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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에게 하트를 심어주세요-73화 (73/97)

황제에게 하트를 심어주세요 73

2. 매듭의 끝과 시작

엘리제는 황제가 황제궁의 지붕 위로 올라가는 모습을 보았다. 지금 환영 마법을 쓰려면 시간이 촉박했다. 소문을 만드는 데에는 근처에 시중인 두 명이 필요했다. 그러나 하필이면 지금 시간에 근처에 시중인이 단 한 명도 보이질 않았다.

어차피 그녀인 걸 알아차리지 못할 테니, 급한 대로 마법을 사용할까 싶었다. 하급마법사인 그녀는 매개체를 이용해서 마법을 사용하는 손쉬운 방법을 이용하고 있었다.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만드는 것은 하급인 그녀가 하기 힘들었다. 있는 것에서 무언가를 변형시키고 사실인 것처럼 환영 마법을 덧씌우는 것이 그녀가 잘하는 방법이었다.

요즘 들어 엘리제는 그녀의 방식과 다르게 자꾸 서두르는 경향이 있었다. 예전처럼 느긋하게 계획을 진행하다간 백작가가 쫄딱 망하게 생겼다. 그러니 그전에 어떻게든 일을 성사시켜야 했다.

황제는 참으로 철벽같은 사람이었다. 그러니 라이올라도 그를 공략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녀는 황제궁 구석에 실체가 없는 환영 마법을 걸어두고 재빨리 황궁을 벗어났다. 이전과 달리 서두르느라 위험부담은 커졌지만, 그대로 실행했다.

그다음은 일사천리였다. 소문에 의하면 황제와 공주가 다투었다고 한다. 바로 소식을 전해주던 이가 더 이상 없어서 황궁 안의 사정을 듣는데 조금 지체되었다. 물 들어올 때 노 저으랬다고, 엘리제는 다음날 그 소문을 듣고 바로 황궁으로 가 독대를 청했다.

그리고 소문으로 공주를 불러야지. 그녀와 황제가 키스하는 모습을 봐야 할 테니 말이다. 다른 건 모르겠으나 걱정되는 부분이 하나 있는데 그것이 황제였다.

그의 앞에서 그녀가 마법을 사용할 예정이라 그것을 눈치채면 곤란했다. 마법사가 마법을 사용할 때는 주변 공기가 마나 때문에 요동치기 시작한다. 하지만 하급 마법사는 사용하는 마나가 매우 미약해서 같은 마법사가 아니면 일반인은 알아채지 못한다.

하지만 만에 하나라는 것이 있었다. 평소의 그녀였다면 결코 무리수를 두지 않았을 것이나 그녀는 다급했다. 가세가 기울기 전에 빠르게 일을 해치워야 한다. 시간이 촉박했다. 어차피 지금이 아니면 그녀가 황비가 될 기회는 이제 희박했다. 무리해서라도 이번에 모두를 걸어야 했다.

소문을 냈을 때부터 급하게 진행했으니 이제 되돌리기란 늦어버렸다. 설마 황제가 알아차릴까. 그는 마법사도 아닌데 말이다. 몰아붙이려면 이 방법밖에 없다. 공주도, 황제도 빨리 사이를 떨어뜨려 놔야 한다. 엘리제는 다짐하며 황궁으로 들어갈 채비를 했다.

* * *

“지금 아버지는 몸조차 편치 않으십니다.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있지요.”

“그래서?”

카시카프는 황당한 마음으로 엘리제를 보았다. 당돌하게도 황제에게 친분도 없는, 작위도 없는 영애가 독대를 청했다. 백치 같다 했더니 이건 또 달랐다. 얼굴에 철판을 깐 백치라…. 그는 정말 엘리제를 샬리 옆에 두어도 될지 심히 걱정되기 시작했다. 엘리제를 곁에 두지 말라고 하려다, 그녀의 주변인까지 간섭하는 건 아니다 싶어서 관두었다.

다시 샬리 생각을 하니 그의 가슴 한쪽이 시큰거렸다. 아레인을 마음에 품고 있는 줄 알았더라면, 아니 그랬더라도 그는 그녀를 가졌을 것이다. 그녀는 그에게 화를 내도 될 상황이었다. 마음에 다른 사람을 둔 채로 시집을 오게 생겼고, 그 마음을 두었던 사람은 첩자였으니 그녀의 속이 얼마나 문드러졌을지 상상이 가지 않았다.

그녀가 아레인에게 배신감을 느껴 그와의 결혼을 승낙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러다, 현재 아레인과 다시 사이가 좋아졌고…. 카시카프는 더 이상 생각하길 그만두었다. 그녀가 그을 싫어하지만 않으면 된다고 했었던 처음의 다짐은 온데간데없었다. 꿀이 달콤한 걸 알았는데 어떻게 탐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부디 우리 루스타인 가를 한 번만 굽어살펴 주세요.”

엘리제가 이런 부탁을 할 줄 알았다면 그는 독대를 받지 않았을 것이다. 샬리의 친우로서의 대우는 이제 이것으로 끝이다. 더는 이런 일이 없을 것이다.

“내가 왜 그래야 하지? 스스로의 욕심을 이기지 못하고 벌인 일이 아닌가. 나는 루스타인에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았다. 백작이 자초한 일이지.”

“알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아버지의 잘못된 판단으로 일어난 일이었지요. 하지만 반대로 루스타인이 얼마나 제국에 헌신적인지를 봐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오라버니는 곧 동대륙의 리트리스 왕국에 부마로 가십니다. 제국에는 동대륙과의 단교를 일찍 풀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하는 셈이 아닙니까.”

백치 같더니 지금은 또 아니군그래. 이 여자의 본 모습이 이건가? 그때는 왜 그렇게 눈치 없이 굴었던 거지. 카시카프의 머릿속이 빠르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래서, 원하는 것이 있으니 이런 얘기를 꺼냈겠지. 그걸 말해.”

빙빙 돌려 말하는 것은 그의 취향이 아니었다. 카시카프의 말에 그녀가 눈을 휘며 환하게 웃었다. 그러자 병색이 완연하던 얼굴이 잠시 화사해졌다. 그 모습에 카샤는 도리어 오싹한 기분이 들었다. 지금까지 그를 이 황궁에서 버티게 해왔던 감이 말하고 있었다. 그녀는 뱀과 같은 여인이었다. 그가 가장 싫어하는 종류의 인간이었다.

“저를 황비로 맞아주세요. 폐하.”

어처구니가 없어서 그가 헛웃음을 흘렸다.

“황비? 나는 그대가 샬리의 친우라고 알고 있었는데 말이지.”

“맞습니다. 제가 황비로서 샬리 공주님을 윗사람으로서 잘 보필하겠습니다. 부디 제 가문을 버리지 마세요.”

그녀가 살포시 웃었다.

“리트리스 왕국과 맺어진다는 것은 제국에도 좋은 일이 맞다. 루스타인에 그에 대해 충분한 보상을 해줄 터이니 걱정하지 말도록. 황비는 전혀 다른 문제니 언급하지 않았으면 좋겠군.”

그녀는 그의 대답에 만족했는지 활짝 웃으며 치맛자락을 잡고 감사의 인사를 표했다.

“알겠습니다. 폐하께서 보상을 내려 주신다고 하시니 저는 이만 물러가도록 하겠습니다.”

황비 얘기를 꺼냈던 그녀가 순순히 물러날 자세를 취했다.

뱀 같은 여자가 이대로 물러나는 것이 이상했던 카샤가 그녀를 빤히 보자 엘리제가 슬슬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잠시.”

카샤가 엘리제의 손목을 틀어쥐었다. 그리고 그의 눈앞으로 손을 들어 올렸다.

“아, 아픕니다. 폐하.”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엘리제의 손을 이리저리 둘러보더니 입술을 비틀어 웃었다.

“너였나.”

“무슨 말씀이신지.”

엘리제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아주 희미해서 눈치채지 못할 뻔했군. 미약한 마나가 여기서 새어 나오고 있는데. 네가 또 다른 하급 마법사였군 그래.”

“제가 마법사라니요. 무슨 오해가 있으신 모양….”

“지금 이렇게 마나가 새어 나온다는 건 또 마법을 부리고 있다는 거고. 내 앞에서 사용하고도 들키지 않을 줄 알았나. 또 무슨 짓을 한 거지?”

그가 그녀를 추궁하는데 한참 떨어진 거리에서 웅성대며 소란스러움이 일었다. 그가 고개를 돌리자 그곳에는 쓰러지는 샬리를 받아드는 아레인이 있었다.

“…샬리?”

그녀가 어째서 여기에, 그것보다 왜 쓰러지는 거지.

“네가 한 것인가.”

그의 목소리가 낮은 톤으로 짓씹듯이 흘러나왔다. 카시카프가 엘리제의 손목을 터트릴 듯이 세게 움켜쥐었다.

“아악! 그, 그만….”

엘리제가 고통을 참지 못하고 비명을 질렀다.

“방금 샬리가 쓰러진 이유가 네 짓이냐 물었다.”

“아니, 아니에요. 폐하. 저는 아닙니다. 그보다 어서 공주님께 가보셔야….”

카시카프가 엘리제를 쳐다보며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마지막 퍼즐 한 피스를 드디어 찾았군. 그렇게 백치처럼 군것도 내가 아레인과 샬리를 의심하게 하기 위해서였어. 지금 모습과 그때가 전혀 다르니 그게 맞을 테지. 하급마법. 황제궁에 소문을 내는 마법을 부린 게 너였어. 그리고 지금은, 감히 네가 샬리에게?”

카시카프가 발검하여 엘리제의 목에 칼을 겨누었다.

“칼립타도, 맹세의 서약서 건도 다 너일 테지. 제도에 도착하기 전의 암살자도 너인가? 아니더라도 상관없다. 전부 네가 짊어지고 가게 될 죄목이 될 테니까.”

사실 모든 게 엘리제의 짓이었지만 그가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소리에 그녀는 기가 질렸다. 어떻게든 그녀에게 죄를 씌우겠다는 말이었다. 그녀는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여기서 아니라 해봤자 그의 성질만 돋울 테니 차라리 용서를 빌고 후일을 도모하는 것이 나아 보였다.

“폐하, 용서해 주세요. 잘못했습니다. 무엇이든 제가 잘못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그녀의 말을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감히 황제를 기만하고 모욕하다니, 즉결처형밖에 답이 없겠군. 너희 가문은 네가 바라는 것과 반대로 흘러가게 되겠구나. 네 오라비가 그것을 상쇄해 줄지는 두고 보도록 하지.”

금방이라도 그의 검에 꿰뚫릴 것 같은 살기가 엘리제에게 무더기로 쏟아지고 있었다. 이번에는 정말이었다. 저번과 다르게 카시카프가 진짜로 그녀를 죽이려 하고 있었다. 엘리제는 파리하게 질린 얼굴로 그에게 용서를 빌기 시작했다.

“폐하, 잘못했습니다. 용서해 주세요. 공주님은 금방 깨어나실 겁니다. 제가 잠시 환영 마법을 걸었던 것뿐입니다. 아무 해가 되는 일은 없었습니다. 부디, 제발.”

마지막은 거의 울먹이다시피 하며 횡설수설하는 그녀를 보며 그가 더욱 강하게 살기를 날렸다.

“환영 마법 어떤 거, 어떤 걸 보여줬는데.”

“그, 그것이….”

그녀가 머뭇거리자 그가 그녀의 목에 칼을 거리낌 없이 더 강하게 밀어 넣었다. 예리한 칼날이 그녀의 목을 부드럽게 파고들었다.

“흐흑…. 폐하와 껴안는 장면을….”

그는 생각했다. 그것만으로 샬리가 쓰러질 리가 없다.

“그리고?”

어림도 없다는 듯 그가 매섭게 쏘아보았다.

“그리고…. 폐하와 키스를… 하는….”

엘리제가 말을 하다 무서웠는지 눈을 꾹 감았다. 그런 그녀를 카샤가 무감하게 쳐다보았다.

“키스를 어떻게 했는데.”

“격렬하고 뜨겁게… 사랑하는 연인처럼… 보이도록 했습니다. 살려주세요. 폐하. 다시는 그러지 않겠습니다.”

샬리 앞에서 둘을 그렇게 묘사했다는 소리를 듣자 그는 한순간 얼이 빠졌다. 그리고 곧바로 극렬히 분노했다.

“죽고 싶어서 환장했던 거군. 미치지 않고서야 그럴 수가 없지.”

그가 차가운 어조로 읊조린 후 천천히 그녀의 목에서 칼날을 거두었다. 빼낸 칼날에서 피가 흥건이 묻어 나왔다. 그 모습을 본 엘리제는 흠칫 몸을 떨었으나 동시에 안도했다.

“감사… 감사합니다. 폐하, 용서를…. 절대 이 은혜…를…. 허억…. 쿨럭…. 폐…하? 크흐읍….”

믿을 수 없다는 듯 그녀의 동공이 확장되었다. 엘리제가 그의 앞에서 괴로운 듯 역류하는 피를 울컥 토해내기 시작했다.

그녀가 덜덜 떨리는 손을 들어 그녀의 가슴팍을 더듬으려 했으나 헛손질을 하며 힘없이 떨어트렸다. 곧 엘리제의 몸이 경련을 하며 무너져 내렸다.

그의 칼끝은 어느새 엘리제의 심장에 정확히 절반이 넘게 틀어박혀 있었다. 그녀의 등 뒤로 칼끝이 피를 방울방울 머금은 채 비죽 튀어나와 있었다. 그리고 지금도 칼끝을 따라 피가 새어 나와 뚝뚝 흘러내리고 있었다.

“즉결처형, 정말 오랜만이군.”

그가 그녀의 심장에서 미련 없이 칼을 빼내 피를 털어냈다. 소식을 듣고 왔는지 어느새 테너가 주변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제가 뒤처리를 하겠습니다. 공주님은 궁 안으로 모셨으니 살펴보시지요.”

카시카프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서둘러 황제궁 안으로 들어갔다. 그는 초조한 마음으로 샬리가 있는 곳으로 안내하는 시종을 따라갔다. 그곳은 예전에 샬리가 사절단으로 왔을 때 머물렀던 황제궁에 딸린 작은 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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