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화 〉 6장. 보물과 혈교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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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장. 보물과 혈교 (3)
'남우기?'
백강휘는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사내가 남우기란 것을 알고는 긴장했다.
'혈향이 나지 않았는데.'
그래서 혈교의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잘못 생각한 모양이었다.
"역시 너도 저놈들과 관계가 있었군."
"흠?"
"백씨세가의 일공자가 사마외도로 빠지다니!"
남우기는 빠르게 검을 뽑아 들고는 백강휘를 향해 휘둘렀다.
"읏!"
남우기의 검은 쾌검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의 몸으로부터 흘러나오는 기세가 짓눌렀기에 피하기가 쉽지 않았다.
"기다리시오! 무언가 오해가 있소."
"오해는 무슨!"
남우기는 그리 외치며 재차 검을 들어 올렸고, 그것을 아래로 내려쳤다.
'느려.'
검은 느렸지만, 이전보다 더 강한 남우기의 기세가 백강휘의 몸을 짓눌렀다.
"망할!"
백강휘 역시 빠르게 내력을 움직여 천천히 내려쳐지는 남우기의 검을 향해 일권을 내질렀다.
-쾅!
남우기의 검과 백강휘의 일권이 부딪치며 두 사람이 동시에 밀려났다.
'제길.'
남우기의 검과 부딪친 오른손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다행히 손이 베이지는 않았지만, 상처까지는 어쩔 수 없었다.
'빨리 권갑을 구하던가 해야지.'
상대가 같은 강기를 쓰면 결국 강기를 뚫고 오는 공격에 상처를 입을 수밖에 없었다.
지금 당장은 급하다고 생각하지 않았기에 구하지 않고 있었는데, 안일하게 생각했던 모양이었다.
"웬 놈들이지?"
"여긴 어떻게 알고."
백강휘와 남우기가 부딪치는 소리에 혈교의 무인들이 달려오기 시작했다.
"어떤 놈들인지는 모르겠지만 운이 없군."
그들이 하는 말에 남우기가 움직임을 멈추고는 백강휘를 보았다.
"정말 관계가 없었나?"
"그렇다고 하지 않았소."
백강휘의 말에 남우기가 어색하게 웃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이거 미안하게 되었소. 나는 그대가 저들과 한편인 줄 알고. 우선은 저들을 처리해야 할 것 같소."
"······."
남우기는 슬금슬금 다가오는 혈교의 무인들을 보며 말했고, 백강휘는 작게 한숨을 내쉬며 몸을 돌렸다.
"이야기는 나중에."
백강휘는 남우기의 대답도 듣지 않고 곧바로 몸을 날렸다.
"좋소."
남우기 역시 짧게 대답하고는 혈교의 무인을 향해 달려들어 검을 휘둘렀다.
-후웅!
그의 검이 다시 내려쳤고, 그의 앞에 있던 무인이 좌우로 양단되었다.
'역시 대단한 고수였어.'
너무나 쉽게 베어지는 혈교의 무인들과 달리 백강휘는 그의 공격을 피하고, 쳐내기까지 했다.
'제대로 한번 붙어보고 싶은데.'
남우기는 또 한 명의 적을 베면서도 백강휘와 싸워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처음 봤을 때도 고수라고 생각했지만, 그와 맞부딪쳤을 때 검을 타고 들어오는 기운에 놀랐다.
-서걱!
마지막 한 명까지 베어버린 남우기는 곧바로 백강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의 앞에는 머리가 터져버려 몸 밖에 남지 않은 시신 두 구가 있었다.
"후후. 이겼구려."
남우기가 베어버린 적은 세 명이었다.
그는 뿌듯한 미소를 지으며 백강휘에게 다가갔다.
"그래서, 남궁세가의 소가주께서 이곳엔 어쩐 일이오?"
"알고 계셨소?"
"그런 엄청난 검을 봤으니 남궁세가의 검을 떠올리는 것은 당연하지 않소?"
"하하. 그렇군."
남우기, 아니 남궁혁은 호쾌하게 웃으며 검에 묻은 피를 털어냈다.
백강휘의 말처럼 남궁세가는 중검으로 유명했다.
무척이나 무겁고, 또한 느린 검.
'하지만 기세로 상대를 짓눌러 반드시 베어버리는 검.'
그것이 바로 남궁세가의 검이었다. 만약 백강휘가 조금만 더 약했더라면 아마 그의 몸도 양단이 되었으리라.
"사실 이곳에서 불온한 움직임이 있다고 하여 와봤던 참이오."
"혼자서?"
"여럿이 움직이면 저들은 더 경계하지 않겠소? 그러니 몰래 움직일 수밖에."
안휘의 지배자인 남궁세가였기에 혈교의 움직임을 눈치챘던 모양이었다. 그리고 백강휘와 만난 것은 정말 우연이었고.
"그런데 백 공자께서는 어쩐 일로 이곳에 오셨소?"
"여기에 보물이 있다고 들어서 말이오."
"보물? 처음 듣는데."
어차피 남궁세가의 사람인 남궁혁이 등장하였기에 더는 속일 수 없었다. 게다가 그는 이미 그의 정체를 알고 있었다.
"우연히 정보를 얻었을 뿐이오."
"흐음. 우연히 얻었다라."
남궁혁은 우연히 정보를 얻었다는 백강휘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지는 않는 것 같았다.
"그런데 내가 백씨세가에서 온 것은 어찌 알았소?"
"이곳이 어디인지 잊었소?"
남궁혁의 말에 백강휘는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안휘에서 남궁세가의 눈을 피하기는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었으니까.
"하지만 개인적으로 백 공자에게 흥미가 있었소."
"흥미라."
"백씨세가의 무능한 일공자에서 갑자기 엄청난 고수로 탈바꿈한 사람."
백강휘가 형문채를 박살 낸 사실은 이미 조금씩 퍼지고 있었다.
물론 아주 조용히 퍼지고 있는 상태였고, 대부분 그 말을 믿지도 않았다.
하지만 남궁혁은 그런 백강휘가 안휘에 들어왔다는 말을 들었고, 그를 처음 봤을 때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솔직히 이 정도로 대단한 고수인지 몰랐소."
"······."
"그렇기에 더욱 저놈들하고 한패라고 생각했지. 사술 같은 것으로 강해졌다고 생각했소."
급작스럽게 강해진 백강휘였기에 의심할 수밖에 없었는데, 마침 백강휘가 이곳에 있는 것을 보았다.
그렇기에 그 의심이 확신이 될 수밖에 없었는데, 저들의 분위기를 보고는 아니라고 판단했던 것이다.
"그래서 백 공자는 이들의 정체를 알고 있소?"
남궁혁은 안휘에서 수상한 자들이 움직인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정체까지는 알지 못했다.
하지만 백강휘의 모습을 보니 그들이 누구인지 아는 것 같았기에 그리 물을 수밖에 없었다.
"말해도 믿지 못할 것이오."
"······."
그리고 이 말에 그는 확신할 수 있었다. 백강휘가 이들의 정체를 알고 있다는 것을.
"하지만 말해드리지 못할 것도 없소."
"정말이오?"
"믿고 안 믿고는 그대의 자유니까."
"그 전에 우리 호칭 정리 좀 하고 하면 안 되겠소? 자꾸 이렇게 서로 선을 그으니 말이오."
남궁혁은 시원스럽게 웃으면서 자신을 손을 가리켰다.
"내가 백 공자보다 나이가 많은데 편하게 대해도 되겠소?"
"그리하시오."
"하하. 고맙네. 자네도 편하게 대해도 좋다네."
남궁혁의 말에 백강휘는 거절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은 단순히 남궁혁이 나이가 많기 때문이 아니었다.
'남궁세가와, 그리고 저 사람과 연을 쌓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니니까.'
남궁세가와 연을 쌓을 이 기회를 버릴 생각은 없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이유가 있었다.
'차기 천하제일인 남궁혁.'
물론 저 차기에는 무황이 죽었을 때라는 가정이 붙기는 했다.
젊은 나이에 초절정 고수가 된, 정파를 대표하는 젊은 고수가 바로 남궁혁이었다.
'하지만 예전에 봤을 때는 이런 모습이 아니었는데.'
백강휘가 남궁혁을 몰라본 것은 그의 분위기 때문이었다.
당시에는 지나치며 본 것이 전부였지만, 지금과 달리 무척이나 음울한 분위기였다.
'몇 년 후에 무슨 일이 있는 건가?'
지금 본 남궁혁은 무척이나 밝고 쾌활한 성격이었기에, 그가 봤던 남궁혁을 떠올리기 쉽지 않았다.
"그래서 이들은 누구인가?"
"혈교라는 놈들이죠."
"흠. 이제야 좀 나이와 엇비슷한 말투군. 아까 그 말투는 너무 어색했어."
남궁혁은 백강휘의 변한 말투에 씩 웃고는 다시 혈교 무인들의 시체를 보았다.
"그런데 혈교는 무엇이지? 천마신교 놈들인가?"
"조금 다릅니다. 비슷하긴 하지만, 뭐 숭배하는 대상이 틀린 것이겠죠."
"흠."
조금은 다르지만, 어쨌든 비슷한 놈들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천마신교는 분명 힘이 정의라고 생각하지만, 스스로의 힘으로 강해지는 것을 중요시하죠."
"이놈들은 다르다는 건가?"
"강해지기 위해서는 그 어떤 더러운 수라도 씁니다."
어린아이나 여인들의 피로 목욕을 하는 것도 서슴지 않았다.
하지만 백강휘는 그것까지는 말하지 않았다.
"그런데 어째서 나는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것이지?"
"아직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으니까요. 그들은 천마신교의 갈래 중 하나입니다."
천마신교에서 중원정복을 꿈꾸던 강경파들이 나와 새로 만든 곳이 혈교였다.
그 힘이 아직은 미약하여 암중에서 힘을 기르는 중이었는데, 하필이면 그것이 몇 년 후에 끝나는 것이다.
"자네는 어찌 그리 잘 아는가?"
"······."
"대답하기 싫어도 해야 하네. 안 그러면 자네를 의심할 수밖에 없어."
남궁혁은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혈교에 대해서 너무 잘 알고 있는 백강휘가 의심스러웠다.
그가 혈교와 적대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혹시 혈교 출신이 아닌가 싶어질 정도였다.
"스승에게 들었습니다."
"스승? 자네에게 스승이 있었어?"
"강서에서 우연히 만나서 무공을 배웠습니다. 다만 그분의 정체는 알지 못합니다."
"그럼 그 스승이란 분은?"
남궁혁의 질문에 백강휘는 고개를 저었다.
"제게 무공의 구결과 초식들을 알려주시고는······."
"흠. 미안하네."
백강휘의 모습을 보고는 남궁혁은 그의 스승이 죽었다고 생각했다.
다행히도 잘 넘겼다고 생각한 백강휘는 혈교의 무인들이 지키던 곳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거기에 보물이 있다는 건가?"
"저도 모릅니다. 한 번 들어가 봐야겠죠."
수풀로 정교하게 잘 가려진 곳을 치우자 사람 한 명이 겨우 기어서 들어갈 만한 입구가 나왔다.
백강휘는 전혀 지체하지 않고 무릎을 꿇고는 안으로 들어갔다.
"생각보다 불편하군."
뒤에서 남궁혁의 불평이 들려왔다.
백강휘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남궁혁이기에 들어오는 것이 쉽지 않은 모양이었다.
'이상하게 거북하지는 않군.'
전생의 나이까지 생각해본다면 현재의 남궁혁은 백강휘보다 어리다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상하게 남궁혁의 하대가 그리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그의 미래 모습을 봤기 때문일까?'
아니면 그가 동경하던 사람이기 때문일 수도 있었다.
남궁혁은 남궁세가의 소가주라는 대단한 신분을 가졌지만, 겸손하며 의협심이 강했다.
백강휘는 전혀 다른 축복받은 환경에서 자랐고, 젊은 나이에 정파를 대표하는 고수가 된 남궁혁을 질투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동경하고 있었다.
"오, 드디어 도착인가?"
그렇게 한참을 기어서 움직이자 곧 넓은 공간이 나왔다.
남궁혁은 재빨리 몸을 일으키며 주위를 살펴보았다.
"이건, 정말 보물이로군."
"······."
남궁혁의 말대로 확실히 이곳은 보물창고라 해도 틀리지 않을 정도로 많은 재물들이 쌓여있었다.
금은보화는 물론이고 각종 병기들이나 비급들도 있었다.
"오, 이건 대단하군."
남궁혁은 병기들이 쌓여있는 곳에서 하나의 검을 꺼내 그것을 살펴보았다.
"그래서 자네가 노리는 것은 무엇이지?"
"······."
하지만 백강휘는 쉽게 대답할 수가 없었다.
이곳이 그가 생각하던 곳과는 너무나 다른 모습이었기 때문이었다.
'대체 여긴 무엇이지?'
백강휘는 답답해지는 가슴을 애써 억누르며 동굴 안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