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화 〉 2장. 다시 마주한 기연 (3)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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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장. 다시 마주한 기연 (3)
-쾅! 쾅!
백강휘가 허공을 향해 일권을 내지르고 일장을 내지르며 벽에 그려져 있는 동작을 따라 할 때마다 마치 무엇인가가 터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백강휘는 계속해서 몸에 동작을 익히는 수련을 계속했다.
회귀를 했기에 현재 그의 몸은 저 동작들이 익숙하지 않은 탓이었다.
-쾅!
다시 한번 그가 일권을 쭉 뻗었고, 그와 같은 모습이 그려져 있는 그림의 벽이 폭발했다.
그렇게 그는 몸이 완전히 체득한 동작을 이렇게 하나씩 지워나가기 시작했다.
'슬슬 식량도 거의 떨어졌어.'
그나마 물은 벽을 타고 졸졸 흐르는 곳이 있어서 그것을 마시고 있지만, 그가 가져온 식량은 슬슬 바닥을 보였다.
'이렇게 되면 이전처럼 또 쥐나 벌레 같은 것을 먹어야 해.'
회귀 전에 그러했던 것처럼, 그 더러운 것들을 또다시 먹어야 한다.
하지만 백강휘는 그것을 마다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괜히 초조해지면 완전하게 익히지 못하니까.'
수라파천공의 초식이라 할 수 있는 이 동작들은 무척이나 단순하다. 단순한 일권, 또는 일장. 아니면 각법 같은 것들이다.
굉장히 단순한 동작으로 최대의 파괴력을 내는 것이 수라파천공이었다.
"후욱! 후욱!"
그리고 백강휘는 그 단순한 동작을 아주 천천히, 그리고 정성스럽게 따라 하고 있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 모르겠다.
이미 식량은 다 떨어져서 굴속에 있는 생쥐와 벌레를 먹으며 배를 채운 것도 언제 시작했는지 기억이 나지를 않았다.
-쾅!
그리고 백강휘는 마지막 동작의 그림을 지우는 것에 성공했다.
가장 기본적인 동작을 몸에 완전히 익히는 것을 성공한 것이다.
벽에 있는 모든 그림을 지우는 것에 성공한 백강휘는 해골 옆에 놓여있는 비급을 집어 들었다.
-화르륵!
삼매진화로 비급을 불태운 백강휘는 동굴을 쭉 둘러보며 수라파천공의 흔적을 확인했다.
'더는 없어.'
동굴 중앙에서 가부좌를 틀고 있는 해골을 제외하고는 이곳에서 그 어떤 흔적을 찾아볼 수 없게 되자 백강휘는 곧바로 동굴의 입구로 향해 갔다.
-쾅!
그가 입구를 막고 있던 바위를 향해 일장을 뻗자, 곧 입구를 막고 있던 바위가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저녁인가?'
밖은 해가 지고 있는 상태였다. 하지만 주변만 보고는 그가 들어왔을 때보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는 알 수 없었다.
'우선 좀 씻어야겠어.'
꽤 오랫동안 씻지 못한 탓인지 몸에서 냄새가 났다.
물소리가 들려오는 곳으로 몸을 돌리자 그가 엄청난 속도로 쏘아졌다.
'여기서 씻으면 되겠군.'
계곡을 발견한 백강휘는 빠르게 옷을 버리고는 안으로 들어갔다.
시릴 것만 같은 차가운 계곡물임에도 백강휘는 표정의 변화 없이 몸을 씻어냈다.
'개운하군.'
새로운 옷으로 갈아입은 백강휘는 곧바로 산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확실히 이전 생보다 더 높은 성과야.'
가장 놀라운 점은 이전의 생보다 지금 생의 내력이 더 많다는 것이다.
'그것도 내가 죽기 전과 비교해도······.'
그때의 깨달음은 여전히 가지고 있음에도 내력은 그때와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더 많다.
백강휘는 절로 피어나는 미소를 감출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일단 먹을 것부터 먹어야겠어.'
백강휘는 지체하지 않고 객잔으로 들어갔다. 헤어질 때 왕평에게 대부분의 돈을 건네주었기에 이제 남은 여비가 거의 없었지만, 백강휘는 상당히 많은 양의 요리를 시켰다.
'역시 사람은 이런 음식을 먹어야 해.'
만두나 소면 같은 간단한 음식들뿐이었지만, 벌레나 쥐 같은 것들에 비하니 무척이나 맛있게 느껴졌다.
-턱!
"여기 탁주 하나."
백강휘가 음식을 먹는 것에 집중하고 있을 때, 누군가 그의 맞은편에 앉으며 술을 시켰다.
"오랜만이오."
"흠."
백호대 사조 조장, 우일향의 등장에도 백강휘는 전혀 놀라거나 당황한 기색이 없었다.
'평소와 같은 모습? 아냐, 이건 달라.'
이전까지 백강휘는 죽을 위기에서도 우일향조차 놀랄 정도로 초연한 모습을 보여왔다.
하지만 우일향에게 그 모습은 자신감이 아니라 허세처럼 느껴졌다. 어떻게든 그런 모습을 보이겠다는 그런 허세.
'설마 무공을 익힌 것인가?'
하지만 무한의 포구에서 백강휘를 놓친 것이 겨우 석 달 전이다.
겨우 석 달이란 시간 만에 백강휘가 무공을 익혔다는 것인가? 그것도 우일향이 무위를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그런데 내가 여기 있는 것은 어떻게 알았지?"
"하오문의 힘을 빌렸습니다. 포구에서 우연히 공자님을 봐서 말이지요."
포구에서 우일향은 백호대주 조광에게 백강휘로 의심되는 자를 알려주었지만, 결국 사천당가의 당기에게 치욕만 받고 왔다.
"그러다가 배를 타고 떠나는 모습을 발견했지요."
"순전히 우연이었다는 건가?"
배를 타고 떠나는 백강휘를 본 것은 정말 순전히 우연이었다.
포구에서 멀어지는 배에서 방립을 쓴 백강휘를 보았고, 그를 주시하고 있자 정말 운이 좋게도 그가 방립을 벗었던 것이다.
"생각보다 눈이 좋군."
"그저 공자를 주시하고 있었던 덕분인지도 모르지요."
"하오문에 요청하는 것을 가주가 허락할 줄은 몰랐는데."
백강휘의 말에 우일향은 고개를 저었다.
조광은 하오문에 요청을 하라 했지만, 가주가 그것을 반대했다.
백강휘를 살려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람들의 입에 백씨세가가 오르내리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하긴. 가주는 어떻게든 백씨세가를 오대세가의 반열에 올리고 싶으니 그런 구설수를 막고 싶었겠지."
"그래서 대주가 이를 갈면서 돌아갔지요."
우일향이 조소를 띄우며 말했고, 백강휘는 그를 가만히 보았다.
"백호대를 나온 것이냐?"
"역시 눈치채신 겁니까? 아무래도 조광, 그 인간에게 하도 얻어맞으니 더는 있기가 싫더군요."
조광은 기이할 정도로 우일향을 괴롭혔다.
다른 조장들과 비교했을 때 그를 차별하는 것은 물론이고, 조원들이 보는 앞에서도 폭력을 일삼았다.
"그런데 그것을 그만두어도 되는 건가? 세가에서 잘도 허락했군."
"그저 백호대 조장 자리를 내놓았을 뿐입니다. 아마 백호대 평대원이 되겠죠."
그리고 그는 휴가 같은 것을 핑계로 세가를 떠나고 이곳으로 왔다.
그가 조장을 그만둔 덕분인지 조광은 그의 휴가를 기꺼운 마음으로 받아들였다.
"그래서 이곳에 온 것은 무슨 이유 때문이냐?"
"잘 모르겠습니다. 처음에는 공자님이 원망스러웠거든요."
직접적인 원인은 백강휘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무작정 이곳으로 왔다.
그에게 복수하기 위해서? 그런 마음도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그런데 이제는 잘 모르겠습니다."
따지고 보면 백강휘가 그에게 잘못한 것은 하나도 없었다. 오히려 백강휘가 그의 목숨을 취해도 할 말이 없었다.
그는 백강휘를 죽이기 위해 움직이지 않았던가. 백강휘는 그저 살기 위해서 도망 다녔을 뿐이다.
"공자님을 뵈기도 했으니, 이제 그만 가볼까 합니다."
"어디로?"
"고향으로 갈까 생각 중입니다."
백씨세가를 떠나고 싶었다. 그 정도로 그는 지쳤다.
"백호대주가 가만히 있을까?"
"아마 절 죽이러 올지도 모르지요."
어쨌든 그의 무공은 백씨세가로부터 받은 무공이기에 이대로 떠나는 것을 바라지 않을 사람들이 많았다.
특히 백호대주 조광은 이것을 핑계로 그에게 목숨을 요구할 가능성이 높았다.
"난 세가로 돌아갈 생각인데, 따라올 생각이 있느냐?"
"세가로 돌아가신다니요?"
우일향은 세가로 돌아간다는 백강휘의 의중을 파악할 수가 없었다.
대체 어째서 돌아가려고 한단 말인가. 세가에서는 그를 죽이려고 했는데 말이다.
"네게 내 밑으로 올 생각이 있냐고 묻는 것이다."
"저를 대체 어떻게 믿고 그런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사실 우일향이 대단한 무인도 아니고, 고작해야 일류 수준의 무인일 뿐이다.
게다가 백강휘에게 충성심이란 것도 없으며, 그를 죽이려고까지 한 사람이다.
그렇기에 우일향은 자신에게 부하가 되라는 백강휘가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어차피 갈 곳도 없지 않으냐?"
"그렇긴 합니다만."
백강휘가 그를 믿어서 데리고 갈 생각인 것은 아니었다.
실제로 그는 이전 생에서 바로 백강휘에게 죽임을 당했다. 하지만 이것 하나만은 확실히 알고 있다.
'우일향이 백씨세가를 증오한다는 것은 알고 있지.'
어차피 그는 백강휘의 일이 아니었어도 결국에는 세가에서 쫓겨날 운명이었다.
'조광에게 팔을 베였었지.'
다시 만났을 때 우일향은 왼쪽 팔이 없었다. 백호대주가 그를 세가에서 내쫓을 때 베었다고 들었다.
그렇기에 그는 백씨세가를 증오했고, 백씨세가와 관련된 사람을 죽이러 다녔다.
당시 백강휘는 낭인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할 때였기에 우일향은 그를 찾아왔고, 죽임을 당했다.
'물론 그때와 달리 세가를 증오하지는 않겠지.'
그때와 달리 쫓겨난 것도 아니고, 조광에게 팔이 베인 것도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세가에게 충성심이나 미련 같은 것도 없을 것이다.
"왜 조광이 그대를 싫어하는지 물어도 되나?"
"모르겠습니다."
이건 이전 생에서의 우일향도 알지 못했다. 그것을 알기 전에 조광이 죽었으니까.
"다른 것은 필요 없지. 조광에게 복수를 하고 싶지 않나?"
"······."
우일향은 대답하지 않았지만, 백강휘는 그의 생각을 곧바로 눈치챌 수 있었다.
자신을 괴롭히던 사람에게 복수하고 싶냐고 묻는데, 싫다고 대답하는 사람이 있겠는가.
"날 따라와라. 그러면 녀석에게 복수를 하게 해주겠다."
"공자님께서 그럴 힘이 있으십니까?"
백강휘가 손을 앞으로 쭉 뻗었다. 그러자 곧 그의 손에 칠흑색의 강기가 생겨났다.
"말도 안 돼!"
우일향은 저도 모르게 버럭 소리를 내질렀다가, 객잔에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그들을 향한 것을 보며 급히 입을 다물었다.
"어떻게 강기를 사용하실 수 있으신 겁니까? 얼마 전까지 분명 무공을······."
우일향이 목소리를 죽이며 물었지만, 백강휘는 대답하지 않고 그저 미소를 짓고 있을 뿐이었다.
'일공자가 이 정도로 천재였다는 건가?'
얼마 전까지 무공을 익히지 않은 것은 사실이었다. 그렇다면 백강휘는 이 짧은 시간에 강기를 사용할 수 있는 초절정이란 경지에 오른 것이 된다.
그가 얼마나 무공에 천부적인 재능이 있는 것인지 가늠이 잡히지 않는다.
그리고 백씨세가에서 왜 그렇게 백강휘를 후환이 될 것으로 생각했는지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공자께서는 백씨세가로 가서 무엇을 하고 싶으신 겁니까?"
백강휘가 이제는 엄청난 고수란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가 대체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싶었다.
어째서 그를 죽이려 한 세가로 돌아가는 것인지, 그 이유를 말이다.
"듣고서는 따르지 않으면 죽을 텐데.'
"······."
백강휘의 목소리는 무척이나 태였했지만, 우일향은 굉장히 섬뜩하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듣고 싶어?"
"예."
"난 세가를 차지할 거야. 세가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이 되려고."
"가주가 되시겠다는 겁니까?"
백강휘가 가주라는 자리에 욕심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기에 우일향은 놀란 표정이 되었다.
"아니. 가주 따위는 필요 없어. 하지만 가장 강한 무인이 되겠지."
우일향은 백강휘의 말을 그제야 이해할 수 있었다.
세가에서 가장 강한 무인이라면, 가장 중요한 사람인 것이 당연했다. 가주조차 함부로 할 수 없는 그런 사람.
"그리고 세가를 버릴 거야."
"예?"
"뭘 놀라? 당연한 것 아닌가? 날 버린 세가에 충성을 맹세할 거로 생각한 건가?"
"그건 아니지만······."
"세가가 강해졌을 때, 내 힘으로 오대세가에 다가갔을 때 부술 거야."
그때 가주는 과연 어떤 절망적인 표정을 지을까?
그 기대감에 백강휘의 얼굴에는 희열어린 미소가 어렸고, 우일향은 그 미소가 이제는 대답하라는 압박으로 다가왔다
"앞으로 주인으로 모시겠습니다!"
우일향은 곧바로 백강휘의 앞에 무릎을 꿇으며 외쳤다.
백씨세가에 미련은 없다. 충성심 따위도 없다. 그것은 백강휘에게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백호대주인 조광의 일그러진 얼굴을 볼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기에 우일향의 표정에는 만족의 미소가 피어오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