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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에게 하트를 심어주세요-12화 (12/97)

황제에게 하트를 심어주세요 12

3. 전쟁 발발

"내 방문 요청은 어찌 되었나요. 내가 제국에 방문 요청한 건은요!"

내가 급하게 끼어들자 시종장이 잠시 당황했다.

"예. 이 소식은 그 때문에 들은 겁니다. 샬리오니 공주님의 방문 요청을 거절한 이후로 전쟁을 한다고…."

그럴 리가 없다. 뭔가가 잘못되었다.

"이름…. 내 이름 리오니라고 넣었어요…?"

내 목소리는 낮게 가라앉아 있었다.

"샬리오니 공주님의 방문 요청이라고…."

"내가 리오니의 이름으로 넣으라고 했잖아!!!"

아아… 시종장의 잘못이 아닌데…. 나는 지금 내 감정을 스스로 컨트롤 할 수 없었다.

"데려와, 데려오세요. 그 전령 당장 데려오세요!"

손이 벌벌 떨렸다. 전쟁이, 그다음 타깃이 포르토 왕국이 아니라 투알린이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가 뭐지? 황제는 정확히 무엇 때문에 투알린을 치는 거지? 나를 다시 잡아 가두려고? 아니면 도망쳤기 때문에 화가 나서? 정확히 알 수 없으니 답답했다. 나는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덜덜 떨리는 내 손을 오라버니가 꽉 잡았다.

"이미 늦었어. 어떻게 된 건지 상황 파악을 하는 것이 먼저다."

떨림이 점점 온몸으로 퍼지기 시작했다. 나는 가까스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다른 시종이 들어왔다.

"전하, 프레타스 제국과 투알린 전쟁 상황 보고가 들어 왔습니다."

"고하라."

시종이 나를 흘긋 바라보았다.

"샬리오니 공주님의 방문 요청을 거절 직후 개전을 선포했다 합니다. 다만 그전에 협상 테이블에 먼저 앉는다고, 그 내막은 아직 드러나지 않은 상황입니다."

협상이 먼저 있을 예정이라고? 다시 다른 시종이 들어왔다. 전쟁 상황을 전하는 이가 시종장에게 귀엣말을 했다.

"현재 황제가 협상을 위해 투알린으로 출발했다고 합니다."

시종장이 건네받은 귀엣말을 국왕에게 고했다. 베고니아 협상 때와는 전혀 다른 결과였다. 황제가 직접 협상을 하러 오고 있다 한다.

"너희들의 말이 사실이라면 협상의 내막이 뭐가 될지는 대충 짐작이 가는구나."

아바마마가 한 손으로 머리를 짚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투알린에는….”

“알리지 않는 게 좋겠습니다.”

“우리가 입 닫고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고 해도 결국엔 타국에서 전말을 알아챌 것이다. 최근 들어 제국이 공격적인 태세로 전환하지 않았느냐. 모두 제국의 행보를 주시하고 있어. 만약 그렇게 된다면 우리가 고립되는 것은 그다음이지. 타국에 전쟁이 씨앗이 될 빌미를 주어서는 아니 된다. 그때는 정말로 끝이야.”

타국에 전쟁을 일으켜 놓고 나 몰라라 하는 것은 타국과 등을 지겠다고 공공연히 선포하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국제적 망신과 국가 간의 교류 거부 등으로 왕국은 고립이 될 것이고, 그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귀족들이 반란을 일으키리란 건 뻔한 수순이었다. 아니면 타국이 만만한 리노아에게 전쟁 선포를 할 수 있는 빌미를 줄 수도 있었다.

내가 투알린에 먼저 가서 전쟁이 일어나기 전에 황제를 설득해야 할 것 같은데…. 제국에서 투알린보다, 리노아에서 투알린의 거리가 훨씬 더 가까웠다. 리노아와 투알린은 인접해 있는 이웃 국가이기 때문이다. 아마 그가 도착하기까지 며칠은 더 시간을 벌 수 있을 것이다. 내가 먼저 투알린으로 가서 황제를 기다리는 것이다.

"제가 투알린으로 먼저 가서 황제를 만나 설득할게요."

내가 가지 않으면 전쟁은 필연적으로 시작된다. 다만 걱정되는 것은 리노아와 투알린에 있을 후폭풍이었다.

운이 좋아 내가 황제를 설득해서 전쟁을 멈추더라도, 리노아는 투알린에게 전쟁이 발발하게 될 수밖에 없었던 원인에 대해 배상을 해 주어야 할지도 모른다.

안 그래도 위태한 리노아 왕권이 귀족들에게 휘둘릴 수 있었다. 이 일을 빌미로 귀족들에게 책잡힐 걸 생각하니 속이 시끄러웠다. 내가 초래한 이 상황에 스스로 화가나 입술을 꾹 깨물었다. 눈물이 핑 돌았다. 베고니아왕국 하나로 끝내고 싶었던 제국 전쟁이 결국 다시 시작되었다.

"가지 마. 곧 전쟁터가 될 그곳을 가겠다고? 절대 안 될 말이다. 황제가 네 말을 들을 거라 장담할 수 없어."

오라버니가 굳은 얼굴로 강경하게 반대했다. 떨리는 내 손을 꼭 잡아 주고 있던 그의 손 위로 나머지 손을 다시 덮었다.

"제가 안 가면 어떻게 해요. 황제가 멈추지 않는다는 거 아시잖아요."

이제 오라버니도 알고 있잖아요. 황제가 왕국들을 제 손아귀 위에 놓고 마음대로 가지고 논다는 걸. 이미 순서가 뒤집혔는데 다음이 우리가 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저 그가 원하면 시작되는 전쟁이었다. 샬리오니의 몸에 들어왔을 때부터 내게는 선택권이 없었다. 나는 어떻게든 이 전쟁을 막아야 했다.

"샬리, 투알린으로 바로 갈 준비를 해라."

아바마마가 침중한 목소리로 투알린으로 가는 길을 허락했다.

"무슨… 안 됩니다. 절대 안 됩니다!"

오라버니가 벌떡 일어나서 소리쳤다. 국왕의 명에 반하는 왕세자라니, 처음 보는 모습이었다.

"저 녀석이 벌인 일은 스스로 수습해야지. 사고 한번 크게 쳤구나. 샬리. 하지만 약속해 주려무나. 반드시 황제를 설득한다고."

"샬리를 보내다니요…. 이건… 말도 안 됩니다."

오라버니는 입술을 짓씹더니 인사도 없이 응접실을 나가 버렸다. 그가 나가고 우리는 잠시 침묵했다. 나는 무거운 무게 추를 단 듯 가슴이 먹먹했다.

"내게도 샬리, 네 뒷수습을 할 날이 오는구나. 매번 네 오라비가 그 기회를 빼앗아가서 내게는 영영 차례가 돌아오지 않을 줄 알았지."

아바마마가 다가와 나를 껴안고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이번 일로 리노아가 받게 될 손해가 얼마나 큰가요. 아바마마."

"너는 그런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네가 해야 할 일만 생각해라."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걸 꾹 참았다. 아바마마의 옷깃을 적시는 일은 없었으면 해서.

* * *

마법 통신구로 내 방문을 투알린 왕국에 넣은 상태다. 한시가 급한 나는 그들에게 답이 오기도 전에 떠날 채비를 했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혹시나 그들이 방문을 거절하더라도 투알린에 가야 하기 때문이다. 티나는 간단히 내 짐을 싸고 있었다. 그녀의 눈가가 발갰다. 나는 짐을 싸고 있는 티나의 뒤로 다가가 어깨를 감싸 안았다.

"티나, 잘 해결하고 돌아올게."

말없이 짐을 싸던 티나가 움찔하더니 고개를 숙인 채 뒤돌아 나를 꼭 끌어안았다.

"제국이 무서워요, 공주님. 우리 왕국까지 공격하면 어떻게 해요?"

"내가 그런 일만은 일어나지 않게 할게. 폐하가 내 말이면 끔벅 죽더라니깐."

나는 작게 웃으며 티나에게 허풍을 떨었다. 그러자 티나가 울상인 채 입꼬리가 올라갔다. 울든지 웃든지 둘 중에 하나만 해. 티나. 안 그러면 엉덩이에 뭐 난다는 얘기가 있어. 다들 내가 사지에 제 발로 죽으러 가는 것처럼 군다. 나도 위험을 인지하고 있어서 만에 하나를 대비해 티나를 데려갈 수 없었다. 끝까지 따라간다는 티나를 말리는 데 힘들었다.

"저 없이 괜찮으시겠어요? 시중들 사람이 아무도 없잖아요. 다른 시녀들도 전부 안 데려간다고 하시고…."

"시중인은 투알린 왕국에 요청하면 되니깐 걱정할 필요 없어. 티나."

뭐, 운이 안 따라준다면 전쟁이 나서 눈 먼 칼에 맞아 죽을 수도 있겠지. 그때는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깐. 최악의 가정은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어 좋았다.

어마마마는 내가 투알린의 전쟁터로 간다는 소식을 듣고 쓰러지셨다. 내내 그녀의 손을 잡고 깨어나길 기다렸지만 끝내 의식을 차리지 못하셨다. 오라버니는 내게 가지 말라고 화를 내고 애원하다가 끝내는 말이 없었다. 시간이 촉박했기에 나는 그를 설득하지 못하고 출발해야 했다.

내 호위로는 아레인과 왕실 기사단 스무 명이 동행하게 되었다. 마차에 오르려는데 아레인이 손을 내밀었다. 마차 문에 이마를 찧었던 생각이 나자 설핏 웃음이 나왔다. 아레인도 나를 보며 희미하게 미소 짓고 있었다.

“가지 않으시면 좋겠습니다.”

그가 내 손을 강하게 움켜쥐었다. 아레인은 계속 가지 말라고 했다. 나도 가고 싶지 않았다. 그냥 아무것도 모른 척하며 숨고만 싶었다.

전쟁 나는 게 무서워서 막고 싶을 뿐이었는데…. 그렇다고 가지 않자니 나중에 돌아올 후폭풍이 두려웠다. 이번 사건의 전말은 결국 알음알음 다 알려지게 되어있었다. 전쟁이 터졌는데 주시하지 않는 나라가 어디 있을까. 부디 내가 황제를 막을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 * *

도착한 투알린의 분위기는 내가 예상했던 것과 아주 많이 달랐다. 오면서 보았던 군사들은 이미 훨씬 많은 수가 준비되어 있었고 각이 잡혀있었다.

우왕좌왕할 줄 알았던 그들에게는 전쟁의 공포와 두려움이 전혀 없었다. 오히려 무언가에 흥분해 있었다. 도저히 제국과 전쟁을 앞둔 왕국의 모습이 아니었다. 이건 오히려 리노아가 제국에 선전 포고 당했다고 생각할 정도로 극과 극의 분위기였다.

우리가 도착한 시간은 오후였고 투알린 국왕은 우리를 티타임에 초대했다. 개전의 긴장감은 온데간데없고, 티타임 초대라니. 지금이 무슨 상황인지 알 텐데, 좀처럼 그들의 속내를 알 수 없었다. 예상한 분위기와 달라 나는 더 바짝 긴장해 있었다. 우리가 막 티타임 장소인 궁의 정원으로 발을 디딜 때였다. 투알린의 기사가 리노아 왕실 기사단들을 제지했다.

"무기를 소지하고 들어가실 수 없습니다. 놓고 가시거나 아니면 밖에서 대기하십시오. 대동하실 수 있는 인원은 5명 이하로 제한됩니다."

아레인이 나를 바라보았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아레인과 4명의 왕실 기사들의 소지품에서 무기류를 모두 건네받았다. 어차피 나머지 기사들은 티타임에 대동하지 않았기에 대기할 기사는 없었다. 티타임 장소인 정원으로 가는 도중에 아레인이 미간을 찌푸렸다. 그는 목소리를 낮춰 내게 속삭였다.

"공주님, 사방에 보이지 않게 사람들이 깔렸습니다."

나는 그 말에 걸음을 멈출 뻔하였다. 마치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굴면서도 우리를 경계하고 있었다.

"이게 무슨 뜻인 것 같아요. 아레인? 호의적이지 않을 거라 예상은 했지만…. 경의 말대로라면 우리를 아예 적으로 대하고 있네요."

"예감이 좋지 않습니다. 지금이라도 돌아가시는 건 어떻겠습니까."

그 말에 백 번 동의한다. 나는 지금이라도 당장 발길을 돌리고 싶었다. 다만 투알린에 빚을 지고 죄책감을 떠안고 있는 내게는 해당 사항이 없었다.

돌아가고 싶어도 내가 벌인 일을 끝까지 마무리해야 했다. 아바마마가 나를 투알린에 보내신 이유도 다르지 않으니깐. 어떤 마음으로 보내 주셨는지 아는데 여기까지 와서 예감이 안 좋다는 이유로 다시 돌아간다는 건 말이 안 되었다.

"내가 돌아가면 전쟁이 일어나요. 아레인. 왕국 하나가 사라지게 된다구요."

아레인은 못마땅한 듯 미간을 찌푸렸지만, 그 이상 별말은 없었다.

"제게서 최대한 떨어지지 마십시오."

다만 내가 걱정되는 건 어쩔 수가 없는지 마지막 당부의 말을 덧붙였다. 우리 전부는 긴장이 극에 달해 있었다. 잘못 디디면 깨지는 차가운 빙판 위에서 걷는 듯 아슬아슬한 심정이었다.

그렇게 도착한 티타임 장소. 투알린 국왕은 매우 여유로운 모습으로 웃으며 우리를 맞이했다. 그 모습이 너무나도 기이했다. 마치 우리만 다른 별세계에 온 듯했다. 나와 아레인의 눈이 마주쳤다. 확실히 이건 너무도 이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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