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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에게 하트를 심어주세요-69화 (69/97)

황제에게 하트를 심어주세요 69

나는 몇 번이나 그의 등을 쓸어내리며 안심시킨 후 돌려보냈다. 이번 일에 대해서 생각했다. 엘리제가 걱정되면서도 의심이 가기 시작했다. 일련의 사건들이 그녀가 오고 나서 더 심해지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카샤와 아레인은 샹들리에의 일부분만 떨어진 것이 마법 때문이라고 했다.

그것도 초보 마법사도 쉽게 쓸 수 있는 마법이라고 말이다. 그걸 아픈 엘리제가 사용했을까? 내가 아픈 사람을 상대로 너무 못난 생각을 하는 걸까. 그런 거라면 엘리제는 정말 억울할 터였다. 그녀가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지조차 모르는데.

겨우 방 안에서 나와 친구들을 만나 안심시키고 돌아가려고 했을 뿐인데 봉변만 당했을 수도 있는 일이었다. 반면에 그녀가 연기하는 걸까. 하는 생각도 거둘 수가 없었다.

티나는 어쩌지. 그녀는 정말 아무런 연관이 없는데 같이 연금되어 조사를 받고 있을 터였다. 나를 따라와서 티나가 정말 갖은 고생 중이었다. 카샤는 티나도 풀어주지 않았다. 한숨을 내쉬는데 임시로 달리아궁에 와있던 시녀가 밖에서 빠르게 달려왔다. 다른 곳에 있던 나디가 호통쳤다.

“궁에서 뛰어다니지 말라고 몇 번이나!”

“잡혔어요. 범인이요!”

나는 두근대는 심장을 진정시키며 그게 누구냐 물었다.

“베리타요! 숙련 하녀 베리타요!”

베리타? 잘 알고 있는 하녀였다. 그녀가 내게 그럴 이유가 있나?

“어째서 그녀라는 거니?”

“베리타가 마법을 쓸 줄 안대요. 그리고 샹들리에를 떨어뜨린 것도 그녀라고 자백했어요. 지금 조사실에서 취조실로 옮기고 있어요.”

그녀가 왜 그랬을까, 참 충실한 하녀였는데 말이다.

“베리타는, 제가 손수 키운 하녀인데 이해가 안 가는군요. 아…협박을 당했을 수 있습니다.”

나디가 옆에서 그녀의 집안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녀의 가족은 엄마와 남동생은 병에 걸려있고 아버지와 오빠는 도박꾼이었다. 아픈 엄마나 남동생을 상대로 정말 협박이라도 당한 모양이었다. 충분히 타깃이 될 만한 집안 환경을 가지고 있었으니 그럴 수도 있었다.

대체 베리타를 움직인 흉수는 그럼 누구란 말이지. 나는 엘리제가 백작가로 돌아갔다는 보고를 들었다. 사건 현장에 있으면 잠정적 용의자로 지적되어 조사를 받아야 할 의무가 있는 건 맞지만 엘리제의 몸 상태가 너무 좋지 않았다. 아마 백작가가 난리가 날 것 같은데 정말 큰일이었다. 카샤는 이일을 어떻게 처리하려고 할까.

* * *

“페하, 이번에 올라온 결재 서류입니다.”

근래 들어 극심한 두통을 앓고 있었다. 원인은 다름이 아니었다. 늘어난 업무량과 들려오는 말도 안 되는 소문 때문이었다. 황제궁에 이상한 소문이 돌고 있었다. 루스타인 가의 엘리제가 황비로 들어올 거라는 소문이었다.

처음에는 헛소문으로 치부하며 넘겼으나 소문은 갈수록 구체적으로 변했다. 소문을 잡고 암영조를 시켜 소문을 조사케 하였으나 소득이 없었다. 그전에 일어났던 일련의 사건들도 전부 한 사람이 한 것 같다는 추측만 할 뿐이었다. 결국 소문이 달리아궁까지 넘어갔고 샬리가 내게 소문의 진위를 물었다. 당연히 말도 안 되는 소리라 일축했다.

소문의 출처는 모르나 원인은 알았다. 어쩐지 순순히 루스타인의 장남을 동대륙으로 보내는 것을 승낙하나 했더니 충성이 도를 넘어선 극 황제파의 귀족들 말에 넘어가 생긴 일이었다. 그나저나 백작은 정말로 내가 자신의 딸을 황비로 받아들일 거라고 생각한 건가.

그렇게 잠잠해지나 싶었던 소문은 또 다른 소문을 들고 왔다. 전혀 달갑지 않은 소문이었다. 황제궁에서만 도는 건지 샬리는 별다른 말이 없었다. 소문은 아레인과 그녀가 황제 몰래 사랑을 나누는 사이라는 것이었다. 이것도 처음에는 깔끔히 무시했다. 샬리와 아레인을 엮은 것이 불쾌할 뿐이었다.

그렇게 방관하는 사이 소문은 점점 변질돼 번졌다. 그제야 나는 소문이란 것이 우습게 볼 것이 아님을 알아차렸다. 손을 잡고 다정하게 이야기를 나눈다거나 둘이 연무장 구석에서 서로 몸 장난을 하며 논다는 얼토당토않은 소문까지. 진실 여부와 별개로 들을 때마다 불쾌한 것이 사실이었다.

“그래서 또 무슨 소문이 돌았는데?”

나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꾹꾹 누르며 물었다. 루이가 보고하기 시작했다.

“샬리오니 공주님이 아레인 경과 달리아궁의 정원에서 밀회를 가진다는 소문이 돌고 있습니다. 입을 맞추었다는 소문도 있고….”

“그만. 다른 건?”

“나디 시녀장이 달리아 궁에 이상한 소문이 돌고 있다며 수사를 요청했습니다.”

그녀도 소문에 시달리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런데 왜 나한테 알리지 않고. 아무래도 나와 같은 생각 때문이겠지. 괜히 소문 같은 걸로 신경 쓰게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 말이다.

“같이 진행하도록 하지. 그전의 수사상황은 어떤가.”

“진행이 막혔습니다. 누군가 연막작전을 쓰는 것 같은데 알아낼 수가 없었습니다.”

암영조가 못 알아내는 건 거의 없었다. 기가 막힐 노릇이었으나 못 찾았다고 다그칠 필요가 없었다.

“알겠다.”

소문은 며칠 내로 내용이 바뀌더니 소설책 한 권이라도 내려는 모양이었다. 그 뒤로 그들의 밀회현장에서 사랑을 속삭이며 반지를 서로의 손가락에 다정히 끼워주었다는 내용까지 있었다. 도대체 누가 이런 말도 안 되는 소문을 믿는다고.

그런데 소문이란 정말 무서운 것이었다. 계속 듣다 보니 세뇌가 되는 것처럼 점차 의심이 고개를 드는 것이다. 소문을 믿는 것은 아니나, 그녀와 아레인이 너무 가까이 붙어서 호위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거나. 둘이 웃으며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목격할 때라든지. 그런 모습들이 눈에 박히자 그 둘이 점점 다정한 사이로 보이기 시작하는 것이다.

두통은 날이 갈수록 늘어났으며 온전하게 업무를 진행할 수가 없었다. 매일 밤 늦게까지 일에 시달렸다. 극심한 고통이 일 때는 샬리가 알지 못하도록 그녀가 잠이 들 때쯤에 찾아갔다. 그녀를 안으면 두통이 한층 가셨다. 그냥 말 한마디 물어보면 되는 일인데 쉽사리 입이 열리지 않았다.

아레인과 정말 아무 사이가 아니냐고. 그런데 왜 그렇게 서로를 다정하게 바라보는 건지 말이다. 나는 그녀를 믿어야 한다고 되뇌었으나 소문이 정신을 갉아먹으며 지치게 만든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테너는 소문은 신경 쓰지 말고 내게 하루 쉬라고 하였지만 거절했다.

샬리와 관련된 일이면 나 자신을 잃게 되는 일이 다반사였다. 감정 제어도 힘들 때가 많았고 평소라면 하지 않았을 실수도 그녀와 관련된 일이라면 놓칠 때가 많았다. 그럴수록 나 자신을 다잡아야 했는데. 열어둔 집무실 창문 너머에서 쪽지가 파르락 거리며 날아왔다.

집무실 책상에 안착한 쪽지를 무심히 지켜보았다. 이제야 정체를 밝히는군. 범인은 마법사였다. 그것도 하급 마법사. 왜 그걸 생각하지 못했을까.

마법사는 시중인 일을 하지 않을 거라는 편견 때문이었다. 이제야 퍼즐들이 들어맞기 시작했다. 나는 쪽지를 받고 달리아궁으로 갔다. 가자마자 목격한 것은 아레인이 샬리를 꽉 끌어안으며 떨어지는 샹들리에를 피하는 모습이었다.

그런데 아레인의 모습이 내 모습과 겹쳤다. 그녀 또한 마치 나에게 안겨있는 것처럼 그의 품 안에서 편안해 보였다. 내가 드디어 미쳐버렸나. 소문을 너무 많이 접해서 나 스스로가 소문을 생성하기 시작하는 것 같았다.

어서 그녀를 내게 데려오지 않으면 무슨 일을 벌일지 나조차도 알 수 없었다. 손을 내밀어 간절하게 그녀가 오기를 기다렸다. 다행히 아레인의 팔이 풀어지자마자 내게로 왔다. 나는 그녀가 도착하기도 전에 끌어안았다. 그제야 불안감이 사라지고 깊은 안도감이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방안에 마법사가 있었다. 그들을 모조리 조사실로 집어넣고 그녀를 방안으로 데려갔다. 여전히 그녀를 끌어안은 채 결국 참지 못하고 아레인과의 사이를 물었다. 결국 그녀의 답 한마디에 크게 안도하는 내가 있었다.

* * *

집무실로 돌아오자마자 루이가 마법사를 찾았다는 소식을 전했다. 원흉인 마법사를 취조하기 위해 도착했더니 이미 마법사는 죽어있었다. 등허리에 심어놓은 독침을 벽에 등을 강하게 내리쳐 제 몸에 박혀 들게 한 것이다.

입에는 재갈이 물려있었으니, 혀를 깨물지 못하고 독을 삼키지도 못했다. 자살도 정말 별의별 방법으로 한다 싶었다.

허탈한 심정이었다. 분명 하녀에게 지시를 내린 배후가 있을 터였다. 황제궁으로 돌아오자 낯익은 이가 내 앞으로 다가왔다.

그녀는 사건에 휘말려 조사를 받게 된 샬리의 친우 중 한명이었다. 보기에도 병약해 보이는데 무리한 일을 당한 것 같아 마음이 안 좋았으나 그 당시에는 눈에 보이는 것이 없었다. 샬리가 아니라 내게 찾아온 이유를 알 수 없었으나 일단 묻긴 해야 했다.

“알현 신청도 없이 무슨 일인가, 황궁 법도를 모르는 건 아닐테고….”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겨우 서 있는 것이 눈에 보였다.

“저 때문에 샬리 공주님이 안 좋은 일을 당하신 것 같아 마음이 좋지 않아 사죄를 청하려고….”

혹시 이 여자가 연관된 건가?

“무슨 말인지 자세히 설명하라.”

“저를 포함한 라이올라 영애와 공주님에게 안 좋은 소문이 돌고 있어요. 그런데 대부분이 저를 괴롭힌다는 악질적인 내용입니다. 공주님과 라이올라는 저에게 과분할 정도로 잘해주는데 말이죠.”

“그래서?”

별 의미 없는 내용이었으나 본론을 듣기 위해 재촉했다.

“그래서 방안의 하녀가 그런 짓을 한 것이 그런 안 좋은 소문 때문에 공주님의 이미지에 누가 되어 하녀가 공주님을 안 좋게 오해한 것처럼 보입니다. 제 잘못이 마냥 없다고 할 수 없으니….”

“그만. 그대가 대체 무슨 잘못을 했는데? 소문을 낸 것이 자네인가?”

“그건 아니지만 제가 근래에 상심한 일이 있어 저택에서 두문불출하여 소문을 제때 해명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그것이 혹여나 일이 커져서….”

“그런 얘기라면 샬리에게 가서 사과해라.”

엘리제라는 여자가 지능이 좀 떨어지는 것 같은데 루스타인가는 자식교육을 어떻게 했길래, 황궁에서조차 백치 같은 행동을 하는 건 꽤 심각한 것 같은데….샬리 옆에 두어도 괜찮은 건가? 예의는 바른데 눈치도 없고 쓸데없는 말만 하는군.

“이미 샬리 공주님께도 말씀드렸습니다. 그저 폐하께도 사죄를 청하고 싶었을 뿐이니 제가 시간을 빼앗았다면 부디 용서해 주십시오.”

숨도 하나 제대로 못 쉴 것 같은데 말은 정말 많았다. 일단 그녀를 돌려보내야겠다.

“이만 돌아가 보는 게 좋겠군. 여기서 또 쓰러지면 곤란하니 말이야.”

축객령을 내리자 그녀가 환하게 웃으며 감사 인사를 건네었다.

“제 몸 상태까지 신경 써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아레인 경이 샬리 공주님을 보살펴주실 때처럼….”

뒤돌아 궁 안으로 들어가려는데 마지막 말이 거슬렸다.

“무슨 말이지?”

“공주님과 아레인 경은 정말 사이가 좋으시더군요. 곁에서 지켜보는 제가 다 기분이 좋습니다. 아무래도 폐하께서 믿는 기사라서 그런 거겠지요.”

그녀가 웃으며 말을 건네었다. 하지만 그 말은 결코 좋게 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점점 불쾌해지기 시작했다.

“나에게 뭘 말하고 싶은 건지 제대로 말해.”

그녀를 강하게 쏘아보았다. 짓누르는 것처럼 살기를 뿌리자 그녀가 당황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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