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9화 〉 10장. 흑호오제(黑虎五弟)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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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장. 흑호오제(黑虎五弟) (5)
-푹!
사중일의 검과 일호의 검이 서로의 어깨에 닿았고, 두 사람은 빠르게 뒤로 물러났다.
일호는 어깨를 내주고 사중일의 목을 노렸지만, 사중일 역시 그 짧은 시간에 몸을 틀어 어깨로 막아냈다.
"역시 자하검군인가?"
"······."
분명 서로 공격을 교환했지만, 일호는 자신이 밀린다는 것을 단번에 눈치챌 수 있었다.
'운이 좋았어.'
살을 주고 뼈를 취할 생각이 아니었다면 그의 검은 사중일에게 닿지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뼈를 주고 살을 위한 느낌이지만.'
하지만 사중일보다 일호가 더 심한 상태였기에, 일호는 절망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대로 죽을 수는 없지.'
그의 의제들이 살아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지 않았다. 원래라면 벌써 도착하고도 남을 시간이었으니까.
'그렇다면 저 녀석을······.'
일호는 자하검군을 죽일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가 느낀 것은, 십이신룡 따위가 정파의 미래가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저 녀석이 정파의 대표 고수가 될 놈이다.'
일호는 힐끔 백강휘를 보았다. 백씨세가라는 작은 세가 출신에, 아직 약관도 안 되었음에도 초절정이란 경지에 오른, 말도 안 되는 녀석.
제왕검과 함께 정파를 이끌어갈 것이 분명했다.
'이 녀석을 여기서 죽여야 한다.'
생각을 끝낸 일호는 사중일을 무시하고는 곧바로 백강휘를 향해 달려 나갔다.
"그럴 것 같더라니."
거리를 좁히는 일호를 보면서도 백강휘는 무척이나 여유롭게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이런! 백 소협!"
오히려 백강휘에게 달려드는 일호를 보며 놀란 것은 사중일이었다.
그는 설마 일호가 자신을 무시할 줄은 몰랐기에 황급히 일호의 뒤를 쫓았다.
-쉬익!
일호는 여전히 가만히 서 있는 백강휘의 목을 향해 검을 찔렀다.
"뭐, 뭐냐?"
하지만 일호의 검은 백강휘의 목을 꿰뚫지 못하고, 목 바로 앞에서 멈춰야만 했다.
그는 몸이 움직여지지 않자 당황한 표정으로 백강휘를 보았다.
"이거야."
"실?"
백강휘의 손에는 햇빛에 반짝이는 실이 들려 있었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안 보일 정도였기에 눈치채지 못했던 것이다.
"정말 못 움직이나 보네."
백강휘는 그 실로 그물을 만들어 일호의 몸을 묶은 것이다.
내력을 이용하여 실로 그물을 만들고, 함정을 준비해두었다. 그리고 일호라는 대어가 낚인 것이다.
'설마 저런 것이 가능할 줄이야.'
아무리 도검을 막아주는 실이라지만, 그 실로 일호 정도의 고수를 묶으려면 엄청난 내력이 필요했다.
그렇기에 사중일은 백강휘의 내력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잘 묶고 있으시오. 바로 이놈의 목을 벨 테니까."
사중일은 백강휘에게 그리 말하고는 곧바로 일호의 앞에 섰다.
일호는 자신을 온몸을 묶고 있는 투명한 실을 어떻게든 풀어내려 했지만, 꼼짝도 하지 않았다.
'이렇게 죽는 건가.'
비록 엄청난 고수로 인정받고 있지만, 천하를 울릴 고수는 되지 못했다.
그것이 아쉽게 느껴져 백강휘를 노려보고 있자, 사중일이 그의 목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쉬익! 땅!
일호의 목을 베기 위해 움직이던 사중일의 검은 갑자기 날아온 섭선에 막혔다.
사중일의 검을 쳐내고 날아가는 섭선을 받아낸 사내가 곧바로 사중일과 일호의 사이에 끼어들었다.
"괜찮으십니까?"
"무사했나?"
"꼴을 보아하니 저만 도착한 모양이로군요."
마치 귀공자 같은 외모의 사내는 주위를 둘러보며 허탈한 표정이 되었다.
그가 바로 흑호오제의 둘째인 이호(二虎)였다.
그는 자신을 막아선 화산파 제자들을 모두 처리하고 이곳으로 온 것이다.
'하지만 둘째의 상태도 좋지 않아.'
비록 이기긴 했지만, 화산파 제자들의 저항이 거센 덕분인지, 이호의 상태는 그리 좋아 보이지 않았다.
옷 여기저기가 찢어져 있었고, 그 사이로 상처도 보였다.
"아무래도 퇴각해야 할 것 같습니다."
"으음. 하지만 이 상황에서······."
"그렇게 둘 생각은 없다네."
갑작스럽게 등장한 이호 때문에 놀란 것도 잠시, 사중일은 흑호오제 모두를 죽일 기회라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그는 곧바로 이호를 향해 달려들었고, 이호는 섭선으로 사중일을 가리켰다.
-푸슉!
섭선의 끝에서 갑작스럽게 암기가 쏘아지자 사중일은 급히 검을 들어 그것들을 막아냈다.
"이거, 쉽게 끊어지지 않는군요."
그사이에 어떻게든 일호를 묶고 있는 실을 풀려고 했지만, 쉽게 풀어지지 않았다.
"비켜라!"
어떻게든 사중일을 막아내며 실을 끊어내려고 하는 이호의 귀로 거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건 좋지 않아.'
그 목소리에 반응한 것은 일호와 이호만이 아니었다.
백강휘는 그 목소리를 듣자마자 곧바로 일호를 묶고 있는 실을 회수했다.
-콰앙!
커다란 굉음과 함께 먼지가 자욱하게 피어올랐다.
"괜찮은가?"
그리고 어느새 백강휘의 옆에 위치한 태허 진인. 그리고 먼지가 가라앉자 땅에 박혀있는 도를 들어 올리고 있는 혈로도왕의 모습이 보였다.
'버티지 못했을 거야.'
아무리 도검을 막아주는 실에 내력을 싣고 있었다지만, 혈로도왕의 공격에는 버티지 못했을 것이다.
"아무래도 우리의 승부는 다음으로 미뤄야겠소."
"으음."
"아니면 이대로 끝을 보시겠소?"
태극검왕과 혈로도왕은 그야말로 백중세였다.
혈로도왕의 거친 도는 태허 진인의 검을 뚫지 못했지만, 태허 진인의 검 역시 거친 도 사이로 들어가지 못하고 있었다.
"그럼 다음에 뵙도록 하겠소! 흑호문은 퇴각하라!"
혈로도왕은 도를 강하게 휘둘렀고, 곧 그의 도에서 일어난 바람으로 인하여 흙먼지가 피어올랐다.
"이대로 놓아줄 생각입니까?"
"······."
백강휘의 질문에 태허 진인은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분명 흑사궁의 고수를 벨 좋은 기회였지만······.
"빈도가 그를 이길 수 있다고 장담을 하지 못하네."
물론 쉽게 질 것이란 생각은 들지 않았지만, 확실하게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없었다.
'멍청한.'
그리고 백강휘는 그런 태허 진인이 답답하게 느껴졌다.
태허 진인이 혈로도왕과 싸우는 사이 나머지 사람들이 일호와 이호를 잡고 협공을 하면 혈로도왕까지 죽일 좋은 기회였다.
'혼자서 가봤자 혈로도왕을 이기지 못해."
만약 백강휘가 더 강했더라면 혼자서라도 움직였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 백강휘가 혼자 가봤자 개죽음만 당할 뿐이었다.
"하지만 그리되면 정사대전이 일어날 것이고, 지금은 때가 아니지 않나?"
이어지는 태허 진인의 말에 백강휘가 날카로운 눈으로 그를 보았다.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아직은 밝힐 때가 아니지만, 아마 화산도 준비를 단단히 해야 할 것이오."
백강휘는 태허 진인이 하는 말이 혈교를 뜻하는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아직 남궁혁에게만 말하지 않았음에도, 태허 진인은 혈교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그러니 정사대전이 일어나면 안 되네. 두 세력이 힘을 합쳐야만 할 수도 있으니까."
"······."
태허 진인의 말에 백강휘는 입을 다물었고, 사중일은 여전히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두 사람을 보고 있었다.
"이곳도 이제 끝난 모양이군요."
태허 진인과 백강휘와 분위기가 점점 어색해지고 있을 때, 그 분위기를 깨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응? 아우, 왜 그러나?"
막 십이신룡들과 함께 도착한 남궁혁은 백강휘가 자신을 노려보고 있자 어색하게 웃음을 지었다.
"설마 말씀하신 것입니까?"
"도주한 그들을 쫓아야 한다고 하니 어쩔 수 없었네."
"설마 형님께서 그리 입이 가벼우신 줄은 몰랐습니다."
"그만큼 중대한 사항이지 않은가. 그래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네."
남궁혁이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지만, 백강휘의 눈이 이채를 띠었다.
"그러니까 진인께서만 알고 계시는 것도 아니란 것이군요."
"하하! 자, 우선 상황을 정리해야 하지 않겠나? 그렇지 않습니까, 장문인?"
"으음."
사중일은 이 이야기에 관해서 좀 더 듣고 싶었지만, 세 사람은 이야기해 줄 생각이 없는 모양이었다.
그렇기에 결국 그는 제자들에게 명해 시신들을 수습할 수밖에 없었다.
'그자가 온 길에 있던 제자들은 모두 죽은 것인가?'
사중일은 보이지 않는 장로들을 떠올리자 가슴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흑호오제 중 둘째인 이호가 온 방향에는 화산파 장로들이 많이 포함되어 있었는데, 그들의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먼저 들어가시겠소? 아무래도 이곳에 오지 못한 제자들이 있는 것 같소."
"도와드리겠습니다."
같이 싸우긴 했지만, 태허 진인 일행은 화산파를 도와주기 위해 이곳에 온 자들이었다.
그렇기에 사중일은 그들을 화산파로 돌려보낼 생각이었다.
"고맙소."
하지만 남궁혁이 직접 나서며 도와주겠다고 하자 사중일은 고마움이 가득 담긴 눈으로 그들을 볼 수밖에 없었다.
'화산파가 생각보다 피해를 덜 받았어.'
이번 전투는 전생과 많이 달라졌다. 우선 화산파만 보자면 전생보다 더 적은 피해로 끝마칠 수 있었다.
'그리고 흑호오제 중 셋을 죽였고.'
전생에서 흑호문은 궤멸하였지만, 흑호오제는 모두 죽지 않았다.
'이것이 좋은 것인지.'
백강휘는 이 변화가 좋은 것인지 알 수 없었다.
'태허 진인의 말대로 혈로도왕을 죽이지 않았으니 정사대전은 일어나지 않을 것 같지만.'
바뀌어버린 상황 때문에 그것을 확신하지 못했다.
"자네, 혹시 화났나?"
"아니라면 거짓이겠지요."
어느새 다가온 남궁혁이 조심스레 묻자, 백강휘가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맹주님과 진인께만 말씀드렸네. 어쩔 수 없지 않은가."
"두 분은 그 사실을 믿었습니까?"
"믿어주신 것 같더군."
사실 백강휘가 남궁혁의 가벼운 입을 탓한 것은 정의맹에도 혈교의 간자가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괜히 그들의 귀에 들어가면 표적이 될 수도 있으니, 그것을 막으려고 비밀로 하자고 한 것이었는데.
'하지만 두 사람이라면 괜찮아.'
백강휘는 지금의 정의맹주도, 태허 진인도 믿을만한 사람이란 것을 알고 있었다.
태허 진인은 혈교와 끝까지 맞서 싸운 사람이었고 정의맹주는······.
"아, 화산의 일이 끝나고 정의맹으로 갈 생각인데, 자네도 갈 텐가?"
"음."
"맹주님께서 자네를 보고 싶어 하시는데, 여기까지는 같이 가는 게 어떻겠는가?"
백강휘는 잠시 남궁혁을 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백씨세가에 진인도 모시고 가야 하니 어쩔 수 없지요."
"그렇지?"
백강휘의 대답에 남궁혁이 반색했다. 그리고는 곧바로 백강휘에게서 떨어져서 다른 곳을 정리하기 위해 움직였다.
"손이 멈춰있어요."
"미안하오."
생각을 정리하고 있었기에 백강휘는 손을 멈추고 있었고, 어느새 남궁설이 다가와 그것을 지적했다.
'대체 얼마나 강한 것일까?'
백강휘가 혼자서 흑호오제 중 셋째를 죽였다는 것은 이미 종일원에게 들었다.
그가 강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흑호오제 중 한 명을 혼자서 죽일 정도라니.
'따라잡고 싶어.'
가장 부러운 것은 제왕검 남궁혁에게 강한 신뢰를 받고 있다는 점이었다.
남궁설은 백강휘의 뒷모습을 보며 입술을 질끈 깨물고는, 휙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그런 두 사람을 여러 감정이 섞인 눈들이 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