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3화 〉 9장. 사천당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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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장. 사천당가 (1)
백강휘 일행은 아무런 일 없이 편하게 사천성에 도착할 수 있었다.
녹림을 만난 것도 아니고 사파를 만난 것도 아닌, 정말 아무 일 없이 편하게 말이다.
"자, 그럼 사천에 도착했으니 어디로 가야 할까?"
"전 당가도 괜찮다고 생각해요."
"여기까지 왔으니 당연히 청성산의 수려한 풍경을 봐야 하지 않겠소?"
"아미산에는 좀······."
남궁혁의 말이 끝나자마자 사천 출신의 사람들이 입을 열기 시작했다.
사천당가주의 딸인 당우령부터 청성파의 송빈 도사까지. 다만 아미파의 속가 제자인 진이재는 비구니들만 있는 문파에 십이신룡을 데려가는 것을 꺼렸다.
"아미파는 아무래도 힘들지. 검후를 뵙고 싶긴 하다만."
진이재를 본 남궁혁이 턱을 쓰다듬으며 씩 웃었다.
아미파 전대 장문인인 금정 신니는 진이재의 스승으로, 한 때 검후로 불렸던 여고수였다.
"그렇게 따지면 진 소저도 배분이 상당히 높군."
아무리 출가하지 않은 속가 제자라고 하지만 금정 신니의 제자였으니, 진이재 역시 소림의 공진과 같은 배분이었다.
"그래도 진 소저를 특별 대우하는 일은 없었을 걸세."
"요즘은 그렇게 배분을 따지지는 않으니까요."
남궁혁은 진이재의 시원스러운 대답이 마음에 든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에는 당가로 가자고. 청성도 좋지만, 당가로 안 가면 왠지 자는 사이에 중독될 것만 같거든."
"설마요."
당우령이 애써 웃으며 부정했지만, 남궁혁은 그녀가 품속에서 독을 살짝 꺼냈다가 집어넣는 것을 목격할 수 있었다.
'당가라.'
정파를 대표하는 고수 여섯을 육군(六君)이라 부르는데, 사천당가주가 바로 그중 한 명이었다.
삼성(三星)과 오왕(五王)은 정파와 사파가 섞여 있었지만, 육군은 오직 정파의 고수들만을 말했다.
'아직 칠군이 된 것은 아니니까.'
아마 몇 년 후에는 남궁혁까지 포함되어 칠군으로 불리게 될 것이다.
"그럼 가시죠."
당우령이 앞장서서 걷기 시작하자, 나머지 일행들도 그 뒤를 따르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아미, 청성과 싸웠다고 하더니 두 사람은 발이 무겁군."
"그러니 당 소저도 당가로 가자고 고집을 피운 것이겠지요."
태허 진인과 남궁혁은 가장 뒤에서 따라오는 진이재와 송빈을 보며 말했다.
사천의 이권을 두고 대립했기에 두 사람은 이렇게 당가로 가는 것이 껄끄러운 모양이었다.
"진인께서 계시는데 뭔 일이 있겠습니까?"
"허허."
태허 진인은 어색하게 웃으면서 수염을 쓰다듬었다.
아무리 초절정 고수라고 해도 독은 조심할 수밖에 없으니, 태허 진인도 긴장을 놓칠 수는 없었다.
남궁혁과 태허 진인은 처져있는 진이재와 송빈을 추스르며 걸음을 재촉했다.
"여기가 바로 당가입니다!"
그리고 며칠 후, 그들은 결국 당가에 도착했다.
'백씨세가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크군.'
괜히 사천을 대표하는 세가가 아니란 듯이 당가의 장원은 압도적인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다.
"그럼 들어가실까요?"
매우 밝아진 얼굴의 당우령과 다르게 진이재와 송빈은 얼굴이 퍼렇게 변한 상태였다.
남궁혁과 태허 진인의 지금까지의 노력이 쓸모가 없어지는 순간이었다.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설마 정파의 미래를 건들겠어요?"
"너무 그렇게 겁주지 말아 주겠나?"
태허 진인의 말에 당우령은 꺄르르 웃고는 당가의 거대한 정문을 향해 움직였다.
"나 왔어."
"오셨습니까, 아가씨!"
"언제까지 아가씨야?"
"죄송합니다, 소가주님!"
당우령이 눈을 치켜뜨며 말하자 문을 지키고 있던 파수지기들이 허리를 꼿꼿이 세우며 크게 외쳤다.
'소가주라.'
당가는 분명 폐쇄적으로 유명한 곳이었지만, 이것을 보면 한편으로는 개방적이란 생각도 들었다.
특히 오대세가 같은 경우에서는 걸출한 여고수가 많이 없었기에 대부분 남자가 가주가 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만큼 그녀가 대단하다는 것이겠지.'
생각을 끝낸 백강휘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당가의 안으로 들어갔다.
"어서 오시게."
당가의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당우령과 비슷하게 날카로운 인상의 중년인이 그들을 반겼다.
그가 바로 암독군(暗毒君) 당만석이었다.
'암기와 독으로 정점에 오른 자.'
그의 별호인 암독은 암기와 독을 가리키는 말이기도 했지만, 아무도 모르게 상대를 중독시키는 그의 귀신같은 능력을 가리키는 말이기도 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잘 지냈나? 진인께서도 잘 지내셨소?"
당만석은 특히 남궁혁에게 무척이나 반가운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저 청년이 바로 백씨세가의 일공자인가?"
"예. 백강휘라고, 제 의동생입니다."
남궁혁과 짧게 인사를 나눈 당만석은 곧바로 백강휘에게 시선을 던졌다.
십인신룡과 함께 있으면서도 유독 눈에 띄니 그에게 시선이 안 갈래야 안 갈 수가 없었다.
"허허. 자네와 의형제를 맺으려면 저 정도는 되어야 하는 건가?"
"설마 그렇겠습니까? 그저 저와 잘 맞을 뿐이지요."
한눈에 백강휘가 범상치 않음을 깨달은 당만석이 흥미롭다는 눈으로 그를 보았다.
'보는 눈이 없다면 무공도 모르는 서생처럼 볼 수도 있겠어.'
특히 무인처럼 보이지 않는 외모가 한몫했다.
'옷에 가려져서 그렇지, 몸도 탄탄하고.'
당만석은 흥미롭다는 눈으로 백강휘를 살펴보았다.
"백강휘입니다."
"당가의 가주인 당만석일세. 이렇게 보게 되어 반갑군."
당만석의 시선을 느낀 백강휘가 거수례를 하며 인사를 건넸고, 당만석은 여전히 그를 흥미 가득한 눈으로 보았다.
"자, 어쨌든 당가에 왔으니 편하게들 쉬시게. 정 원하면 본 가주가 비무도 해주겠네."
당만석은 시선이 남궁혁과 백강휘에게서 떨어지지 않을 만큼, 두 사람에게 짙은 호승심을 느끼고 있었다.
"아니, 가주께서는 진인과 비무 하셔야 하는 것 아닙니까?"
"본인은 창피를 당하는 것보다 주는 것을 좋아한다네."
"허허."
그렇게 너스레를 떤 당만석은 곧바로 십이신룡을 준비한 객실로 안내하기 시작했다.
"발전은 있었느냐?"
"생각보다요. 하지만 재미있는 것도 찾았어요."
다른 이들을 보내고 당우령과 둘만 남게 되자 당만석이 불쑥 물었다.
"재미있는 것? 백씨세가의 그 청년 말이냐?"
"네. 정말 말도 안 되는 사람이더군요."
"네가 흥미를 느끼다니."
당만석은 딸이 마치 먹잇감을 노리는 뱀처럼 느껴졌다.
그렇기에 순간 백강휘를 데릴사위로 받아야 하나 생각까지 했다.
'저 녀석이라면 괜찮을 것 같은데.'
게다가 세가에서도 크게 중용 받지 못한다고 하지 않는가.
"또 이상한 생각하시는 건가요?"
"그런 것 아니다."
"그럼 더 하실 말씀 없으시면 전 이제 쉬러 가볼게요."
"오랜만에 만났는데 더 이야기하지 않고?"
당만석이 아쉽다는 표정이 되었지만, 그의 딸은 냉정했다.
"피곤해요."
그 한 마디만 남기고는 곧바로 그녀의 거처로 향했다.
아쉬움에 입맛을 다신 당만석은 곧바로 그의 거처로 향하기 시작했다.
'그나저나 최근에는 얌전했는데, 괜한 짓은 하지 않겠지?'
그러던 중 누군가를 떠올린 당만석이었지만, 이내 자신이 과민하게 반응했다고 생각하며 다시 걸음을 재촉했다.
"여기에 그 대단하다던 백씨세가의 사람이 있다던데?"
하지만 결국 당만석의 우려처럼 문제가 터져버렸다.
바로 사천당가의 문제아인 당기가 십이신룡을, 정확히는 백강휘를 찾아온 것이다.
"백씨세가는 본 공자와 인연이 깊지. 암!"
당기는 무한에서 있었던 일을 떠올리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무슨 일이오?"
"아하, 제왕검 남궁 소협이 아니시오? 하지만 지금은 다른 이에게 볼일이 있어서 말이오."
객실 근처 공터에 모여 앞으로의 일정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던 중, 방해를 받았다.
그 때문에 남궁혁이 나서자 당기는 곧바로 시선을 돌렸다.
"아우에게 볼일이 있으면 나에게 말씀하시오."
"아우? 남궁 소협은 아무나하고 의형제를 맺으시는 것이오?"
"아무나?"
당기의 말에 남궁혁의 얼굴에 금이 갔다.
"그리 과민하게 반응하지 마시오. 농이니까."
분위기가 험악해진다는 것을 눈치챈 당기가 빠르게 말했다.
"그나저나 백씨세가의 공자는 언제까지 본 공자를 기다리게 할 것이오?"
"아우는 이곳에 없소."
"아하. 역시 소문은 부풀려진 것인가 보오? 여기서도 의견을 내지 못하는 신세라니."
당기의 입가에 조소가 떠오르자 남궁혁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서 목적이 무엇이오?"
"얼마나 대단한 자인지 비무라도 해보고 싶어서 말이오."
"그렇다면 그 비무, 제가 대신해도 될까요?"
두 사람의 대화에 끼어든 것은 바로 남궁혁의 동생인 남궁설이었다.
"설아?"
"아무래도 저까지도 무시당하는 기분이라서요."
당기가 직접적으로 십이신룡을 무시한 것은 아니었지만, 백강휘에게 졌기 때문에 같이 무시당하는 기분이었다.
"흐음. 괜찮겠소?"
당기의 질문에 남궁혁은 대답 없이 한숨을 내쉬었다.
"손속에 사정을 두셔야 할 것이오."
"노력해보겠소."
남궁설이 걱정되긴 했지만, 이것도 좋은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당가는 암기와 독을 사용하였기에, 좀처럼 경험하기 힘든 것들을 겪을 기회였다.
'요즘 유명해지는 그놈을 꺾는 것도 좋겠지만, 남궁세가의 여식도 나쁘지 않지.'
당기는 최근 위세를 떨치는 백강휘를 눌러 자신의 명성을 더 드높이려고 했지만, 남궁설 역시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최근 위세를 떨치는 백강휘보다는 남궁세가가 더 영향력이 있었으니까.
"봐주지 않겠소."
"한 수 부탁드릴게요."
마주 선 남궁설과 당기가 서로의 병기를 꺼냈다.
"조심하시오!"
당기가 곧바로 남궁설을 향해 암기를 던졌고, 그녀는 빠르게 움직이며 그 공격을 피해냈다.
-파바밧!
그녀가 있던 자리에 여러 개의 비수가 박혔다.
남궁설은 그 비수를 힐끔 보고는 곧바로 당기를 향해 달려들었다.
-후웅!
남궁설의 검이 벼락처럼 당기를 향해 쏘아졌다.
'빠르군.'
남궁세가는 분명 중검으로 유명하지만, 쾌검 역시 뛰어난 편이었다.
기본적으로 쾌검을 익히고, 그것을 점차 무겁게 펼치는 것이 남궁세가의 수련법이었다.
'빈틈!'
뒤로 물러난 당기는 남궁설의 빈틈을 보고는 다시 비수를 던졌다.
-챠자장!
남궁설이 검을 휘둘러 비수를 막아냈지만, 몇 개의 비수가 그녀의 팔과 다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자, 계속 가겠소!"
당기는 한 번 잡은 우세를 놓치지 않기 위해 계속해서 비수를 던졌다.
"읏!"
남궁설은 그 비수를 쳐내거나 막아내며 계속해서 당기에게 접근하려 했지만, 당기가 물러나는 속도가 더 빨랐다.
'접근이 쉽지 않아.'
이렇게 방어만 해서는 접근할 수 없다고 판단한 남궁설은 당기의 비수들 사이를 뚫고 빠르게 접근했다.
'호오. 이것을 뚫고 들어와?'
위험한 공격만 막아내며 접근하는 남궁설을 보며 당기는 그녀가 무식하다고 생각했다.
-후웅!
그리고 남궁설이 검을 찔렀고, 당기는 곧바로 뒤로 물러나려고 했다.
"헛?"
하지만 그의 발은 땅에 붙은 것처럼 움직여지지 않았다.
발뿐만이 아니라, 몸 전체가 움직여지지 않았다. 그녀의 기세가 그의 몸을 짓누르는 것이다.
"으음!"
이대로라면 남궁설의 검이 그의 목 앞에 닿을 것이다.
'설마?'
그런 상황에서도 여전히 여유를 잃지 않는 당기를 보며 남궁혁의 표정이 굳어졌다.
-챙!
그 순간 당기가 들고 있던 비수를 휘둘러 남궁설의 검을 쳐냈고, 남궁설이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