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초임이 부장을 잡다 (2)
만약 방금 내가 들은 게 양경동 부장이 속으로 중얼거린 생각이 맞다면 이건
정말 대박 사건 아닌가?
비단 내가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을 수 있게 됐다는 것뿐만 아니라, 이 내용
이 너무 충격적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법적으로 보든 검사의 양심에 비추어 보든 도저히 기소유예
를 내릴 수 없는 사건인데, 이렇게 심한 고집을 피우는 이유가 따로 있었다고?
내 기억에 이 인간이 뇌물 수수 및 기소유예 남발로 법복을 벗게 되는 건 앞
으로 10년도 더 지난 후의 일이다.
그런데 단지 꼬리를 밟힌 게 그때였던 거지, 실제로는 훨씬 오래전부터 이 짓
거리를 해 오고 있었다고 생각하니 너무 소름이었다.
나는 사실을 확인해 보려, 물러나는 대신 양경동 부장의 시선을 정면으로 맞
받아치며 도리어 한 걸음 더 다가가 물었다.
“부장님.”
“뭐?”
“저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대체 왜 이런 파렴치한 범죄자를 자꾸
용서해 주려고 하시는 겁니까? 혹시 우지현 부모님께 따로 챙겨 받으신 거라
도 있으십니까? 예를 들면, 거액의 뇌물이라든지요.”
정곡을 찔렸기 때문일까, 그토록 기세등등하던 양경동 부장이 한 걸음 물러나
며 중간에 말을 더듬기까지 했다.
“누가 그,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어?”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지 않습니까? 방금 말씀드린 성폭력 특례법 외에도
이 사건에 적용될 죄목이 한두 개가 아니고, 형량도 집행유예 없는 징역이 가
능할 정도인데 자꾸 기소유예를 말씀하시니까요.”
“애가 어리잖아!”
물론 이 사건의 용의자인 우지현이 미성년자이긴 하나, 엄연히 형사상 처벌을
받게 되어 있는 만18세였다.
반복되는 양경동 부장의 궤변은 역시 법적으로는 말이 되지 않았다. 이러면
돈 받은 게 맞나 본데?
* * *
그러던 중, 나에게 또 한 가지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눈앞에 마치 비디오처
럼 한 장면이 떠올랐던 것이다.
[나무로 만든 책상 서랍 안에 플러스펜, 골무, 지갑 등 잡다한 물건이 들어가
있다. 군데군데 안개가 낀 것처럼 뿌옇게 처리되어 모든 물건이 파악되는 것
은 아니었어도, 검사의 서랍이라는 건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그 서랍의
깊숙한 오른쪽 구석에는 흰 종이가 있다.]
[그 종이에 적힌 내용까지 또렷하게 보이지는 않지만, 외형상 수표인 게 분명
하다. 그런 종이가 무려 다섯 장이나 겹쳐 있다. 서랍 바깥의 풍경이 비친다.
열었다가 닫은 지 얼마 되지 않았는지 열쇠가 그대로 꽂혀 있다.]
조금 전에 들린 게 양경동 부장의 속으로 중얼거린 말이었고, 이번에 보인 게
지금 그의 머릿속에 떠오른 공간이라면?
뚜걱뚜걱-.
나는 일부러 구두를 바닥에 부딪쳐 소리를 내며 새로 얻은 내 능력이 가리킨
양경동 부장의 업무용 책상으로 걸어갔다.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야! 백동준, 너 지금 뭐 하는 거야? 이건 검사고 아니고를 떠나서, 윗사람
책상을 함부로 들여다 봐? 개념을 밥 말아 먹었어?”
드르륵-.
나는 발악을 무시한 채 방금 내 눈앞에 보인 장면과 똑같은 열쇠가 꽂혀 있는
책상 밑 서랍을 그대로 열었다.
그리고 마침내 내가 들은 것, 본 것이 모두 허깨비가 아니라 정말 양경동 부
장의 속내였다는 게 증명되었다.
그 서랍의 오른쪽 구석 깊은 곳에는 흰색 종이 다섯 장이 켜켜이 쌓여 있었
고, 모두 천만 원짜리 수표였다.
그걸 집으며, 고개를 슬쩍 돌려보니 양경동 부장의 얼굴이 머지않아 화산 폭
발이라도 일으킬 것처럼 심각하게 달궈져 있었다.
나는 수표를 끄집어내어 그의 눈앞에 내보였다.
“이건 긴급 압수하겠습니다.”
“뭐? 너 긴급 압수가 뭔지 몰라?”
아주 잘 안다. 현행 범죄에 연루된 물건을 검사 또는 경찰이 영장 없이 현장
에서 압수할 수 있게 만들어둔 제도이다.
“피의자를 양경동 씨로 하는 뇌물 수수 및 직권 남용 사건 방금 인지했습니
다. 이 수표, 우지현 양 부모님한테서 받으신 거 맞죠? 이거 때문에 지금 저
한테 우지현 양 기소유예 처분하라고 강요하고 계신 거고요.”
“그게 뇌물이라는 즈, 증거 있어? 내 돈일 수도 있잖아.”
이 사람도 나름 부장검사씩이나 달면서 숱하게 범죄자들 수사해 왔을 텐데 막
상 자기가 수사 대상이 되니 이런 약한 모습을 보이네?
‘~일 수도 있잖아’ 같은 식의 자신이 죄를 지었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는 태도는 대개 범죄 경력이 일천한 잡범들한테서나 들을 수 있는 말투다.
조금 고단수가 되면 아예 딱 잡아떼거나, 형사 절차상 규정된 피의자의 권리
를 이용해 묵비권을 행사하겠다고 입에다가 바리케이트를 치지.
“증거물을 압수했으니 이제 수사해 봐야죠.”
“지금 초임 주제에 같은 부서 부장검사를 입건하겠다고? 수사해서 이게 내 돈
인 거로 밝혀지면 너 조직에서 그대로 매장이야, 알아? 무슨 수사를 어떻게
할 건데?”
범죄 혐의가 확실해졌으니 물증을 찾는 수사야 이제부터 잘하면 될 일이긴 한
데, 양경동 부장은 그렇게 말하면서 딱 맞는 수사 방법을 나에게 가르쳐주었다.
내 눈앞에 또 하나의 장면이 떠올랐다.
[몸에 명품을 치렁치렁 걸친 여자가 한 으슥한 카페에서 양경동 부장과 마주
앉아있다. 그녀가 천만 원짜리 수표 세 장을 내민다. 여기에 양경동은 고개를
가로젓는다.]
[“이걸로는 안 되겠습니다.”]
[“이거까지 얹으면요?”]
[여자는 지갑에서 수표 두 장을 더 꺼내 양경동에게 내밀었고, 그제야 그의
고개가 세로로 끄덕여진다.]
[“잘 처리되도록 힘쓰겠습니다.”]
방금 제 발 저린 양경동 부장이 뇌물을 받던 장면을 떠올렸고, 그게 나한테도
그대로 투사된 것이리라.
여기서 주목해야 할 포인트는 현장의 두 사람 다 맨손이었다는 것이다. 그러
니까 지금 이 수표에는 양경동 부장은 물론, 뇌물 제공자의 지문까지 남아있
을 수밖에 없다.
이걸로 죄를 밝힐 방법까지 완벽하게 찾아낸 나는 궁지에 몰려 씩씩거리고 있
는 그에게 최후 통첩을 날렸다.
“용의자한테 수사 방법을 말하라고는 배우지 않았습니다만, 너무 간단한 걸
물으시니 대답은 해 드리겠습니다. 저는 지금 국과수로 가서 이 수표에 찍힌
지문 딸 겁니다. 그럼 최소한 두 사람이 나오겠죠? 양경동 부장님과,”
이 뇌물 수수범이 평소의 습관을 못 버리고 겁도 없이 내 말을 확 자르고 들
어오네?
“내 서랍에서 나온 물건이니까 내 지문 찍혀 있는 건 너무 당연하잖아!”
“제가 하는 말, 끝까지 들으십시오. 이제부터는 당신을 수사할 담당 검사의
이야기입니다. 한 명의 지문이 더 나오겠죠. 우지현 양 어머니일 것으로 예상
됩니다. 국과수 감식 결과 나오기 전에 자백하실 생각 있으십니까? 구형 및
최종 양형에 참작은 될 겁니다.”
부들, 부들-.
도저히 빼도 박도 못할 처지에 놓이자 그토록 기세등등하던 양경동 부장의 어
깨가 떨렸다. 그러더니 수표를 향해 손을 들었다.
핵심 증거를 완력으로 탈취하려는 것인가 하고 수표를 쥔 내 손을 슬쩍 높이
드는데, 그의 손은 따라 올라오지 않았다.
대신, 어깨에 맞춰 달달 떨리는 집게손가락을 들어 수표를 가리켜 보였다.
“백 검사, 아니 동준아. 우리 이야기 좀 하자. 선배 대 후배로. 응?”
참나, 새벽부터 그렇게 막말을 퍼부어 놓고 이제와서 무슨 선후배를 찾고 있어?
“하실 말씀 있으면 듣겠습니다. 입건된 사건의 피의자 이야기를 듣는 것도 검
사가 할 일이니까요.”
“그러지 말고, 내가 잘못했어.”
“수뢰는 범죄 맞습니다.”
휴-.
결국, 양경동은 검찰청 바닥이 내리 꺼져라 한숨을 내쉬더니 뭔가 큰 걸 포기
하는 표정이 되어 들고 있던 손을 내렸다.
“그게 아니라, 내가 5천만 원 받았으면 너한테 2천은 주고 일 처리해 달라고
하는 게 맞았지. 이제라도 반성하고 그 돈 다 너 줄 테니까, 우리 스무스하게
가자. 기소유예 처분 통지서 하나 쓰고 5천 그냥 받는 거야. 어때?”
그러더니 정말 내가 저 말에 넘어올 줄 알았는지 내 어깨까지 툭툭 치는데,
어딜! 나는 양경동의 손을 홱 뿌리치며 대답했다.
“지금 현직 검사한테 범죄 수익을 공유하고 공범이 되라고 회유하시는 겁니
까? 이런 썩은 돈 필요 없습니다.”
“동준아, 제발. 이거 한 건이 아닐 수도 있잖아? 앞으로는 내가 확실하게 네
몫 떼 줄게. 우리 잘해 보자.”
이 인간은 자기 인생 하나 말아먹었으면 됐지 왜 자꾸 나를 끌어들이려고 해?
나는 이 돈 정말 필요 없다.
썩은 냄새가 풀풀 나는 불법 자금이기도 하고, 결정적으로 너무 푼돈이기 때
문이다. 고작 5천만 원? 이 정도는 앞으로 얼마든지 벌 수 있다.
지금 내 머릿속에는 앞으로 15년 동안 일어날 굵직굵직한 사건들이 모두 들어
있다. 그 말은, 향후 떡상할 주식 종목을 꿰고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당장 다음 주에만 해도 한 달 만에 10배가 치솟았다가 푹 꺼지는 종목이 하나
있으니, 대출 땡겨서 여기에 담갔다가만 빼도 들어오는 돈이 수억이다.
어디 이뿐인가? 몇 년 뒤에 가격이 수백에서 수천 배씩 치솟을 코인들도 그
이름과 상승 시기를 대략 알고 있다.
당장은 공무원 월급 받는 처지이지만, 내 자산은 곧 허민회를 비롯한 HL 그룹
을 상대할 정도의 규모가 되어 있을 것이다.
그런데 고작 나한테 5천만 원 줄 테니까 검사의 양심도 팔고 앞으로의 위험
부담까지 감수하라니, 어처구니가 없는 소리다.
나는 매의 눈을 하고 양경동을 쏘아보았다.
“이거 한 건이 아니라고요? 그 말씀은 지금까지 쭉 이렇게 뒷돈 받아오셨다는
뜻으로 들립니다만. 방금 자백해 주신 건 감사하고요, 이번 사건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저지르신 죄 탈탈 털어드리겠습니다.”
그러자 붉으락푸르락하던 그의 얼굴이 내 손에 들린 수표마냥 하얗게 떴다.
“그, 그러지는 말자.”
지금 양경동이 뭘 걱정하는지 너무 뻔히 보인다. 수사에 들어가면 당장 부장
검사 직위는 해제될 거고, 검찰청에서 짤리는 것도 당연한 수순이다.
그럼 법무법인에 들어가든가 변호사 사무소 개업이라도 해야 할 텐데, 이 정
도의 심각한 비위를 저지르고 퇴출당하면 변협에서 변호사 등록을 거부한다.
그야말로 나를 윽박질러서 고작 5천만 원 먹어 보려다가 지금까지 자기가 공
부하고 일해서 쌓아 놓은 법조 커리어를 다 날려버리게 되는 꼴이다.
탁, 탁-.
나는 양경동의 말을 무시한 채 수사에 필요한 우지현의 탄원서를 챙겨서 부장
검사실을 나왔다.
“조사실에서 뵙겠습니다. 이제 그럴 힘도 없으시겠지만, 다시는 제 사건 방해
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 * *
그 뒤로 국과수에 잠깐 들러 방금 긴급 압수한 수표의 지문 감식을 의뢰한 나
는 검사실로 돌아와 또 하나의 수사 계획을 짜나갔다.
걸리적거리던 양경동을 치워 버렸으니, 이제는 전국에서 가장 파렴치한 여고
생 우지현을 잡아넣을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