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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에게 하트를 심어주세요-49화 (49/97)

황제에게 하트를 심어주세요 49

티나가 현재 제도 내 상황을 알려 주었다. 리노아 공주가 엘더베리의 효능을 황제에게 알리고 그 사용을 제안했다는 소문이 돈다는 것이다.

“폐하께서 퍼뜨리셨을까?”

“시녀장님이 그러시는데 엘더베리를 배급해 주면서 자연스럽게 소문이 돈 것 같아요.”

나디는 시녀장으로 직위가 확정되었다. 그래서 테너에게 인수ㆍ인계받느라 요즘은 얼굴 보기가 힘들었다. 다행인 점은 테너의 일이 조금이라도 줄어들었다는 점이었다.

“티나, 나 원래는 단 거 싫어했었어?”

나는 문득 아레인이 했던 말이 떠올라 티나에게 물었다.

“음, 잘 안 드시긴 했죠. 영애 대부분이 살찐다고 디저트를 꺼리니까 저는 그런가 보다 했는데…. 왜 그런 생각을 하셨어요? 지금도 이렇게 좋아하시잖아요.”

“그러게. 이렇게 먹어도 살이 안 찌는데, 그전엔 왜 참았을까.”

“공주님이 살이 안 찌는 체질이라고 제가 말씀드려도 듣지도 않으셨는걸요. 요즘엔 검술도 배우시잖아요. 라인이 예뻐져서 옷맵시도 훨씬 잘 나와서 제가 얼마나 좋은지 아세요?”

티나의 말대로 요즘엔 근육이 붙어서 몸 선이 훨씬 매끈하고 유려하게 떨어져서 보기 좋았다.

“아레인이 그러는데 내가 단 걸 별로 안 좋아했었대.”

“음…. 그러셨을 수도 있겠네요. 맛있는 디저트를 드셔도 반응이 크게 없으셨거든요.”

“티나는 그런 내 모습에 의문이 들지 않았어? 달라진 점이라든지….”

“사실 그렇게 따지면 다른 것도 정말 많은걸요. 하지만 공주님은 기억을 잃으셨고 행동이 달라질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달라진 공주님도 저는 정말 좋아요.”

티나도 지금의 내가 좋다고 말해 주어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레인도 내 행동에 의문을 느꼈음에도 지금의 내가 보기 좋다고 말해 주었다. 주변인들이 그렇게 말해 주니 더는 그것에 구애받지 않아도 되려나. 그들이 내가 기억상실이라는 핸디캡 때문에 달라진 모습을 넘어가 주는 거라 생각은 했지만, 그 차이를 꺼리거나 싫어할까 봐 신경 쓰이기도 했다.

그래서 나 자신의 모습이 강하게 나올 땐 나도 모르게 주변의 눈치를 살피게 될 때가 많았다. 그것도 은근히 스트레스였는데 말이다. 나는 이제 한결 편해진 마음으로 티나와 수다를 떨었다.

* * *

카샤를 겨우 설득해 약혼식을 대비한 춤 선생을 구할 수 있었다.

“샬리오니 공주님을 가르치게 되어 영광입니다.”

내 춤을 가르치게 된 파르나 남작 부인은 시원시원하고 유쾌한 사람이었다.

“제 춤 실력이 보잘것없으니 선생님께 미리 선처를 부탁드려요.”

리노아에서 춤을 잠깐 배울 때 못한다는 소리를 듣지는 않았지만, 나는 아예 생초보였다. 공주면서 왜 이렇게 못 추냐는 질타를 받을까 싶어 그 사실을 미리 알렸다.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가르쳤던 분 중에 플로어에 못 나가는 분들은 아무도 없었답니다.”

곧 그녀가 내 자세를 몇 번 잡아 주며 기본적인 동작을 가르쳤다. 그녀의 고개가 갸우뚱했다.

“겸손이 지나치셨군요. 기본자세가 무너지지도 않고 금방 잡으시는데요. 제가 가르쳤던 영애 중에 공주님만큼 몸의 균형이 뛰어난 이를 본 적은 손에 꼽을 정도예요.”

나는 지금 굉장히 당황스러웠다. 그녀의 말대로 내 몸이 아주 자유자재로 자세를 잘 잡아서다. 갑자기 내 몸이 왜 이렇게 잘나졌지? 그에 대한 답은 아레인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검술 때문에 공주님의 몸의 근육이 제대로 잡히셔서 그렇습니다. 아마 몸을 움직이기가 훨씬 편하실 겁니다.”

그의 말을 들은 파르나 남작 부인이 수긍했다.

“그렇다면 이해가 가는군요. 약혼식이 얼마 남지 않아 걱정했는데 이 정도라면 충분하겠어요. 문제없습니다.”

검술 수업 덕분에 춤도 잘 출 수 있게 되다니, 헨리한테 고마워해야 하나.

“마침 춤 연습 상대가 여기 있으니 제가 가르치기 훨씬 수월하겠군요.”

남작 부인이 아레인을 빤히 쳐다보았다. 그가 크게 당황하기 시작했다.

“부인, 저 말씀입니까?”

“그러면 여기 연습 상대가 누가 있겠어요? 상대 역할을 해 주셔야겠는데요? 제가 춤을 추면서 가르치기가 힘들답니다.”

그녀가 호호 웃으며 아레인을 채근했다. 그는 얼떨떨한 모습으로 내 앞에 섰다. 그 모습에 웃음이 삐져나왔지만, 꾹 참았다.

“자, 그러면 시작해봅시다.”

아레인이 한 손을 맞잡고 다른 손을 내 허리에 둘렀다.

“음, 샬리. 저도 잘 추는 편은 아니라….”

그가 뒤늦게 춤 실력을 고백하며 작게 속삭였다.

“그럼 우리 이참에 같이 배우면 되겠네요. 서로 발을 밟아도 탓하지 않기로 해요.”

“샬리의 발을 밟다니, 차라리 꼴사납게 넘어지겠습니다.”

그의 어깨를 파르나 남작 부인이 부채로 탁하고 내려쳤다.

“힘이 너무 들어갔어요. 아레인 경.”

그 말에 아레인의 경직된 어깨가 한차례 내려갔다. 우리는 춤을 추다가 잠깐씩 멈추었다. 내가 그의 발을 밟거나, 아레인이 내 발을 밟을 타이밍에 멈칫하며 멈추었기 때문이다.

이러면 나 혼자만 미안해졌다. 정말로 그는 내 발을 한 번도 밟지 않았다. 밟기 전에 빠른 속도로 몸을 물리거나 동작을 멈추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검을 휘두르며 몸을 쓰는 사람들이었다. 배우는 속도가 빠르다며 파르나 남작 부인이 아주 만족해했다.

* * *

며칠 전 라이올라가 달리아궁에 방문 요청을 넣었다. 그리고 오늘이 그녀의 방문일이었다. 정말 맹세의 서약서를 들고 오기라도 할 모양이었다.

“라이, 어서 오세요.”

“샬리, 오랜만입니다. 요즘 안팎으로 샬리의 소식을 들을 수 있어서 기뻤어요.”

그녀가 유한 웃음을 지으며 인사를 건넸다. 우리는 그날처럼 같은 구도로 자리에 앉았다.

“깃펜과 종이를 부탁드려도 될까요?”

“다시 그 얘기를 꺼낼 건가요?”

그녀가 여전히 미소를 잃지 않은 채로 파우치에서 종이 한 장을 꺼냈다. 금테가 둘린 것이 익숙한 종이였다.

맹세의 서약서.

“정말 들고 오셨군요. 이게 무엇을 뜻하는지 라이가 모를 거라고 생각지는 않는데….”

“당연합니다. 서약서의 무게를 잘 알고 있으니 제 걱정은 마십시오.”

그녀는 단호한 말로 내 염려를 일축했다. 그녀가 깃펜과 서약서를 내게 내밀었다. 서약서의 내용은 한 줄만 적혀 있었다.

“샬리가 원하는 바를 그 뒤를 이어 써 주세요. 서약서를 어길 시에는 평생 말을 하지 못하는 저주에 걸립니다.”

서약서에 적힌 한 줄은 라이올라가 내게 말했던 목적이었다.

[샬리오니 롯트 리노아를 프레타스 제국의 황후로 올리는 데에 도움을 아끼지 않는다.]

정말로 도와줄 마음이 있어서 적어놓았을 것이다. 그녀의 말대로 그 의미가 무거운 서류였다. 맹세의 서약서에는 사람의 행동을 묶어둘 수 있었다. 하지만 사람의 감정은 강제할 수 없었다. 우선 서약서 대신, 시녀가 가져온 종이에 꺼려지는 바를 적었다.

‘폐하를 마음에 두고 있냐는 전의 물음에 대한 답을 명확히 듣고 싶군요.’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폐하께 호감이 없는 여성은 없을 것입니다. 모든 면에서 훌륭한 분이시니까요. 하지만 그게 다랍니다. 샬리가 말하는 그 이상의 감정은 없습니다.’

그녀는 전과 달리 시원시원하게 글을 써 내려갔다. 완전히 믿을 수는 없지만, 일단 그에 대한 대답은 들었다. 그녀가 적어놓았던 맹세의 서약서에 내 조건을 써 내려갔다. 아마 그녀는 여기에 서명할 수 없을 것이다.

[라이올라 제냐크는 프레타스 제국의 황비가 되지 않는다.]

[카시카프 메디온 프레타스와 샬리오니 롯트 리노아의 관계에 해를 입히지 않는다.]

[샬리오니 롯트 리노아에게 프레타스 제국의 황후가 되는 데에 도움을 준 후에도 배반하지 않는다.]

나는 적어내린 서약서를 그녀의 앞으로 돌렸다. 그녀가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뭐야, 저걸 다 지킬 수 있다고?

“다른 덧붙일 사항은 없으신가요?”

나는 그녀를 살피며 고개를 저었다. 그러자 그녀가 깃펫으로 자신의 서명을 밑으로 남겼다. 그리고 내 앞으로 서약서를 돌렸다. 저 사람은 정말 미쳤는가. 잘못하면 영원히 목소리를 잃을 수 있었다. 아무리 내 믿음을 얻기 위해서라지만 함부로 서명할 일이 아니었다. 내가 서명하면 라이올라는 정말로 행동이 묶여 버리게 된다.

역시 이해할 수 없었다. 그녀가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 이건 말이 안 되는 거였다.

“라이, 정말 원하는 것을 말해 주지 않으면 서명할 수가 없겠습니다.”

그녀는 분명히 내게 원하는 바가 있을 것이다. 라이올라가 얼굴에 웃음기를 지우고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나를 응시했다.

“알겠습니다. 공주님은 정말 뭐든 허투루 넘어가지 않으시는군요.”

“이런 문서가 오가면 당연한 것 아닐까요.”

그녀가 다시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현재 리노아가 투알린을 복속시키는 중에 있다고 들었습니다.”

리노아와 투알린이 여기서 왜 나오지?

“그렇습니다.”

“완전한 복속이 이루어지기 전까지는 아직 투알린 왕국의 이름은 남아 있지요.”

“무슨 말이 하고 싶으신가요?”

이번에 그녀는 말로 내뱉지 않고 깃펜을 들어 종이에 하고픈 말을 적었다.

‘샬리가 황후가 되는 일이 리노아가 투알린을 삼키는 과정보다 빠를 거예요. 제가 도와줄 테니까요.’

얘기하지 않을 줄 알았건만, 또 물으니 그녀는 술술 털어놓았다.

“계속 적으세요.”

‘저는 황후가 된 샬리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어떤 도움말인가요? 그 때문에 지금 맹세의 서약서에 서명하신 건가요?”

무슨 거창한 도움이기에 이렇게까지 하는 걸까. 라이올라는 목적을 위해서라면 앞뒤 가리지 않고 뛰어드는 사람인가.

‘제국의 황후가 되는 것이 제 목표입니다. 오래전부터 그래왔습니다.’

이건 또 무슨 해괴한 소리란 말인가. 내 미간이 좁혀지자 라이올라가 소리 내어 웃었다.

“미안해요. 내 장난이 지나쳤습니다.”

그녀는 ‘제국의 황후’ 앞에 ‘크리하엘로’를 덧붙여 썼다. 이번에는 내가 깃펜을 들지 않을 수 없었다.

‘크리하엘로 신성 제국의 교황후가 되겠다는 말인가요?’

타국인이 제국의 황후로 들어가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이었다. 나는 정말 특이한 경우라 할 수 있었다.

‘저는 자신 있습니다. 그래서 황후가 된 샬리의 도움이 필요하지요.’

‘어떤 도움이죠?’

‘크리하엘로에는 황후 후보 추천제도가 있습니다. 프레타스 제국도 마찬가지지만요. 아마 추천제도가 쓰인 역사는 지금까지 단 한 번뿐이어서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지요.’

‘제가 라이를 추천하는 것이 그 도움인가요?’

‘지금 차기 교황이 바뀔 날이 머지않았어요. 지금의 샬리만이 해 줄 수 있습니다. 이런 기회는 굉장히 드물지요. 3개국의 추천을 받아야 추천 후보로 들어갈 수 있어요.’

3개국의 추천이라니, 내가 어떻게….

‘프레타스 제국, 리노아, 투알린을 말하는 건가요?’

‘맞아요.’

‘전부 제 입김이 들어간 걸 알아차릴 텐데요.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격이에요.’

누가 봐도 한사람이 추천한 것이 보일 텐데, 그렇게 명분만 갖춰서 들어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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