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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에게 하트를 심어주세요-14화 (14/97)

황제에게 하트를 심어주세요 14

* * *

"배상금이… 얼마나…."

"알고 싶어? 배상이 얼마큼 책정되었는지 모르고 온 거야?"

그가 우스운 소리를 들었다는 듯 나를 쳐다보았다. 왕자가 말한 대로라면 꽤 많은 배상금이 책정되었다는 것을 유추할 수 있을 뿐이다. 많이 무리하셨을까. 귀족들을 어떻게 설득하신 거지.

"배상금이 어떻게 책정이 되었는지 알려 주세요."

"네가 모르는 걸 보면 국왕이 너에게 알리고 싶지 않은 모양인데 내가 알려줄 필요가 있을까?"

그는 아까부터 사람 속을 살살 긁는 말만 하고 있었다.

"제국과의 전쟁에 자신 있으신가요?"

"말했지만, 우리는 너를 그저 제국이 보낸 전쟁을 일으키는 명분으로 보고 있을 뿐이었거든.

근데 리노아 측에서 온 배상 목록을 보니까 황제가 너 쫓아서 온다는 게, 마치 사실인 것처럼 보이잖아. 아니면 리노아 왕국 혼자 착각하고 있다거나."

그는 난감하다는 듯 검지로 눈 옆을 긁었다. 더 이상 제국이 나 때문에 전쟁을 일으킨 것처럼 보이는 건 좋지 않았다. 정말로 인질로 쓰일지도 모를 일이었다. 차라리 저렇게 내 가치가 형편없다고 생각해 주면 좋은 일이지. 갑자기 인질로서의 가치가 올라가면 곤란하다.

"사실대로 말할게요. 황제가 저 때문에 오고 있다는 건 아마 왕자님 말대로 명분에 불과할 거예요 제가 투알린 귀족행세를 해서 황제가 매우 화가 났거든요. 저는 황제가 무서워서 도망쳤고 리노아로 바로 돌아온 거예요."

"흐음… 황제가 네가 좋아서 쳐들어온 것도 아니라면 여기엔 왜 온 건데? 물론 제국이 베고니아에 한 짓을 보면 고작 화풀이하러 전쟁을 일으켰다는 말이 신빙성이 없는 건 아니지만…."

페리안이 미심쩍은 얼굴로 물었다.

"왕자님의 말대로 황제가 나를 명분으로 투알린에게 선전 포고했다고 생각했으니까요. 저 때문에 벌어진 일이니 제가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아바마마께서도 그렇게 하는 게 좋겠다고 했구요. 저는 황제에게 용서를 빌러 온 거예요."

그 말을 듣고 페리안이 크게 웃었다.

"푸흐흐… 샬리! 너 정말 예전부터 단순하다 생각하고는 있었지만…. 너 때문에 화가 난 황제가 네 말을 듣고 전쟁을 멈출 거라고? 기억을 잃어도 여전히 너는 너구나… 푸훗. 리노아 국왕은 대체 무슨 생각으로 널 보낸 거야? 우리야 배상을 해 주면 좋지만 말이야."

그래. 그렇게 날 멍청하고 이용가치가 없는 사람으로 여겨 줘라. 인질만큼은 정말로 사양한다. 내 목에 칼을 대고 황제를 위협할 거라 생각하니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지금 제 처지를 보니 다 맞는 말이라 할 말이 없군요."

투알린으로 오고부터 내 예상과 자꾸 어긋나서 혼란스러웠다. 다만 확실한 건 인질만큼은 될 수 없었다.

"뭐 어쨌든, 너한테 반하지 않는 남자가 있긴 하네. 황제도 아무나 하는 게 아닌가 봐. 정말 목석같은 인간 아냐? 아, 2년 전에 내가 그랬는데 말이야. 지금 네 분위기가 달라져서 다시 흥미가 돋는 참이거든."

웃음을 그친 페리안이 이번엔 흥미진진한 눈을 하기 시작했다.

"농담하지 말고 이제 말해 주세요. 정말 제국과 전쟁이라도 할 참인가요? 상대는 베고니아를 말살시킨 제국인데요."

"우리는 제국이 베고니아에 선전 포고할 때부터 낌새를 알아챘거든. 그때부터 첩자들을 모조리 처단했지. 그런데 우리가 얼마 전에 아주 좋은 걸 발견해서 말이야. 그걸 써먹을 곳을 찾고 있었는데 영 기회가 없지 뭐야. 제국이 선전 포고하지 않았으면, 하마터면 리노아에 시험 할 뻔했다고."

이건 또 무슨… 원작 갖다 버려. 진짜 맞는 게 하나도 없다. 내가 모르는 것투성이다.

"그게 대체 무슨 말이에요? 리노아에게 전쟁이라도 일으킬 거란 말인가요?"

"아 뭐 그렇게 될 뻔했지 뭐야. 테일러한텐 미안하다고 전해 줘. 이번에 제국을 잡으면 내가 형님에게서 왕세자 위를 가져올 수 있을 거 같아서 말이야. 아니, 이제 황태자인가?"

자꾸 빙빙 돌리지 말고 말해 주지. 답답함에 뒤로 넘어가겠다.

"그게 뭐 길래 당신들이 제국 앞에서 그렇게 당당할 수 있는 거죠?"

"알려줘? 이건 비밀인데…. 뭐 상관없나? 이제 와서 알아도 막을 수 있을 리가 없을 테고 말이야. 고대 마법 병기. 내가 발견한 유적지에서 나온 거거든."

그게 뭐지? 고대 마법 병기가 무엇인지 나는 전혀 알 수가 없었다. 정말 저 고대 마법 병기라는 게 제국을 상대할 수 있다면, 투알린 왕국이 저렇게 흥분해 있는 것도 이해할 수 있었다. 내 머릿속이 복잡해졌을 때였다.

"배상금은 없던 거로 해 줄까?"

"그게 무슨 소리예요?"

이번에는 무슨 꿍꿍이인지 페리안의 표정이 짓궂게 변했다.

"리노아 왕국 사정 내가 다 아는데, 뭘. 이렇게 배상해 주면 네 왕실이 귀족들의 꼭두각시가 되는 거 시간문제가 아닐까 싶어서. 내가 좀 걱정이 되잖아. 꽤 알고 지내는 사인데 말이야."

역시 무리한 배상이었던 모양이다. 나는 한없는 죄책감으로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조건이 뭔데요?"

"조건은 두 가지. 나랑 결혼해. 그리고 곧 제국이 될 우리의 속국이 되어 주는 것도 함께 포함해서."

너무 엄청난 헛소리를 들어서 나도 모르게 입이 헤 벌어졌다.

"우리 같은 처지에 연애결혼이 가당키나 해? 너야 오냐오냐 자라서 실컷 연애는 하고 있지만, 너도 결국은 알고 있잖아. 마지막은 정략결혼이라는 거."

"왕자님이 나랑 결혼해서 얻는 게 뭔데요?"

"네 이미지. 네 외모가 주변 왕국인들 사이에서 얼마나 유명한지 모르는 건 아닐 거 아냐.

특히나 우리같이 접해 있는 이웃 왕국은 말이야. 꽃 같은 외모의 사랑스러운 공주님이면 왕세자비로서는 충분히 차고 넘치지. 제국이 되면 내가 황태자비로 만들어 줄 테니까."

어디서 김칫국을 한 사발 드링킹 하고 오셨나 보다. 이 왕자님은. 본인이 아직 형한테서 왕세자 자리도 가져오지 못했으면서. 무슨 벌써 황태자비를 운운한단 말인가.

"그때 말이야. 2년 전에 우리 왕국민들이 너 데려오는 줄 알고 얼마나 들떴었다고? 내가 너 데려올 거라고 드레스 하나하나 손수 고르고 보석까지 주문 넣은 거 모르지? 네가 파투내서 내가 얼마나 쪽팔렸는지, 아~아직도 그 생각하면 탈탈 털리는 기분이야."

더 이상 페리안의 헛소리를 들어줄 마음이 없었던 나는 이 대화를 끝내기로 했다.

"저는 전쟁을 멈추려고 온 거지, 결혼하러 투알린에 온 게 아니에요."

"아직도 네가 전쟁을 멈출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뭐야, 지금 사귀는 사람 있어? 당연한가…. 아… 혹시 아까 그 기사단장이랑? 여전한가 보네."

페리안이랑 얘기할수록 뒷골이 당기는 느낌이다. 제 할 말만 실컷 하고 단정 짓고 등짝 스매싱을 퍼붓고 싶은 심정이었다. 원웨이 토킹은 너 혼자 해라.

"기사단장과는 그런 사이가 아닙니다. 모욕적인 언사는 그만하시고 이만 나가 주세요. 왕자님."

그에게서 얻을만한 정보는 다 얻은 것 같다. 끝까지 소리 지르지 않고 인내한 나를 칭찬해.

"그럼 나랑 결혼해. 이미 아바마마도 허락했거든. 당장 오늘 약혼부터 하고 바로 결혼 진행하자. 황제가 유부녀 잡으려고 전쟁 일으키는 파렴치한 놈으로 만들어 보자고. 재밌을 거 같지 않아? 제국 이미지에 커다란 스크래치 남기는 거 말이야."

얘 좀 봐라. 간신히 붙잡고 있던 퓨즈 나가게 하네. 막. 아놔, 더 이상 못 참겠다. 너 인마.

"뭐 이 미친놈아? 아까부터 진짜 보자 보자 하니까. 아무 말이라고 그게 다 대잔치가 되는 줄 알아?! 이 잔치 밥도 못 얻어먹을 놈아!!"

"뭐… 뭐?? 방금 뭐라고…."

나는 벌떡 일어서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소파 주위에 딱딱한 쿠션이 내 손에 잡혔다. 나는 그걸 잡아채서 페리안의 등짝을 퍽퍽 내리쳤다.

"내가! 너랑! 결혼하면! 사람이! 아니다! 알아?! 네 헛소리! 헉헉. 들어주러! 온 거 아니라고!!"

있는 힘껏 세차게 내려치다 보니 숨이 차다.

"아악! 아씨… 그만해. 미쳤어? 악… 아파!!!"

"그래! 미쳤다! 한 번만 더!! 헉헉… 그딴 소리 해라!!"

이래도 나랑 결혼하고 싶냐. 어?

* * *

내 체력이 할 수 있는 한 힘껏 페리안에게 등짝 스매싱을 날리고 뻗어 버렸다. 나한테 곤죽이 되도록 얻어맞은 페리안은 정신이 가출했는지 멍한 상태였다.

"안 나가? 또 맞고 싶어?"

결혼해서 황제를 도발하자는 소리를 들은 순간부터 나는 그를 막 대하기 시작했다. 이제 다시는 그런 헛소리를 꺼내지 못할 것이다. 이 시대의 매 맞는 남자가 되고 싶은 게 아니라면. 내가 소리를 높이자 그제야 정신을 차린 페리안이 나를 쳐다보더니 2차 헛소리를 감행하기 시작했다.

"나를 때린 여자는 네가 처음이야…."

나는 다시 쿠션을 집어 들었다.

"그래, 처음이야?! 두 번째도! 세 번째도! 찰지게! 때려 주지!! 나가! 나가라고!!"

"아악! …이제 그만 때려도 되잖아! 윽…. 충분히 네 의도는 먹혔으니까…! 아프다고, 샬리!!"

뭔지 몰라도 네가 생각하는 그 의도 안 듣고 싶거든? 나는 그를 밖으로 밀어 버리고 쾅 소리가 나게 문을 닫았다. 미친놈 상대했더니 온몸의 기운이 쭉 다 빨린 것 같다. 일단은 생각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고대 마법 병기를 발견했고 그게 제국에게 치명타가 될 거라 확신하고 있었다.

나는 정보의 가뭄에 바짝 말라가고 있었다. 아는 게 없으니 무엇을 어떻게 해 볼 수가 없었다. 머리를 움켜잡고 끙끙거리고 있는데 누군가 노크를 하더니 기사 한 명이 고개를 내밀었다.

"무슨 일인가요?"

내 방문 앞을 감시하던 기사 중 한 명이었다.

"샬리오니 공주님, 저는 루카라고 합니다. 프레타스 제국의 황제 폐하 밑에서 수행하고 있는 기사입니다."

그가 속삭이듯 내게 말을 걸었다.

‘첩자.’

페리안이 모조리 잡아 죽였다더니 그것도 아닌 모양이었다. 그렇다면 황제는 내가 누구인지도 이미 다 파악이 끝났겠지. 황제가 이중삼중으로 첩자를 심어놓은 걸 보니 왠지 모르게 속으로 안심하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황제는 이미 고대 병기에 대해 알고 있을 가능성이 컸다. 아니 확실히 알고 있을 것 같았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루카. 폐하께서 그대를 내게 보낸 건가요? 그런데 제가 그걸 어떻게 곧이곧대로 믿죠?"

돌다리도 두들겨보고 건너라고 이제 누구든 쉽사리 믿기 힘들었다.

"그…. 폐하께서 전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리오니. 내가 갈 때까지 루카 옆에 붙어있어라.'라고 하셨습니다만…."

리오니는 내가 황제에게 알려준 다른 이름이었다. 투알린 기사가 알만한 내용은 아니었으니 그가 황제에게서 얻은 정보가 맞는 것 같았다.

"알겠어요. 루카를 믿을게요."

완전히는 아니지만, 현재로선 그의 말을 믿어 보기로 했다.

"루카. 폐하에게 전쟁을 그만두시라고 전해주시면 안 되나요? 투알린이 고대 병기를 가지고 있다는데 그걸 알고도 오시는 거예요?"

"폐하는 구할 이상의 승산이 있을 시에만 움직이십니다."

"승산이 없을 때는요?"

"그럼 있게 만드시죠."

루카가 해맑게 웃으며 대답했다. 황제에 대한 충성심과 믿음이 확고하다. 무조건 이길 판으로 만든다는 소리인데 그게 허튼소리처럼 안 들린다는 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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