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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에게 하트를 심어주세요-51화 (51/97)

황제에게 하트를 심어주세요 51

“내가 했던 말은 못들은 걸로….”

“그게 아니라…. 공주님. 우리는 이미 약혼식 깜짝 선물로 준비하고 있었는데 이러면 깜짝 선물이 아니게 되잖아요. 요즘 다들 얼마나 화려한 선물을 할지 연구 중이었는데 말이에요.”

그 말에 나도 모르게 입이 벌어졌다. 그런 거였어? 그래서 저렇게 실망한 얼굴로 쳐다보는 거야, 다들? 나 좀 감격했는데, 약혼식 선물을 준비하고 있었다고 하니…. 나는 타국인이고 가족들도 없어서 티나처럼 가까운 주변인들 말고는 제대로 된 축하 인사를 받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고마워요, 다들…. 이렇게 축하 선물을 받게 되리라곤 생각 못 하고 있어서 정말 기뻐요.”

짧은 기간이었는데도 그들의 정이 담뿍 느껴졌다. 이 순간만큼은 가슴 속이 행복감으로 가득 차올라 뭉클해졌다.

“어머, 공주님! 울지 마세요.”

아냐, 나 안 우는데. 그냥 눈시울이 좀 붉어졌을 뿐인데, 왜 운다고 그래.

“기뻐서 우시는구나. 이러니깐 우리가 공주님을 울린 것 같긴 한데, 그래도 준비한 게 보람은 있었네요.”

정말 안 울었는데 에이솔이 자꾸 운다고 하니깐 진짜 눈물이 찔끔 나왔다. 에이솔 은근히 짓궂은데, 장난치는 거 좋아하나 봐.

“우리가 멋진 약혼식으로 만들어 드릴게요. 공주님.”

“제가 굉장한 것을 연구 중이니까 아무 걱정 하실 것 없습니다.”

아니, 다들 위로하듯이 말하지 말라고! 괜히 더 울컥하잖아….

“샬리 언니, 저도 축하 선물 해 주고 싶어요. 언니 약혼식 할 때만 발에 묶여 있는 거 풀면 안 돼요? 나도 멋진 거 할 수 있는데….”

응? 보니의 말에 내 눈물이 쏙 들어가 버렸다. 신력을 개방한다니 큰일 날 소리였다. 행복한 결혼식에 크리하엘이 들이닥쳐 저주를 퍼부을 수도 있는 일. 생각만 해도 심장 한편이 술렁대며 내려앉았다.

“보니는 아무것도 안 해도 돼. 그냥 곁에만 있어 줘도 언니는 정말 행복할 거야.”

내 말에 아이의 표정이 크게 실망하는 것이 보였다.

“언니한테 신력으로 축하해 주고 싶은 거야?”

아이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축하하고 싶은데 하지 말라고 하니 당연히 서운할 것이다.

“보니, 신력은 누구 거야? 보니가 원래 가지고 있던 거야?”

“아니요….”

“보니 신력은 빌린 거잖아. 그건 사용하면 대가가 있기 마련이야.”

이렇게 말해서 미안해.

“언니 말이 맞아요. 이건 내 거 아닌데….”

크게 시무룩해진 얼굴을 보니 속이 쓰렸다.

“보니가 언니 선물해 줬으면 하는 일이 있는데.”

“저는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데 어떻게요?”

“보니가 할 수 있는 일이야. 캐리 아저씨 알지? 달리아궁 파티시에 아저씨.”

“네. 디저트 만들어 주는 아저씨요.”

“캐리 아저씨가 언니 약혼식 케이크를 만들어줄 거야. 보니가 같이 만들어 주면 어때? 그럼 정말 기쁠 것 같은데.”

“제가요? 캐리 아저씨 도와서요?”

보니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어왔다.

“그래. 약혼식 케이크 아저씨 도와서 같이 만들어줘. 보니가 같이 만들어 줄 거라고 생각하니까 정말 기대된다.”

아이는 다시 기대감이 차오른 얼굴로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고, 예뻐. 나는 보니를 꼭 끌어안았다. 오늘은 이들로 인해 정말 마음이 한없이 충만해지는 날이었다.

* * *

“미안해요. 아레인.”

오늘따라 아레인의 발을 엄청 밟아버렸다. 여전히 그는 내 발을 단 한 번도 밟지 않는 신기를 보였다.

“괜찮습니다. 신경 쓰지 마십시오. 아프지도 않으니까요.”

다 선의의 거짓말이겠지만 오늘은 밟은 곳을 또 밟고 또 밟고…. 정말 미안해 죽을 지경이었다.

“제가 진도를 너무 빨리 나갔나요. 좀 쉬었다 할까요?”

남작 부인이 부채를 '탁' 치자 음악이 멈추었다. 오늘 배운 춤은 빠른 템포라 자꾸 스텝이 꼬였다. 머릿속으로 스텝을 다시 순서대로 떠올렸다.

잠시 쉬는 시간을 가지고 다시 자세를 잡았다. 도입부까지는 무난했다. 중반부에 들어서자 나는 다시 긴장하기 시작했다. 여기서 아까 아레인 발을 엄청 밟았는데. 스텝을 신경 쓰며 춤추는데 갑자기 누군가 뒤에서 내 허리를 확 끌어당겼다.

어어…?

균형이 무너지며 내 허리를 잡아당긴 사람에게 뒤로 푹 안긴 모양새가 되었다. 익숙한 머스크향이 내 몸을 감싸기 시작했다. 그에 내 긴장도 천천히 풀어졌다.

“샬리, 지금 내가 뭘 본 거지?”

그가 내 귓가에 나지막이 속삭였다. 한창 일 중일 텐데 바쁜 사람이 여긴 웬일이지? 나는 뒤돌아 그를 마주했다.

“폐하, 여긴 어쩐 일이세요?”

묻고 나서 그의 얼굴을 살피는데 표정이 서늘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카샤의 기분이 안 좋아 보였다.

“다 나가.”

그의 시선이 나를 향한 채로 모두에게 축객령을 내렸다. 나는 사람들이 빠져나간 뒤 그에게 물었다.

“카샤, 안 좋은 일이라도 있었어요?”

“지나가는 길이라 들렀는데, 그대가 아레인과 춤을 추고 있더군.”

그것 때문에 기분이 안 좋아졌다고?

“춤 배우는 거 허락하셨잖아요. 상대역도 괜찮다고….”

“그건 춤 선생일 경우를 말한 거다. 남자가 아니라, 실은 여자도 싫어.”

“아레인 발을 엄청 밟았어요. 분명 아프고 힘들었을 거예요. 내 춤 연습을 위한 희생양이나 다름없었어요.”

“그게 뭐든 싫다니까. 내 발을 실컷 밟아도 좋아, 이제부터는 내가 상대역이 되어줄 테니….”

바쁜 사람이 지금 나랑 춤 연습하겠다고? 테너가 뒷목을 잡을지도 모른다.

“카샤가 얼마나 바쁜지 모르는 사람이 없는데, 매번 나를 도와줄 수는 없잖아요.”

그가 나를 예고 없이 꽉 끌어안았다.

‘흡’

“아레인은 그대의 호위기사로서 있어야 해.”

숨이 막혔지만 일단 그가 잠잠해지길 기다렸다. 카샤가 안고 있던 팔에서 천천히 힘을 풀었다.

“그대가 다정하게 웃어주면 어떻게 될 거 같나. 그걸 아레인이 본다고 생각해 봐.”

“카샤 말고는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콩깍지가 씐 카샤의 말을 정정해 주었지만, 오히려 그의 눈썹만 올라갔다.

“나 말고 없다고? 정말 그렇게 생각하고 있나.”

황제가 이렇게 두 눈을 부릅뜨고 있으니 당연히 없지 않을까 싶은데.

“카샤 말고 내가 누구한테 그렇게 웃어준다고 그래요.”

“전부다. 모두에게 그렇게 친절하고 다정하게 웃어주지 않나. 똑같이.”

내가 그랬다고? 다른 사람과 그를 똑같이 대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나 보네. 나는 그의 팔을 잡아당겼다.

“왜?”

“허리 좀 숙여 주세요.”

그가 의문 섞인 표정으로 허리를 숙였다. 숙여도 키 차이가 나서 발꿈치를 들 수밖에 없었다. 그의 매끈한 볼에 내가 쪽 하고 입을 맞췄다.

“이래도 카샤가 다른 사람들이랑 똑같아요?”

몇 초간 일시 정지해 있던 그의 눈동자에 초점이 돌아왔다. 그리고 입가에 미소가 감돌기 시작했다.

“잘 모르겠는데, 여기는?”

그가 반대쪽 뺨을 내밀었다. 웃음이 새어 나왔지만, 그가 바라는 대로 반대쪽에도 입을 맞추기 위해 다시 발꿈치를 들어 올렸다. 입 맞추기 직전 그가 고개를 홱 돌렸다.

쪽-

내 입술이 닿은 곳은 그의 입술이었다.

“왜 그렇게 놀라.”

개구쟁이처럼 씩 웃는데 심장이 덜컹 내려앉았다. 분명 발개졌을 내 얼굴을 숨기기 위해 고개가 점차 아래로 떨어졌다. 카샤에게 완전히 마음을 열고 난 뒤부턴 괜히 행동 하나하나가 다 쑥스러웠다.

“그럼, 이걸 또 누구한테 해 준다구요.”

“그러게, 절대 안 될 말이지. 그러니 춤도 나랑만 춰. 하는 행동마다 예뻐 죽겠는데, 다른 놈들이 홀리지 않을 리가 없다. 하아…. 이래서 제도 외곽엔 어떻게 보내지. 테너한테 말해서 취소시켜야 하나.”

그러니까 그건 당신 말고는 안 한다니깐…. 얼마 전까지만 해도 상대역이 있어도 된다고 했으면서.

“그럼 상대역 없이 춤 연습을 할게요. 대신 카샤가 업무가 끝나고 시간이 날 때마다 내 연습 상대가 되어 주세요. 저도 카샤랑 추고 싶어요.”

구두 없이 출 거니깐 발을 밟아도 덜 아프지 않을까…. 아니, 맨발이라서 더 아프려나?

“좋아, 지금까지 배웠던 것들 다 나랑 추지.”

연주자들도 다 내보내서 음악도 없는데 추자고.

“아직 서툴러서 카샤 발을 많이 밟을 거예요.”

나는 미리 경고의 말을 날렸다. 그러나 그는 크게 개의치 않고 한 손으로 내 허리를 부드럽게 감싸 안았다.

“황제 발을 밟으면 벌을 받아야지.”

뭐요? 아까랑 말이 다르잖아. 실컷 밟아도 된다며.

“조금 전에는….”

그가 시작한다는 말도 없이 움직였다. 나는 다급하게 그를 따라가기 바빴다. 다행히 첫 춤은 느린 왈츠였다.

나는 무리 없이 그를 따라 추기 시작했다. 잘 추고 있다고 생각하며 여유를 가진 내가 고개를 올려 보았는데, 그는 못마땅한 얼굴이었다.

내가 못 춰서 그러나? 따라가기에만 급급해서? 남작 부인은 잘한다고 했는데…. 첫 춤을 무사히 카샤의 발을 한 번도 밟지 않고 끝냈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만족하지 못한 얼굴이었다.

“아레인의 발을 많이 밟았다는 춤이 뭐였지?”

“콩트르당스예요. 그런데 이건 오늘 처음 배워서….”

말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그가 스텝을 밟았다.

“카샤, 이건 정말로….”

게다가 배울 때보다 훨씬 빨랐다. 겨우겨우 도입부를 넘겼는데 중반부에 들어가자마자 그의 발을 찍어 버리고 말았다.

“벌 받아야겠는데.”

아니, 이 사람이?! 그는 그대로 멈추지도 않고 여전히 춤을 속행했다. 내가 부루퉁해져서 입술을 내미는데 그가 쪽 하고 입을 짧게 맞추고 떨어져 나갔다.

“발을 밟을 때마다 주는 벌이다.”

아…. 이건 벌이 아니라 상 같은데. 그렇다고 내가 일부러 발을 밟을 건 아니지만….

쪽-

정말 내 뜻이 아니었다. 이 춤은 오늘 처음 배워서 익숙지가 않아서 그런….

쪽-

이번에는 연속으로 두 번이나 발을 밟고 낙담하는데 그가 드디어 춤을 멈추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데 그가 허리를 숙이며 불쑥 얼굴을 내밀었다.

“두 번 밟았어.”

“오늘 처음 배운 거라고 했… 엄마야.”

그가 내 엉덩이 밑으로 손을 넣어 불쑥 안아 올리자 몸의 균형이 순식간에 무너졌다.

“그렇다고 봐주면 공평하지 않지. 두 번이나 밟았으니 벌이 무거워지는 건 당연하고.”

카샤가 유혹적인 웃음을 흩뿌리며 내 얼굴 가까이 다가왔다. 그가 양쪽 눈꺼풀 위로 두 번 키스하고 코끝을 지나 입술로 내려왔다. 한 번 두 번 가볍게 입술을 부딪치더니,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

흐읏….

입술이 벌어진 틈을 타고 그의 혀가 들어와 느리게 천장을 쓸어내리더니 볼 안쪽을 부드럽게 휘젓기 시작했다.

혀가 얽히자 몽롱해지며 생각이 저 멀리 날아가 온몸에 힘이 쭉 빠졌다. 안긴 상태에서 전신이 그의 체향에 푹 잠긴 듯한 기분이었다.

그는 한참을 그렇게 내 입 안을 문지르고, 입술을 빨아 당겼다. 호흡 곤란이 일 정도로 격렬해질 때도 있었다. 진득하게 얽혀 있던 입술을 느릿하게 떼어 내며 그가 제 아랫입술에 묻은 타액을 혀로 핥았다. 그 모습이 너무 아찔해서 정신이 혼미해졌다.

“하필이면 장소가 댄스홀이라니, 이대로 달리아궁으로 갈까?”

아쉬워하는 그의 모습이 천천히 눈에 들어왔다. 정신을 차린 내가 안도의 숨을 쉬며 그의 어깨에 이마를 기대었다. 여기가 댄스홀이라서 정말 천만다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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