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화 〉 8장. 십이신룡(十二新龍)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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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장. 십이신룡(十二新龍) (1)
녹가장을 이긴 이후, 백씨세가는 급격하게 강대해지기 시작했다.
그것은 거력패도 장룡을 이긴 백강휘 때문이었다.
'이렇게 본가가 커지면 오대세가도 꿈이 아니야.'
오래 전부터 백씨세가의 가주들은 오대세가의 반열에 드는 것을 꿈꿔왔다.
백연호 역시 그것이 일생의 목표였는데, 자신이 가주로 있을 때 가능하다고 생각하니 몸이 절로 떨려올 지경이었다.
'새로 들어오는 무인들도, 식객들도 수준이 달라.'
백강휘를 보기 위해 일반 무인들이 몰려오는 것은 물론이고, 이름있는 무인들마저 식객으로 찾아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녀석 때문이란 것이 뼈아프군.'
가장 큰 문제는 사람들이 백씨세가의 이름 때문에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백강휘를 보고 찾아온다는 것이었다.
그것이 백연호를 마냥 기쁘게 하지 못하게 만들고 있었다.
'게다가 혼담이 전부 녀석에게로만 오고 있다니.'
소가주인 백자후가 아니라 백강휘에게 많은 곳에서 혼담이 들어오고 있었다.
분명 서자이기에 홀대받는다고 생각해서 데려가기 위함이리라.
'녹가장에서마저.'
게다가 이권다툼을 했던 녹가장에서마저 혼담이 들어올 정도였다.
원래대로라면 백자후와 혼약을 했어야 할 녹가장의 딸이었기에, 많은 것이 변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슬슬 때가 된 건가?'
가주인 백연호가 백강휘 때문에 고민을 하고 있을 때, 당사자는 슬슬 움직일 때가 되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백씨세가에 사람들이 몰리고 있어. 나 때문에.'
오대세가 정도는 아니지만, 상당히 강력해지고 있는 이때, 세가를 차지할 생각이었다.
'그렇다면 서희와 남 부인을 어쩌냐는 건데.'
일을 벌일 때, 두 사람은 세가에 없는 것이 좋았다. 결코 좋은 방법으로 차지할 생각은 아니었으니까.
"공자님, 잠시 괜찮으십니까?"
백강휘는 밖에서 들려오는 우일향의 목소리에 상념에서 깨어났다.
"무슨 일이지?"
"제왕검(帝王劒)이 온다고 합니다."
"······."
제왕검 남궁혁.
바로 백강휘가 안휘에서 만났던 남궁세가의 소가주의 별호였다.
'잃어버렸던 무공들을 되찾아준 영웅.'
백강휘와 함께 귀영신투의 은신처에서 찾아낸 비급들을 정의맹에 되돌려주면서 단번에 영웅으로 급부상했다.
게다가 남궁세가가 잃어버렸던 제왕검형(帝王劍形)을 빠르게 익혀나가면서 제왕검이란 별호로 불리고 있었다.
"그래서 세가가 이리 소란스러웠던 건가?"
"제왕검만이 아니라 태극검왕까지 온다고 합니다."
"누가 온다고?"
이어지는 우일향의 말에는 백강휘마저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 인간이 대체 왜 오는 건데?"
천하에서 가장 강한 자는 바로 무황성의 성주인 무황이다.
그 밑으로 세 개의 별이 있는데, 바로 정의맹주와 남궁세가주, 그리고 흑사궁주였다.
'그 밑으로 있는 오왕 중 한 명인 태극검왕 태허 진인.'
무당파 장문인의 막내사제로, 무당파의 검이라고 불리는 사람이다.
"후기지수들 때문에 오는 것 같습니다."
"그게 지금이던가."
"예?"
백강휘는 고개를 저으며 다시 생각에 잠겼다.
'오룡삼봉을 뽑는 비무대회.'
백강휘는 그것 때문에 정의맹으로 향하는 후기지수들을 인솔하기 위해 그들이 온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왜 이곳이지?'
이전에는 이런 일이 없었기에 백강휘는 미래가 바뀌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분명 안휘에서 남궁혁을 만나서, 그와 의형제가 되었기 때문이리라.
"아무래도 가주와 소가주가 좋아하겠군."
"예. 그들과 인연을 쌓을 수 있는 좋은 기회니까요."
제왕검, 태극검왕과 인연을 쌓을 수 있는 기회였기에 분명 엄청난 준비를 할 것이다.
'이래서 기다리라고 한 것인가.'
무당파의 장로 중 한명을 데려올 생각이었기에 백강휘에게 기다리라고 했던 모양이다.
'설마 태극검왕을 데리고 올 줄은 몰랐지만.'
그나마 백서희에게 미리 영약을 먹이고 삼재심법을 수련시키고 있는 것이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 덕분에 그녀의 몸속에는 꽤 많은 양의 정순한 내공이 자리잡고 있었으니까.
'전부 서희가 태극검왕의 마음에 들어야 하는 일이지만.'
백강휘는 남궁혁이 너무 거물을 데리고 온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 * *
"어서오십시오. 백씨세가의 가주인 백연호라고 합니다. 이렇게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이렇게 환대해주시니 고맙소."
태허 진인은 일행을 대표해서 백연호와 인사를 주고받았다.
그의 옆에서 남궁혁이 고개를 휙휙 돌리며 무언가를 찾고 있는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두 사람의 뒤에는 열두 명의 젊은 무인들이 있었는데, 그들 중 몇 명은 불만이 있는 것인지 굳은 표정이었다.
'왜 이런 곳에.'
'제갈세가도 있고, 무한으로 가면 유명한 곳도 많거늘.'
그들은 오대세가도 아닌 백씨세가에 온 것이 불만이었다.
"이렇게 제왕검 남궁 소협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백씨세가의 소가주인 백자후라고 합니다."
요즘 어린 무인들에게 우상은 바로 제왕검 남궁혁이었고, 그것은 백자후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반갑소. 그보다 일공자는?"
"예?"
두근거리는 가슴을 부여잡고 우상에게 다가갔던 백자후는 남궁혁의 말에 얼굴이 굳어졌다.
"왜 그 녀석을······."
"흠. 아무리 서자라도 피가 섞여있거늘, 백씨세가에서는 그에게 이런 대우를 하는 거요?"
"그것이 아니라······."
남궁혁이 굳은 얼굴로 묻자 백자후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남궁 소협께서는 그 아이와 무슨 관계가 있으시오?"
남궁혁의 심기가 불편해진다는 것을 눈치 챈 백연호가 빠르게 끼어들었다.
"아우가 안휘에 왔을 때 인연을 쌓았지요."
"아우?"
"제가 먼저 의형제를 제안했지요."
남궁혁의 말에 그의 뒤에 있던 열둘의 젊은 고수들은 물론이고, 태허 진인마저 놀란 표정을 지었다.
대체 얼마나 대단하길래 제왕검이 먼저 의형제를 제안했다는 말인가.
"그것을 함께 찾은 아이입니다."
"호오, 그것 참!"
태허 진인은 남궁혁이 말하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바로 무당파에서 실전 된 보법, 제운종의 비급이었다.
제운종(梯雲縱)은 구름을 사다리처럼 딛고 오른다는 무당파 최고의 경신법이다.
그리고 실전되었던 이 제운종의 비급을 찾아준 것이 남궁혁이었는데, 설마 백씨세가의 일공자가 관여를 했을 줄이야.
"자네가 그리 말하니 빈도도 꼭 한번 보고 싶구만."
태허 진인이 흥미로운 눈을 하며 백연호를 보았다.
"으음. 잠시만 기다려주시지요. 가서 일공자를 데려와라."
백연호는 입술을 질끈 깨물며 옆에 있는 조광에게 말했다.
일부러 백강휘를 부르지 않았는데, 설마 남궁혁이 그를 찾을 줄이야.
"그럴 필요 없습니다."
"아우!"
"오랜만에 뵙습니다."
갑작스럽게 들려오는 그 목소리에 남궁혁이 반색하며 백강휘에게 다가갔다.
"오랜만이로군. 잘 지냈나?"
"예. 잘 지냈습니다."
"아, 이분이 바로 무당파의 태허 진인일세."
반가운 표정으로 백강휘를 살피던 남궁혁은 곧바로 그를 태허 진인에게로 데려갔다.
"반갑네. 태허일세."
"백강휘입니다."
태허 진인은 자신을 보면서도 침착한 모습의 백강휘를 보면서 눈을 빛내며 그를 찬찬히 살펴보았다.
"으음. 이것 참. 이 친구 말고도 이 정도로 대단한 젊은 고수가 있을 줄이야."
그리고 솔직하게 감탄했다.
남궁혁 만한 최고의 기재는 없다고 생각했는데, 또 다른 기재가 그의 눈앞에 있었다.
'으음.'
'대체 저놈이 왜······.'
그리고 태허 진인과 남궁혁이 백강휘를 칭찬할수록 백연호와 백자후의 얼굴은 굳어져만 갔다.
"언제까지 여기 있으실 건가요?"
계속 이어질 것 같은 그 분위기를 깬 것은, 뒤에 있던 열둘의 젊은 고수들 중 한 여인의 목소리였다.
"아, 미안하게 되었구나. 가주님, 혹시 이 아이들이 쉴 곳을 마련해주실 수 있으신지요."
"이미 준비해두었소. 그런데 소협과 진인께서는?"
"전 오랜만에 만난 아우와 더 담소를 나누어야 할 것 같습니다."
남궁혁은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돌렸다.
"설아. 너도 가겠느냐?"
"네. 저도 오라버니가 극찬하는 분과 대화를 나눠보고 싶군요."
남궁혁의 질문에 한 여인이 무리에서 빠져나왔다.
방금 전, 기다림을 찾지 못하고 질문을 던졌던 여인이었다.
"우선 자네의 거처로 가세. 진인께서도 가시겠습니까?"
"좋네."
"자, 그리 되었으니 어서 안내하게."
남궁혁은 백강휘의 등을 밀며 재촉했다. 그리고 그 뒤를 태허 진인과 여인이 뒤따랐다.
'대체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그리고 그런 네 명을 보며 백연호는 황망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비단 그뿐만이 아니라, 남궁혁과 함께 온 젊은 고수들 역시 당황한 표정으로 그들을 보고 있었다.
"누추한 곳에 대단한 분들을 모시는군요."
"음. 정말 누추하군."
"오라버니?"
백강휘의 거처로 들어온 남궁혁은 주위를 둘러보며 솔직한 감상을 내뱉었고, 오히려 당황한 것은 그의 여동생인 남궁설이었다.
그녀는 예의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남궁혁 때문에 당황한 표정으로 백강휘를 보았다.
"사실이니까요."
오히려 전혀 불편한 기색을 보이지 않고 웃고 있는 백강휘가 대단해 보일 정도였다.
"그래서 이 우형이 말했던 것은 어찌 되었나?"
"그렇다고 진인을 모시고 올 줄은 몰랐습니다."
"운이 좋았지."
시녀가 준 차를 마시던 태허 진인은 둘의 대화를 듣더니 허탈한 웃음을 흘렸다.
"그리 이곳에 와야 한다고 하더니, 단순히 의동생을 보려고 한 것은 아닌 모양이로군."
"진인께서도 이제 제자를 둬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것이 꿍꿍이었어. 그런데 백 공자는 굳이 빈도의 제자가 될 필요가 없어보이네만?"
"제가 아닙니다."
백강휘는 그렇게 말하며 옆에 서 있던 우일향에게 눈짓을 주었고, 그가 고개를 고개를 숙여보이고는 밖으로 나갔다.
"저 무인도 대단하고. 백씨세가의 대단한 고수들은 다 이곳에 있구려."
태허 진인의 말에 남궁설은 미소를 지으며 차를 마시는 백강휘를 살펴보았다.
'그 정도로 대단한 것일까?'
우일향이 고수인 것은 알 수 있었다. 아마 백씨세가 내에서도 세 손가락 안에 들 정도일 것이다.
하지만 백강휘가 그 정도로 고수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하지만 오라버니도, 진인께서도 저리 칭찬하시니.'
열둘의 후기지수들을 보면서도 무덤덤하던 사람들이 입에 침이 마르도록 백강휘를 칭찬하는 모습이 신기하게 느껴졌다.
"공자님, 아가씨께서 오셨습니다."
그렇게 약간의 시간이 지나자 밖에서 우일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라버니!"
그리고 곧 문이 열리며 백서희가 안으로 들어오며 백강휘에게 폭 안겼다.
"으음!"
"이것 참!"
매우 작은 소녀가 백강휘에게 안기는 모습을 보며 태허 진인과 남궁혁의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귀여워.'
그리고 그것은 남궁설 역시 마찬가지였다.
"인사하거라. 이쪽은 무당파의 장로이신 태허 진인이시고, 이쪽은 이 오라버니의 우형이신 남궁혁 형님이시다. 그리고 이쪽은······."
"이제보니 인사가 늦었군요. 남궁혁 오라버니의 동생인 남궁설입니다."
백강휘가 자신을 보며 어색한 표정을 짓자 그제야 자신을 소개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은 남궁설이 자신을 소개했다.
"배, 백서희라고 합니다."
갑작스럽게 낯선 사람들과 만난 탓인지 백서희가 쭈뼛대며 인사를 했다.
그리고 그런 백서희를 보는 태허 진인의 눈이 반짝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