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제에게 하트를 심어주세요 47
보니가 황홀한 표정으로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먹기 힘들 거 같아요. 이 상태로 보관하고 싶어요.”
너 살찌우려고 만든 건데 절대 안 되지.
“안 돼, 보니는 많이 먹어야 해. 내가 또 만들어 줄게.”
보니가 심기일전한 표정으로 푹 찍어 넣은 스푼을 듬뿍 떠올렸다. 저거 너무 큰 거 같은데. 아니나 다를까 보니가 입가 양옆에 초콜릿을 잔뜩 묻히며 입안으로 밀어 넣었다.
“우아응. 마이어여어무”
무슨 말을 하는지는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눈빛만은 내게 맛있다는 점을 팍팍 어필하고 있었다. 나는 이빨이 새카맣게 변한 보니를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옆에서 티나도 한 스푼 떠먹고 몇 번 오물거리더니 벌떡 일어났다.
“공주님, 대단해요. 이거 너무 맛있어요.”
티나가 다가오더니 내게 귓속말을 하기 시작했다.
“캐리가 지금까지 만들어 주던 디저트 다 합쳐도 이게 더 맛있어요. 공주님!”
나는 아레인을 돌아보았다. 그는 이 난리에도 묵묵히 본인의 임무만 수행하고 있었다.
“아레인, 초콜릿 좋아하나요?”
“실은…. 제가 단 걸 잘 못 먹습니다. 초콜릿은 특히요…. 죄송합니다. 공주님.”
안색이 파래지는 걸 보니 정말 싫어하는 모양이다. 그러면 권하는 게 오히려 못 할 짓이지. 아레인은 그럼 어떤 걸 만들어 주는 게 나으려나.
“공주님. 저는 언제….”
뒤에 있던 캐리가 나를 애타게 바라보았다. 옆에서 나를 도와주며 끊임없는 질문을 하더니 꼭 맛보게 해 달라고 했었는데 깜박했다.
“도와줘서 고마워요. 얼른 먹어요.”
내가 퐁당 쇼콜라 하나를 내밀자 그가 보니가 하던 것처럼 비장하게 스푼을 찔러 넣었다. 그가 한 스푼 입에 넣더니 이마를 짚으며 고뇌에 잠겼다.
“아아…. 이건, 나중에 레시피를 다시 알려 주셔야 합니다. 꼭 부탁합니다. 공주님.”
후…. 자신감이 폭발하는데 이거 어쩌지. 어쩌긴 뭘 어째. 잔뜩 만들어서 여기저기 전부 나눠줘야지! 어느새 다 먹어치운 에이솔이 입가를 손수건으로 우아하게 닦으며 내게 질문했다.
“공주님, 이거 제가 몇 개 더 가져갈 수 있나요?”
에이솔을 부른 건 다른 게 아니었다. 보니의 발목에 걸린 구속구가 너무 흉해서 말이다. 티나도 저게 대체 뭐냐고 물어보기도 했고….
“에이솔, 나랑 잠깐만 얘기 좀 해요.”
나는 구석으로 가서 에이솔에게 작은 소리로 속닥였다.
“구속구를 마법사들이 만든다고 들었는데 어떻게 만드는 거예요?”
디저트를 먹다가 갑자기 구속구 얘기를 하니 에이솔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구속구는 세계수에서 떨어져 나온 새카매진 이파리로 만들어요.”
세계수는 신 크리하엘과 지상의 연결고리라고 할 수 있었다. 크리하엘을 깊게 믿는 사람들은 그곳으로 성지순례도 간다고 한다.
“그게 신력을 차단하는 재료예요?”
“네. 그걸 마법과 매개체로 접목하는 거예요.”
“그럼 보니의 구속구를 새로 만들어 줄 수 있어요? 발목의 저건 너무 죄인한테 씌우는 것처럼 무식하잖아요. 물론 값은 전부 지불 할 거예요.”
“흐음….”
그녀가 눈을 휘며 웃었다.
“폐하를 옆에서 모시다 보면 눈치만 늘어서 말이죠. 남은 퐁당 쇼콜라는 전부 다 제건가요?”
거참, 알아차렸네. 만들어 주기만 한다면 추가로 더 챙겨줄 수 있는데.
“물론이에요. 매번 만드는 디저트가 있을 때마다 에이솔도 꼭 부를게요. 지금도 브라우니를 더 구울 건데요. 그것도 가져가요. 아 참, 만들어 놓은 잼과 청도 많으니까 에이솔이 필요하다면 다 챙겨줄게요.”
그녀가 아주 만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주 예쁘게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발찌 형식으로 만들면 좋을 것 같군요. 아무래도 마법전도율이 좋은 금과 미스릴이나 아다만티움 정도가 좋겠습니다. 현재 보니의 발에 달린 구속구는 강철이지만 발찌 재료로 강철을 쓰진 않으니까요. 무겁기도 하구요.”
허허. 역시 마법사. 고가의 재료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군. 아다만티움은 정말 극히 드문 광물 아닌가.
“금으로 만든 발찌는 몇 개 있는데 미스릴로 만든 발찌는 없겠죠? 그게 더 좋을까요?”
“차단율은 둘 다 차이가 없지만, 금은 아무래도 끊어질 가능성이 크니 미스릴이 낫지 않을까요?”
미스릴은 대부분 갑옷이나 칼, 방패 등의 무구로 쓰이는 게 대부분이라 장신구로 쓰는 건 그냥 돈 지랄이라 할 수 있었다. 만약 미스릴로 만든 장신구가 있다면 가성비 따지는 테너는 고개를 저으며 이렇게 이야기하겠지.
‘참으로 비효율적인 장신구로군요. 값은 값이면 훨씬 고급품으로 더 아름답고 화려하게 만들 수 있는데 말입니다. 장신구에 강도가 센 미스릴을 대체 왜 사용했을까요. 아무 쓸모도 없군요.’
어우, 상상을 너무 잘했나 봐. 스테레오로 말하는 것 같아. 보는 눈도 많은데 보니에게 계속 저걸 채울 수도 없고, 아무래도 하나 만들어야겠다.
“조만간 만들어서 줄게요. 미스릴로 만든 발찌.”
* * *
일단 처음은 황제부터 줘야지. 비록 세 명이 내가 만든 걸 먼저 먹긴 했지만. 새로 만든 디저트는 그에게 먼저 주면 될 일이다.
나는 나디에게 물어 황제가 좋아하는 디저트를 물었는데 단 건 별로 안 좋아한단다. 어쩐지 그가 디저트를 먹는 모습을 자주 본 적이 없다. 퐁당 쇼콜라를 주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그래서 많이 달지 않고 고소한 오트밀 쿠키와 쌉싸름한 녹차 카스텔라, 당근 파운드케이크를 만들었다.
“폐하가 엄청 좋아하시겠어요.”
“그랬으면 좋겠는데, 단 건 별로 안 좋아한다고 하셨으니까 걱정이 좀 돼.”
그의 집무실에 오후 간식을 가져다주기 위해 레모네이드까지 준비해서 가고 있었다. 보좌관들 것도 있었다.
그들 중에 단 걸 좋아하는 이들이 있을 수 있으니 바나나 푸딩도 만들었다. 집무실 앞에서 시종이 내게 인사를 하고 카샤에게 내가 왔음을 고했다. 들어가자 그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얼떨떨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집무실 방문은 처음이긴 한데 이게 그렇게 놀랄 만한 일인가.
“폐하, 오후 업무로 출출하실 것 같아서 요기할 것을 가져왔어요.”
그가 나를 멍하니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보좌관들이 하나같이 나를 보며 신기한 듯 관심 어린 눈으로 보고 있었다.
오기 전 티나가 드레스며 머리 모양이며 힘을 줘서 다행이었다. 내 뒤에 있던 시녀와 하녀들이 전부 일사불란하게 보좌관의 테이블 위로 간식들을 모양 좋게 배치하기 시작했다. 보좌관들을 보며 눈인사를 하는데 어느새 카샤의 얼굴이 날카롭게 변해 있었다. 그의 목소리가 차갑게 집무실에 울려 퍼졌다.
“다들 눈 밑으로 안 깔지.”
카샤의 말에 전부 일시에 고개가 밑으로 뚝 떨어졌다. 그가 일어나더니 내게 빠르게 다가왔다.
“우리는 응접실로 가지.”
안내받은 응접실로 들어선 후 시녀들이 준비한 다과와 차를 세팅했다. 단 걸 싫어하니 레모네이드 대신 그가 선물했던 루이보스를 준비했다.
“그대가 집무실로 오다니, 정말 생각도 못 했군.”
그의 얼굴이 꽤 기분 좋아 보여서 다행이었다.
“맛보세요. 내가 직접 만든 것들이에요.”
그 말에 그의 눈이 테이블 위 세팅된 곳으로 눈길을 주었다.
“직접 만들었다고? 어째서….”
그가 못마땅한 얼굴을 했다.
“달리아궁 파티시에가 일을 제대로 못 하는 모양이군.”
“아니에요, 이건 그런 게 아니라….”
그가 웃으며 나를 달래듯 손을 맞잡았다.
“걱정하지 마라. 제대로 된 이로 교체해 주겠다. 그대가 디저트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알고 있으니 특별히 심사숙고해서 보내도록 하지.”
또 내 말 제대로 안 듣고 자기 말만 하지.
“달리아궁 파티시에는 잘하고 있어요. 이건 제가 카샤한테 주고 싶어서 직접 만든 거예요.”
“나 때문에…?”
이제 그의 입꼬리가 서서히 올라가기 시작했다. 나는 넋 놓고 있던 그의 손에 친히 포크를 쥐여 주었다. 그가 포크 옆면으로 녹차 카스텔라의 한 귀퉁이를 잘라 입안으로 넣었다. 최대한 안 달게 하긴 했는데….
“담백하고 쌉싸름한데, 꽤 마음에 드는군.”
“정말 괜찮아요?”
맛있게만 먹어 주면 만든 사람으로서는 제일 기분 좋은 법이지. 고개를 끄덕인 그가 이번에는 오트밀 쿠키로 손을 뻗었다.
오독-
“이것도 달지 않고 고소한데, 전부 내 취향이야.”
내가 신경 쓴 부분들만 이렇게 콕 집어 주니 자연히 내 얼굴에 미소가 걸렸다.
“이걸 정말 전부 다 그대가 만들었다고.”
“맞아요.”
물론 카스텔라 만들 때 친 머랭이나 바나나 푸딩을 만들 때 거품 냈던 생크림은 내 몫이 아니었다.
“황제궁 파티시에에게도 만드는 법을 알려 줄 수 있나?”
“물론이에요.”
정말 마음에 들었으니 황제궁에 알려 달라고 한 거겠지 싶어 기분이 좋았다. 머릿속으로 다른 요리들도 이것저것 먹여 볼까 생각하는데, 그가 천천히 일어나더니 옷매무새를 가다듬으며 밖으로 나갈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어디 가요?”
티타임 중에 갑자기 어딜 가지?
“전부 그대가 만들었다길래, 밖의 것도 그대가 만들었을 거 아닌가.”
그가 사절단 방문 때 보았던 연회용 미소를 환하게 지었다. 그것도 참 잘생겨서 혼을 쏙 빼놓는다.
“보좌관들 건 제가 안 만들었어요. 파티시에가 만들었죠.”
보좌관 것뿐만 아니라 친위대들 것도 대량으로 만드느라 카샤 것을 만들 때 말고는 대부분 다른 사람들에게 지시만 했다. 달리아궁 파티시에 캐리에게 만드는 법도 알려줄 겸 해서. 무엇 때문에 그러나 하는데, 그가 다시 자세를 잡고 자리에 앉았다. 방금까지는 나갈 것처럼 굴더니?
“왜 그런 거예요?”
“그냥 별거 아니니 신경 쓰지 마라. 이건 루이보스 차인가?”
“맞아요, 당신이 선물해 준 거예요. 정말 고마워요. 받은 것들 다 마음에 들어요. 하나같이 귀한 것들만 주셨던데요.”
그가 웃으며 가까이 다가와 내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
“마음에 들었다니 다행이야. 그대가 오니 골머리를 앓던 것도 다 잊히는 것 같군.”
“무슨 일 있어요?”
“제도 외곽의 평민들이 꽤 많은 수가 독감에 시달리고 있어. 죽은 사람들도 많지. 전염성 때문에 빠르게 퍼지고 있어서 조만간 제도 내까지 번질 것 같다.”
이곳은 예방 주사 같은 것이 없어 겨울에 독감으로도, 추위에도 병사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럼 빨리 치료를 받아야겠는데요. 신관을 보내면 안 되나요?”
내 말에 그가 비릿한 웃음을 흘렸다.
“그놈들이 지금 비협조적으로 굴고 있거든. 제도 전체에 독감이 돌기를 바라는 거지. 감히 제국민들을 상대로 영향력을 넓히려고.”
신관들이 제도에 퍼지는 유행성 독감을 치료해 주면서 신전의 위상을 높이려는 모양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독감이 더 많이 퍼져야 할 테고. 제국이 독감 때문에 신전에 굽히고 들어가도 좋고, 아니어도 제국민들에게 영향력을 넓힐 수 있으니 그들은 아무래도 좋을 것이다. 그리고 신성 제국 사람들인 동시에 종교단체라고 할 수 있으니 제국에서 강제할 수도 없었다. 그가 한숨을 쉬며 소파에 몸을 기댔다.
“그놈들은 매번 골치가 아파.”
독감이라고 하니 엘더베리가 생각났다. 지금 테너도 독감을 완치하다 못해 몸 상태까지 좋아졌다 했으니 효능은 확실했다.
“카샤, 독감 걸린 사람들에게 엘더베리를 나눠주면 어때요? 일전에 테너가 독감으로 고생하길래 즙을 내서 보내줬더니 훨씬 좋아졌거든요.”
“테너? 신관에게 치료받은 게 아니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