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이 여고생은 친구를 팝니다 (2)
메시지로 날아온 주소를 네비게이션에 찍고 도착한 곳은 잘 가꾸어진 정원까
지 달린 단독주택이었다.
그 앞에는 구경꾼들이 몰려들어 있었고, 그들을 해치고 들어가자 내 요청으로
출동한 경찰과 대치하고 있는 우지현의 어머니가 보였다.
양경동의 마음에 침투해서 봤던 그 모습 그대로, 귀걸이부터 구두까지 번쩍거
리는 명품을 떡칠해 놓았다.
“아이고, 검사님 오셨습니까?”
내 등장을 조금 전 통화했던 박병호 경위가 반갑게 맞았다.
“네. 현행범 긴급체포해 달라고 부탁드렸는데, 진입이 어려우신가요?”
나는 분명 박병호 경위에게 물었건만, 대답은 반대편에서 튀어나왔다.
“누가 현행범이란 말씀이십니까!”
그 목청을 따라 고개를 돌려보니 우지현의 어머니와 나이가 엇비슷해 보이는
한 중년 여성이 팔짱을 낀 채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우지현 양 법률 대리 맡으셨다던 변호사님이십니까?”
“맞습니다. 법무법인 엑소더스 최한영 변호사입니다. 사건 담당 검사님이신가
본데, 멀쩡하게 집에서 공부하고 있는 제 의뢰인을 현행범으로 체포하시겠다
뇨? 무슨 근거로요? 당장 경찰분들이랑 같이 돌아가 주십시오.”
“그렇게는 안 되겠는데요? 우지현 양이 현재 저 안에서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
는 증거 여기 있습니다.”
나는 김선미한테서 받아온 핸드폰에 남은 메시지들을 최한영 변호사에게 보여
주었고, 곧 그녀의 얼굴이 굳고 말았다.
심지어 그 와중에도 우지현은 김선미에게 메시지를 보내고 말았다.
- 야! 지금 우리 집 앞에 와 있는 저 떨거지들 뭐야? 빨리 안 치워? 진짜 사
진 다 뿌려지고 나서야 말 들을래?
사진 몇 장 찍었다고 그걸로 한 사람 인생을 자기 마음대로 갖고 놀 수 있다
고 믿는 저 썩음썩음한 마음가짐은 대체 어떻게 치료해야 하나?
최한영 변호사는 급히 고개를 돌려 우지현의 어머니와 귓속말을 전했다. 내용
이 나한테까지 들린 건 아니었어도, 뻔하지 뭐.
여기서 더 저항하면 경찰이 집안으로 강제 진입을 시도할 수도 있고, 그걸 물
리력으로 막았다가는 공무집행방해죄가 성립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일 테다.
내 짐작이 맞았다는 걸 보여주듯 귓속말을 들은 우지현의 어머니가 나를 극대
노한 표정으로 노려보았다.
그러는 사이 나는 현행범 긴급체포의 증거를 경찰들에게도 공유했고, 박병호
경위가 한결 자신감에 찬 모습으로 한 걸음 나섰다.
“검사님께서 현행범 증거 확인해 주셨네요. 마지막으로 경고 드립니다. 우지
현 양 신병 저희한테 자발적으로 인계해 주시겠습니까, 아니면 강제연행 절차
들어갈까요?”
그러자 우지현의 어머니가 빽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내 딸 보내도 내가 보내! 누구 마음대로 내 집에 들어와? 천한 것들이.”
“네. 알겠습니다. 신속히 인계 바랍니다.”
우지현의 어머니는 우리를 찢어 죽이기라도 할 기세로 한 번 쓰윽 둘러보더니
그대로 집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안에서는 뺨 때리는 소리에 이어 모녀가 같이 질러
대는 괴성이 들려왔다.
어휴, 매를 들려면 훨씬 일찍 들었어야지 사태가 이 지경이 될 때까지 방치해
뒀다가 이제와서 저게 무슨 소용 없는 짓이람?
* * *
곧 자기 어머니의 손에 개처럼 끌려 나온 우지현은 그날 저녁, 검찰청 조사실
에서 자기 엄마한테 맞아 퉁퉁 부은 얼굴로 수갑까지 찬 채 나와 마주하게 되
었다.
아직도 믿는 구석이 있는 건지, 그녀가 딱 자기 엄마가 그랬던 것처럼 나를
정면으로 노려보며 물었다.
“변호사님은요? 검사님이랑 잘 얘기해 보시겠다고 하고 가셨잖아요.”
맞다. 이 조사실에 오기 직전까지 나는 최한영 변호사랑 대화하고 있었으니
까. 그래서 왜 이 자리에 나타나지 않는지도 잘 알고 있다.
“사임하셨어.”
“네? 사임이면, 관두셨다고요? 왜요?”
“변호사로서 할 수 있는 일이 없나 보던데?”
절그럭-.
우지현은 분하다는 듯 손목을 거세게 들었다가 놓으며 책상에 묶여 있는 수갑
까지 흔들어 재꼈다.
“미친, 돈 받았으면 일해야 될 거 아니에요? 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 당장 저
여기서 빼 주고, 김선미한테 처벌불원서도 받을 거라고 하셨고, 혹시나 법정
가게 되면 변호도 해야죠.”
지금 제일 미친년이 누군데, 얘는 욕을 골라도 저런 걸 고르냐?
“일단, 너는 여기서 못 나가. 범죄 증거가 너무 확실하고 추가 피해까지 발생
해서 내가 구속영장 청구할 거거든. 그리고 그 처벌불원서 말인데, 이제 받아
도 소용없게 됐어.”
“그건 또 무슨 말씀이신데요? 변호사님이 그게 제일 중요하다고 했어요. 소용
이 없긴요?”
“네가 피해자한테 처벌불원서 쓰라고 협박했잖니. 그럼 법정에서 강요에 의한
의사 표시로 간주 돼서 효력 인정받기 힘들어.”
부들부들, 잘그락 잘그락-.
이제야 자기가 무슨 짓을 했는지 알았다는 듯 우지현의 수갑 찬 손이 떨리며
얼굴이 공포로 물들어갔다.
“그래도 변호사면 방법이 있어야 할 거 아니에요!”
나름 힘을 줘 보려고 목청을 높이는데, 손뿐만 아니라 목소리까지 저렇게 떨
려서야 지금 얼마나 다급한 심정인지 나한테 아주 잘 알려줄 뿐이다.
“이런 경우에 변호사가 할 수 있는 건 반성하고 있다고 재판부에 어필하는 것
밖에 없는데, 네가 반성문도 절대 안 쓰겠다고 했다며? 너는 잘못한 거 없다
고 하면서. 그럼 뭐, 최고 형량 때려맞는 거 말고는 방법이 없지. 내가 네 번
호사라도 때려쳤겠다.”
“그럼 국선 변호사 불러 줘요. 피의자의 권리인 거 다 알고 있어요.”
얘가 누구 앞에서 법 갖고 아는 척이야?
“범죄 수사 과정에서는 국선 변호인 선임이 안 돼. 내가 너 재판정에 세우고
나면 네가 싫다고 알아서 해도 붙여 줄 테니까 얌전히 기다려.”
결국, 나한테 살코기가 될 정도로 쳐발린 우지현은 마지막 정신승리를 시전했다.
“나 이제부터 묵비권이에요. 이거 피의자의 권리인 거 다 알아. 아무 말도 안
할 거야!”
그러든가 말든가. 어차피 자백 따위 하지 않아도 우지현의 범죄를 입증할 증
거는 이미 충분히 확보되어 있다.
그래도 피의자 신문 조서 없이 기소를 할 수는 없으니, 나는 형식상 우지현에
게 이런저런 질문을 던졌다.
조금 전 자신이 소리친 대로 우지현은 입꾹닫을 시전했지만, 그렇다고 내가
얘의 말을 못 듣는 건 아니었다.
두려움에 활짝 열린 정신으로 대 질문에 대한 대답이 술술 세어 나왔으니까.
“피해자가 주장하는 갈취 금액은 총 200만 원 정도인데, 맞아?”
[아니야! 고작 100만 원 조금 넘는다고.]
금품 갈취 행위는 직접 증거가 없다고 아예 발뺌하려는 것 같더니, 고등학생
한테 100만 원이라. 많이도 뺏었네.
“너는 집도 잘 살면서 왜 친구한테 성매매까지 시켜서 돈을 벌려고 한 거냐?”
[내가 쓰는 돈 100원짜리 하나까지 엄마한테 보고해야 되니까. 그렇다고 야자
빠지면 집에서 길길이 날뛰니까 내가 어디 가서 알바라도 할 수 있나? 엄마
몰래 쓰려면 그렇게라도 벌어야지.]
휴우-.
나쁜 환경 때문에 범죄를 저질렀으니 죄를 감해 줘야 한다는 주장, 별로 안
좋아하긴 하는데 우지현은 그 좋은 집에서 범죄자가 될 양분을 너무 많이 빨
아먹고 자란 건 맞나 보다.
“학교에 다른 친구들도 많았을 텐데 김선미 양을 타겟으로 정한 이유는 따로
있나?”
[제일 찐따 같으니까. 그런 애들은 우리 같은 일진들 밑에서 기어야지. 돈도
갖다 바치고, 없으면 몸으로 때우고.]
그 생각을 하는 우지현의 얼굴을 보는데, 오후에 경찰들을 깔보며 ‘천한 것
들’이라고 지칭하던 얘네 엄마의 얼굴이랑 너무 똑같이 생겼더라.
“이게 범죄가 된다는 행동이라는 건 알고 있었어?”
[뭐? 걸려야 범죄지, 검사라는 사람이 무죄 추정의 원칙도 몰라?]
아이고, 골이야. 얘는 어디서 법을 대충 주워듣기만 했나 본데, 무죄 추정의
원칙은 그런 게 아니다.
수사나 재판 과정에서 유죄를 가정하고 피의자에게 불이익을 가하지 않아야
한다는 뜻이지, 범죄에 해당하는 행동을 저지른 순간 그 사람은 범죄자다.
이런 식으로 나는 말로 묻고 우지현은 생각으로 답하는 신문이 쭉 이어지는
데, 엉뚱한 마음의 소리 하나가 들려왔다.
[아빠 보고 싶다.]
그러더니 우지현을 안고 있는 한 남자의 모습이 영상으로 떠올랐다. 좌우 균
형이 살짝 비틀어진 얼굴에 왼쪽 송곳니 자리에 박힌 금니.
나름 기업인이랍시고 8:2 가르마를 타서 포마드로 딱 고정한 머리와 그 아래
에 자리잡은 거대한 체구.
내가 아는 사람이었다. 부잣집인 데다가 성이 우 씨인 것으로 보아 대략 짐작
은 하고 있었다만, 얘 아빠가 이 사람 맞구나.
HL 중공업의 사내 하청업체 사장, 우승식. 이 인간과 나의 악연은 아주 먼 곳
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우승식은 경제학도였던 내가 사법고시를 준비하게 되었던 ‘그 사건’에 허민회
와 더불어 공동 책임이 있는 자이니까.
내가 다른 사건보다 이번 진화여고 학교폭력 건에 더욱 집중하고 있는 개인적
인 이유가 바로 이 사람 때문이기도 했다.
지이잉-.
그때, 내 바지 주머니에서 핸드폰이 울리며 메시지 하나가 도착했다. 확인해
보니 발신인은 내 검사실에서 같이 일하는 송민지 사무관이었다.
- 검사님, 민원실로 잠깐 내려와 보셔야 할 것 같은데요. 지금 누가 찾아와서
난동을 부리고 있어요. 저희한테 배당된 진화여고 학교폭력 사건 피의자 아버
지라고 합니다. 양경동 부장님 찾는데 퇴근하신 것 같고, 핸드폰도 꺼놓으셨
어요.
우승식, 이 양반은 못 되는 인간아 뭘 또 이렇게 딱 자기 생각하고 있는데 찾
아와 주고 그러나?
때려눕혀야 할 상대가 제 발로 출두했다는데 피할 이유는 없었다. 나는 우지
현에게 질문을 멈추고 사무관에게 답장했다.
- 네. 제가 지금 내려가 보겠습니다.
* * *
민원실에 와 보니 상황은 정말 개판이었다. 수사관들이 우승식을 빙 둘러싼
채로 그의 행동을 저지하고 있었는데, 그 전에 이미 제대로 소란을 떨었나 보다.
접객용으로 비치된 의자는 절반이 여기저기 쓰러져 나뒹굴고 있었고, 심지어
구석의 화분까지 깨져 있었다.
그 난장판 속에 우승식의 걸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니들이 감히 내 딸을 잡아와? 당장 양경동이 나오라고 해. 이 자식 내가 물
고를 낼 테니까!”
그러자 민원실의 모든 직원이 나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눈빛을 던졌다.
“우지현 양 아버지 되십니까?”
“그래. 내가 지현이 아빠다. 넌 뭐야?”
“검사 백동준이라고 합니다.”
여기가 검찰청이고 내가 검사인데도, 우승식은 단단히 믿는 구석이 있다는 듯
나한테 손을 치켜들기까지 했다.
“어디서 마빡에 피도 안 마른 게 검사라고. 양경동이 나오라고 하라니까!”
나이 갖고 무시당하는 거 되게 오랜만이네. 회귀하고 나서 거울 보니까 주름
이 쫙쫙 펴진 게 마음에 들긴 하더라.
“양경동 부장검사님은 퇴근하셨습니다. 그보다 우승식 씨?”
가르쳐주지도 않은 그의 이름을 내가 불렀기 때문이었을까, 그가 흠칫 놀란
표정으로 목소리에 날을 세웠다.
“뭐? 씨? 너 지금 우승식 씨라고 했어?”
“네. 우승식 씨, 저 못 알아보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