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검사는 재벌을 사냥한다-6화 (6/51)

6화. 경제학도가 사법고시를 본 이유 (1)

내 물음에 우승식이 고개를 쭉 내밀었다. 저 각진 어깨에서 머리가 불쑥 튀어

나오니까 진짜 자라 같네.

“네가 누군데?”

역시 못 알아보네. 맞은 사람은 죽을 때까지 기억해도 때린 놈은 돌아서면 까

먹는다는 건가? 내가 저 인간한테 너무 큰 기대를 했던 걸지도 모르겠다.

내가 우승식을 처음 본 건 아버지가 돌아가신 직후였다. 나의 아버지는 아직

도 언론에서 산업 재해의 표본으로 종종 언급되는 HL 중공업 크레인 충돌 사

고의 피해자였다.

아주 무거운 물건을 높이 들어 올려 나르는 크레인은 HL 조선의 주력 사업 분

야인 배를 만드는 데에 없어서는 안 되는 장비이다.

아버지는 이곳 성해에 있는 HL 중공업의 조선소에서 일하시다가 변을 당하셨

다. 그렇다고 아버지가 HL 중공업의 직원이었던 건 아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HL 중공업의 사내 하청업체인 승식 실업에 소속돼 있었다.

그리고 회사 이름에서 알 수 있듯, 그 하청업체의 사장이 바로 우승식이었다.

아직도 크레인이 쓰러지면서 같이 넘어뜨린 선박의 대형 부품에 하반신이 통

째로 깔려 죽어가던 아버지의 모습이 잊히지 않는다.

급히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우리나라의 중증 외상 환자의 대부분이 그렇듯 끝

내 살아나지 못하셨다.

그나마 운이 좋았다고 해야 할까? 나는 돌아가시기 전 아버지와 마지막으로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 작업 반경이 겹치는 크레인 두 대를 같이 운용하면 안 된다고, 그렇게 말했

는데 뭐가 급했던 건지 아무도 내 말을 안 들었어. 그래서 나는 작업에 못 들

어가겠다고 했는데, 우승식이 작업 거부하면 무조건 해고라고 윽박지르는 통

에 어쩔 수가 없었지, 뭐냐.

그 말을 통해 나는 너무 분명하게 알 수 있었다. 현장에서 실제 작업자가 안

전 수칙 위반을 지적했는데도, 경영진이 작업 강행을 지시했다는 걸.

그리고 그 뒤에 숨겨진 내막은 한참 나중에야 한 기자가 우리 유가족에게만

해 준 양심선언을 통해 간신히 알 수 있었다.

자신이 탐사 취재를 해 보니, 그때 새로 HL 중공업의 대표이사로 취임한 허민

회 때문이었다고 전해 들었다.

HL 그룹 총수 가문의 둘째 아들인 허민회는 늘 형, 동생과 그룹 전체의 후계

자 자리를 놓고 경쟁하는 입장이었다.

그런 와중에 그룹의 주요 계열사인 HL 중공업의 대표 자리를 맡게 됐으니, 자

신의 실적을 쌓아야 했다.

그러니 배 건조 시간을 단축하여 자신의 실적을 부풀려야 했고, 이 때문에 한

장소에서 크레인 두 대를 동시에 운용하라는 무리한 지시를 내렸던 것이다.

다른 경영진은 무려 회장님의 아들한테서 내려꽂힌 명령이었기에 아무도 토를

달 생각을 못 했고, 그 위험천만한 작업 계획은 그대로 현장에 적용되었다.

그리고 지금 내 앞에 있는 우승식은 그 계획이 잘못됐다고 말하기는커녕 오히

려 내 아버지를 윽박질러서 사지로 몰고 간 장본인이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남겼던 또 다른 말은 8년이 지난 지금까지 내 가슴

의 한 구석을 후벼파고 있다.

- 우리 동준이 이제 좋은 대학 갔는데 취직도 하고 결혼도 하기 전에 내가 짤

릴 수는 없어서, 설마 별일이야 있겠냐 싶어 작업에 들어갔다만, 그것 때문에

아들 잘되는 걸 못 보고 이렇게 가는구나. 미안하다.

그런 뜻으로 하신 말씀은 분명 아니었을 테지만, 내가 아니었다면 아버지가

끝까지 그 위험한 작업을 거부하실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은 영원히

지울 수 없을 것이다.

아버지의 장레를 치르고 나서, 나의 어머니는 도저히 이대로 남편의 죽음을

받아들이실 수는 없었나 보다.

HL 중공업과 승식 실업을 찾아다니며 사고의 책임자를 찾아내려고 하셨지만,

거대 기업 앞에서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경찰서고 검찰청이고 참 많이도 찾아다니셨는데도 제대로 된 수사는 이루어지

지 않았다. 그러다가 결국 형식상 기소를 하긴 했는데 그 결과 역시 참담했다.

허민회와 우승식을 비롯한 사고의 가장 큰 책임이 있는 경영진은 기소 대상에

서 쏙 빠졌고, 현장 감독관과 크레인 사이에서 신호를 조율하던 신호수만 처

벌받았다.

어미니는 너무 억울해서 언론을 통해 이 사건을 온 국민에게 읍소하려고 하였

지만, 상대는 HL 중공업이었고 반응은 싸늘했다.

그 어디에서도 형식적인 재판 결과 외에 사건의 진상을 보도하려 하지 않았으

며, 이건 나에게 허민회의 사정을 전해 줬던 그 탐사 보도 기자 역시 마찬가

지였다.

양심상 유가족에게까지 거짓말을 할 수는 없었으나, 자신의 밥줄을 걸고 거대

기업에 대항할 수는 없다는 뜻을 알려왔다.

그러다 어머니는 생계 때문에 남편을 먼저 보냈다는 죄책감과 아무도 알아주

지 않는 억울함을 이기지 못하고 그만 스스로 생을 마감하셨다.

그때서야 HL 중공업의 대표 비서실장이라는 사람이 나를 찾아와서 돈 봉투를

건네더라. 아버지의 목숨값은 고작 2천만 원이었다.

그마저도 받으려면 보상금이 아니라 유족으로서 HL 중공업 측의 위로금을 수

령했다는 서류에 서명을 해야 했다.

그 2천만 원을 받지 않았다면 지금 내 가슴이 조금이라도 덜 쓰라렸을까? 이

미 받았으니 답은 알 수 없다.

당시 대학에 갓 입학했던 나는 어쨌든 학비를 내고 생계를 유지하려면 돈이

필요했고, 다른 선택지는 없었으니까.

대신, 결심했다. 이 돈으로 살아가며 사법고시를 보겠다고. 변호사든 검사든

돼서 어머니가 못 밝히신 아버지의 참담한 죽음의 진상을 규명하겠다고.

이게 경제학도였던 내가 진로를 완전히 바꿔 법조계에 입문하게 된 계기였다.

이 악물고 공부해서 사법고시 패스는 물론 사법연수원까지 우수한 성적으로

수료했다.

그렇게 검사가 되었을 때 내가 희망했던 첫 근무지는 아무도 오고 싶지 않아

하는 이곳 땅끝 마을의 성해 지청이었다.

일단 아버지가 돌아가신 곳, 그 사고를 일으킨 사람들이 있는 곳에 와야 뭐라

도 할 수 있을 것 같았으니까.

* * *

그리고 지금 그때의 원수 중 한 명 우승식이 제 발로 내 앞에 찾아와 있다.

정말 나를 처음 본다는 눈치인데, 기억을 조금 도와줘 봐야겠다.

“지금으로부터 8년 전이였습니다. 여기서 얼마 떨어지지도 않은 곳이죠. HL

중공업 성해 조선소에서 크레인 두 대가 충돌했던 사고가 있었습니다. 그때

돌아가신 분 중에 백성국이라는 분이 계셨습니다.”

내 말을 듣고 나서야 우승식은 자기 이마에 손가락을 꽂고 고개를 주억거렸다.

“크레인 사고, 백성국이면 그 일 안 한다고 뻐팅기던 크레인 기사?”

“이제 기억나시나 본데, 일을 안 하시겠다고 뻐팅긴 게 아닙니다. 위험이 명

확한 작업 현장에 들어가기 전에 적절한 안전조치를 해 달라고 요구하신 겁니

다. 우승식 씨가 운영하던 회사는 그 요청을 묵살했고, 그 결과 저희 아버지

는 현장에서 참변을 당하셨습니다.”

“아, 기억나네. 그럼 그때 우리 사무실 와서 내 멱살 잡은 아지매랑 같이 왔

던 머리 빡빡 깎은 학생이 너냐? 맞네. 그때 그 얼굴.”

와, 반쯤은 자기가 죽인 것과 다름없는 내 아버지에 이어 어머니까지 저렇게

모욕하다니, 저게 사람이 할 소리인가?

나는 당장 저 주먹을 치켜들어 저 아굴창을 한 대 까재끼고 싶은 마음을 애써

억누르며 차분하게 대답했다.

“이제라도 생각나셨다니 다행입니다. 아직도 사과할 생각은 없으십니까?”

그런데도 우승식은 도리에 나에게 몸을 날리려다가 수사관들에게 제압당하고

나서야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아아, 뭔 소린지 알겠다. 그때 그 일 복수하겠답시고 내 딸을 체포해 왔다는

거지? 너 당장 검사복 벗을 준비해라. 양경동 부장 나오라고 하라니까!”

절레절레-.

양경동한테 뇌물 줬다고 차라리 검찰청 벽에 대자보를 걸어라.

나는 고작 부장검사 빽 하나 믿고 검찰청에서 이 소란을 떠는 우승식에게 공

권력의 무서움을 가르쳐주기로 했다.

8년 전에는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지만, 죽기로 공부해서 검사가

된 지금은 완전히 다르다.

“수사관님들?”

“네. 검사님.”

내가 자기가 아닌 다른 사람들과의 대화를 시작하자 우승식은 무시당했다는

생각 때문인지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우승식의 기세 죽이기 작업을 계속해 들어갔다.

“이분 현행범으로 입건합니다. 죄목은 업무방해 및 재물손괴입니다. 바로 피

의자 조사할 테니까 수갑 채워서 조사실로 연행하세요.”

그 말을 같이 들은 우승식이 부리부리한 눈으로 나를 노려보며 소리를 꽥 질

렀다.

“뭐? 너 내가 누군지 알면서 이러는 거냐? 업무방해는 무슨 업무방해! 재물손

괴는 또 뭐야?”

여기에 감정적으로 말려들기에는 내 머릿속에 고스란히 남아있는 15년 검사

경력이 너무 길다. 나는 조곤조곤 우승식에게 다가가 내 할 일을 계속했다.

“우승식 씨, 죄목은 방금 들으셨고 위력을 보여 저희 검찰청 일을 방해하고

계시니 업무방해죄가 성립되고, 저기 부숴진 화분 본인이 그런 거 맞죠? 재물

손괴죄 적용 근거입니다. 지금부터 하시는 모든 말씀은 법정에서 불리하게 작

용할 수 있고 진술을 거부할 권리를 가지십니다. 원하신다면 변호인 역시 선

임하실 수 있습니다.”

내가 방금 한 미란다 원칙 고지가 일종의 신호탄이 되었고, 수사관들이 재빠

르게 우승식을 제압했다.

철컥, 철컥-.

거친 저항을 하는 범죄자에 대한 메뉴얼에 따라 손목이 뒤로 꺾인 채 수갑이

채워졌고, 그러고도 버둥거리던 우승식은 결국 민원실 바닥에 볼썽사납게 고

꾸라지고 말았다.

우지현을 조사하던 나를 민원실로 호출했던 송민지 사무관이 그 모습을 보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검사님, 저분 지역 유지이시고 양경동 부장검사님이랑도 아는 사이 같으신데

정말 괜찮으시겠어요? 입건은 하시더라도 일단 풀어주시고 부장님께 보고한

후에 수사 들어가시는 건 어떠세요?”

송 사무관은 나랑 같은 검사실에 근무하는 고로, 불똥이 튈까 봐 걱정하는 건

이해된다. 그렇다고 내가 이 자리에서 우승식을 풀어줄 생각은 절대 없다.

내가 아직 성해 조선소 크레인 충돌 사고의 진상을 밝힐 증거를 확보하지는

못했어도, 저 인간 하나 감옥에 못 넣을 건 아니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저분, 양경동 부장이랑 아는 사이라서 아주 오래 감옥에

있게 될 테니까.”

“네?”

* * *

뭐가 뭔지 도통 모르겠다는 표정의 송민지 사무관을 뒤로하고 나는 조금 전과

는 다른 조사실에 들어와 우승식과 마주 앉았다.

“나 네 까짓것한테 조사 안 받아. 너 빠지고, 양경동이 오면 그때 얘기하자고.”

“진술 거부권이야 피의자의 당연한 권리이니 존중하겠습니다만, 수사에 비협

조적인 태도를 보이실 경우 최종적으로는 형량이 늘어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점 말씀드려야겠네요.”

“뭐? 그깟 업무방해랑 재물손괴 벌금 좀 내면 그만이야. 네가 검사라고 법을

너만 아는 줄 알아? 아니면 내가 돈이 없을까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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