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제에게 하트를 심어주세요 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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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니 자작 부인은 오랜만에 황궁으로 방문을 했다. 요즘 너도나도 가장 궁금해하는 소문의 진원지인 곳으로 말이다.
리노아의 공주가 날이 갈수록 더 유명해지고 있는 이유는 별 게 아니었다. 아직 누구 하나 그녀를 만나보지 못한 것이다. 각종 이슈를 몰고 다니는데 정작 그 소문의 주인은 만날 수 없으니 궁금증을 해갈 못 한 사람들에 의해 소문은 소문을 낳으며 유명세는 더 커졌다.
자작 부인은 황제의 예법교육담당으로 주목을 받았고 지금은 여기저기서 교육을 맡아달라는 러브콜로 사교계에서 상당한 입지를 구축하고 있었다. 물론 그 유명세 하나로 그 자리를 지킬 수 있을 만큼 사교계가 만만한 곳은 아니었다. 반짝 빛났다가 사라지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에 비하면 그녀는 굳건히 버티고 있으니 쉬이여길 수는 없는 사람이었다.
사교계에서 제일 먼저 갖춰야 할 것이 유행에 뒤떨어지지 않는 것이다. 그녀는 사교계의 유행과 흐름을 잘 꿰뚫고 있었고 가끔은 예측하기까지 했다. 그것이 현재 그녀가 사교계에서 버팀목이 되어 준 것이나 다름없었다.
샬리오니 공주를 만나는 외부인으로서는 내가 최초인가? 그녀는 리노아 공주를 만날 생각에 기분 좋은 발걸음을 하며 현재 공주가 있는 달리아궁에 도착했다. 예법으로 유명해졌으니 삶의 요소요소가 그것에 습관이 되어있었다. 스토니 자작 부인은 예법에 정확히 맞춘 걸음걸이로 들어가 리노아 공주를 마주했다.
공주를 본 자작 부인은 깜짝 놀라고 말았다. 그녀가 지금까지 살면서 보아왔던 이 중에 비견되는 외모가 없을 정도로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음유시인들의 가사에 여신이나 요정을 넣어 만든다고 하던데 그것이 전혀 과장되어 보이지 않았다.
제국의 꽃이라 불리는 라이올라 영애도 공주에게 댈 것이 아니었다. 자작 부인은 속으로 굉장히 놀랐으나 몸에 항시 배어있는 습관으로 차분히 넘길 수 있었다. 사교계는 외모만으로 굴러가는 곳이 아니었다. 처음에는 감탄하며 호기심을 충족하러 모여들지는 모르겠으나 그에 대한 인품과 사교성, 배경까지 뒷받침이 되어야 중심에 설 수 있었다.
인품과 사교성이야 지금부터 알아보면 될 일이고, 공주는 우선 두 가지를 충족하고 있었다. 외모와 배경은 아마 그녀를 따라올 자가 없을 것이다. 뒤에 황제가 버티고 있는데 아무렴. 공주에게 먼저 인사를 받은 자작 부인은 또 한 번 깜짝 놀랐다. 리노아식 예법이 상당히 우아하고 부드러웠기 때문이다.
제국의 예법은 조금 경직되어 있으며 딱딱한 느낌을 풍긴다. 절제와 도를 넘지 않는 최소한의 행동만으로 상대에게 겸손과 동시에 강한 이미지를 주지시킨다. 몇 세대 전 제국의 예법은 그 오만함이 하늘을 찔러 타국에 많은 원성을 샀기에 겸손의 미덕을 접목한 것이 오늘날의 제국의 예법이었다.
그런데 리노아 공주의 행동은 우아하며 나긋나긋한 것이 제국과는 정 반대가 아닌가. 그녀도 타국의 예법이 어떤지 모르는 바는 아니었다.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많이 접하는 편이었는데 리노아 예법을 이렇게 완벽하게 구사하는 이는 본 적이 없었다. 마치 리노아 예법이 공주의 맞춤 예법처럼 보이는 것이 아닌가.
“불러 주시어 오히려 제가 영광이지요.”
그녀는 본격적으로 리노아 공주를 파헤칠 준비를 했다. 생각보다 훨씬 흥미진진하고 재미있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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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사를 받은 스타니 자작 부인이 흥미로운 눈길로 나를 관찰했다.
“흠…. 리노아 예법은 둥글면서도 우아하군요. 제국과는 정반대예요.”
“우아함을 가장 우선하고 중요시한답니다. 와 주셔서 고마워요. 부인.”
스타니 자작 부인은 이것저것 리노아의 예법을 물어보았다.
“이렇게 표현합니다. 보통 에둘러 말하는 편이에요.”
나는 지금 조금, 사실 많이 당황하고 있었다. 제국 예법 수업인데 어째 리노아 예법 수업에 내가 선생으로 온 것 같은 기분이었다.
사실 정말 지켜야 하는 기본적인 예법만 아니라면 리노아는 크게 엄격하지 않아서 나 또한 그렇게 해왔었다.
아마 리노아인들 대부분이 그럴 것이다. 기본만 하는. 그런 내가 제국 예법 제대로 배워 보겠다고 대충 넘겨 왔던 것들을 하나하나 신경 쓰며 하자니 고역이었다.
그런데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자작 부인은 나를 가르칠 생각은 없고 리노아 예법 탐구에 혹 빠져 있었다. 이럴 땐 어떻게 하느냐, 저럴 땐 어떻게 하느냐. 나도 모르게 리노아 예법에 대해 강의를 하고 있는 것이다.
제국 예법을 배워야 하는데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나도 카샤처럼 멋진 자태를 흉내 내고 싶은데 말이다. 하지만 나는 내색하지 않고 참고 기다리며 자작 부인의 궁금증을 풀어주었다. 겨우 호기심을 다 채워 주었나 싶었던 자작 부인의 다음 말은 내게 엄청난 충격을 선사했다.
“공주님의 예법에는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리노아 예법을 계속 사용하세요.”
이게 무슨 소리입니까. 선생. 내가 제국 예법을 배우고 싶다는데 왜 딴소리를 하십니까. 속으로 울부짖은 나는 다시 우아한 미소를 띠며 자작 부인에게 질문했다.
“제국 예법을 배울 필요가 없다는 말씀이신가요?”
“제국 예법은 공주님과 어울리지 않습니다. 지금이 아주 좋으니 이대로만 하세요.”
나는 이제 자작 부인이 나를 가르쳐 주기 싫어서 그러나 싶어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저 혼자 리노아 예법을 따지면 소통에 문제가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공주님이 제국 예법을 보고 소통이 안 되면 모를까, 리노아 예법은 부드러워 소통에 전혀 문제가 없습니다.”
내 쪽에서 소통에 문제가 있으면 배워야죠!
“그래도 여기까지 들러주셨는데 제가 뭐라도 배워야 선생님께 한 자라도 배웠다 할 수 있지 않겠어요?”
“제국의 예법은 다 알려드리겠습니다. 리노아 예법과 비교하는 것도 재미있겠군요. 그러나 굳이 제국의 예법을 고수하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리노아의 공주시니 그 점을 어필하면 충분할 것 같군요.”
“그 연유가 뭔지 선생님께 여쭈어도 될까요?”
“저는 사교계의 흐름을 잘 꿰뚫고 있습니다만, 단언컨대 리노아 예법이 유행하게 될 거라고 말씀드릴 수 있겠군요.”
이게 무슨 황당한 소리야. 예법이 유행될 수가 있나? 처음의 존경심이 가득했던, 반짝이던 내 눈동자는 점점 그 빛을 잃고 있었다. 나도 균형 잡힌 완벽하고 도도한 품새로 걷고 싶고 팔 동작 하나도 멋스럽게 하고 싶은데 자작 부인은 도무지 가르칠 생각이 없어 보였다. 자작 부인이 내게 말하고자 하는 바는 딱 하나였다. 그냥 리노아 예법을 그대로 사용하라는 것.
문제는 그것이다. 나는 리노아에서조차 이렇게 열심히 예법을 지키며 생활하지 않았건만. 이 귀찮음을 계속 감수하란 말인가. 큰일도 이런 큰일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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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너가 내게 붙여 주었던 나디는 굉장히 바빴다. 말만 시녀지 하는 일은 시녀장이나 다름없었다. 현재 시녀장은 공석이었고 그 일을 전부 나디가 하는 셈이었다. 그 바쁜 나디가 뒤에서 티나를 보며 눈을 반짝이고 있었다.
나디가 유일하게 못 하는 일이 드레스와 보석을 고르는 일이란다. 지금 눈앞에는 황궁에 납품을 맡은 보석상과 황족을 전담하는 디자이너가 있었다. 내가 입을 여는 일은 없었다. 나와 나디는 눈만 데굴데굴 굴리며 티나가 하는 양을 지켜보고 있었다.
“이 원단보다 품질이 월등한 걸 봤는데 제국이면서 이 정도밖에 수급이 안 된다니 말이 안 되는군요.”
“그쪽은 아까부터 계속 말도 안 되는 트집만 잡고 있거든요?”
“이걸 정말 황족의 옷감으로 쓴 건가. 폐하께 한번 물어볼까 보다.”
천을 이리저리 만지작거리던 티나가 들으라는 듯 크게 중얼거렸다.
“정말 무례하군요. 지금까지 제가 디자인 한 옷을 폐하께서는 아주 마음에 들어 하셨는데 당신이 왈가왈부할 문제가 아니에요.”
티나의 손에서 옷감을 채가며 디자이너가 짜증을 냈다.
“소국에서 왔다더니 정말 유행이 뭔지 모르는 모양이야.”
디자이너는 티나가 하던 대로 똑같이 따라 하며 들으라는 듯, 리노아가 유행에 뒤처졌니 어쩌니 하며 깔보고 있었다.
그녀는 백작가의 방계 여식이었음에도 리노아를 낮잡아 보고 있었다. 내가 보기엔 그녀가 옷감에 장난질하는 것도 맞고 무례하기도 그쪽이 더 심했다. 당연히 황제의 옷을 만드는 데 질 낮은 옷감을 쓰지는 않았겠지. 리노아를 우습게 보니 나한테만 일부러 저런 걸 들고 오지 않았을까 싶다.
하지만 나는 그저 묵묵히 보고만 있었다. 주눅이 들어서도, 혼내 주지 못할 것 같아서도 아니다. 티나는 평소에는 굉장히 온순하고 발랄하며 사랑스러운 여인이다. 다만 드레스와 보석에 관한 것만큼은 절대 양보 하나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왜 가져가시는 거예요? 이리 주세요. 정말 폐하의 옷감과 비교해 보려 하니까요.”
“싫으면 싫은 거지 왜 옷감에 트집을 잡고 그러시죠? 정말 수준 떨어지는 것 좀 아세요!”
“이 정도 하면 반성할 줄 알았더니, 양심 어디다 팔았어요?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 제국 이미지는 그쪽이 다 떨어뜨리고 있는 겁니다.”
“그럼 당신은 리노아 이미지를 올리고 있는 줄 아세요? 나 참.”
“원단부터가 이렇게 엉망인데 디자이너 소리 듣고 싶어요? 이게 사실이라면 정말, 어떻게 나보다 모를 수가 있지?”
“횡포가 심해서 참을 수가 없군요. 여기는 제국이라는 걸 명심하세요. 주제를 아시라고요.”
디자이너가 고압적인 자세로 티나를 대했다. 아무리 그래도 저건 아니다 싶었다. 내가 나설까 하는데 티나가 콧방귀를 끼었다.
“리노아 시녀보다 못한 제국 디자이너라는 건 아주 잘 알았답니다. 당신은 그걸 명심하세요!”
티나를 매섭게 노려본 디자이너가 분개한 목소리를 냈다.
“나중에 올 땐 사과하러 오는 거로 알겠습니다. 그전까지는 옷에 바느질한 땀 하지 않을 거니까 그리 아세요.”
“갈 생각도 없는데 혼자서 굉장히 긍정적이네요.”
티나가 피식 웃더니 디자이너에게 나가라는 듯 밖을 향해 턱짓했다. 저거, 어디서 많이 본 건데….
“정말 건방지기가 하늘 무서운 줄 모르는군요.”
디자이너가 기가 찬 표정으로 문을 벌컥 열고 나갔다.
“티나, 방금 그거 뭐야? 폐하 따라 한 거니?”
다시 온순한 표정으로 돌아온 티나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앞에 남은 보석상은 어찌할 줄 몰라 쩔쩔매고 있었다. 티나가 웃으며 물었다.
“제가 보석도 잘 알거든요. 사실 드레스보다는 보석을 잘 알고 있는데 한번 보여주시겠어요?”
“저는 정직한 사람입니다. 저렇게 저급품으로 농락하는 사람이 아니지요. 황궁에 납품하는 것을요!”
보석상은 이마에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커다란 보석함을 자신 있게 열어젖혔다.
“전부 다 최상급입니다. 하나같이 뛰어난 세공과 최신 커팅 방식을 적용한 것들만 추려왔지요.”
여러 단으로 펼쳐진 보석함의 보석들은 휘황찬란한 빛을 머금고 있었다.
“이건 얼만가요?”
티나는 둘러 보더니 별말 없이 보석이 크게 주렁주렁 매달린 귀걸이 하나를 가리켰다.
“이건 꽤 유명한 세공사가 커팅했지요. 보석을 잘 아신다더니 정말이시군요. 보는 눈이 있으십니다.”
보석상에게서 가격을 듣던 티나의 표정이 변했다.
“보석함 닫고 나가세요.”
“왜 그러십니까? 다른 보석은 안 보십니까? 공주님의 첫 주문이니 가격 흥정도 가능합니다. 이상하네…. 황궁에서 한 번도 이런 일이 없었는데….”
보석상이 울상을 짓자 티나가 콧방귀를 끼었다.
“여태까지 황궁에서 주는 대로 다 받으셨나 봐요? 여기 양심 불량이 또 있네.”
“무슨 말씀입니까. 저는 항상 최고급! 최상급! 그런 것들만 취급합니다. 제가 괜히 황궁에 납품하는 보석상이 아니라 이 말입니다.”
보석상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하고 있었다. 물론 티나도 전투 상태로 돌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