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제에게 하트를 심어주세요 16
* * *
모든 준비를 마친 황제가 투알린으로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폐하, 미래의 황후마마와 함께 개선하시기를 바라고 있겠습니다."
시종장 테너가 황제를 배웅하며 말했다.
"당연한 소릴."
황제를 위시한 최정예 선발대 100명이 제국을 떠났다.
"후발대는 필요 없겠지만 일단 준비는 해 두어야겠지."
테너가 점이 되어 사라지는 선발대를 바라보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좀 걱정되는군.”
여성에게 서투르셔서 제가 옆에 없어도 공주에게 청혼을 제대로 할 수 있으실지 뒤늦게 걱정이 되는 시종장이었다.
* * *
선발대의 선두에서 황제와 함께 옆에서 행군 중인 사령관에게 전서구로 쓰이는 팰컨이 도착했다. 팰컨의 다리에서 작게 접힌 종잇조각을 꺼내어 읽은 군사령관 블레인의 얼굴이 시퍼렇게 변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군단장 헨리가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독촉했다.
"블레인, 재밌는 거 있으면 혼자 보지 말고 좀 알려 주지 그래."
재밌는 거라니! 언젠가 저놈의 입을 야물게 꿰매 버리리라.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쉰 블레인이 황제의 곁으로 말을 몰았다.
"폐하, 샬리오니 공주가 투알린으로 출발했다고 합니다. 방문 거절을 듣고 오해한 것 같습니다만. 자기 때문에 전쟁이 일어났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 말을 전해 들은 황제가 말고삐를 당겨 멈추었다.
"리노아에서 투알린까지 마차로 이동 시에 얼마나 걸리지?"
"3일 정도 소요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말로 전속력으로 달리면 얼마나 걸리나."
군사령관 블레인이 잠시 머릿속으로 가늠하듯 턱을 쓸며 답을 내놓았다.
"최소 4일에서 5일 정도입니다. 다만 소형 트리뷰세티 때문에 행군이 지체될 수 있습니다."
"어디에서 온 소식인가."
"리노아입니다."
황제는 잠시 생각하는 듯 말이 없었다.
"투알린에 남아 있는 첩자 중에 공주에게 접근할 수 있는 자를 알아봐라."
그 말을 끝으로 제국의 선발대는 전속력으로 투알린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 * *
투알린은 고대 마법 병기를 한 번도 시험해 보지 못했다. 고대 마법 병기는 그 성능과 위력은 어마어마하지만, 내구성이 현저히 떨어져 몇 번만 사용해도 못쓰게 되어 버리기 때문이었다.
페리안 왕자가 발견한 고대 마법 병기 3구는 오랜 세월이 지나 낡긴 해도 전혀 쓰인 흔적이 없는 새것이었다.
고대 마법 병기의 위력이 얼마나 뛰어난지는 프레타스 제국이 종종 전쟁터에서 그것들을 사용했기에 알 수 있었다.
마법 병기를 한 번 사용하는 위력이 고위 마법사 10명과 맞먹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제국은 이미 선선대 황제가 그 병기의 사용을 다 해 고대병기의 수명이 다했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처음에는 시험적으로 리노아에 사용하려고 했었다. 그런데 모처럼 얻은 몇 번 쓰지도 못하는 고대 마법 병기를 리노아에게 사용하기에는 가성비가 맞지 않아 너무도 아까웠다.
좀처럼 결정하지 못하고 있는데 베고니아와 제국의 전쟁이 터졌다. 심상치 않아 알아보니 제국이 왕국들을 상대로 첩자를 심고 이간질을 한 것을 알 수 있었다. 그것을 눈치챈 투알린은 대대적으로 물갈이에 들어갔다. 그리고서는 마침내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고대 마법 병기가 빛을 발할 시기가 왔다고 믿었다. 제국이 선전 포고를 했을 때는 희열까지 느꼈다.
정찰대가 전해온 바에 따르면 황제가 곧 선발대를 데리고 도착한다고 한다. 협상 먼저 할 거라고 선발대만 데리고 온 모양인데 투알린은 협상할 생각이 전혀 없었으니 우스운 일이었다.
군대를 대열에 맞춰 늘어세우고 제국의 선발대를 맞을 준비를 했다. 그사이에 고대 마법 병기 3기가 멋스럽게 앞을 장식하고 있었다. 투알린 국왕과 그 이하들은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제국인들이 성문을 넘어 들어오고 있었다. 고작 백 명 남짓한 인원이었다. 자신들을 얼마나 우습게 봤으면 저런 인원으로 온단 말인가. 투알린 국왕은 속이 뒤틀렸지만 이제 그것도 곧 끝이라 여기며 마음을 여유롭게 다잡았다. 멀리서 오던 제국인들이 일정 거리에서 멈추어 서고 대치 상태에 들어갔다.
"오시느라 수고가 많았소. 제국의 황제여."
이제 투알린은 제국을 높일 이유가 없었기에 투알린 국왕은 막 나가기로 했다.
"보아하니 협상할 생각이 없어 보이는군. 고대 마법 병기를 사용하려 한다지? 어디 한번 사용해 봐. 봐 줄 테니깐."
샬리오니가 빨리 보고 싶은 황제는 인사치레 따위는 집어치우고 본론으로 넘어갔다. 투알린이 고대 마법 병기를 가지고 있다는 걸 오는 도중 파악했나 본데 이미 늦은 것을 어찌하랴, 국왕은 황제를 가엾게 쳐다보았다. 일장 연설 후에나 선보이려 했던 병기를 황제가 첫마디부터 언급해서 투알린 국왕은 불쾌했지만, 곧 딱한 처지가 될 테니 좋게 넘어가기로 했다.
"그렇소. 그런데 고작 이렇게 적은 인원을 끌고 왔으니 사용하기가 매우 아쉽구려."
그것은 사실이었다. 이렇게 적은 인원에게 사용하려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그들은 딱 봐도 각이 잡혀있으니 최정예라는 것은 의심할 필요가 없었다.
"후회하지 마시오. 황제. 이렇게 목숨을 함부로 굴리다니 정말 실망했소이다."
무슨 배짱인지는 모르겠으나 황제는 제 목숨을 도외시한 채 대놓고 자신에게 마법 포를 쏘라고 하고 있었다. 굳이 주는 기회를 마다할 이유는 없었다. 황제는 별말 없이 턱을 까닥였다. 해 보기나 하라는 듯. 그에 투알린 국왕은 심통 난 얼굴로 명령을 내렸다.
"모두 한꺼번에 발포해라."
군병들이 고대 마법 병기에 마나를 불어넣고 장전을 하기 시작했다. 그 순간이었다.
콰아앙! 콰앙!
제1기에서 갑자기 여러 번의 큰 폭발이 일어나며 큰 불길이 주변을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이… 이게 무슨 일이냐!"
투알린 쪽의 마법사들이 힘을 모아 불길을 수습하기 시작했다. 화기를 진압한 현장에는 그 주변에 있던 군병들의 초토화된 시신들이 나뒹굴고 있었다. 한순간 교전 지역이 침묵에 휩싸였다. 하지만 방심은 금물이었다.
콰쾅- 콰아앙!
마법 병기 제2기도 연이어 터지며 불길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제3기를 만지던 병사들은 그대로 얼어붙었다. 정신 차린 그들이 마법 병기에서 서둘러 몸을 물리기 시작했다. 마법사들이 제2기까지 화기를 진압하자 역시 드러난 모습은 참혹하기 그지없었다. 투알린측은 할 말을 잃고 모두 쇼크에 빠졌다. 저들이 유일하게 믿고 있던 마법 병기가 어째서….
"끝났나?"
황제는 별 표정의 변화 없이 평온한 어투로 국왕에게 물었다. 마치 이럴 줄 알고 있었다는 말투였다.
"알고… 알고 있었소?"
"우리 선선대 황제가 발견했다는데 내가 모르고 있었을까."
투알린 국왕은 너무도 화가 났다. 제국은 알면서도 모른 체하며 자신들이 자폭하길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 우리가 발견한 고대 병기가…. 이미 발견되었던 거라고?"
황제는 그가 하는 말을 무시하고 제 할 말만 하기 시작했다.
"저런, 저렇게 박살 나서 아쉽겠군. 내가 투알린 왕국을 위해 선물을 준비해 왔으니 두 손으로 받아라. 그대들을 위해 소형 트리뷰세티 50기를 친히 가지고 왔으니 말이다."
"소형 트리뷰세티…? 그… 그건 오래전에 이미 사용을 다 했다고 들었소만…!"
"아아, 그래 알고 있군. 선선대 황제가 소형 트리뷰세티 50기를 사용을 다 하긴 했지. 그런데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게 총 100기였거든. 나머지 50기를 가지고 와봤지. 그대들이 고대 마법 병기로 우리를 맞이한다고 하니 우리도 그에 똑같이 보답해야 하는 게 예의라고 생각해서 말이야."
"이… 이건 말도 안 돼! 협상…! 협상을 하기로 하지 않았소."
황제가 눈을 부드럽게 휘며 진한 웃음을 흘렸다.
"협상할 생각이 없는 것 아니었나? 원한다면 해줄 의향은 있지만 할 건 해야지. 시작해라."
그의 말이 끝나자 투알린을 둥글게 포위하며 50명의 트리뷰세티거(소형 트리뷰세티를 다루는 자들을 지칭)들이 어깨에 고대 마법 병기를 올리고 그들을 향해 조준하기 시작했다.
그들이 소형 화포처럼 생긴 마법 병기의 탄을 쏘자 투알린 왕족과 귀족들 그리고 군대 전체를 감싸듯 주변으로 화염의 불길이 거세게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것을 확인한 황제의 뒤에 도열해 있던 사십 명이 넘는 마법사들이 일제히 바람을 일으켜 불길이 이는 곳에 돌풍을만들었다.
돌풍과 화염이 만나 불기둥이 여기저기서 치솟자 투알린인들은 전부 아연실색해져 전의를 상실케 하였다. 단 한 번만 쏘았을 뿐인데 50개의 불기둥이 투알린의 군대를 모조리 감싸 안고 언제든 휘몰아칠 준비를 하고 있었다.
투알린 군사들과 귀족 왕족 모조리 불기둥 안에 갇혀 벌벌 떨었다. 투알린 쪽의 마법사들이 안간힘을 쓰며 불기둥을 저지해 보려 했으나 힘의 차이, 인력의 차이로 단 하나도 무력화시키지 못했다. 그들이 그것을 보고 절망에 빠져 있을 때였다. 황제가 투알린 쪽으로 한 발짝 움직이며 말했다.
"그래, 이제 협상을 좀 해 볼까?"
황제가 천천히 불기둥이 만들어낸 원의 중앙에 있는 국왕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그의 뒤에 도열해 있던 마법사들이 황급히 황제에게 여러 겹의 보호막을 겹겹이 씌워 올렸다.
황제가 걸어가는 길 앞쪽에서 불기둥이 양옆으로 장엄하게 갈라지기 시작했다. 마치 올마이티의 강림인 양, 이제는 황제의 머리 위로 빛 가루까지 팔랑거리며 내려앉고 있었다. 그야말로 완벽한 위정자의 보여주기식, 멋짐을 뿜어내는 모습.
'휴우…. 성공적인 연출이었다. 공주님이 잘 보고 계셔야 할 텐데….'
뒤에서 마법사 A가 한 손으로는 빛 가루를 뿌리고, 한 손으로는 이마에 흐른 땀을 훔치며 생각했다. 황제의 위엄이 넘치는 등장에 투알린인들은 모두 입을 쩍 벌리고 쳐다보았다.
'굳이 이렇게까지….'
잠시 동안 투알린인들은 어안이 벙벙했다. 그러나 곧 그들을 둘러싼 불기둥 속에서 온몸이 자글자글 익는 느낌에 이를 악물었다. 투알린 마법사는 최대한 불길 속에서 그들을 방어하고 있었지만, 마법사들의 체력이 다하면 이것도 언제까지 이어질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었다. 모두는 이 뜨거운 공간을 조금이라도 빨리 벗어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협상을 시작하도록 하지."
선발대 100명을 끌고 왔을 때부터 시작해서, 홀로 걸어 들어와서 하는 협상까지 시종일관 투알린 왕국을 무시하는 어투와 태도. 국왕이 독기어린 표정으로 황제를 노려보았다.
"무엇을 원하시오!"
"왕국을 넘겨라."
"뭐… 뭐요? 그게 어찌 협상이라고 할 수 있소! 전부 달라고 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단 말이오!"
국왕은 제국이 원하는 건 일단 전부 맞춰 주리라 생각했지만 다 넘기라는 말에는 참을 수가 없었다. 그들이 원한다면 공물이든 뭐든 다 바칠 생각이 있었다. 투알린 왕국만 유지할 수 있다면 무엇이든 바칠 수 있건만, 이게 무슨 협상이란 말인가. 투알린 국왕의 말에 황제가 그를 한심하게 쳐다보았다.
"말귀를 잘 못 알아듣는군. 내가 언제 전부를 달라고 했지? 네 목숨까지 달라고 한 게 아니다. 왕국만 넘기면 된다는 말이다."
"그러니까! 내 목숨…?"
황제는 답답한지 고개를 뒤로 휙 돌리더니 손가락을 까닥이며 누군가를 불렀다. 황제의 신호를 확인한 군사령관 블레인과 군단장 헨리가 다가왔다.
"이런 머저리들이 어떻게 왕국을 다스리는지 모르겠군. 내 말을 못 알아듣는 것 같으니 잘 알아듣게 설명해 줘라."
국왕이 다급히 황제를 불렀다.
"프레타스 황제여. 부디 그 제안을 재고해 주십시오. 투알린을 버리라니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투알린 국왕이 부들거리며 분노를 숨기기 위해 고개를 숙이며 말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