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1화 〉 8장. 십이신룡(十二新龍)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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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장. 십이신룡(十二新龍) (3)
"이걸 연무장이라 해야 할지."
"그냥 공터라고 하는 것이 낫지 않겠나?"
십이신룡들은 백강휘가 안내한 곳으로 와서는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아무리 서자라고 해도 이것은 너무한 것 아닌가?"
"개인 연무장도 없다니."
그들의 눈에 깃든 감정은 비웃음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들은 이런 장소에서 수련을 한 백강휘를 안쓰럽게 보고 있었다.
아무리 우상인 남궁혁과 친분을 과시하는 백강휘를 시기하더라도, 불쌍하게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자, 대충 다 모였군."
남궁혁은 공터를 넓게 둘러싼 십이신룡을 보며 말했다.
"내가 강휘 동생과 친하게 지내는 것이 마음에 안 들 수도 있네."
"으음."
실제로 그러하긴 했지만, 남궁혁이 직접적으로 언급할 줄은 몰랐기에 십이신룡들은 난감한 표정이 되었다.
"겉보기에는 대단한 것도 모르겠으니, 내가 속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
몇몇 사람들이 얼굴을 붉혔다.
"그러니 한 번 붙어보고 싶다는 황보 소협 덕분에 좋은 기회가 만들어졌다고 생각하네."
남궁혁이 황보영목을 보며 말하자, 그가 고개를 끄덕이며 공터의 중앙으로 이동했다.
"오라버니는 괜찮을까요?"
"···잘 모르겠구나."
백서희와 시간을 보내던 남궁설 역시 갑작스러운 남궁혁의 호출에 이곳으로 불려와야만 했다.
그리고 그녀의 옆에는 걱정스러운 표정을 한 백서희가 있었다.
"저런 강해 보이는 사람을 오라버니가 이길 수 있을지."
백서희는 그녀의 부친보다도 더 덩치가 큰 황보영목을 보며 걱정이 되었다.
"그래도 무림에서 알아주는 강자들이 인정하였으니 지지는 않을 것이란다."
정말 그 정도로 강하다면.
남궁설은 뒷말은 입안으로 삼키며 남궁혁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백강휘를 보았다.
-꽈악!
그녀는 곧 손 안에서 느껴지는 강한 힘 때문에 고개를 돌렸다.
백서희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백강휘를 보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렇게 걱정스러울까. 기특하네.'
백서희는 손에 힘이 들어간 것도 인지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괜찮겠나?"
"힘 조절이 생각보다 어려울 것 같군요."
"그게 아니라 구경거리가 되는 것을 말하는 걸세."
남궁혁의 말에 백강휘는 웃음을 터뜨렸다.
"어떻게 할까요? 처참히 무너뜨릴까요?"
"음. 그러게."
사실 백강휘 같은 강자에게 한수 배우면 많은 것을 얻을 수도 있다.
하지만 오늘은 눈으로만 모든 것을 판단하지 말라는 가르침을 주고 싶었다. 그러니 처참하게 깨지는 것이 더 와닿을 것이리라.
"그러죠."
백강휘는 곧바로 황보영목의 앞으로 걸어갔다.
"미안하오, 공자. 하지만 궁금했소."
"괜찮소."
황보영목 역시 남궁혁처럼 미안한 감정이 깃들어 있었다.
한수 배워보고 싶어 말을 걸었는데, 어느새 구경거리가 된 것 때문에 마음이 불편한 모양이었다.
"자, 그럼 시작하게!"
남궁혁이 외치자 황보영목은 지체하지 않고 곧바로 백강휘를 향해 달려들었다.
"진지하군. 상대를 깔보는 시선도 없어."
"아무래도 다른 이들에 비하면 지금 밀리는 편이니까요."
진지한 표정으로 달려드는 황보영목을 보며 남궁혁과 태허 진인이 말했다.
십이신룡 중 오대세가와 구파일방에 속하지 않은 세가의 사람은 단 둘 밖에 없었다.
그 중 한 명인 황보영목은 다른 이들에 비해 자신이 모자르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노력하는 후기지수는 싫지 않습니다."
"빈도도 그럴세."
물론 다른 이들에 비해 조금 모자랄 뿐이지, 십이신룡에 뽑힐 정도의 강자인 것에는 변함이 없었다.
-후웅!
황보영목이 쭉 뻗은 일권이 백강휘의 얼굴을 향해 날아왔다.
"큭!"
하지만 백강휘는 손을 들어 그 공격을 막아냈다.
'무슨 힘이······.'
황보영목은 너무나 간단히 공격을 막아낸 것보다, 손이 꿈적도 하지 않는 것에 당황했다.
십이신룡보다 강하다고 할 수 있는 거력패도마저도 그의 힘을 이길 수 없었으니, 황보영목이 손을 빼내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황보 형을 힘으로 이긴다고?"
"으음. 우리들 중에서도 팽 형과 함께 가장 힘 쎈 사람인데."
백강휘의 손아귀에서 손을 빼내지 못하는 황보영목을 보며 사람들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아무리 내력을 사용하더라도 육체적인 능력이 강해지는 것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러니 사람들은 작은 체구의 백강휘가 황보영목을 힘으로 누르는 것에 놀란 것이다.
"읏!"
순간 황보영목은 몸이 붕 뜨는 느낌이 들었다.
-퍽!
그리고 배에서 느껴지는 엄청난 통증을 느끼며 황보영목은 정신을 잃고 말았다.
백강휘가 그의 다리를 걸어 중심을 무너뜨리고는 곧바로 배에 장법을 꽂아버린 것이다.
"황보 형이······."
"일격."
단 일격에 눈이 뒤집힌 채로 혼절해버린 황보영목을 보며 십이신룡의 눈이 반짝였다.
"다음엔 제가 해봐도 되겠습니까?"
"저도 해보고 싶습니다."
십이신룡들 중 몇 명이 손을 들며 외쳤다.
황보영목을 일격에 쓰러뜨릴 수 있는 사람은 이들 중 아무도 없었다.
'싸워보고 싶다.'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 같은 것이 아니었다.
저런 고수를 상대로 과연 자신은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시험해 보고 싶은 것이다.
"흠. 괜찮겠나?"
"힘든 것도 없습니다."
남궁혁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손을 든 사람들을 보았다.
"너무 많은데."
손을 든 사람이 다섯이나 된다.
"한꺼번에 하도록 하죠."
"괜찮겠나?"
사람들의 수를 줄여야겠다고 생각한 남궁혁은 백강휘의 덤덤한 말에 고개를 휙 돌렸다.
"우리를 너무 무시하는 것 아니오?"
"아무리 그래도 한 사람을 상대로 협공이라니."
십이신룡들은 협공이 비겁하다고 생각하는 듯 굳은 표정이 되었다.
"반드시 죽여야 할 적이 고수여도 협공이 비겁하다 할 것이오?"
"으음."
"흑사궁과 싸울지도 모르는데, 그때도 그런 안일한 생각을 할 수는 없지 않겠소?"
흑사궁보다는 혈교와 싸우겠지만, 그들에게 혈교의 존재를 밝힐 수는 없었다.
어쨌든 흑사궁의 고수란 말이 먹힌 것인지 십이신룡들은 진지한 표정으로 공터의 중앙으로 움직였다.
'저 녀석은 또 왜 저기 있는 거야?'
남궁혁은 그 다섯 명 중에 포함되어 있는 남궁설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괜찮으실까.'
황보영목을 일격에 쓰러뜨린 백강휘를 보며 기뻐한 것도 잠시, 갑자기 다섯 명의 고수들이 나서자 백서희는 가슴이 답답해졌다.
게다가 조금 전까지 그녀와 함께 있던 남궁설마저 나서니, 친하게 지내던 남궁설이 미워질 정도였다.
"무당파의 청하입니다."
"하북팽가의 팽무열이오."
청하는 무당파 장문인의 제자로, 태허 진인의 사질이 된다.
수려한 외모를 가진 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진중한 얼굴로 백강휘를 보고 있었다.
'확실히 팽가도 덩치가 크군.'
황보영목에 비해 덩치가 전혀 밀리지 않는 팽무열은 건들거리는 얼굴로 백강휘를 보고 있었다.
"사천당문의 당우령이에요."
그녀가 바로 기재라던 당기를 절망에 빠뜨려 얼간이로 만든 당가주의 딸이었다.
"소림의 공진이오."
공진은 이곳에서 태허 진인 다음으로 배분이 높다고 할 수 있었다.
그럴 것이 그가 바로 소림사 방장의 막내 사제였기 때문이었다.
"남궁설이에요."
그리고 남궁설까지.
백강휘는 다섯 신룡들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당 소저는 독을 쓰지 말게."
"알겠어요."
독을 쓰지 않으면 그녀의 힘을 십분 발휘할 수 없다.
하지만 이것이 서로 죽고 죽이는 대결이 아니었기에 그녀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시작하게!"
남궁혁의 외침이 끝나자마자 다섯 신룡들이 동시에 움직였고, 백강휘 역시 빠르게 그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빨라!'
그들은 백강휘의 모습을 놓친 것에 놀라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컥!"
그 순간 비명 소리가 들려오는 곳으로 고개를 휙 돌리니, 배를 부여잡은채 앞으로 고꾸라지는 공진이 보였다.
"읏!"
공진을 쓰러뜨리고 곧바로 달려드는 백강휘 때문에 팽무열이 깜짝 놀라며 도를 휘둘렀다.
"컥!"
백강휘는 빠르게 팽무열의 품으로 파고들며 일장을 내질렀고, 팽무열은 그대로 도를 놓치며 쓰러졌다.
"핫!"
당우령은 순식간에 둘을 쓰러뜨리고 청하에게로 다가가는 백강휘의 등을 향해 암기를 던졌다.
"위험해!"
그리고 그녀가 던진 방향으로 갑자기 나타난 남궁설의 등이 보였다.
그녀 역시 백강휘의 뒤를 노렸기에 당우령이 던진 암기를 보지 못한 것이다.
"이런!"
남궁혁이 그것을 보고 움직이려 할 때, 청하를 공격하려던 백강휘가 갑자기 뒤로 움직였다.
"앗!"
남궁설은 백강휘가 자신의 어깨를 잡으며 몸을 휙 돌리자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촤자작!
그리고 당우령의 침들이 백강휘의 등에 박혔다.
"괜찮으시오?"
"···네."
남궁설이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자 백강휘가 미소를 지었다.
-퍽!
그리고는 그녀의 배에 일권을 내질러 그녀를 쓰러뜨렸다.
'망할놈.'
부드러운 웃음과 전혀 다르게 배에 일권을 꽂아버린 백강휘를 욕하며 남궁설은 그대로 혼절할 수밖에 없었다.
"하압!"
청하는 남궁설을 쓰러뜨린 백강휘가 달려들어 일장을 내지르는 것을 보며 검을 휘둘렀다.
그의 검이 원을 그리며 백강휘의 손을 쳐내기 위해 움직였다.
"크헉!"
하지만 그의 검은 백강휘의 손에 닿지 못했다.
그의 검이 닿기 직전에 백강휘의 손이 그의 가슴을 먼저 후려친 것이다.
'···너무 빨라.'
청하는 그 생각을 마지막으로 그대로 혼절해버렸다.
"기권이에요."
어느새 네 명을 쓰러뜨린 백강휘를 보며 당우령이 양손을 들며 말했다.
네 명을 너무나 간단히 쓰러뜨린 백강휘를 이길 자신이 없었다.
"그보다 등은 괜찮으신가요?"
"괜찮소."
그의 등에 침들이 박혀있을 거란 그녀의 예상과 달리 침들은 바닥에 떨어져있는 상태였다.
'확실히 성능이 좋군.'
당우령이 던진 침은 백강휘가 입고 있는 천잠보의를 뚫지 못했다.
물론 천잠보의가 아니었어도 당우령의 공격은 백강휘에게 큰 위협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
"확실히 대단하시군요."
"고맙소."
백강휘는 간단하게 대꾸하고는 두손을 모은채 보고 있는 백서희를 향해 다가갔다.
"걱정했느냐?"
"오라버니!"
차마 백강휘가 싸우는 모습을 보지 못하고 두 눈을 꼭 감고 있던 백서희는 앞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눈을 뜨고는 그에게 안겨들었다.
"수고했네. 내 동생까지 그렇게 무자비하게 때려버릴 줄은 생각도 못했지만 말일세."
백강휘는 웃으면서 백서희를 안아들었다.
"저는 이만 가보려고 합니다만."
"그러게. 난 아무래도 저들이 일어날 때까지 기다려야 하니."
남궁혁은 그리 말하며 십이신룡들을 보았다.
절망을 느낀 녀석도 있었지만, 대부분 오히려 백강휘를 따라잡겠다는 의지를 태우고 있었다.
"자네의 예상대로인가?"
"어느정도는 예상하긴 했지만, 생각보다 더 강하더군요."
"음."
물론 십이신룡들 자체가 협공에 익숙하지 않으니, 쉽게 당한 감도 있었다.
다른 사람이 공격을 당할 때, 멍하니 지켜보고 있었으니, 협공이라고 하기에도 무색할 정도였다.
하지만 백강휘의 순간적인 움직임은 남궁혁과 태허 진인마저 놓칠 정도였으니, 감탄이 절로 나올 수밖에 없었다.
"무척이나 익숙한 모습이라서 더 놀랐습니다.
"새삼 저런 고수를 키워낸 자가 누구인지 보고싶어지는군."
남궁혁은 태허 진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저 녀석은 정파의 기둥이 되어야 해. 이 녀석들 같은 그런 후기지수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러기 위해서는 백강휘가 이곳에서 벗어나야만 했다.
'가주를 한 번 만나봐야겠어.'
남궁혁은 백강휘가 걱정없이 이곳을 떠나 마음껏 날개를 펼치기를 바랐다.
백강휘의 바람과는 전혀 다른 그의 바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