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제에게 하트를 심어주세요 46
테너가 시종에게 손짓하자 그가 루이보스 차를 달리아궁의 시녀에게 넘겨주었다. 시종이 뒤에 있던 하인에게서 두 번째 선물로 보이는 일부를 넘겨받고 내 앞으로 그것을 펼쳐 보였다. 주변에 있던 티나와 시녀들이 탄성을 자아낼 만큼 고운 색상의 비단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실크네요. 그것도 굉장히 질이 좋아 보여요.”
내 말에 테너가 예의 인자한 미소를 지었다.
“그렇습니다. 최고품질로 구했습니다.”
“공주님, 공주님. 이제는 구하기 힘들다는 실크가….”
티나가 안달이 난 눈빛을 내게 보내고 있었다.
“옷감은 티나가 잘 아니깐 이것들을 살펴봐 줘.”
티나는 벌써 손수건, 속옷, 가운, 슬립을 만들 거라 중얼거렸다. 비단들이 달리아궁의 시녀들 손에 넘어갔다. 그 뒤를 이어 동양미가 물씬 풍기는 고아한 디자인의 아름다운 보석들과 (티나가 소리를 지를 정도로 최고급인) 은은하고 영롱한 빛이 만발한 자개 가구들이 들어왔다. 티나가 행복한 비명을 지르며 내게 부탁 아닌 부탁을 했다.
“공주님, 저 가구들로 응접실을 꾸밀 수 있게 해 주세요.”
“그래, 티나가 알아서….”
“오늘이 제가 살아온 날 중 가장 행복한 날이에요. 눈이 너무 즐거워요. 어떻게 꾸며야 잘 꾸몄다고 소문이 날까요.”
티나의 호들갑을 뒤로하고, 보석함에서 아름다운 문양이 음각된 비녀를 꺼내 들었다. 비녀 끝에는 진주와 금으로 이루어진 장신구가 달려 우아한 멋을 더해 주고 있었다.
“특이한 장신구네요.”
옆에서 보석함을 스타일대로 선별하던 티나가 물었다. 내가 시범으로 머리를 돌돌 말아 비녀를 꽃은 모습을 보여주자 티나의 눈이 신세계를 만난 사람처럼 반짝반짝 빛을 내뿜기 시작했다.
“와…. 이거 시녀장님도 보여드려야 하는데.”
벌써 나디를 시녀장으로 부르며 티나가 호들갑을 떨었다. 확실히 머리 장식하는 걸 좋아하는 나디가 보면 신기해할 것 같았다.
“테너, 분에 넘치는 선물을 많이 받아서 폐하께 감사하다고 전해주세요.”
중간중간 내 입이 크게 벌어졌을 정도로 종류와 양이 무척이나 많았다.
“크게 기뻐하셨다고 전해 올리겠습니다. 아 참, 공주님. 엘더베리 말입니다.”
그러고 보니 테너가 최근 들어 기침하는 걸 본 적이 없는데.
“어땠어요? 효과가 좀 있던가요?”
“아주 좋더군요. 신관에게 치료받을 때보다 더 좋았습니다. 그리고 자주 먹으니 점점 몸에 활력도 도는 것 같고 좋아지는 것 같습니다.”
“잘됐어요. 내가 계속 만들어 줄 테니까 꾸준히 드세요.”
“감사합니다. 보내 주시는 건 사양하지 않고 마시겠습니다.”
테너가 내게 정중한 인사를 하고 데려온 시종들과 함께 궁을 빠져나갔다. 시종장 연령대면 그것도 챙겨야겠는데, 관절에 좋은 게 뭐가 있더라. 카샤한테도 답례로 무언가를 해 줘야 할 것 같은데.
* * *
“보니, 뭐가 제일 먹고 싶어?”
맞춘 옷은 보니를 살찌울 생각에 약간 넉넉하게 맞추었더니 막상 지금 보니의 몸이 너무 말라 태가 살지 않았다. 아무래도 한동안은 보니를 통통하게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했다. 보니는 카샤에게 말해 달리아궁으로 데려와 티나 밑으로 들였다. 아이가 눈치를 보더니 작은 소리로 한마디 했다. 아이는 제 의견을 낼 때는 정말 목소리가 모기 만해진다.
“과자…. 먹고 싶어요.”
“과자? 어떤 거. 언니가 다 만들어 줄게.”
일단 과자로 유혹해서 먹는 양을 늘려야 하나.
“샬리 언니가요?”
“응.”
“직접이요?”
“직접 만들어도 주고 어려운 건 파티시에한테 만들어달라고 하면 되지.”
보니의 양 볼이 발갛게 물들기 시작했다. 너무 귀여워서 볼을 왕왕 깨물고 싶었다.
“공주님, 정말 만드실 거예요?”
“왜 그래?”
티나가 나를 미심쩍은 얼굴로 바라보았다.
“공주님이 뭘 만드시는 걸 제가 본적이 없는걸요?”
잼이나 청, 클로티드 크림을 만들 때도 나는 옆에서 지시만 했지,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아마 그전의 샬리오니도 요리 한 번 할 일이 없었을 것이다.
“책으로 하는 법 봤어. 그거 보고 따라 만들려고.”
내 말에 티나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공주님 손재주 없는 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잖아요, 공주님도…. 아 기억이 안 나시죠? 공주님도 인정하신걸요.”
뭐야, 그 절망적인 발언은…. 오늘 실컷 만들어서 아는 사람들 전부 나눠주려고 했는데?
“내가 얼마나 손재주가 없는데?”
“음, 일단 남들 다하는 자수는 왕비 전하께서 가르치길 포기하셨구요. 미술도 알아볼 수 없는 그림에 선생들이 포기했고, 또….”
“요리는 해 보지 않았으니까 모르는 일이지.”
“흐음…. 그렇죠. 제가 옆에서 도와드릴게요. 저 이래 봬도 요리가 취미거든요.”
티나, 나를 불신하고 있네. 그러지 마, 보니도 저렇게 실망하잖아. 이런 식이면 내 실력이 얼마나 뛰어난지 알려줄 수밖에 없네.
“가자! 달리아궁 주방으로!”
사람들을 데리고 신나게 주방으로 들어갔다. 대뜸 쳐들어간 나 때문에 요리장이 화들짝 놀랐다. 나는 그를 안심시킨 후 파티시에를 불러 달라 했다.
“보니! 말해 봐. 뭐 먹고 싶어?”
“이름을 잘 몰라요, 에이솔 언니가 줬었는데, 초콜릿 맛이 나는 손바닥만 한 빵인데….”
“초콜릿 컵케익? 언니가 그거보다 더 맛있는 거 만들어 줄게. 아주 찐득한 초콜릿이 줄줄 흐르는 퐁당 쇼콜라 만들어 줄게. 기다리렴.”
“초콜릿이 줄줄…. 네!”
보니의 눈이 반짝반짝 빛나기 시작했다. 아유, 빨리 먹이고 싶다.
“공주님! 제가 도와드릴게요.”
티나가 내 옆에서 안절부절못하며 돕기를 청했다. 하지만 나는 퐁당 쇼콜라 천재였다. 도움 따위는 필요 없었다. 내가 이걸 얼마나 잘 만드는데! 이곳은 디저트 종류가 썩 많지 않았다. 스콘이나 푸딩, 머핀이나 파운드케이크, 쿠키, 타르트 정도가 다였다. 제빵도 식사에 곁들이는 종류만이 대부분이었다.
충격이었던 건 생크림 케이크가 없었다. 그 비슷한 건 있었다. 파운드케이크나 팬케이크에 생크림을 따로 얹어 먹는 방식. 없는 이유는 나중에 알았다. 제과에 달걀흰자로 풍성한 거품을 내는 머랭을 치는 기술이 없었다. 노른자도 거품 내지 않았다. 그러니 케이크 시트도, 카스텔라도 없고, 시폰케이크과 머랭 쿠키, 다쿠아즈와 마카롱도 없었다.
나는 파티시에를 불러 재료를 준비하게 했다. 굳이 머랭을 칠 필요는 없었지만 하는 김에 정말 맛있는 퐁당 쇼콜라를 먹여 주기 위해서 팔을 걷었다. 아, 핸드 믹서도 없는데 내가 머랭을 손으로…? 내가 거품기를 달라고 하자 파티시에 캐리가 어리둥절했다.
“생크림이 필요하십니까?”
“거품기만 주세요.”
의문 섞인 눈으로 내게 거품기를 가져다준 캐리에게 시범을 보였다.
“이렇게 생크림 거품 낼 때처럼 휘저어 주세요.”
“흰자를 왜 그렇게 합니까? 이러면 거품이라도 나나요?”
“네, 생크림처럼요. 풍성하게 거품 내주세요.”
“다른 사람이 말했으면 헛소리한다고 생각했겠지만요. 공주님이 말씀하시니 정말 거품이 날 것 같습니다.”
캐리가 기대 어린 얼굴로 흰자를 마구 휘젓기 시작했다. 그는 내가 레몬청과 클로티드 크림을 만든 뒤부터 공주님이 언제 오시나 목이 빠지게 기다렸다고 한다.
퐁당 쇼콜라는 사실 머랭을 치지 않아도 아무 상관이 없었다. 귀찮고, 시간만 축내는 일이라 할 수 있었다.
그래도 머랭을 치면 식감이 훨씬 폭신하고 부드럽다. 꾸덕꾸덕한 맛은 없어도 줄줄 흘러내리는 초콜릿과 같이 입안으로 밀어 넣으면 보드라운 식감과 질척한 초콜릿이 입안에서 조화를 이루며 사람을 행복하게 만든다. 꾸덕꾸덕한 건 브라우니를 따로 만들어 주지 뭐.
“보니, 에이솔이 컵케익을 줬다고?”
밀가루를 채 치며 내가 만드는 모습을 구경하는 보니에게 물었다.
“네, 찾아갈 때마다 줘요. 에이솔 언니 책상에는 항상 디저트가 있어요.”
보니는 머리카락을 검게 유지하기 위해 에이솔을 꾸준히 만나고 있었다.
“에이솔이 디저트 좋아하는 것 같았어?”
“우음…. 네. 다른 마법사가 디저트에 손대니까 굉장히 화내는 건 봤어요.”
그래, 책상 위에 디저트가 항상 있다고 하니 아주 좋아하는 거겠지. 나는 하녀에게 지시해 마법 부서의 에이솔에게 달리 아궁으로 방문해 달라는 요청을 넣었다. 내가 다른 걸 준비하는 사이 캐리가 열심히 팔을 휘두르며 거품을 내기 시작했다. 그는 거품이 이는 걸 보며 연신 신기하다고 중얼거렸다.
“생크림보다 거품 내는 게 더 까다롭고 힘들긴 하군요.”
풍성하고 보드라운 거품이 이는 걸 보니까 친위대가 생각났다. 친위대에 달달한 디저트 좋아하는 기사 한 명 꼬셔서 부탁해야지. 생크림이나 머랭 칠 때 친위대 한 명만 불러도 순식간일 것 같은데. 채를 여러 번 친 고운 밀가루와 달걀을, 녹인 초콜릿과 버터에 섞고 마지막으로 머랭까지 여러 번에 걸쳐 나눠 섞고 나니 금방이었다.
아, 이거 대작이 탄생하겠군. 반죽이 너무 잘 나왔어. 만족해. 화덕에 넣고 일정 시간 후 옆에서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이건 시간과 타이밍이 생명이었다. 초콜릿이 반죽과 함께 익으면 아무 소용이 없었다. 달콤한 초콜릿과 설탕, 고소한 달걀과 버터, 밀가루가 익어가며 환상적인 냄새가 공기 중으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구경하던 보니가 코를 킁킁대며 냄새를 맡았다.
“냄새가 너무 좋아요!”
“공주님이 직접 만드셨는데도 맛있는 냄새가 나….”
티나가 여전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화덕과 나를 번갈아 보았다. 마침 적당한 때에 에이솔이 주방으로 들어왔다.
“공주님, 찾으셨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무슨 냄새죠? 초콜릿 머핀인가요?”
“에이솔, 잘 왔어요. 내가 만든 디저트를 대접할까 하고요. 괜찮으신가요?”
“공주님이요? 이 냄새가 그 디저트인가요? 아아, 왠지 제가 먹어본 것 중에서도 손에 꼽을 정도로 맛있는 냄새가 나요…. 앗, 공주님 평가하려는 건 아니었어요.”
에이솔이 흐르는 침을 스윽 닦더니 우아하게 티나 옆자리를 차지했다. 아주 마음에 드는 반응이야. 쪼르르 앉아 있는 세 명을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나는 얇은 제과용 꼬챙이로 화덕 안에 있는 퐁당 쇼콜라 하나를 푹 찔러 넣어 확인했다.
“이제 꺼내 주세요.”
이마에 땀을 훔친 후 셋 앞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퐁당 쇼콜라를 앞에 내려놓았다.
“와아…. 냄새 좋아요. 샬리 언니….”
보니가 코로 냄새를 맡더니 나를 존경스러운 눈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눈과 달리 입은 침을 꼴깍 삼켰다. 만드는 모습을 쭉 지켜보던 티나가 눈앞의 퐁당 쇼콜라를 보고 댕그랗게 눈을 떴다.
“공주님이 손재주 있는 분야가 있긴 했나 봐요….”
에이솔은 냄새를 그윽하게 냄새를 맡더니 진한 웃음을 흘렸다.
“이렇게 맛있어 보이는 초콜릿 머핀은 처음이에요. 그 비싼 초콜릿이 이렇게 많이 들어가다니. 딱 봐도 초콜릿의 함량이 굉장히 높아 보이는데요? 제도 거리의 유명한 제과점도 이 정도는 아니에요. 이거야말로 제대로 된 초콜릿 머핀이라고 할 수 있죠.”
“이건 퐁당 쇼콜라예요. 그 안을 스푼으로 찍어 내리면 초콜릿이 줄줄 흘러나온답니다.”
내 말에 에이솔이 입을 딱 벌렸다.
“줄줄…이요? 그럼 초콜릿 머핀이 아니라는 말씀이시죠? 휴우…. 다행이에요. 왠지 이걸 맛보면 다른 초콜릿 머핀을 먹지 못할 거 같아 걱정됐어요.”
“초콜릿이 굳기 전에 다들 얼른 먹어요.”
셋이서 비장한 얼굴로 퐁당 쇼콜라의 중간 부분을 푹 누르자 양옆으로 초콜릿이 꿀렁꿀렁 흘러내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