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5화 〉 10장. 흑호오제(黑虎五弟)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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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장. 흑호오제(黑虎五弟) (1)
백강휘가 당기를 쓰러뜨렸지만, 사천당가에서는 그에게 아무런 행동을 취하지 않았다.
오히려 백강휘는 물론이고 그 근처에서 비무를 보고 있던 십이신룡의 생명까지 앗아갈 정도의 독을 쓰려 한 당기에게 징계가 내려졌을 정도다.
"아우, 잠시 괜찮나?"
"무슨 일이십니까?"
비무가 끝난 며칠 후, 백강휘의 객실로 남궁혁이 찾아왔다.
"음."
하지만 남궁혁은 곧바로 입을 열지 못하고 뜸 들이며 백강휘의 눈치를 살폈다.
"편히 말씀하시지요."
"그래도 되겠나?"
하지만 백강휘의 말에도 남궁혁의 굳은 얼굴은 쉽사리 풀어지지 않았다.
"흑호오제(黑虎五弟)라고 알고 있는가?"
"알고 있습니다."
흑호오제(黑虎五弟).
흑사궁 소속의 다섯 형제를 일컫는 말로, 사파를 대표하는 뛰어난 고수다.
"칠귀(七鬼)에는 들지 못하지만, 상당한 고수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네."
정파에 여섯 군주가 있다면, 사파에는 일곱 귀신이 있다.
흑호오제는 그 안에는 들지 못하는 자들이었지만, 초절정의 경지에 오른 자들이었다.
"그들의 흑호문과 화산파가 지금 전쟁을 할 수도 있다네."
"······."
화산파가 흑사궁 소속의 문파와 싸워서 큰 피해를 당하는 사건.
그 사건이 지금 일어나려고 하는 것이다.
'이 일로 흑호문은 사라지지만, 흑오오제는 흑사궁으로 들어갔지.'
지금처럼 흑사궁 소속 문파인 흑호문이 아니라, 흑사궁주의 소속으로 들어간 것으로 알고 있었다.
"세력으로는 화산파가 더 크지만, 고수의 수로는 흑호문 역시 모자라지 않다네."
특히 가장 큰 문제는 흑호문을 세운 흑호오제 모두 초절정 고수라는 점이었다.
"그래서 가려고 하시는 겁니까?"
"그렇네. 정의맹에서 가라고 지침이 내려왔네. 그래서 자네의 의중을 묻는 것이네."
흑호문과 싸우는 것은 결코 가벼운 그런 일이 아니었다.
아무리 백강휘라도 목숨을 걸어야 할 수도 있는 그런 일이었기에 남궁혁은 백강휘가 거절하면 다시 보내줄 생각이었다.
'어떻게 하면 될까?'
남궁혁, 태허 진인과의 관계를 위해서라면 가서 도와주는 것이 맞다.
하지만 그것을 제외하고는 백강휘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일이었다.
'그들과 싸워서 얻을 것이 없어.'
흑호문에 백강휘가 노릴 정도로 엄청난 보물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얻을 수 있는 것은 유명세뿐.'
만약 백강휘가 그곳에서 활약한다면 엄청난 무명(武名)을 얻게 될 것이다. 그에게 별호가 붙고, 엄청나게 유명해지겠지.
십이신룡과 비슷한 나이면서도 그들을 뛰어넘는 무위이니 그럴 소지가 다분했다.
'하지만 자세히 생각해보면 괜찮은 일이지.'
그에게 별로 이득이 되는 일이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었지만, 백강휘는 흑호오제와 싸우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단순히 남궁혁이나 태허 진인만이 빚을 지게 되는 것이 아니야.'
당장 화산파가 그에게 빚을 지게 되는 것이다. 어쨌든 이 일은 화산파의 일이었으니까.
'게다가 정의맹까지.'
구파일방 중 소림과 무당 다음이라는 화산파와, 정파의 기둥인 정의맹까지.
당장 물질적으로는 그에게 큰 이득이 없었지만, 그 이외에는 얻을 것이 너무 많았다.
"가도록 하죠."
"정말인가?"
"형님께서 도와달라고 하시니 거절할 수 없지요."
"고맙네!"
오왕 중 한 명인 태극검왕에 제왕검만 가도 화산파는 충분히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 백강휘란 고수까지 붙는다면 더욱 유리하게 전장을 이끌어갈 수 있다.
남궁혁은 연신 백강휘에게 고맙다고 말하고는 곧바로 밖으로 나갔다.
'육 단계로 아직 가지 못했으니, 최대한 조심히 싸워야겠어.'
수라파천공은 현재 오 단계였다.
전생에 한 번 오른 경지였기 때문인지 그리 어렵지 않게 오 단계에 오를 수 있었다.
'아직 전생보다는 모자라.'
전생에서는 오 단계의 끝에 다다랐었지만, 지금은 아직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그렇기에 백강휘는 떠나기 전까지 조금 더 무공을 수련해야겠다는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 * *
"정말 괜찮겠느냐?"
"다른 사람도 가는데, 저만 빠질 수는 없으니까요."
갑작스럽게 전투에 투입될 수도 있다는 것 때문인지 당만석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딸을 보았다.
"물론 경험을 쌓는 것은 좋은 일이다만, 상대가 하필이면······."
상대가 흑호오제라는 것 때문인지 당만석은 안심이 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빈도와 남궁 소협도 함께 가니 너무 걱정하실 필요 없소이다."
"그리고 당 소저라면 잘 해낼 것입니다. 당가의 독이 아닙니까."
특히 당기가 마지막에 쓰려고 했던 그런 독무는 전장에서 큰 효과를 발휘했다. 물론 아군이 휘말리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두 분을 의심하는 것이 아니라오."
당만석은 태허 진인과 남궁혁을 보며 말했다.
그의 굳은 얼굴은 남궁혁이 당가의 독을 치켜세워주었음에도 풀어지지 않고 있었다.
"딸을 부탁해도 되겠는가?"
"제가 굳이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그럴 때는 그냥 알겠다고만 해도 되는 걸세."
대답 없이 미소만 짓고 있는 백강휘를 보며 당만석은 한숨을 내쉬었다.
"최대한 조심하거라."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누구 딸인데요."
당만석은 곧바로 화산파의 제자인 종일원을 보았다.
"자네의 문파에 큰일이 없기를 바라네."
"감사합니다."
사문의 소식에 계속 초조한 표정을 짓고 있던 화산파 장문 제자인 종일원은 급히 거수례를 취하며 대답했다.
"그럼 다들 무사하길 바라겠소."
그렇게 일행은 여전히 심려 가득한 표정의 당만석을 뒤로하고 사천당가를 떠났다.
"너무 그렇게 걱정하지 말게. 화산파는 쉽게 무너지지 않을 곳이니."
"감사합니다, 진인."
종일원은 당가를 떠났음에도 내내 자신을 위로해주는 태허 진인에게 미소를 지었지만, 여전히 힘없는 미소였다.
"화산파는 제 생각과는 많이 다른 문파더군요."
"흠. 무엇이 말인가?"
그런 종일원을 보며 백강휘가 말하자 남궁혁이 의아함이 담긴 얼굴로 그를 보았다.
"화산의 검은 아름답다고 소문이 나서 좀 더 가벼운 검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실제로는 좀 더 거칠지. 정확히는 남궁의 검과 닮았지."
다른 점이라면 남궁세가는 쾌검에서 점점 느린 검으로 변한다면 화산파는 처음부터 무척이나 거친 검이었다.
"오히려 제가 볼 때는 하북팽가의 도법과 닮았다고 하는 것이 옳을 것 같습니다."
"그럴 수도 있겠어. 화산의 거친 산세와 닮은 검을 펼치니까."
화산파의 대표적인 검은 바로 육합검으로, 상대의 움직임을 모두 차단하고 공격하는 거친 검법이다.
"개인적으로는 자하검결을 꼭 한번 보고 싶네."
"종 소협은 그 무공을 모르는 것입니까?"
"아직 부족하기에 남 앞에서 펼치는 것이 부끄럽다고 하더군."
자하검결은 자하신공과 함께 화산파의 장문인만 익힐 수 있는 무공이다.
그렇기에 차기 장문인인 종일원 역시 배우긴 했지만, 완전하게 배우고 익힌 상태는 아니었다.
"생각해보니 진인께 동생을 부탁해서 다행이군요."
"화산파에는 여성만이 익힐 수 있는 좋은 검법도 많다네."
육합검도, 자하검결도 화산을 닮아 무척이나 거친 검법이었지만, 여성들이 익히는 검은 무척이나 아름다운 검이었다.
그렇기에 백강휘가 화산의 검이 아름답다고 생각한 것이다.
"물론 진인께 배우는 것만큼 좋다고는 못하겠군."
남궁혁의 말에 백강휘는 웃음을 터뜨렸다.
"그런데 화산은 도문이 맞는 것입니까?"
"도호를 쓰지 않아서 그러나?"
남궁혁이 묻자 백강휘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화산파는 분명 무당, 청성처럼 대표적인 도문이었지만, 무당이나 청성처럼 도호를 쓰지는 않았다.
"조금 더 무림문파의 성향이 강한 곳이지. 무당처럼 무공을 익히지 않은 도사들도 없네."
무당이나 소림은 무림문파이지만 무공을 익히지 않은 도사나 승려들도 많았다.
하지만 화산은 모두 무공을 익혔고, 무당처럼 도호를 쓰지도 않았다.
"아무래도 무당을 따라잡기 위함이겠지."
개파조사 역시 도호를 사용하지 않아 본명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가 도호를 버리고 화산을 세운 것인지, 아니면 도사가 아니었음에도 도문을 세운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어쨌든 무당이나 청성과는 다르지만, 도문인 것은 맞는다네."
"음."
백강휘는 남궁혁의 말처럼 화산파가 무당을 따라잡으려고 좀 더 세속적인 성향으로 바뀐 것이 아닌가 추측할 뿐이었다.
"그보다 이야기 하다 보니 조금 뒤처졌군."
남궁혁은 어느새 저 앞을 나아가고 있는 일행을 보며 말했다.
두 사람이 빠르게 붙은 것을 본 태허 진인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속도를 더 올려 발걸음을 재촉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급하게 움직인 덕분일까?
일행은 빠른 속도로 섬서성 회음현에 위치한 화산에 도착할 수 있었다.
"어서 오시오. 이렇게 한달음에 달려와 주시니 고맙기 그지없소."
"같은 정의맹의 식구이니 발걸음을 재촉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오."
화산파에 도착하자 화산파의 장문인이자 육군(六君)의 한 명인 자하검군(紫霞劒君) 사중일이 그들을 반겼다.
"거기에 제왕검까지."
"반갑습니다. 장문인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본인도 이렇게 제왕검을 만나게 되어 기쁘오."
사중일은 태허 진인과 남궁혁이 도우러 온 것에 정말 기쁜 표정을 지었다.
무인들의 수로는 화산의 수가 더 많았지만, 흑호오제를 상대할 고수가 적다는 것이 문제였다.
그러니 태극검왕과 제왕검의 도착에 기쁜 마음을 감추지 못하는 것이리라.
"이렇게 와주어서 고맙네. 상황이 급하여 그대들을 제대로 환영하지 못해서 미안하네."
"아닙니다!"
사중일이 나머지 십이신룡을 보며 말하자 그들이 큰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런 그들의 모습에 사중일은 희미하게 미소를 짓다가 태허 진인을 보았다.
"이제 막 도착하여 피곤할 터이지만,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겠소?"
"물론이오."
"남궁 소협께서도 같이 와주었으면 좋겠소."
"물론입니다."
남궁혁은 대답을 하던 도중, 자신의 옆에 있는 백강휘를 보았다.
"이 친구도 같이 가도 되겠습니까?"
"아, 이 소협이······."
남궁혁의 의동생에 대한 이야기는 사중일도 모르는 바가 아니었지만, 태허 진인과 남궁혁에 너무 신경을 쓰다가 그를 놓친 것이다.
"으음. 알겠소."
고민도 잠시, 사중일은 빠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한시가 급했기에 괜히 이 일로 시간을 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제왕검의 의동생이라면 괜찮겠지.'
정파의 젊은 고수들의 대표라 할 수 있는 남궁혁이 인정한 의형제이니 믿을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한 것이다.
"자네들은 십이신룡이 쉴 수 있도록 도와주게."
사중일은 그의 옆에 있던 제자들에게 그리 말하고는 곧바로 세 사람을 이끌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차라도 대접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여 미안하오."
"아니오. 그보다 상황 설명 좀 해주시겠소? 급히 전갈을 받고 움직여서 말이오."
태허 진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여는 사중일의 표정은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