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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에게 하트를 심어주세요-18화 (18/97)

황제에게 하트를 심어주세요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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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고니아에서도 충분히 사용할 수 있었을 테고, 1년이라는 시간 동안 왕국들을 집어삼키기 위해 공을 들이지 않아도 되었을 거란 생각 말이다.

"고대 마법 병기는 함부로 쓰기엔 제한이 많아서요. 몇 번 쓰면 금방 못쓰게 돼 버립니다. 그리고 폐하는 저런 거로 왕국을 점령하길 바라시지도 않구요.

고대 마법 병기를 쓰면 인명 피해가 크지 않습니까. 폐하께서는 항상 최소한의 피해로 전쟁을 끝내길 바라십니다. 민간인에게까지 전쟁의 타격이 생기길 바라지 않으셔서요. 최소한과 최단 기간이 폐하가 항상 하시는 말씀입니다."

나는 그 말에 조금 감탄했다. 민간인들에게는 최소한의 피해만 가게끔 하려고 한다는 그 말에 말이다. 전쟁이라는 게 변수도 많고 황제의 말처럼 그렇게 하고 싶다고 되는 게 아니었다.

그런데도 황제는 1년이라는 시간을 들여서 최소한의 피해로 전쟁을 끝낼 수 있도록 하고 있었다. 그랬던 그가 고대 마법 병기를 들고 왔다는 건 루카의 말대로 그가 자신의 규칙을 깨 버렸다는 뜻이 아닐까. 루카는 꽤 많은 정보를 알고 있었다. 그저 투알린 첩자1이 아니었던 걸까. 뭔가 최측근 느낌인데.

“루카는 그냥 첩자가 아닌 것 같아요. 어떻게 그렇게 다 알아요?”

“아, 저는 원래 폐하의 친위대였습니다. 투알린이 얼마 전에 첩자들을 다 죽여 버려서 그 후발대로 급하게 들어온 거라서요. 아마 이번 임무만 수행하면 다시 친위대로 돌아갈 것 같습니다.”

루카는 순박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덩치는 엄청 큰데 표정이 너무 청초하시다.

“어라…. 저런 거추장스러운 거 아주 싫어하시는데 이상하네요.”

혹시 저거 보여 주려고 공주님 빨리 데려오라고 하신 건가. 루카가 다시 나를 돌아보며 고개를 갸우뚱하며 말을 덧붙였다. 황제가 투알린들이 있는 불길 속으로 천천히 걸어가는데 불기둥이 옆으로 천천히 갈라지고 빛 가루가 그의 머리 위로 내려앉기 시작했다.

저게 대체 뭐야…? 자기가 무슨 팅커벨이야. 빛 가루 뭔데. 뭐냐고요. 나는 방금 것은 못 본 것으로 하기로 했다.

“오늘은 정말 폐하 같지 않으시네요. 고대 마법 병기를 들고 오신 것만 해도 그렇고 이상한 보여주기식 마법 하며, 지금쯤이면 왕족과 귀족들은 목만 남기고 전부 다 처리하셨을 텐데 왜 이렇게 시간을 끄시는 건지….”

그러면서 루카가 또 나를 바라보는 것이다. 솔직히 나도 의아함을 느끼고 있는 참이었다. 베고니아와의 행적만 봐도 알 수 있듯 책 속에서의 그는 왕족과 귀족은 단 한 명도 남겨 두지 않았으니 말이다. 그때 페리안이 황제에게 큰소리로 헛소리를 하는 게 들려왔다.

“어라, 저 왕자가 말한 결혼 제의, 거절한 거 아니었습니까. 공주님? 제가 듣기로는 그랬는데 언제 합의하셨어요?”

루카도 페리안이 나한테 찰지게 맞는 모습 봤구나.

“페리안 쟤가 미쳤나 봐요. 저는 당연히 그런 적이 없죠! 아직 덜 맞았나….”

나는 페리안이 하는 헛소리를 듣고 발을 굴리며 분개하고 있었다.

“그렇죠? 목이 잘리겠습니다. 폐하께 허풍을 치다니. 어… 어…? 공주님 어디 가세요?! 아직 가시면 안 됩니다!”

나는 루카의 말을 뒤로하고 미친 듯이 뛰었다. 황제가 페리안의 눈 바로 앞에서 찌를 듯이 칼을 겨누고 있었기 때문이다.

“공주님! 아직 위험합니다. 왜 그렇게 빠르세요?!”

내가 지금까지 달린 것 중에 최고로, 젖 먹던 힘까지 짜내면서 달리니깐 그렇지.

“폐하!!!”

나는 황제를 큰 소리로 부르며 달렸다. 그는 내가 불러도 돌아보지 않았다. 여전히 페리안의 눈앞에 칼을 들이밀고 왕자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카시카프!!!”

폐하라고 불러도 못 들어서 냅다 이름을 불렀다. 드디어 그가 돌아봤다. 그의 두 눈이 두 배로 커지고 있었다.

“공주님, 이왕 이렇게 된 거 저한테 업혀 가시겠습니까? 지금 엄청 힘들어 보이시는데요.”

루카가 옆에서 달리며 헉헉대는 나를 측은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이제 조금 남았는데요. 헉…. 헉…. 뭘…. 괜찮아요.”

뛰다가 갑자기 업혀서 가는 것도 꼴이 웃길 거 같아서 거절했다. 나는 한참을 달려 그의 앞에 당도했다.

“으앗, 뜨거워.”

불길 속으로 들어오니 저 멀리 밀려났다 해도 뜨거운 열기가 돌풍의 바람을 타고 훅 끼쳐왔다.

“공주에게 보호 마법을 씌워라!”

부관처럼 보이는 이가 명령을 내렸다. 곧 내 몸 위로 투명한 무언가가 씌워지며 몸에 있던 열기가 싹 빠져나갔다. 황제는 어안이 벙벙한 표정이었다. 내가 달려올 줄은 몰랐다는 것처럼. 아, 맞다. 내 얼굴을 아직 모르지? 아니, 알지 않을까? 부관처럼 보이는 사람도 나를 알고 있는 눈친데….

“헉… 헉…. 폐하, 저 리오니예요.”

오랜만에 달렸더니 옆구리가…! 나는 옆구리를 움켜잡고 황제의 대답을 기다렸다.

“…….”

내가 리오니라니까? 눈 빼고 다 가려도 잘도 알아봤으면서, 지금은 가리는 거 하나 없는데 왜 못 알아보지. 황제가 갑자기 칼을 떨어뜨렸다. 옆에 있던 부관처럼 보이는 이가 칼을 챙기며 황제를 불렀다.

“폐하, 샬리오니 공주가 왔습니다만.”

“누가 그걸 모르나.”

황제가 부관 같은 이에게 낮은 목소리로 타박하듯 읊조렸다. 알고 있는데 왜 대답을 안 하는 거지. 아…. 내가 투알린인 것처럼 속여서 아직 화가 많이 난 걸까. 나는 점점 주눅이 들기 시작했다.

“폐하?”

그가 한참을 미동 없이 서 있었다. 내 인내심도 점점 한계에 달할 때쯤 그가 다가와 나를 덥석 껴안았다. 단단하고 너른 품 안에 나는 푹 파묻혀 버리고 말았다. 그의 품 안에서는 전과 달리 머스크 향과 화약 같은 탄내가 뒤섞여 있었다.

“진짜야….”

진짜라니 무슨 말이지. 그럼 내가 가짜일까요.

“네. 진짜 리오니예요.”

“그림 보는 거 이제 질렸어.”

그는 그 말을 하며 내 머리칼에 입술을 비비적거렸다. 머리카락에도 신경세포가 있었나, 그가 입술을 움직일 때마다 나도 모르게 움찔거리게 된다.

그런데 그림이라니 갑자기 왜 엉뚱한 소리를 하실까. 일단 화 안 난 거 맞지? 내가 낑낑거리며 그의 품 안에서 벗어났다.

지금 전쟁 중, 협상 중 아니었나요. 황제 폐하. 수많은 사람들 한중간에서 둘이 부둥켜 껴안고 있는데 나도 엄청난 철면피는 아니라서 이 상황이 무척이나 쑥스럽다.

투알린을 비롯한 제국인들이 하나같이 입을 쩍 벌리고 우리를 쳐다보고 있었다. 내가 저기 있었어도 저런 표정 지었을 거다.

전쟁 중에, 갑자기 나타난 공주에, 이게 뭔 일이냐 싶을 테니깐. 품에서 겨우 빠져나왔는데, 그가 다시 나를 두 팔로 옭아매려 했다. 아니 지금 전쟁터에서 무슨 짓입니까! 나는 허둥대는 몸짓으로 가까스로 다시 빠져나왔다. 그의 미간이 꿈틀대기 시작했다.

“리오니, 이자가 하는 말이 사실인가.”

“물론 아니죠!”

나는 칼같이 부정했다. 페리안이 화들짝 놀라 소리쳤다.

“샬리! 나 구해 주러 온 거 아니었어?! 그런데 대체 어떻게 나온 거야? 분명 갇….”

옆에 있던 귀족이 다시 페리안의 입을 틀어막았다. 그 말을 들은 황제의 입가 한쪽이 삐뚜름히 올라가기 시작했다.

“살려둘 수 없다. 절대로.”

아, 쟤는 왜 매를 벌고 그래! 나한테 오냐오냐 자랐다고 뭐라 하더니 저놈 눈치 없는 거 보니깐 한숨이 나온다. 너도 나한테 그 말 할 수준은 아니다. 이놈아. 페리안이 아까 끌려 나와서 제일 앞에 있었다. 그가 기대 어린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그래도 안면이 있다고 나한테 얻어맞은 놈이 눈에 칼이 찔린다고 생각하니 심장이 선득였었다.

“폐하. 죽이지 않고도 처벌할 방법은 많지 않나요.”

“그런 귀찮은 짓을 뭐 하러…. 피 보는 게 무서워서 그러나? 물론 피를 안 보고도 죽이는 방법은 다양하니 걱정할 필요는 없다.”

피보다는 사람을 죽이는 게 더 싫었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죽어 나가는 곳이 전쟁터다. 그런 곳에서 내가 사람 죽는 게 싫으니 황제에게 사람을 죽이지 말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전쟁이 시작되기 전의 내 계획이었다면 모를까, 전쟁이 시작된 시점에서 나는 이미 외부인이 되어 버린 상황이었다.

이래서 무슨 설득을 하겠다고. 설득해 보겠다, 어쩐다 했지만 실제로 마주하니 참 막막한 것이었다. 생각과 실제의 그 차이가, 압박감에 온몸이 짓눌릴 것 같았다.

황제가 도착하면 협상 전에 만나 자초지종을 이야기한 뒤 설득하려고 했다. 하지만 투알린은 거부했고 상황이 다르게 흘러가기 시작했다.

특히나 변수가 많은 전쟁에서, 나는 원작이라는 틀에 갇혀서 대체 무슨 생각이었을까. 마치 거대한 소용돌이 속에서 하루살이가 된 것처럼 내 존재가 미약하게 느껴졌다. 심지어 내가 보고 있는 것은 제대로 시작된 전투도 아닌데 말이다.

황제와 눈을 마주했다. 투알린 왕족과 귀족들을 다 죽이면 또 황제의 소문이 안 좋게 부풀려질 텐데. 제국민들은 황제를 떠받들며 좋아한다지만 주변 왕국의 위정자들은 제 왕국민들이 제국으로 이주하는 것을 막기 위해, 왕족과 귀족들에게만 한정된 황제의 잔인한 면모를 부풀려서 퍼뜨리곤 했다.

특히 베고니아와의 전쟁 소문은 그것이 극심했다. 그 전말이 어떤지 아는 것은 오로지 고급정보를 취득할 수 있는 계층뿐. 대부분의 왕국민들은 와전되고 부풀려지고 진실과 한참은 먼 소문들을 전해 들을 뿐이었다. 베고니아의 왕국민들을 불 지르거나 약탈하고 황제와 병사들이 그들을 노예처럼 취급한다든지, 아니면 모두 몰살시킨다든지 하는 저급한 소문들 말이다.

내 눈썹이 자연스레 팔자로 처졌다. 소문도 소문이지만 내가 이것을 감당 할 수 있을는지. 정말로 페리안이 죽는 걸 막을 방법이 없는 걸까. 마음의 준비를 얼마나 해야 충격을 덜 받을 수 있을까.

“폐하께 누가 되는 소문이 돌게 될까 봐 걱정 돼요.”

“아아, 그 변변치 못한 소문. 신경 쓰지 않으니 걱정할 필요 없다. 그대가 그 소문을 믿는 건 아니지 않나.”

왕족과 귀족들을 몰살시킨 건 사실이니깐 현대에서 살다 온 내 기준에선 굉장히 잔인한 건 사실이었다. 믿는다고 하면 죽이지 않으실 건가.

“저도 폐하를 뵙기 전에는, 소문으로 성정을 어림짐작한 적이 있어요.”

“뭐?”

황제의 미간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지금은 물론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그런데 그전에는 폐하를 잘 몰랐으니까요.”

꽤 충격받은 표정으로 잠시간 있더니 그가 페리안을 돌아보며 냉소했다.

“헨리, 이놈을 끌고 가서 사지를 부러뜨려라.”

명을 받은 헨리라는 부관이 운이 좋은 놈이라며 중얼거렸다. 아, 페리안. 저것도 나에게는 거부감이 이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들은 그렇게 살아왔고, 그 기준이 나와 다르다. 그래도 착잡한 건 어쩔 수가 없었다. 이것만 해도 다행인가. 일단 목숨은 연명하지 않았나. 나중에 신관들에게 치료를 받으면 뼈가 온전히 붙을 것이다.

“내 몸에! 손대지 말…. 으읍.”

헨리가 페리안의 입을 틀어막고 끌고 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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