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0화 〉 11장. 정의맹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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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장. 정의맹 (1)
'정의맹주라.'
결국 십이신룡과 함께 가게 된 백강휘는 정의맹주에 대해서 생각했다.
'유성도(流星刀) 홍문.'
별호는 유성도로, 무황 바로 아래 있는 삼성(三星)의 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백강휘가 이전 생에서도 단 한번도 본 적이 없는 사람이었다.
'정의맹주는 영흥 십 년, 즉 삼 년 뒤에 죽어.'
그리고 그 때는 백강휘가 비급을 익히고 있을 때였기에 백강휘가 무림에 출두했을 때 그는 이미 없는 사람이었다.
'한 번 만나보고 싶긴 했어.'
정의맹주는 거침없는 언행과 행동으로 유명했는데, 그 때문에 그를 싫어하는 사람들도 많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 다음 정의맹주가 되는 사람에게 좋은 감정이 없었기 때문일까.
백강휘는 그와 만나는 것이 무척이나 기대되었다.
"저곳이 바로 정의맹일세."
섬서에서 곧바로 호남과 호북 사이로 움직인 백강휘는 높게 치솟은 전각을 보았다.
'바뀐 것이 없군.'
이전 생에서 잠깐 보았던 그 모습과 전혀 다른 것이 없었다.
"그럼 바로 맹주님을 뵈러 가겠나?"
다른 십이신룡들과 헤어지고, 배정받은 객실에서 짐을 풀고 있는 백강휘에게 남궁혁이 곧바로 찾아왔다.
"그래도 맹주님을 뵙는 것인데 좀 씻고 뵙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맹주님은 그런 것 신경쓰는 분은 아니니 괜찮을 걸세."
오랜 여행으로 인하여 온몸이 더러워진 상태였는데, 남궁혁은 한시라도 빨리 백강휘를 정의맹주와 만나게 하고 싶은 모양이었다.
"제가 안 괜찮으니 형님께서도 씻고 오십시오."
백강휘는 그렇게 말하며 객실 한 편에 준비되어 있는 나무로 된 통을 바라보았다.
객실 안에 뜨거운 물까지 받아 놓은 것을 보니 정의맹에서 그들이 맞이하는 것에 꽤 신경을 썼다는 느낌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정의맹에서 이런 대접을 받을 줄이야.'
통 안에 몸을 집어 넣은 백강휘는 새삼 전생과 너무 달라진 환경을 실감할 수밖에 없었다.
최대한 빠르게 더러워진 몸을 닦은 후,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자마자 또다시 밖에서 남궁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제 끝났나?"
"대체 뭐가 그리 급하신 겁니까?"
백강휘가 한숨을 내쉬며 문을 열자, 머리에서 물기가 뚝뚝 떨어지고 있는 남궁혁이 그를 보고 있었다.
"어서 가세."
"그러지요."
남궁혁과 함께 움직이기 시작하자 곧 몇 명의 시녀들과 하인들이 그의 객실로 들어가는 것이 보였다.
그가 씻고 나온 물을 정리하기 위함일 것이다.
"만나서 반갑네, 맹주인 홍문일세."
백강휘는 객실이 있는 전각을 나와, 남궁혁을 따라 한참을 움직였다.
정의맹 전각들 중에서 가장 높게 치솟은 전각의 가장 높은 곳으로 오르자 정의맹주가 그들을 반겼다.
"백강휘라고 합니다."
정의맹주 홍문은 거칠다는 성격과는 다르게 무척이나 중후한 인상을 가진 중년인이었다.
하지만 인상과 달리, 남궁혁과 닮은 시원스런 웃음을 짓고 있었다.
"진인께서도 계셨군요."
"맹주께서 꼭 같이 있자고 하셔서 말일세."
그리고 맹주의 옆에서는 태허 진인이 정갈한 모습으로 차를 마시고 있었다.
"호오. 이거, 들은 것보다 더 대단한데?"
어느새 그들의 앞으로 다가와 백강휘를 위아래로 훑어보던 홍문은 놀란 눈으로 남궁혁을 보았다.
그의 보고를 듣고 어느정도 백강휘의 경지를 예상하고 있었는데, 실제로 보니 그것을 뛰어넘는 것에 놀란 것이다.
"하지만 벽에 막혀있는 모양이로군."
"사실입니다."
현재 백강휘는 아직 오 단계에 머물러 있었다.
오 단계 끝에 다다랐던 전생에 비하면 아직 모자른 상태였다.
'전생과 같은 방법을 사용할 수는 없어.'
결국 육 단계로 올라서지 못했던 전생이었기에, 그 전생과 같은 전철을 밟을 수는 없었다.
그렇기에 오 단계의 끝에 다다를 수 있음에도 백강휘는 그러하지 않고 있었다.
"도와주고 싶지만, 도와줄 수 있을지도 모르겠군."
"괜찮습니다."
"하지만 깨달음은 모두 다르네. 같은 무공이라도, 모두 다른 깨달음을 얻고 그 벽을 깨는 것이지."
홍문은 누구나 알고 있는 그런 원칙적인 것에 대해서만 말하고 있었다.
"말 그대로 본인은 검을 휘두르다가 갑자기 깨달음을 얻었네."
"······."
그런 간단한 방법으로 벽을 깼을 거란 생각을 하지 못했기에 백강휘는 물론이고 남궁혁마저 놀란 표정으로 그를 보았다.
"아무래도 도가 아닌 검을 들었기에 도를 쓰는 법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되었던 모양이구려."
"역시 진인께서는 뜻을 정확히 파악하셨구려."
그런 두 사람과 달리, 차를 마시며 경청하고 있던 태허 진인은 홍문의 뜻을 정확하게 파악했다.
"하고 싶은 이야기는, 벽을 허물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오히려 무척 간단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것이네."
너무 복잡하게만 생각하지 말고, 간단한 것부터 생각하라는 말이었다.
백강휘는 그 말에 뭔가 근질거리는 느낌을 받았다. 무엇인가 실마리를 잡은 느낌이었다.
"흠."
갑작스럽게 백강휘가 아무 말도 없이 가만히 서있자 다른 이들은 그런 백강휘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이 상황에서 그가 깨달음을 얻어 벽을 허물 수 있을지, 아니면 단순히 실마리만 얻고 끝날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아무래도 이번에는 안 된 것 같군요."
고개를 숙이고 생각에 잠겨있던 백강휘가 다시 고개를 들며 말하자 세 사람의 눈에 안타까운 감정이 스쳐지나갔다.
"그래도 뭘 해야 할지는 알 것 같습니다."
"그런가? 그것만으로 된 걸세."
"배려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깨달음을 얻을 수도 있는 그 잠시의 순간, 세 사람은 그것을 눈치 채고는 숨소리조차 죽이며 백강휘를 보고 있었다.
"아닐세. 그보다 이제는 그 이야기를 해야겠지?"
"음."
정의맹주가 불렀다는 말에 그럴 것이라고 생각했고, 태허 진인까지 있는 것을 보며 확신했다.
지금 홍문은 백강휘와 혈교에 대해서 말하고 싶은 것이다.
"우선 앉게. 언제까지 서 있을 수는 없지 않은가."
홍문은 그렇게 말하며 처음 앉아있던 곳으로 향했고, 남궁혁과 백강휘 역시 준비 된 자리에 앉았다.
백강휘는 조금은 식었지만, 오히려 그러해서 향이 더 잘 느껴지는 차를 마셨다.
"입맛에는 좀 맞는가?"
"무척 좋습니다."
"다행이로군. 비싼 것일세."
홍문은 한참이나 웃다가 이내 표정을 굳히고는 백강휘를 보았다.
그의 날카로운 눈빛만큼이나 날카로운 기세가 백강휘를 압박하기 시작했다.
"자네가 어떻게 그들의 존재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인지는 묻지 않겠네."
본론으로 넘어오자마자 어느새 그들의 주위에는 기의 막이 펼쳐져 있었다.
사실을 알고 있는 이들을 제외하고는 그 누구에게도 이것에 대해 알릴 생각이 없다는 뜻이었다.
"그렇군요."
"어차피 물어봤자 저기 저놈에게 말한 것과 같은 말을 하겠지."
"그것이 사실이니까요."
회귀했다고 말해봤자 믿지도 않을 것이고, 그 외에는 다른 변명을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다.
"어쨌든 자네가 어떻게 알게 되었는 지에 대해서는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닐세. 그들이 정말 실존하냐가 문제인데, 그것도 확인했지."
어쨌든 남궁혁이 실제로 그들과 만나서 싸운 후에, 없어졌던 비급들까지 가져오지 않았던가.
"하지만 정말 그들이 혈교인지는 알 수가 없네."
"그렇겠죠."
혈교의 모습이 드러난 것이 아니기에, 남궁혁이 상대한 이들을 혈교라고 단정지을 수 없다는 뜻이었다.
"흑사궁이 무언가를 꾸미는 것인데 자네들이 착각한 것일 수도 있네."
홍문의 말에 백강휘와 남궁혁은 말없이 그를 보고만 있었다.
"하지만 자네들의 말을 믿어보기로 했네. 그래서 묻겠네. 정의맹은 앞으로 어찌해야 하나?"
"······."
홍문의 질문에 백강휘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 역시 낭인의 입장으로 혈교와 싸웠을 뿐, 정의맹주와 같은 위치에서 혈교와 싸운 것은 아니었으니까.
"확실히 이건 본인이 생각해야 할 일이지. 그럼 다른 것을 묻지. 그들의 힘은 어느 정도인가?"
"아마 천마신교와 비슷하거나 그 이상으로 생각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으음. 생각보다 더 강하군."
과거 단일최강세력이라고 불렸던 천마신교.
그 천마신교가 사라진 것은 다름아닌 그들의 내분 때문이었다. 마지막 천마가 후계자를 정하지 않은 상태로 급작스러운 죽음을 맞이했기에 천마신교는 무척이나 혼란스러웠다.
그리고 어찌 다음 교주가 정해졌지만, 이전 천마와는 다르게 힘으로 지배하지 못해서 분란은 계속 일어났고 결국 자멸하게 되었다.
"그렇기에 마지막 교주는 천마라고 불리지 못했지만, 중요한 것은 그런 천마신교를 막기 위해서 정, 사가 힘을 합쳤다는 것이지."
홍문의 말대로, 천마신교의 힘이 절정에 달했을 때 그들의 중원침공을 막기 위해 정파와 사파는 힘을 합쳤다.
그렇기에 그들을 막아낼 수 있었지만, 큰 피해를 감수해야만 했다.
"그런 천마신교와 비슷하거나 그 이상일 수도 있다는 것인가?"
"제가 천마신교를 겪어보지 못 했으니 어림짐작으로 말씀드린 것뿐입니다."
홍문은 이 대답에서 하나는 확실히 알 수 있었다.
'혈교의 힘이 그 정도로 강하다는 것을 확신하고 있군.'
백강휘는 천마신교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고 하지만, 혈교의 힘이 강하다는 사실은 부정하지 않고 있었다.
마치 혈교의 힘을 겪어본 사람처럼.
"그럼 그들에게 얼마나 고수가 있는지 아는가?"
"모릅니다."
실제로 백강휘가 겪어본 자들 중 가장 강한 사람은 장로라고 불리는 자였지만, 그렇다고 혈교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들 정도의 강자라고 할 정도는 아니었다.
'실제로 그들의 보물을 가지고 움직였을 때는 차원이 다른 고수들이 왔었고.'
어쩌면 그들마저도 사실은 그리 대단하지 않은 자들일 수도 있었다.
그것을 알 수가 없으니, 백강휘도 혈교의 진정한 힘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어쩌면 흑사궁과 힘을 합쳐야 할지도 모르겠군."
과거 천마신교의 중원침공을 막기 위해 정파와 사파가 손을 잡았던 것처럼, 이번에도 그래야 할 수 있었다.
'힘들지 않을까.'
홍문의 바람과 달리,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땐 정말로 정사대전이 일어나니까.'
이번 화산파와 흑호문의 일은 유야무야 넘어가겠지만, 홍문의 죽음은 달랐다.
정의맹에서는 그것을 흑사궁의 소행으로 몰아갔고, 결국 정사대전이 일어나게 되었다.
혈교가 움직인 것은 두 세력의 힘이 줄어들었을 때였다.
"흠. 어쨌든 그들이 지금 바로 움직일 것은 아닌 것 같지만, 물밑에서 일을 진행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되겠나?"
"그렇습니다."
물론 홍문이 백강휘의 말을 그대로 믿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럴 가능성이 있으니 미리 준비를 해두는 것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을 뿐이었다.
'실제로 힘을 기르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니니까.'
혈교가 등장하지 않더라도 이 준비로 인하여 흑사궁의 힘을 넘어설 수도 있다.
"그보다 자네, 한 번 본인과 붙어보겠나?"
더 물어보고 싶은 것도 있었지만, 홍문은 결국 참지 못하고 백강휘에게 말했다.
그는 무척이나 몸이 근질거린다는 표정으로 백강휘를 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