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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 검사는 재벌을 사냥한다-7화 (7/51)

7화. 경제학도가 사법고시를 본 이유 (2)

참나, 내가 우승식한테 법 모른다고 면박을 준 것도 아니고 저건 웬 자격지심

인지 모를 일이다.

방금 우승식이 한 말이 꼭 틀리지는 않았다. 이 정도의 일시적인 업무방해와

경미한 재물손괴에 대해서는 벌금형이 선고되는 게 보통이니까.

법이 이런 식이니 돈 많은 사람은 지금의 우승식처럼 가벼운 죄는 그냥 저질

로도 된다고 믿는 경우가 왕왕 있는 것 같던데, 검사로서는 참 답답하다.

하지만 내가 아직 말해 주지 않은 세 번째 죄목이 덧붙는다면 이야기는 완전

히 달라지고 만다.

“우승식 씨한테 적용될 죄목이 하나 더 있습니다. 이건 돈으로 해결이 안 되

실 거고요, 검사로서 말씀드리는데 징역형 선고받으실 가능성이 상당히 큽니다.”

징역이라는 말에 쫄았던 걸까, 우승식의 눈이 번쩍 뜨였다.

“뭔데?”

“뇌물 공여죄입니다.”

공여란 뭔가를 줬다는 뜻으로, 방금 나는 우승식이 양경동에게 뇌물을 줬던

사건을 언급한 것이다.

“뇌물? 무슨 뇌물?”

“왜 그토록 애타게 양경동 부장님을 찾으셨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아내분 통

해서 부장 검사실에 뇌물을 아주 촉촉하게 뿌려놓으셨더라고요? 그러고도 따

님이 이렇게 잡혀 와 있으니 속이 뒤집어지시는 건 이해됩니다만, 심각한 불

법행위입니다.”

“이게 진짜! 네가 검사면 다야? 아무 증거도 없이 사람 이렇게 몰아세워도 돼?”

똑똑-.

때 맞춰 나와 우승식이 들어와 있는 조사실 문에 노크 소리가 들려오고, 내

업무를 보조하는 송민지 사무관이 들어왔다.

“검사님, 국과수에서 방금 도착한 팩스입니다. 아까 이거 도착하면 바로 갖다

달라고 하셔서 실례 무릅쓰고 들렀습니다.”

“고마워요.”

송민지 사무관은 여전히 우승식의 눈치를 보는 듯 재빨리 서류만 주고 돌아갔다.

쓰윽-.

나는 양경동의 부장 검사실에서 나온 천만 원짜리 수표 다섯 장에 찍힌 지문

감식 결과가 담긴 서류를 우승식에게 내밀어 보였다.

“이게 뭐야?”

“오늘 아침, 양경동 부장님의 서랍에서 다량의 수표가 발견되었습니다. 국과

수 감식 결과 여러 지문이 나왔는데, 양경동 부장님, 우승식 씨, 그리고 우승

식 씨 아내분의 지문이 포함돼 있다는 결과입니다.”

“네놈들이 내 지문을 어떻게 알아?”

이 사람 보게나? 우리나라 사법체계를 너무 무시하는 거 아닌가?

“주민등록증 만드실 때 지문 찍으셨잖습니까? 그 자료 다 데이터베이스화돼서

경찰청에 보관되고 있거든요. 국과수에서 지문 감식 결과 나오는 순간 바로

저장된 지문과 대조해서 자동으로 신원 확인됩니다. ”

내 설명을 들은 우승식의 수갑 찬 손에 힘이 바짝 들어갔다.

“이 까짓거...!”

“그 종이 찢으셔도 소용없습니다. 어차피 사본이거든요. 증뢰죄는 그 액수와

청탁 내용에 따라 형량이 많이 갈립니다만, 현재까지 확인된 최소 금액이 5천

만 원이고 검사에게 무리한 기소유예를 요청하셨으니 벌금형으로 끝나긴 어렵

습니다.”

탁, 하아아-.

종이를 책상에 내려놓고 길게 한숨을 한 번 뽑아낸 우승식은 그 뒤로 한동안

말이 없었다. 당연하게도 생각은 멈출 수가 없었나 보다.

내 귀로 그의 마음이 울부짖는 소리가 줄줄이 들려왔으니까.

[어디서 이런 새끼가 튀어나왔지? 미리 약을 쳐 뒀어야 했는데, 양경동이는

나한테 미리 보고 안 하고 뭐 했던 거야?]

지금 시점 기준으로, 내가 검사 임용되고 첫 발령지인 성해 지청에 온 지 이

제 갓 6개월이 넘었으니 우승식 입장에서는 갑툭튀한 것처럼 보이나 보다.

약을 친다는 건 또 뭐야? 나한테도 뇌물을 뿌렸어야 한다는 생각인가 본데 대

체 얼마를 주려고?

정말 거금이라서 HL 그룹을 통째로 인수하고 허민회를 끝장낼 수 있는 금액이

면 모르겠으나, 우승식이 줄 수 있는 푼돈 나는 관심 없다.

고개를 숙이고 있던 우승식의 눈이 들리며 나를 흘깃 바라보더니, 다른 생각

이 이어졌다.

[이거 내가 와이프 통해서 양경동이한테 수표 준 증거가 너무 확실하잖아? 이

러다가 그동안 내가 그동안 성해 여기저기 뿌린 돈 다 걸리는 거 아니야?]

얼씨구? 그 약, 아주 오래 골고루도 쳐 놨나 본데?

[거기다가 지금 지현이 유죄 여부까지 이 새끼 손에 들어가 있나 본데, 이거

걸렸으면 양경동이는 힘 못 쓰는 게 맞고, 그럼 지금 내가 해야 할 건...?]

그러던 중 나와 눈을 마주친 우승식에게 조곤조곤 물었다.

“뇌물 공여 혐의 자백하실 생각 있으십니까? 형량에 참작은 될 겁니다.”

* * *

그랬더니 우승식이 의외의 반응을 보였다.

“검사님.”

방금까지 이 새끼, 저 새끼 찾더니 갑자기 웬 존칭이람?

“네. 말씀하십시오.”

“저희 뇌물 공여니 하는 그런 딱딱한 이야기 말고 조금 인간적인 말씀을 나눠

보는 게 어떻겠습니까? 아까 민원실에서 말씀 들어보니 검사님도 이곳 성해랑

인연이 깊으시다고요.”

“어렸을 때 저도 여기 살았죠.”

꿀꺽-.

우승식이 이제부터가 정말 하고 싶은 말이라는 듯 침까지 삼키며 허리를 굽혀

얼굴을 나랑 가까이 하기까지 했다.

“그럼 저희 동향 사람인데 서로 잘 한번 해 보면 어떻겠습니까? 검사로 계시

는 동안에도 제가 섭섭하지 않게 챙겨드릴 거고요, 혹시 변호사 개업하시면

제가 이 지역에서 일어나는 사건 다 몰아드리겠습니다. 성해에서는 제 끗발

따라갈 사람 없어요.”

휴우-.

우승식 때문에 내가 성해에 얼마나 아픈 기억을 갖고 있는지 다 들어놓고 여

기서 동향 사람을 찾고 싶나?

내가 왜 힘들게 공부해서 사법고시 패스하고도 이 시골에 다시 내려왔는데?

바로 우승식이 가진 저 끗발을 죽이기 위해서다.

“지금 검사를 매수하시겠다는 겁니까?”

“어휴, 그렇게 딱딱하게 말씀하지 마시라니까요. 서로 좋은 게 좋은 거 아니

겠습니까? 제가 바라는 건 딱 두 가지밖에 없습니다. 그 뇌물 사건이랑 저희

딸이 잘못한 거 그것만 봐 주십시오. 그럼 검사님 언제 성해 내려오시든 제가

완벽하게 모시겠습니다.”

사람은 끼리끼리 논다더니, 양경동은 왜 이 인간한테 돈 받아 처먹었고 이 인

간은 검찰청 와서 왜 양경동부터 찾았는지 너무 잘 알 것 같다. 궁지에 몰리

니까 하는 말이 아주 똑같네.

“지금 여기가 어딘지 잊으셨나 본데, 방금 하신 발언 다 녹음되고 있습니다.

공무원에게 권한을 남용하라고 요청하는 건 그 자체로 범죄가 성립될 수 있으

니 주의하십시오. 봐 드리는 건, 없습니다.”

털썩-.

내 단호한 응답에 우승식은 또 한 번 극적인 태도의 변화를 보여주었다. 수갑

을 차고 있어서 편하지도 않은 거동으로 의자에서 내려가더니 조사실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검사님, 아까 민원실에서 그리고 여기 들어와서도 제가 주제를 모르고 무례

했습니다. 이렇게 사과드립니다. 그리고 죄송하다고 말씀드려야 할 게 하나

더 있습니다.”

“말씀해 보십시오.”

“아버지께서 겪으셨던 일 말씀입니다, 그때 제가 직속 상사로서 어쩔 수 없이

작업에 들어가 달라고 부탁드린 건 맞습니다만, 다 위에서 내려온 지시에요.

저도 정말 그러고 싶어서 한 일이 아닙니다. 사고가 날 줄은 더더욱이 몰랐고

요.”

윽박질러도 안 되고 매수하려고 해도 안 되니, 이제는 항복하는 척해서 내 선

심을 끌어내 보겠다는 전략이네.

솔직히 이건 인정해야겠다. 마음속에 응어리진 사건에 대해 말이라도 사과를

들으니 조금은 그 응어리의 무게가 가벼워진 느낌이다.

그렇다고 내가 저 전략에 말려들어 갈 생각은 추호도 없다. 인생은 GG 쳤다고

끝나는 게임이 아니다.

잘못했으면 그에 상응하는 벌을 받아야지. 그게 내가 믿고 있는 바이고, 검사

로서의 직분이기도 하다.

조사실에서 피의자가 검사 앞에 무릎을 꿇고 있는 모양새가 좋지는 않았기에

나는 우승식을 일으켜 도로 의자에 앉힌 뒤 조사를 이어갔다.

“방금 해 주신 사과는 감사합니다. 그래도 할 일은 해야죠? 잠시 녹화 중단하

고 여쭤보죠.”

내 마음을 사는 데에 성공했다는 생각이었을까? 우승식의 표정이 급격히 밝아

졌다.

“네, 네. 검사님. 저희 둘만 나누는 이야기라면 제가 뭔들 말씀을 못 해 드리

겠습니까?”

“돈이 정말 많으십니까?”

“어휴, 참 제 자랑하는 게 낯간지럽습니다만, 검사님께 풍족하게 나눠드릴 정

도는 있습니다.”

사실 처음 우지현의 마음속에서 우승식의 얼굴을 읽어냈을 때부터 이게 되게

궁금했다. 고작 HL 중공업 사내 하청업체 사장이 돈이 이렇게 많을 수가 있나?

평범한 소시민 내지는 공무원 월급 받는 지금의 나보다는 삶에 여유가 있을지

언정, 자기 딸 잘못 덮겠다고 5천만 원을 한 번에 쓰는 게 가능할까?

게다가 조금 전 우승식의 마음에 침투하여 읽어낸 바로는, 여기저기 뇌물을

아주 꾸준히 뿌렸나 보던데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제가 대학에서 경제학을 공부했거든요. 그때 승식 실업과 동종 업계에서 비

슷한 규모로 운영되는 업체들 매출과 영업이익을 대략 조사해 본 적이 있는데

요, 과연 저한테 나눠주실 정도로 여유가 있으실지 의심스러웠습니다.”

“돈은 제가 알아서 벌어다 드릴 테니 검사님은 걱정하지 마시고 조금 전에 제

가 드린 부탁만 꼭 좀 잘 들어주십시오.”

뭐, 애초에 자기 영업 비밀을 실토하리라고 기대해서 던진 질문은 아니었다.

그저 자존심을 자극하려는 포석일 뿐이었다.

그리고 내 의도가 적중했는지 활짝 열린 우승식의 마음을 통해 영상이 술술

흘러나왔다.

[아주 작은 항구인 성해항을 통해 한 척의 배가 들어온다. 그 배의 화물칸에

서 하역된 한 상자에 초점이 맞춰진다. 세관원은 그 상자를 노려보고도 아무

런 검사 없이 그대로 통관시킨다. 항구 건물 뒤편에서 그 상자를 수령한 사람

은 우승식이었다.]

[그 상자를 자신의 차에 싣고 잽싸게 집으로 달려와 지하실에 내려놓은 우승

식은 잔뜩 긴장한 얼굴이다. 아주 조심스러운 손놀림으로 상자를 열자 맨 위

는 옷가지로 덮여 있다. 그리고 그 아래에는 번쩍거리는 명품 시계가 가득 쌓

여 있었다.]

영상에 이어 우승식의 생각도 들려왔다.

[이 빌어먹을 조사 오늘 안에는 끝나겠지? 내일 2시에도 한 박스 받을 거 있

는데. 조성래한테 따로 보관해 달라고 해야 하나? 그럼 이 새끼 돈 더 내놓으

라고 할 텐데, 빨리 집에나 갔으면 좋겠다.]

우승식, 무늬는 승식 실업 사장이고 실제로 돈은 밀수업자로서 벌고 있었네.

저 시계들은 분명히 짝퉁이고, 조성래라는 사람은 뇌물 먹고 우승식에게 불법

반입된 물건을 넘겨주는 세관 공무원이겠지.

이 정도면 우승식을 감옥에 넣는 것뿐만 아니라, 그가 그토록 단단히 믿고 있

는 돈줄도 콱 잘라낼 방법을 충분히 찾았다.

* * *

탁-.

나는 서류를 덮고 우승식의 소원을 들어주기로 했다. 조사? 빨리 끝내주지.

“말씀 여기까지 나누겠습니다. 바로 구속영장 청구할 거니까 유치장에서 잠시

대기해 주시면 되겠습니다. 발부되는 대로 구치소로 이감되실 겁니다.”

“네? 검사님, 잠시만요. 이건 아니잖습니까? 제가 잘해드린다고 했잖아요.”

자리에서 일어선 나의 바짓가랑이를 잡는 우승식에게 냉정한 눈빛을 쏘아 보

였다.

“제가 우승식 씨한테 잘해달라는 말씀을 단 한 번이라도 드린 적이 있었던가

요? 우승식 씨랑 따님 둘 다 구속되실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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