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 아버지의 동료 (1)
검사장은 성해지청을 무사무탈하게 운영하는 게 제1의 업무이니 그의 입장에
서 보자면 최근의 내 행보가 탐탁지 않아 보일 수는 있겠다.
“양경동 부장님 건 말씀하시는 거라면 죄송합니다.”
“아니, 그놈은 뇌물 받아먹고 기소유예 줬다며. 잘했어. 그런 놈들 때문에 검
찰 전체가 욕을 먹는단 말이야.”
역시 내 기억이 맞았다. 곽한성 검사장은 다소 보수적이면서 동시에 검찰 조
직에 애착이 상당한 사람이다.
“네. 그럼 양경동 부장 건은 공판 잘 마무리될 수 있게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래, 그건 그렇게 하고 내가 오늘 보자고 한 건 말이야. 내가 보아하니 자
네 요즘 방송 출연이 잦더라고? 신문 인터뷰도 꽤 하고 돌아다니고 말이야.”
내가 양경동을 쳐낸 일이야 한 달도 더 됐으니, 오늘 나를 부른 건 이 얘기
때문일 줄 짐작하고 있었다.
곽한성 검사장은 검찰 조직을 사랑하는 사람답게 검사가 언론에 자주 노출되
면 안 된다는 전통적인 생각 역시 고수하고 있을 게 분명했다.
그렇다고 이미 내 손에 들어온 스타 검사로서의 파워를 포기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국민들께 저희가 하는 일을 알릴 기회가 주어져서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
다.”
“보아하니 내가 나가지 말라고 해도 계속 나갈 생각인가 보구먼, 그래?”
“지금까지 그랬지만, 앞으로도 절대 검찰 조직에 누가 되는 발언 하지 않도록
주의하겠습니다.”
한 차례 랠리를 주고받으면서도 내가 전혀 물러서는 기색을 보이지 않자, 곽
한성 검사장이 나를 보는 눈빛이 바뀌었다.
처음 이 방에 들어올 때까지만 해도 그저 자기가 손가락 한 번 튕기면 무서워
서 벌벌 떨 후배 검사 보는 듯했는데, 지금은 이것 보라는 듯 입가에 웃음까
지 짓고 있다.
“검찰 조직에는 누를 안 끼쳤어도 나는 지금 자네가 신문사 기자한테 한 말
때문에 아주 골치가 아파. 오늘 아침에 나온 기사 보고 저 위에서 나한테 직
접 연락이 왔단 말이지.”
어르신이라 그런지 말 참 빙빙 돌려서 하시네. 은근슬쩍 곽한성의 마음에 침
투해 보려고도 했는데 열려 있지 않은 건지 딱히 읽히는 건 또 없고.
[(......)]
처음 이 능력을 얻어서 양경동의 마음을 읽을 때 중간중간 끊기던 음성과 영
상이 전체로 화장된 것 같았달까? 그럼 어쩔 수 있나? 물어봐야지.
“위라고 하시면 울산지검에서 연락이 왔다는 말씀이실까요?”
성해지청은 조직도상 울산지방검찰청의 산하기관이니 나로서는 가장 먼저 그
곳을 짐작할 수밖에 없었지만, 곽한성은 고개를 저었다.
“울산지검에서 연락 왔으면 내가 그거 갖고 출근도 안 한 자네를 찾았겠는가?
더 위야. 아주 많이 위.”
어디 보자, 그렇게 많이 위면 지방검찰청을 감독하는 고등검찰청도 아닐 테
고, 설마?
“대검찰청에서 연락을 받으셨나요?”
“그래 맞아. 그것도 총장님이 직접 전화하셨어. 자네가 한 성해 조선소 파업
문제 때문에 말이야.”
오호라. 일을 키울 생각으로 그 사건을 일부러 인터뷰에서 언급한 건데, 거기
에 검찰의 1인자가 직접 반응해 줬다니 나로서는 오히려 희소식이었다.
“총장님께서 그 사건에 대해서 뭐라고 말씀하셨는지 여쭤도 될까요?”
“뭐라고 하시긴? 우리 성해지청에서 그 사건 얼마나 파악하고 있는지 물으시
길래 사실대로 폭행 고소 들어온 건만 절차 따라서 수사 중이라고 답변 드렸
지. 그랬다가 잔뜩 혼났어.”
“네?”
내 되물음에 곽한성 검사장의 웃음에 씁쓸함이 묻어났다.
“내가 자네 때문에 총장님한테 혼났다고. 어제 자네가 검사 완장 차고 인터뷰
한 기사 나가고 나서 대검찰청으로도 문의가 꽤 많이 왔다더군. 심지어 VIP도
그 사건 궁금해하신다는데, 내가 관할 지청장으로서 뭐 하나 아는 게 없다고
된통 구박당했어.”
방금 곽한성 검사장이 말한 VIP는 검찰 내에서 대통령을 지칭하는 은어이다.
내 바람대로 일이 아주 제대로 커지고 있다.
이게 이전 생에서는 못 다뤄 본 언론의 힘인가 싶어 짜릿하네. 이미지 메이킹
해 가면서 방송 뛴 보람이 있다.
내가 아는 곽한성 검사장은 최소한 부하 검사한테 이런 불평불만이나 늘어놓
자고 부를 사람은 아니다. 분명 여기서 이어지는 조치가 있을 것이다.
“죄송합니다. 제가 그 심려를 씻어드릴 방법이 있겠습니까?”
그때, 곽한성 검사장과 내 눈이 마주치며 서로의 생각이 통했다는 느낌이 왔다.
“있지.”
“그 사건 제가 조사해 와도 되겠습니까?”
이게 바로 내가 노리는 지점이었다. HL 중공업 소속의 성해 조선소에서 일어
난 사건을 캐내서 대표 이사 허민회한테 빅엿을 먹일 찬스.
“아니.”
엥? 이 양반은 잘 나가다가 갑자기 왜 아니래?
“그럼 제가 어떻게 심려를 씻어드릴 수 있을까요?”
“어영부영 조사만 할 생각하지 말고, 지금 우리 지청으로 들어온 성해 조선소
관련 사건 자네한테 싹 재배당할 테니까 수사권 갖고 무슨 일인지 확실히 알
아와.”
검사장이라고 쉬운 말 참 어렵게 하신다. 방금 곽한성이 분리해서 사용한 것
처럼 ‘조사’와 ‘수사’는 법률적으로 그 의미가 다르다.
조사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일로, 합법적인 범위 내에서 특정 사건에 대해 알
아보는 행위 전체를 총칭한다.
반면 수사는 똑같이 사건의 진상을 밝히는 것이지만, 수사권을 가진 국가기관
에서 행하는 행위로, 조사와는 다르게 형사소송법상 규정된 여러 권한을 사용
할 수 있다.
필요한 증인을 강제 소환한다거나, 누군가를 체포한다거나, 핵심 증거가 있는
곳을 압수 수색한다거나.
그러니까 방금 곽한성 검사장은 나한테 자기가 줄 수 있는 최대한의 권한을
부여할 테니 사건에 대해 완벽하게 알아오라고 지시한 것이다.
이게 바로 내가 원했던 것이니 대답은 간단했다.
“네. 철저하게 수사해서 진상 규명해 오겠습니다.”
나와 다시 눈이 마주친 곽한성 검사장이 웃음에서 씁쓸한 기색을 지우며 고개
를 크게 끄덕였다.
“그래. 자네가 싼 똥이니까 진상규명부터 기소까지 확실히 치우리고. 나도 총
장님한테 드릴 말씀은 있어야 되니까 경과보고 수시로 하고, 사무관이든 수사
관이든 인력 충원 필요하면 말하고.”
* * *
지청잘실에서 나와 바로 재배당받은 고소장이 접수된 성해 조선소 사건 파일
을 열어보니 너무 간단해서 오히려 김이 빠질 지경이었다.
고소인은 성해 조선소 소장으로 있는 HL 중공업의 최수연 상무였는데, 파업
중인 노조원한테서 폭행을 당했다고 한다.
피고소인, 그러니까 폭행의 가해자로 지목된 사람은 성해 조선소 노조위원장
인 정규석이라는 사람이었다.
이전에 사건을 맡았던 검사가 고소인 조사까지는 이미 마쳐 두었고, 수사 절
차에 따르면 이제 내가 해야 할 일은 정규석을 소환해 대면 조사를 하는 것이다.
그러고 나서 정말 폭행이 있었다면 정규석을 기소하고 사건은 종결되는데, 파
일을 찬찬히 뜯어보니 석연치 않은 구석이 여럿 보였다.
통상적으로 폭행을 당했다고 이렇게 고소장까지 제출할 때는 증거 자료가 첨
부되기 마련이다. 상처 부위를 찍은 사진이라든가, 상해 진단서라든가.
그런데 최초 제출된 고소장 어디에도 그런 자료는 첨부되어 있지 않았으며,
고소인 대면 조사에서도 상처는 이미 다 나아서 보여줄 게 없다고 진술했다.
폭행 장소로 지목된 곳은 하필이면 CCTV도 없는 곳이었고, 증인이라고는 그
신빙성이 의심스러운 최수연의 부하직원들뿐이었다.
이 정도면 증거가 부족해 정규석을 기소하는 건 당연히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최수연이라는 이 여자가 왜 이 사건을 검찰청으로 들고 왔냐는 질문이 안 생
길 수가 없는데.
이상한 구석은 또 있었다. 최수연은 마치 사건을 질질 끄는 게 자기한테 유리
하다는 듯 고소인 조사 중 바쁘다는 핑계를 대고 중간에 돌아갔다.
또, 이렇게 작은 사건은 보통 피해자든 가해자든 빠른 합의를 원하기 마련인
데, 이조차도 절대 할 생각이 없다고 답변했다.
이걸 일반적인 폭행 사건이랑 똑같이 다루어서는 안 된다는 건 명확한데, 그
렇다면 내막이 뭘까?
일단은 수사 절차에 따라 피고소인 정규석을 만나보기로 한 나는 곧 검찰청
조사실에서 그를 마주하게 되었다.
“안녕하세요. 연락 드렸던 백동준 검사입니다.”
어느 상황에서든 처음 만났으면 너무 당연하게 할 법한 인사였는데, 이상하게
도 정규석의 답은 바로 이어지지 않았다.
한참을 가만히 있길래 서류를 보느라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
는데 눈동자가 심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이름만 듣고는 동명이인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그때 그 동준이가 검사
님이 되셨군요.”
지금 정규석이 느끼는 충격을 나도 똑같이 받고 있었다. 나도 마찬가지로 이
름만 보고는 몰랐는데, 우리는 이전에도 만난 적이 있었다.
“8년 만이네요. 아버지 장례식에서 뵀으니까.”
“네. 그렇습니다. 아직 성해 조선소에서 일하고 계셨네요.”
“크레인 충돌 사고로 성국이 그렇게 보내고 나서 떠날 수가 있었어야죠. 조선
소는 여전히 안전 불감증 천지고, 다쳐서 나가는 사람은 수두룩한데 안전 조
치 개선은 안 돼서 노조까지 만들어서 계속 바꿔 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참, 잘 되질 않네요. 너무 힘도 들고요.”
정규석의 말에 가슴이 먹먹해지고 말았다. 나 말고도 아버지의 유지를 다른
방식으로 이어가고 있는 분들이 계셨다니.
그래도 검사로서 최대한 중립적인 자세를 유지하려 노력하며 조사 중인 사건
에 대해 물었다.
“혹시 이번 폭행 사건도 말씀하신 노조 활동 중에 일어난 사고였나요?”
“그렇게 물으시면 제가 대답을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최
수연 상무를 때린 적이 없습니다.”
나도 그쪽으로 심증이 쏠리긴 하는데. 그렇다고 여기에서 질문을 멈출 수는
없었다.
“그럼 왜 이런 고소장이 제출됐다고 생각하시나요?”
“다른 검사님 아니고, 성국이 아들 백동준 검사님이시니까 제 말 믿어주실 거
라고 생각하고 솔직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최수연 상무의 노조 와해 공작입니
다. 조선소 내에서 노조 활동하면 이런 식으로 법적 조치 들어간다는 걸 떠들
고 다니더라고요.”
“그럼 이게 허위 고소란 말씀이십니까?”
정규석이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 오히려 그 반대죠. 최수연 상무한테 폭행은 저희 직원들이 얼마나 심하
게 당했는데요. 그러고도 회사 상대로 법적 분쟁 벌여봤자 못 이기는 거 알아
서 참고 있었는데, 이게 반대로 들어올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아까도 말씀
드렸지만, 정말 너무 힘이 듭니다.”
휴우-.
정규석의 말처럼 백성국의 아들로서 감정적으로 동조되는 건 어쩔 수 없었지
만, 검사로서는 상당히 힘든 사건이다.
증거는 없고, 고소인과 피고소인의 진술이 완전히 엇갈렸다. 내 머릿속에 박
혀 있는 15년의 경력을 통해서도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답은 찾을 수
없었다.
* * *
그런데 그때, 처음 내 얼굴을 봤을 때부터 활짝 열려 있었던 정규석의 마음을
통해 영상이 전해져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