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화 〉 3장. 백씨세가로 돌아오다 (4)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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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장. 백씨세가로 돌아오다 (4)
"상공! 상공!"
백씨세가의 가주인 백연호는 집무실 밖에서 들려오는 여인의 앙칼진 목소리의 얼굴을 찌푸렸다.
"들으셨습니까?"
"무엇을 말이오?"
그의 허락도 없이 문을 벌컥 열고 들어오는 중년 여인을 보면서 백연호는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여인, 장문영은 백연호의 한숨을 무시하며 그에게 다가갔다.
"백강휘, 그 아이 말입니다. 그 아이가 우리 자후를 공격했단 말입니다!"
"흠."
백연호는 턱을 쓰다듬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물론 알고 있소."
"알고 있다고요? 그런데 지금 그놈을 가만히 놔두시는 겁니까?"
"그럼 어떻게 하실 원하시오?"
너무나 태연한 백연호의 말에 장문영의 얼굴에 힘줄이 돋아났다.
"지금 어떻게 하길 원하냐고 하셨나요? 당연히 그 더러운 놈을 쫓아내야지요. 세가의 후계자가 될 자후를 다치게 하지 않았습니까?"
"세가의 후계자라······."
"그래요. 후계자요."
후계자란 말을 곱씹는 백연호에게 장문영은 강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후계자는 백자후가 될 수밖에 없었다.
가장 나이가 많은 백강휘는 더러운 피가 섞여 있는 서자였다.
그리고 백서희 역시 정실부인인 그녀의 딸이 아니며, 너무 어렸다. 무공 역시 보잘것없었고 말이다.
그러니 백씨세가 최고의 기재라고 할 수 있는 백자후가 소가주가 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실제로 그럴 생각으로 소가주로 임명한 것이 아닙니까?"
"맞지. 후계자."
백연호의 말에 장문영의 얼굴이 밝아졌다. 백강휘에게 졌다고 소가주 자리를 박탈할 것으로 생각했던 것은 단순한 우려였던 모양이었다.
"그러니 그놈을 다시 쫓아내야지요."
"이미 한 번 쫓겨났던 놈이 다시 돌아왔는데, 다시 내쫓는단 말이오? 무엇을 핑계로?"
"다시 보물을······."
장문영의 말에 백연호는 고개를 저었다.
"이미 그 방법은 썼소. 게다가 녀석은 세가로 다시 돌아왔고. 녀석은 결백하다고 스스로 증명해버린 것이오."
그리고 백강휘가 돌아온 것을 이제는 백씨세가 내의 모든 사람이 알게 되었다.
"그러니 녀석을 또다시 내쫓으면 사람들은 녀석이 서자이니 내쫓는다고 생각할 것이오."
"사람들의 손가락질이 무서워서 녀석을 그대로 두겠다는 것입니까?"
"백씨세가가 오대세가에 들기 위해서는 평판도 중요하오!"
단순히 무력만 강하다고 하여 오대세가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괜히 오대세가가 정파를 대표하는 다섯 개의 세가가 아니었다.
무력은 물론이고 의(義)와 협(俠) 역시 다른 사람이 고개를 끄덕일 정도여야 오대세가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놈의 오대세가.'
장문영은 백연호의 입에서 나오는 오대세가란 말이 너무나 지겹고, 역겹게 느껴졌다.
처음에야 꿈을 크게 가진 백연호가 멋있게 느껴졌지, 이제는 현실을 모르는 철부지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그럼 어떻게 하겠다는 건가요?"
하지만 오대세가란 자리에 대한 백연호의 집착이 어느 정도의 크기인지 알고 있었기에 화제를 돌릴 수밖에 없었다.
"상황을 좀 더 지켜볼 생각이오."
"그건······."
"그러니 놈을 죽일 수 있을 때 확실히 죽였어야지!"
백연호가 버럭 소리를 내지르자 장문영이 급히 입을 다물었다.
백호대주를 움직인 것은 그녀의 독단이었다. 하지만 사실을 알고 있었을 백연호가 그 어떤 제재를 하지 않았기에 묵인했다고 생각했었다. 실제로 그녀의 생각처럼 백연호는 그것을 묵인했었고.
"어쨌든 자후가 소가주가 된 것을 물리지 않을 것이오. 걱정하지 마시오. 그놈이 가주가 되는 일은 없을 터이니."
"그 말을 지키셔야 할 것입니다."
장문영은 표독스러운 눈으로 백연호를 노려보다가 이내 몸을 휙 돌렸다.
"한동안은 얌전히 있으시오. 괜히 녀석을 건드리지 말고."
"두고 보겠습니다, 상공."
"또 그 잘난 집안에 말이라도 하려는 것이오?"
백연호의 질문에 장문영이 얼굴을 구겼다. 그의 말대로 장문영은 그녀의 집에 이 일을 말하려고 했다.
그녀의 집은 호북에서 작은 상단을 운영하고 있었다.
작은 상단이었기에 백씨세가에 견줄 곳이 아니었지만, 그녀의 아버지가 호북에서 꽤 큰 상단의 상단주와 의형제라는 것이 문제였다.
그 상단주가 호북에서 하나뿐인 상회의 부회주와 절친한 사이였으니까.
만약 호북상회에서 백씨세가와의 거래를 끊으면 세가는 곧바로 자금난으로 위험해질 수밖에 없었으니까.
"필요하겠다면 해야지요."
"가문의 힘을 이용하는 것은 상관없지만, 만약 세가에 누를 끼친다면 용서하지 않을 것이오! 아무리 부인이라 하더라도!"
"이익!"
그럼에도 강하게 나오는 백연호를 보며 장문영은 이를 악물었다. 그녀는 씩씩거리며 집무실의 밖으로 나가며 문을 거칠게 닫았다.
"후우."
장문영이 나간 문을 보며 백연호는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리 부인이라 하더라도 그녀와 상대하는 것은 힘든 일이었다.
'괜한 일을 벌인 것 같군.'
처음부터 백강휘를 죽이려는 장문영을 말렸어야 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장문영이 백강휘를 제대로 처리했더라면 이런 걱정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조광과 백자후를 일격에 쓰러뜨렸다고.'
가주인 백연호도 조광을 일격에 혼절시키지 못한다.
물론 이제 막 일류 수준에 들어서기 직전인 백자후라면 그 역시 일격이면 충분했다.
'게다가 팔까지 부러뜨릴 줄이야.'
다음에는 팔 하나로 끝나지 않을 것이란 경고까지 했다지.
'아무리 조광이 방심했다고 하지만······.'
백연호는 머리가 아파졌다.
백강휘가 그의 생각보다 더 강하다는 것이 문제였다.
'그럼 정말 초절정에 오른 고수란 건가?'
초절정 고수는 그 수가 많지 않다. 오대세가나 구파일방에서도 무위로 유명한 장로급이나 장문인, 가주들 정도나 초절정에 오른 고수였다.
그런 고수가 백씨세가에 나왔음에도 백연호는 결코 기뻐할 수 없었다. 하필이면 그 대상이 백강휘였기 때문이었다.
'녀석을 통제할 수가 없으니.'
이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차라리 백자후나 백성후, 아니면 백서희가 초절정 고수였다면 그는 쌍수를 들고 환영했을 것이다.
'하필이면 그놈이라니! 하필이면!'
백강휘는 이미 백씨세가에서 목숨을 노렸던 적이 있었다. 그가 세가로 돌아온 것은 충성심 같은 것 때문이 아니란 것을 알고 있었다.
'정말 문제로군.'
백강휘가 백씨세가로 돌아온 목적을 아직 알아내지 못했다.
돌아온 것은 바로 오늘이었고, 오늘 백자후와 문제를 일으켰기 때문에 녀석의 목적을 알아내지 못한 것이다.
'녀석이 안 좋은 의도가 아니길 바랄 수밖에 없는 건가.'
백강휘가 강함이 정말 초절정 고수라면 이제 그를 쫓아낼 수도 없게 된다.
그가 세가에 필요해서가 아니라, 쫓아낼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그 정도의 고수를 절정 고수만 있는 이곳에서 누가 내쫓을 수 있단 말인가.
'어째서 그 정도의 힘을 가지고 세가로 돌아온 것이냐?'
백강휘의 의도를 전혀 알 수 없었기에 백연호로서는 답답한 마음일 수밖에 없었다.
* * *
백연호가 그런 답답한 마음인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백강휘는 자신의 거처에서 여유롭게 차를 즐기고 있었다.
"공자님."
"왔나? 가주가 찾았다면서?"
"예. 공자님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면서 목적이 무엇인지 알아보라고 합니다."
"가주가 급했나 보네."
백강휘는 우일향의 보고에 웃음을 터뜨렸다.
그는 백연호에게 우일향을 달라고 했었고, 가주는 그것을 허락했다. 그렇다면 우일향이 백강휘의 사람이라고 생각해야 했고, 이런 것을 부탁하면 안 되었다.
백호대주 조광을 일격에 쓰러뜨렸다는 것에 놀란 것 때문인지 마음이 급해진 모양이었다.
"어떻게 할까요?"
"보고해도 돼. 그런데 할 것이 있나?"
"그럼 최대한 중요한 것을 제외하고 보고하겠습니다."
"그렇게 해."
백강휘는 그렇게 말하며 찻잔을 내려놓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디 가십니까?"
"잠깐 생각할 것이 있어서, 좀 혼자 있게 해주겠어?"
"알겠습니다."
우일향은 곧바로 백강휘에게 예를 취하고는 밖으로 나갔다.
백강휘는 그가 나가자마자 침상에 걸터앉아서 생각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앞으로 세가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부터 생각하자.'
지금은 영흥 육 년. 백강휘의 나이 열여덟.
당시 그는 이곳에서 쫓겨나고, 무당에 갔다가 어느 표국의 쟁자수로 가게 되었다.
하지만 백씨세가에서 일어났던 일은 대충 소문으로 듣고 있었다.
'지금 당장은 아니지만, 곧 상인들이 세가에 장난을 치겠지.'
상인들의 이 장난으로 인하여 백씨세가는 쇠락의 길을 걷게 된다.
우선 백강휘가 할 일은 그것을 막는 일이다.
'백씨세가를 무너뜨리는 것은 누구에게도 넘겨주지 않을 것이다.'
그의 힘 덕분에 가주의 꿈인 오대세가에 가장 가까워졌을 때, 그의 힘으로 모든 것을 무너뜨릴 것이다.
'다른 일은 없었나?'
백강휘는 잠시 생각을 했지만, 후에 소가주인 백자후가 누군가 혼인을 했다는 소문만 들었을 뿐이다.
'그럼 세가 쪽에서가 아닌 일은?'
아마 지금쯤 정파와 사파의 문파가 여기저기서 부딪치고 있을 것이다.
'정의맹과 흑사궁이 싸웠던가.'
이전 생에서 백강휘는 이때 살아남기 바쁠 때였기에 정확하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까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화산파가 큰 피해를 봤다는 것은 기억해.'
구파일방 중 하나, 그것도 소림과 무당 다음으로 강하다는 화산파였기에 이것은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로 인해서 정사대전까지 일어나지는 않았어.'
화산파가 피해를 입은 만큼, 화산파와 싸운 사파의 문파도 적지 않은 피해를 입었다.
그렇기에 정의맹과 흑사궁은 이 일을 조용히 넘어갔으니, 잠시 지나가는 소나기 정도로 생각하면 되는 일이다.
지금 백강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혈교의 등장이었다.
'녀석들이 등장하기 전에 안전한 곳으로 가야 한다.'
녀석들과 이미 한 번 싸워봤기에 그놈들을 떠올리기만 하면 치가 떨렸다.
그놈들 때문에 제대로 자지도, 먹지도 못하고 도주만 했던 것이 떠올랐다.
왕평과 백씨세가로부터 도망친 것은 그때와 비교하면 정말 어린 아이 장난과도 같았다.
'녀석들과 최대한 부딪치지 않는 안전한 곳. 그런 곳이 어디 있지?'
단 한 곳.
혈교도 감히 함부로 하지 못하는 곳이 있다.
'무황성(武皇城).'
중립적인 곳이지만, 현재 천하제일이라는 무황이 그곳의 주인이다.
무림인이면서 유일하게 황제에게 황(皇)이 붙은 별호를 인정받은 자.
'무황성은 무림의 패권에 관심이 없는 곳이니까.'
무황성은 말 그대로 무공에 미친 자들이 들어가는 곳이다.
무림에 이름을 알리고 싶은 자들에게는 어울리지 않지만, 강해지는 것에 환장한 사람들에게는 무척이나 어울리는 곳이다.
그렇기에 그가 죽기 직전까지 혈교는 무황성을 건들지 않았다.
'이후에 어떻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가 죽은 후, 혈교가 정의맹과 흑사궁을 전부 처리하고 무황성을 노렸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무황성이 혈교에게 쉽게 질 거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무황성으로 간다.'
초절정 고수라면 무황성에서도 쉽게 거절하지 못할 것이다.
'그럼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세가를 위협하는 그 상단 녀석들을 처리하는 것인가?'
최종적으로 무황성으로 가서 몸을 보호하겠다는 목표도 세웠고, 가장 먼저 해야 할 일도 알았다.
'재미있겠어.'
과연 상인들이 어떤 식으로 나올지 기대가 되는 탓인지, 백강휘의 입가에는 장난기 어린 미소가 감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