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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병대회(4)
가브리엘은 원하던 목표를 다 이룬 듯 흡족한 표정을 짓고 다시 발걸음을 재촉했다.
“가브리엘!”
그래서 난 그가 두 블록을 지나쳤을 때쯤 그의 길목을 차단하며 물었다.
어떻게 된 상황이냐고.
“뭐가?”
“경비대에게 쪽지 주는 거 다 봤습니다.”
“뭐라는 거야!”
방귀 뀐 놈이 성낸다더니. 가브리엘은 오히려 나에게 삿대질하며 위협했다. 그러나 빨개진 얼굴. 백 퍼센트였다.
“배신입니까?”
“이게 거둬 줬더니 막 나가네?”
“말은 똑바로 하십시오. 당신이 아니라 길드장 키라 님이 거둬 주신 거죠.”
“하.”
짧은 탄식이 나왔다. 그리고 순식간에 허리춤에 차고 있던 활을 재빠르게 잡고 활시위를 당긴다.
“비켜. 안 그러면 쏜다.”
화살촉이 내 심장을 겨냥하고 있었다. 그러나 배신한 사람을 순순히 보낼 수는 없었다.
“못 비킵니다.”
“네가 생각하는 거 아니니깐 비키라고.”
“못 비킵니다.”
내 완고한 행동에 할 수 없이 가브리엘이 나를 향해 화살을 쏘았다. 그가 쏜 화살엔 마력이 깃든 듯 푸른 빛이 감돌았다.
“옥타비아누스.”
그러나 중력의 힘을 사용하자 그의 화살은 내 근처도 오지 못한 채 힘없이 바닥에 떨어졌다.
오랜만에 사용하는 마왕의 힘. 배신감에 어안이 벙벙했지만, 다행히 공황 증세는 없었기에 가브리엘을 산 채로 키라에게 데려가려 마음먹었다.
“옥타비아······.”
그를 중력의 힘으로 묶으려고 스킬을 썼다. 그런데 방심한 탓이었을까? 갑자기 사라진 가브리엘. 좌우를 돌아보며 주변을 확인했지만, 그의 자취를 발견할 수 없었다. 그러면 남은 한곳. 바로 위!
“제길.”
고개를 들어 위를 확인하는 순간 이미 활시위를 당긴 가브리엘의 모습이 눈에 담겼다. 한순간이었지만, 화살이 햇빛에 반사되어 화살촉도 더 날카롭게 느껴졌다.
“누스!”
다행히 화살이 나에게 닿기 전 스킬이 발동되었다. 그러나 아까와 달리 화살은 바로 내 눈앞에 떨어졌다. 조금만 늦었으면 가브리엘의 화살에 대갈통이 관통당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침이 저절로 삼켜졌다. 가브리엘은 쉴 틈도 주지 않고 또다시 마력이 깃든 활을 쐈다.
떠돌이 용병 사무소에서 같이 지낼 때는 그저 조용한 사람이라 생각했지만, 생각보다 그의 공격은 매섭고 날카로웠다.
“옥타비아누스!”
그러나 마왕의 힘을 가진 내겐 하룻강아지였다. 아무리 5년 동안 누군가와 싸워 본 적 없다 한들 마왕이다. 그는 내 중력의 힘에 바로 바닥과 자석이 된 것처럼 철퍼덕 쓰러졌다.
“당신이 배신자라니 믿기지 않네요.”
“그게 아니라니까! 사실!”
가브리엘이 겨우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봤다. 그 순간 그가 순식간에 겁에 질린 표정으로 돌변하며 나에게 소리쳤다.
“도망쳐!”
뭔가 싶어 그의 시선을 따라 돌아봤다.
“당신은?!”
돌아보자마자 난 뒷걸음질을 쳤다. 두건과 마스크를 써 눈만 보이는 여성. 그러나 그녀 머리 위에 떠 있는 칭호를 보곤 아뿔싸 소리쳤다.
[암살 집단 흑사협 5군주 메두사 파이]
그녀와 눈이 마주치자 나도 모르게 양팔에 닭살이 돋는 느낌을 받았다. 블랙홀처럼 뭔가 빨아당기는 그녀의 눈.
나는 작은 탄식을 내며 재빨리 눈을 감았다. 그녀는 내가 게임했을 당시에도 유명했던 히든 보스 메두사였기 때문이다.
그녀의 눈을 보면 바위처럼 몸이 굳는다. 말도 안 되는 능력. 그러나 그 능력은 실재했다. 재빨리 눈을 감기는 했으나 그녀와 순간 시선이 마주쳤기에 몸이 돌덩어리처럼 굳는 게 느껴졌다.
“살려 ㅈ······.”
그렇게 내 몸은 굳은 석상처럼 변했다.
* * *
그 시각. 퍼플우드 용병 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경기장에 들어가는 하민. 또래로 보이는 다른 친구들은 부모님과 같이 오는 듯 보였지만, 하민은 혼자였다.
“어이, 설마 겁먹은 거 아니지?”
불행 중 다행일까? 그나마 의지가 되진 않지만, 까불이 아저씨가 하민의 보호자랍시고 동행했고, 여동생 바루나도 힘내라며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응원해 주었다.
“이런 거로 겁먹을까?”
그래도 자신의 경기를 보러 동행해 준 가족이 있기에 하민은 긴장한 모습이 충분히 보임에도 허풍을 떨었다.
“보호자는 관중석으로 이동하시고, 선수들은 경기장으로 이동해 주십시오.”
안내자의 말에 중앙 로비에서 헤어지게 되었다. 그렇게 그들과 헤어진 하민은 그제야 깊은 한숨을 내쉬며 양 볼을 때렸다.
“정신 차리자.”
볼에 자극을 주자 흐릿했던 정신이 조금은 선명해졌다. 그래서 하민은 펜싱 칼이 보관되어 있는 케이스를 등에 이고 경기장까지 성큼성큼 걸어갔다.
“우와와아!”
생각보다 많이 온 관중들. 선발전을 했던 당시엔 관중석이 반 이상 비어 있었지만, 지금은 다르다. 관중 소리만 들어도 압도당할 정도이니.
하민은 겨우 긴장을 풀어 내었지만, 막상 관중 소리를 들어 보니 다시금 긴장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관중석 위로 VIP석에 앉아 있는 세 사람. 하민이 그렇게 고대하던 3대 용병. 파레타 길드, 정통 길드, 마천 길드의 길드장이다.
“경기는 토너먼트 형식으로 진행됩니다.”
길드장들을 보니 진행자의 멘트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바로 저기 앞에 있는 사람들. 하민이 꿈꾸는 최강 용병의 모습들이다.
“그럼 로체 도시 대표 학생 하민 선수와 프라임 도시 대표 학생 오스카 선수의 경기로 시작됩니다!”
최강 용병들의 모습에 정신이 팔린 와중 하민은 자신이 첫 번째 차례라는 사실을 뒤늦게야 깨달았다.
“후우. 후우.”
가뜩이나 긴장감 100%인데 첫 번째 경기라니. 하늘도 무심한 듯 하민을 몰아쳤다.
하민의 첫 라운드 대결 상대는 프라임 도시의 오스카. 행색을 보아하니 검투사인 모양이다.
강철 재질의 투구를 쓰고, 자신의 몸만 한 방패와 칼을 들고 있는 오스카.
“잘해 보자.”
“······.”
하민은 용기 내서 오스카에게 인사를 건넸지만, 돌아오는 것은 무시뿐이었다.
“저 학생은 여기가 장난인가? 아예 장비를 갖추지 못하고 올라왔네.”
한편 관중석에선 하민의 행색을 보고 실망하는 관중들이 몇몇 보였다. 그래도 하민이 대회가 열리는 로체 도시의 대표 학생인데 검투사 오스카와 확연히 차이 나는 모습에 석이 나간 것이다.
“이번 연도엔 우리 도시에 인재가 아예 없었나 보지.”
“아니, 하필 우리 도시에서 대회가 열릴 때 저딴 애가 나왔냐?”
그래서인지 가면 갈수록 하민의 대한 비난이 쏟아졌다.
“말만 하지 말고 장비값을 보태든가.”
그 모습을 보고 있던 까불이가 비아냥거리며 하민을 비난하는 남성들에게 시비를 걸었다.
“뭐야, 당신?”
“목소리는 겁나 X밥 같은 게. 뭐라 했냐, 너?”
남성도 지지 않고 까불이를 노려보며 방금 내뱉은 말을 다시 해 보라 협박했다.
“X밥은 당신들이고.”
하지만 까불이를 말릴 수 있는 자는 이곳에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난 뒤 남성들에게 구타를 당한 듯 계란으로 멍든 부위를 비비는 까불이.
말발은 최강 용병 저리 가라지만, 실력은 시궁창이었기에 이 모양 이 꼴이 된 것이었다.
그나마 옆에 바루나가 있어 주변 사람들이 도와 망정이지 아이마저 옆에 없었더라면 이 정도로 끝나지 않았을 것이다.
“아저씨, 괜찮아?”
“네가 있어서 참은 거야. 혼자 있었으면 쟤네 죽었어.”
그러나 아무리 처맞아도 입은 살아 있는 까불이.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1라운드 시작하겠습니다!”
다행히 그가 더 허풍을 떨어 대기 전에 드디어 1라운드가 시작됐다.
용병 대회가 치러지는 돔 구장은 거대하고 웅장했지만, 막상 경기장은 좁게 느껴졌다. 정사각형의 시멘트 바닥으로 이루어진 경기장. 이곳에서 벗어나면 반칙패가 된다.
‘공격을 피하다가 장외 반칙패가 될 수도 있겠네.’
하민은 누구보다 빠른 스피드를 무기로 싸워 왔기에 장외 반칙패가 거슬렸다. 물론 경기장의 면적은 웬만한 운동장만큼 넓었는데도 극도의 긴장 상태라 그런지 작게만 보였다.
“1라운드 시작합니다!!”
그러나 시간은 기다려 주지 않는다. 진행자의 시작 소리와 함께 1라운드가 시작되었다.
선발전과는 다른 무거운 공기. 하민은 검투사 오스카를 경계하며 일단 먼저 공격하지 않았다.
“오스카, 끝내 버려!”
오스카 역시도 하민을 무시하고 있던 탓일까? 관중 소리와 함께 그가 먼저 움직였다.
대검을 휘두르자 공기의 마찰 소리가 경기장에 울릴 정도로 오스카의 일격은 매서웠다.
“1라운드 결과는 뻔하겠군.”
기대했던 오스카의 폼이 경기장에서도 매끄럽게 나오자 관중들은 1라운드 결과를 뻔히 생각했다. 그러나 그들의 생각과 달리 경기는 빨리 끝나지 않았다.
“후우.”
폭풍 같은 일격이 여섯 차례나 있었음에도 하민은 쥐새끼처럼 빨간 머리칼을 휘날린 채 공격의 거리를 재며 도망 다녔다.
오스카가 살짝 지친 듯 대검을 지팡이 삼아 몸을 부축했다. 하지만 하민은 그때만 기다렸다는 듯 오스카가 잠시라도 쉬지 못하게 방어용으로만 썼던 펜싱 칼을 그를 향해 내밀었다.
“제법인데?”
거대한 방패 때문에 하민의 첫 공격이 아쉽게도 무산됐지만, 그것만으로도 관중들을 놀라게 했다.
처음 들어 본 아카데미 학생이 로체 도시의 선발전에 우승해 용병 대회에 참가한다는 사실만으로도 놀라움을 자아냈지만, 퍼플우드 북쪽에 있는 프라임 도시의 대표 학생 오스카는 하민과 달리 어렸을 적부터 유망했던 학생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오스카의 일격을 모두 피했다. 아니, 지금은 비등비등하게 싸우고 있다.
“방패가 단단하긴 하네.”
10분가량 난투전을 하니 두 학생 모두 지친 듯 다시 탐색하며 숨을 고르고 있었다.
오스카는 매우 당혹스러운 듯 표정을 숨기지 못하고 있었지만, 하민은 표정 관리를 하며 그에게 당황한 내색을 보이지 않았다.
심리전도 중요하다. 전투에선 적에게 내 속마음을 보이지 않는 것도 중요한 덕목.
하민은 단단한 방패에 마른침을 삼켰지만, 마주한 오스카의 당혹스러운 표정을 보곤 미소를 지었다.
‘일단 힘은 어떻게 쓰는가부터 알아야 해.’
그리고 하민은 생각했다. 떠돌이 용병 사무소 양반들이 알려 준 노하우들을.
힘의 원리를 설명해 준 드워프 마누스의 말을 떠올렸다.
‘힘만 준다고 해서 그 힘이 100% 발휘되지 않아. 하체 힘과 허릿심도 쓰면서 내려찍어야지.’
하민은 마누스의 말을 다시금 곱씹으며 하체 힘과 허릿심도 동원해 자신이 쓸 수 있는 모든 힘을 펜싱 칼 끄트머리에 집중했다.
쩌억―
그러자 단단한 방패에 금이 갔다.
“말도 안 돼!”
오스카가 대검을 휘둘러 2차 공격은 막아 냈지만, 자신의 방패가 흔히 볼 수 있는 펜싱 칼에 박살 날 뻔했다는 생각에 정신을 다잡지 못했다.
오스카와 달리 하민은 아깝게도 치명타를 주지 못했음에도 침착한 모습으로 용병이자 선생님의 가르침을 되새김하였다.
‘그 자세로 나가면 어차피 광탈이야. 검술은 기본기가 중요해. 그 기본기는 자세에서 나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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