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검사는 재벌을 사냥한다-18화 (18/51)

18화. 역공을 분쇄하다 (2)

내 요청에 유재형 수사관이 동그래진 눈으로 되물었다.

“어떤 사건인데요?”

“주가 조작이요.”

“헙. 설마 검사님이 가담하셨다는 소문 돌고 있는 그거요?”

어쩐지. 검찰청 내 모든 소문의 중심지로 통하는 유재형 수사관이 신문에까지

난 소식을 모르고 있을 리 없지.

쿡-.

우리의 대화를 듣고 있던 송민지 사무관한테 옆구리를 찔리고 나서야 유재형

수사관이 자기가 말실수했다는 걸 깨달으며 내 눈치를 봤다.

“맞아요. 그 사건. 제가 주가 조작 가담한 건 아닌데요, 그런 누명 쓰고 사건

다 뺏겼으니까 그거라도 수사해야죠. 제가 그 종목 가격 조작한 적 없다는

거, 같이 밝혀 봐요.”

“네. 알겠습니다! 저야 검사님이 하시는 수사 돕는 게 일인데요. 이번에는 검

사님 누명도 얽혀 있으시다니 평소보다 두 배로 최선을 다해 볼게요.”

유재형 수사관은 자신의 실수를 만회할 좋은 타이밍이라는 듯 가슴까지 쑥 내

밀어 보이며 당차게 대답했고, 송민지 사무관도 뒤를 이었다.

“저도 할 수 있는 데까지 도와드릴게요.”

“두 분 모두 감사해요.”

사건을 모두 뺏긴 뒤로 침울해져 있던 검사실 분위기에 다시 활기가 더해지면

유재형 수사관이 물었다.

“그럼 뭐부터 할까요?”

“잠시만요. 제가 수사 계획 짜서 두 분이 해 주셨으면 하는 일 말씀드릴게요.”

“네!” “네.”

훗날 ‘전설의 누보 사태’라는 별칭으로 사람들의 입에 오래오래 오르내리는

이번 사건의 대략적인 개요는 이러하다.

누보는 자동차 와이퍼를 생산하는 작은 기업으로, 전혀 주가에 변동이 일어날

만한 재료가 없는데도 일주일 만에 5백 원 하던 주가가 고작 3주 사이에 5천

원으로 폭등했다.

물론 이 정도에서 끝났으면 이 사태가 전설이 될 까닭은 없다. 열 배 상승이

야, 주식 시장에서는 왕왕 있는 일이니까.

이 시점에서 사람들이 몰려들자, 주가 조작 세력은 더욱 박차를 가하여 최근

에는 한 달 사이에 또다시 10배가 넘게 상승하여 장중 한때 5만8천 원을 찍는

기염을 토했다.

이걸 아주 잘 알고 있었던 나는 회귀하자마자 대출 4천만 원을 땡겨서 700원

근처에서 왕창 매입했다가 5만 원이 살짝 넘었을 때 몽땅 팔았다.

그리하여 지금 내 통장에 들어 있는 돈이 30억이 넘으니, 삐뚜름하게 보자면

나를 주가 조작범으로 오인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겠다.

그렇다고 내가 이 누명을 고스란히 뒤집어쓸 생각은 절대로 없으니 조작의 주

범을 찾아내서 반드시 법정에 세우고 말리라.

이번 사건 해결의 핵심은 아이러니하게도 누보라는 회사에 관심을 두지 않는

데에 있다. 여긴 그냥 자동차 와이퍼 만드는 쪼그마한 기업일 뿐이다.

대신, 이 사건에서 집중해야 하는 건 KU 그룹이라는 전혀 다른 회사이다. 일

종의 다단계 업체로, 투자 설명회를 통해 사람들을 끌어모아 누보 주식을 매

입하게 한 곳이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KU 그룹의 회장으로 있는 구주태가 이 사태를 일으킨 장본

인이자 쩐주이며, 지금 내가 잡아야 하는 사람이다.

뭐, 마음 같아서야 지금 당장 KU 그룹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 발부받아서 경찰

병력 대동하고 문 걷어차며 들어가고 싶지만, 아직은 안 된다.

KU 그룹이 누보 사태를 일으켰다는 증거가 아무것도 없는데 내가 청구한다고

법원에서 판사가 영장을 내줄 리가.

그렇기에 지금 나는 KU 그룹이 벌이고 있는 불법적 행위에 대해 최소한의 증

거라도 잡아야 한다.

이게 내가 유재형 수사관의 도움이 필요했던 지점이다. KU 그룹의 투자 설명

회에 잠입할 사람이 필요한데 나는 얼굴이 너무 많이 알려져 있으니까.

드르륵, 드르륵-.

수사 계획을 짠다고 하고서 내가 마우스 휠을 굴리며 집중하고 있던 일은 인

터넷에서 KU 그룹 투자 설명회 정보를 검색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조금 전 그 성과를 얻어냈다.

“수사관님, 사무관님.”

“네! 검사님.” “네.”

“수사 계획 나왔습니다.”

* * *

그로부터 며칠 뒤 저녁, 나는 지금 유재형 수사관과 송민지 사무관이 조금 전

신혼부부인 척 잠입해 녹음해 온 KU 그룹의 투자 설명회를 듣고 있다.

거의 사이비 교단에 가까운 다단계 업체답게 그 시작은 역시 구주태 회장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가에 관한 것이었다.

- 저희 회장님께서는 6.25 전쟁 당시 부모님을 여의시고 전후의 혼란기에 스

스로 학비를 마련하시어 국민학교와 중학교, 고등학교까지 졸업하시고 이후에

는 미국으로 건너가 경영학을 수학하시여 (......)

이건 상당히 나중에 밝혀지는 일이지만, 구주태 회장은 미국에 관광을 갔을지

는 모르겠으나 정식으로 미국 대학 학위를 취득한 적은 없다.

그 뒤로는 정말 사이비 교단스러운 발언이 이어졌다.

- 귀국하신 회장님께서는 저희 KU 그룹을 설립하셨고, 어려운 삶을 통해 얻으

신 혜안을 많은 분께 공유하고자 이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보십시오. 이게 회

장님께서 점지하신 누보라는 회사의 주가입니다. 지금까지 무려 10,000%가 올

랐습니다. (......)

그러고 나자 미리 심어둔 바람잡이들이 환호와 박수를 쳐 댔고, 곧이어 개인

투자 상담 시간이 찾아왔다.

- 저희한테 주민등록증 초본, 등본, 사본, 그리고 통장이랑 공인인증서 비밀

번호만 맡기시면 됩니다. 그러면 지금은 고작 백 배밖에 안 올랐어도 앞으로

천 배, 만 배 오를 종목에 그냥 탑승하시는 거예요. (......)

오케이. 이게 내가 찾으려던 증거였다. KU 그룹은 자신들의 꾐에 넘어간 투자

자들의 공인인증서를 맡음으로써 자신들이 매입한 누보 주식을 팔지 못하게

만들었다.

엄연히 사기죄에 해당하는 행위로, 이게 있으면 KU 그룹에 대한 압수수색 영

장 정도는 쉽게 받아낼 수 있다.

- (......) 의심 같은 거 하지 마시고요, 잘 생각해 보세요. 스티브 잡스가

애플 만든다고 투자자 구하러 다닐 때 만났던 사람들 중에 돈 못 넣어서 지금

후회하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많겠어요? 그렇게 되실 겁니까?

- 그래도 누보는 고작 자동차 와이퍼나 만드는 곳이라면서요.

- 에이, 선생님. 와이퍼로 와이파이가 되는 세상이 오는 걸 상상이나 해 보셨

습니까? 아, 와이파이가 아직 뭔지 잘 모르시면 와이퍼를 통해서 어디서든 인

터넷을 쓸 수 있다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아이고, 저걸 말이 되는 설명이라고 하고 있나?

이어지는 녹음 파일의 청취를 완료한 내가 귀에서 이어폰을 뺐을 때, 유재형

수사관이 나에게 다가왔다.

“검사님, 저 정말 괜찮은 거 맞죠? 어디까지나 수사 목적이었습니다만, 그쪽

에 정말 공인인증서 비밀번호를 넘겼거든요.”

큽-.

그 장면을 바로 옆에서 지켜보았던 송민지 사무관이 옆에서 웃음을 터뜨렸다.

“그렇게까지 하실 필요는 없다고 그때 제가 옆구리 찔러 드렸잖아요. 솔직히

말해 보세요. 수사관님 정말 누보가 앞으로도 계속 오를 거라고 생각하신 거죠?”

“저는 정말 어디까지나 수사에 필요할 것 같아서 그랬다니까요!”

그러던 중, 당황한 유재형 수사관의 마음이 읽혔다.

[혹시 진짜 오를 수도 있잖아.]

이 사람이 귀 얇은 건 알았어도 이 정도일 줄이야.

뭐, 소 뒷걸음 치다가 쥐 밟은 격이긴 했어도 유재형 수사관의 말이 맞다. 실

제로 넘긴 공인인증서가 불법적으로 사용된 증거가 있다면 영장 받기는 더 쉬

워지니까.

“유재형 수사관님, 지금 금융감독원 홈페이지 들어가셔서 그 공인인증서로 체

결된 거래 내역 있는지 확인해 주실래요?”

“자, 잠시만요.”

후다닥 자리로 돌아간 유재형 수사관이 몇 분 뒤 새파래진 얼굴로 내게 돌아

왔다.

“누보 주식 다섯 주 추가 매수 됐는데요?”

“본인이 동의 안 하신 거 맞죠?”

“네. 저는 한 주만 사보겠다고 했는데, 왜 5주나 거래가 됐을까요? 저 정말

괜찮은 거 맞는지 말씀 좀 해 주십시오, 검사님.”

크큭-.

송민지 사무관의 웃음소리가 커지는 동안, 나는 유재형 사무관을 안심시키려

시도해 보았다.

“계속 KU 그룹이 수사관님 공인인증서 들고 주식 거래해 대면 정말 큰일 나

죠. 이거, 딱 봐도 주식 사기고 곧 폭락할 텐데요.”

“그, 그럼 저는 어떻게 해야 됩니까?”

“못 하게 막아야죠.”

그러자 유재형 수사관의 얼굴에 비장함이 가득 서렸다.

“당장 KU 그룹으로 출동할까요?”

“출동하시면 KU 그룹에서 들어오라고 해 주신대요? 일단 공인인증서 재발급받

으셔서 비밀번호는 변경하시고요, 보안카드는 안 넘기셨죠? 출동은 제가 지금

압수수색 영장 칠 테니까 나오면 바로 같이 가시죠.”

“아, 그렇게 하면 비밀번호 바꿀 수도 있나요? 보안카드도 달라고 하는 걸 그

건 아닌 것 같아서 제가 갖고 있습니다. 천만다행이네요.”

그 말에 대답한 건 내가 아니라 송민지 사무관이었다.

“그러길래 제가 공인인증서 맡기는 거 오버라고 했잖아요. 이리 와 봐요. 제

가 공인인증서 비밀번호 바꾸는 거 알려드릴 테니까.”

그러자 불안함에 가득 차 있던 유재형 수사관이 이번에는 도리어 송민지 사무

관을 노려보았다.

“그러면서 제 비밀번호 알아내실 건 아니죠?”

“제가 무슨 해커예요? 수사관님 새 비밀번호 치실 때 뒤돌아 있을 테니까 무

조건 본인만 아는 거로 바꾸시고 앞으로는 절대 아무한테도 말해 주지 마세요.”

“아, 알겠습니다.”

* * *

다음 날, 아침이 되었을 때 참 많은 일이 일어났다. KU 그룹에서 본격적인 차

익 실현에 들어가며 누보 주가가 폭락했다.

그리고 법원에서 내가 청구한 영장을 발부함과 동시에 KU 그룹을 대상으로 한

나의 수사는 내사에서 공개수사로 전환되었다.

그 즉시 금융감독원에서 전화가 걸려왔고, 그 직후에 누보는 거래 정지 종목

이 되었다. 유재형 수사관한테 슬쩍 물어보니 그 5주, 결국 못 팔았다고 한다.

억울함에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오른 유재형 수사관과 나는 지금 KU 그룹 본사

가 있는 울산으로 가는 차 안에 있다.

“저 이 25만 원 돈 돌려받을 수 있나요, 검사님?”

계속 자기 돈 날아간 게 마음에 걸리는 유재형 수사관이었다.

그러길래 거기서 와이퍼로 와이파이 잡는다는 소리 듣고 왜 공인인증서를 넘

기고 있나? 그거 아니어도, 녹음 파일만 갖고도 영장 청구할 근거는 충분했는데.

“법적으로 받을 수는 있죠. KU 그룹의 불법행위 입증되고 그러면 수사관님은

민사로 부당이득 반환 청구하실 수 있어요. 그런데 저희 형사 사건 수사 마무

리되고 그 민사 소송 진행하셔서 강제집행까지 하시려면 못해도 1년은 걸리실

걸요? 그러고도 저쪽에서 배째라 하면 받으시는 데에 몇 년이 걸릴지는 아무

도 모르고요.”

“그아아악! 이 새끼들 무조건 잡겠습니다.”

기어이 분노 게이지를 폭발시킨 유재형 수사관이 액셀을 거세게 밟으며 도로

의 제한 속도 턱밑까지 속도를 높였다.

잠시 후, 우리는 울산지방경찰청에서 지원해 준 병력과 함께 KU 그룹 본사 사

무실로 입성해 자료를 털기 시작했다.

그 자료 털기에 가장 열심인 사람이 유재형 수사관이라는 건 두말 할 나위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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