

“교문에 본대 없이 ‘샤’라고 쓰여 있는 대학 있잖아요. 거기서 공부했습니다.”

그러자 시청자들의 채팅이 올라오는 속도가 더욱 빨라졌고, 심지어는 우연인

지 모르겠으나 시청자 숫자까지 천 명이 일순간에 늘기도 했다.

- 와, 역시 나라의 미래를 보려거든 관악산 밑을 보라고 했다.

- 그럼 서울대 경제학과 나오고 사시까지 패스한 거야? 공부 졸라 잘했네.

- 역시 우리 동준 오빠, 알랴뷰. 내 챗 보고 있죠?

역시 대학 다닐 때는 이렇게까지 열심히 공부해서 올 만한 곳인지 긴가민가

했던 우리 학교가 이미지에는 확실히 도움이 되나 보다.

그 바람에 방송 전체가 서울대 플로우를 잠시 타며 내가 있었던 킥복싱 동아

리 이야기까지 한 뒤, BJ 초향이 다음 질문을 이었다.

“와, 그럼 이번에 누보라는 종목이 그렇게 많이 오를 거라는 것도 대학에서

배우셨어요?”

“그럴 리가요. 전공 시간에 주식 캔들 차트 보는 법을 배우긴 했는데, 어떤

종목이 오를지 점지해 주는 수업은 없었죠.”

“지금 시청자분들이 많이 지적해 주고 계시는데요, 특히 조금 전에 지나간 스

톡GOSU님께서 아주 길게 저 상승을 차트로 예견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써 주신

게 넘어갔네요. 검사님께서는 어떻게 예측하셨던 걸까요?”

자, 이제 본격적인 해명 및 이미지 굳히기에 들어갈 시간이다.

“일단 분명히 말씀드릴 게 있습니다. 조금 전에 지적해 주신 것과는 달리 제

가 이번 주가 조작의 몸통이었던 KU 그룹과는 아무 관련이 없었습니다. 그랬

다면 제가 나서서 그 회사를 압수 수색하지는 않았겠죠.”

이게 제일 중요한 이야기였는데, 스톡GOSU가 또 딴지를 걸고 들어왔다.

- 처음에 현직 검사로서 짜고 치다가 나중에 틀어져서 자기 먹을 거 먹고 압

수수색으로 거하게 뒤통수 치고 나왔다는 시나리오도 가능하지 않나?

이 스톡GOSU라는 사람을 그냥 무시하고 갈 수 있었으면 좋았겠는데, 사실 내

입장에선 BJ 초향이 먼저 언급하는 바람에 말려든 측면이 있긴 하다.

그래도 기왕 이렇게 된 거 잘 활용할 방법이 없지는 않다. 지금 나를 향한 안

티 세력이 저 사람 하나를 중심으로 뭉치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저 스톡GOSU의 논리만 박살 내면 방송 초기부터 계속 딜을 넣던

사람들을 모두 잠잠하게 만들 수 있다는 뜻이다.

“만약에 제가 내부자로 KU 그룹이랑 접선하고 있었다면요, 그쪽에서도 저한테

받을 게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저야 뭐, 이제 1년 차 평검사인데 검찰 권력

을 움직일 수 있지도 않고요, KU 그룹의 본사가 있는 울산은 관할하지 않는

지청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그러자 옆에 있던 BJ 초향이 살짝 불안한 눈빛으로 귓속말을 건네왔다.

“검사님, 시청자들한테 그렇게 정면으로 반박하셔도 괜찮으시겠어요?”

어차피 지금 내 통장에 들어와 있는 30억을 이미지 타격 없이 먹으려면 한 번

은 거쳐야 하는 절차였다.

나는 고개를 끄덕인 뒤 설명을 이어갔다.

“만약에 KU 그룹이 현직 검사를 끌어들이려고 했다고 치더라도, 그게 저일 이

유는 절대로 없습니다. 대검, 권력의 핵심이라고 불리는 서울중앙지검, 굵직

한 금융 사건은 다 가져가는 서울 남부지검에 계신 검사님들만 해도 얼마나

많은데, 저를요? 말도 안 되죠.”

그러자 스톡GOSU 역시 수긍할 수밖에 없다는 듯 처음으로 짧은 채팅을 쳤다.

- 것도 그렇네. 검사 1년 차면 웬만한 짬 찬 공무원보다도 못한 권력인데, 법

률 상담이야 변호사한테 돈 주면 더 잘해 줬을 거고.

이 말에 채팅창의 팽팽한 대립 구도가 와르르 무너졌다. 안티 세력의 좌장격

이 스톡GOSU가 한 발을 빼자 다 같이 잠잠해졌고, 내 옹호 세력이 득세했다.

- 역시 우리 동준 오빠 멋있어 ><

- 쟈는 거냥 똑똑한 게 맞는갑다.

- 그럼 도대체 어떻게 오를 줄 알았던 거야??

BJ 초향이 마지막 질문을 순화해서 받아 나에게 넘겨 주었다.

“그럼 저희 시청자분들께 대박 수익의 비결 살짝만 공유해 주실 수 있을까요?”

“네. 솔직히 말하면 운이 좋았다고밖에 볼 수 없는데, 500원에서 700원 갈 때

는 차트 보고 계속 오르겠다는 걸 알 수 있었어요. 이건 짝궁뎅이 차트라고

다들 아시는 거거든요. 그래서 그 타이밍에 매수했어요.”

“그래도 그때 5만8천 원까지 갈 줄은 모르셨던 거죠?”

나는 카메라를 향해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렇죠. 그런데 사 놓고 보니까 계속 비정상적으로 오르는 거예요. 그래서

매일 두근두근하면서 언제 내릴지 고민하다가 5만 원 딱 넘었을 때 바로 하차

했습니다. 그러고도 5만8천 원까지 오르는 걸 보면서 이건 아니다 싶어서 개

인적으로 이런저런 것들을 알아봤고요.”

“그랬더니요?”

“차트상으로 말이 안 되는 건 당연하고요, 회사 자체도 소폭이지만 매년 적자

만 내고 있는 곳이라 이렇게 오를 펀더멘탈도 없어 보였죠. 그러다가 우연히

인터넷에서 KU 그룹이 투자자를 모집한다는 광고를 보게 되어서 이게 문제였

다는 걸 알아챘습니다. 그래서 긴급하게 압수수색에 들어갔고요.”

이쯤 되자 초향은 물론 시청자들도 다 같이 고개를 끄덕이는 분위기가 되었

다. 내 설명이 먹혀들고 있다는 방증이었다.

“정말 운이 좋으셨네요.”

“네. 겸손이 아니라 정말 그렇게밖에 말씀드릴 수가 없네요. 당첨자 적은 주

에 로또 1등 당첨된 거랑 비슷한 거죠, 뭐. 제가 먹은 금액도 딱 그 정도고요.”

“부럽습니다! 검사님.”

* * *

그 뒤로 나는 몇 가지 기초적인 차트 보는 스킬들을 설명하며 화기애애하게

그날의 라이브 방송을 마쳤다.

그리고 지금은 검찰청으로 돌아와 일하는 중이다. 집중하고 있는 사건은 당연

히 돌려받은 허민회가 최수연을 상무로 승진시킨 배임 건이다.

그동안 시일이 꽤 지났던 고로, 내가 처음 시작했을 때와 비교해 사건은 꽤

많이 진전돼 있었다.

예상했던 바였지만 허민회와 최수연 모두 검찰청 출석을 거부했다. 그리고 그

걸 갈음한답시고 무슨 서류를 왕창 보내 놨더라.

살펴보니 대부분 최수연이 사내에서 얼마나 좋은 실적을 내서 단기간에 승진

할 수밖에 없었는지에 관한 자료였다.

그러니까 결국 저쪽은 둘의 내연관계와는 무관한 정상적인 승진이었기에 배임

혐의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주장으로 밀고 나가겠다는 건데.

상식적으로 그리고 정황상 납득하기는 어려웠다. 그간의 사건도 그렇고, 정말

그랬다면 허민회가 HL 중공업의 대표 이사직에서 왜 짤렸겠는가?

그렇다고 판사 앞에 가서 허창수 회장이 허민회를 짤랐으니 허민회가 유죄다

라고 주장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확실한 증거를 찾아야 한다.

압수수색을 해 볼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HL 중공업은 KU 그룹과는 그 급이

다르다. 어떤 식으로든 영장을 막아낼 것이다.

게다가 괜히 들쑤셨다가 아무것도 안 나올 경우 내가 맞아야 할 역풍까지 계

산에 넣는다면 함부로 할 수 있는 시도가 아니다.

끄응-.

이를 어쩌면 좋을지 고민을 이어가고 있는데 밖에서 검사실로 돌아온 송민지

사무관이 나를 불렀다.

“검사님.”

“네. 사무관님.”

“지금 1층 민원실에서 검사님을 기다리는 분이 계시던데요? 내려가 보셔야 하

지 않을까 해서요.”

누군지 짐작되는 사람은 없었다. 내 방으로 찾아온 게 아니라 민원실에서 대

기하고 있다면 검찰청 내부인은 아니라는 건데. 내가 낯가림하는 아기도 아니

고 가서 확인하면 되지 뭐.

“감사해요. 지금 바로 내려가 볼게요.”

“네.”

지이이잉-.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 1층에 도착해 보니 나를 기다리던 사람은 40대 정

도로 보이는 한 남자였다.

옷은 전형적인 회사원 스타일로 깔끔하게 입었는데 얼굴에는 근심이 가득 드

리워져 있었다.

“안녕하세요. 저를 찾으셨다고요? 백동준 검사라고 합니다.”

“아, 안녕하세요. 저는......”

뭐지? 처음 만나서 하는 당연한 자기 소개를 저렇게 하려다가 도로 삼킨다고?

“네. 처음 뵙는 분이신데 어떻게 찾아오셨을까요?”

슥삭, 슥삭-.

남자는 많이 긴장했는지 자기 허벅지에 손바닥까지 비비고서야 대답을 이었다.

“그게 제가 HL 중공업에서 일하는데요, 이번에 저희 대표 이사 배임 사건 맡

으신 담당 검사님 맞으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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