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속 먼치킨이 되었다-64화 (64/65)

────────────────────────────────────

용병대회(3)

“저는 수장님을 따라가겠습니다.”

자경단원들이 하나둘씩 결정하는 와중에도 난 대답을 하지 못했다. 길을 잃었다.

처음 목표는 세계 멸망을 시킨 후 현생으로 돌아가는 것이었고, 두 번째 목표는 동료를 죽인 카모라에게 복수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복수할 대상도 없고, 세계 멸망을 시킬 생각도 없었다.

“만약 다른 대륙으로 간다면 어디로 가실 예정입니까?”

“음······. 이곳보단 나은 곳으로 갈 예정이긴 합니다. 탄생의 대륙 그린우드나 평화의 대륙 오렌지우드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린우드라······. 내가 이 게임 세계에 처음 떨어졌던 대륙이다. 그곳에서 제나를 만났었지.

과거 동료 생각에 잠깐 한숨을 내쉬었다. 5년 동안 연락이 없다가 우연히 마주치기라도 하면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아직도 감이 안 잡혔기 때문이다. 카모라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음에도 지금까지 가면을 쓰고 있는 이유이기도 했다.

“어떤 결정을 한들 그 결정을 존중할 것입니다.”

나를 포함해 아직 결정하지 못한 자경단원들에게 키라가 다시 한번 물었다. 앞으로 어떻게 할지.

“저는······.”

나도 생각을 끝내고 말하려던 순간 유일하게 빛을 내던 조명이 생명을 다한 듯 꺼졌다.

* * *

아침이 찾아왔다. 드디어 D-Day!

오늘은 특별한 날이라 그런지 늦잠을 자던 용병들과 아이들이 일찍 일어났다.

한편 하민은 극도로 긴장을 한 모습이 역력했다. 그래서 난 그에게 다가가 용기를 북돋아 주었다.

“네가 그동안 버텼던 훈련이 빛을 발하는 날이야.”

하민이 누구보다 노력했던 사실을 알기에 해 줄 수 있는 말이었다. 옆에 있던 바루나도 하민 오빠에게 응원의 한마디를 건네며 그의 긴장을 조금 풀어 주었다.

“잘할 수 있지?”

“당연하지. 내 꿈은 최강 용병인걸.”

나와 바루나의 응원에 힘입어 다시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온 하민. 그런 그가 기특하였다.

“응원하러 같이 가지 못해서 미안해.”

“괜찮아. 누나 행방을 찾았다며. 내겐 대회보단 그게 훨씬 중요해. 난 잘하고 있을 테니깐 꼭 누나를 찾아줘.”

어젯밤. 자경단원들과 몰래 회의하기 전 난 하민과 바루나에게 용병 대회에 응원하러 가지 못한다고 말했다. 이유는 이에로의 행방을 안다는 사람과 연락이 닿아 그녀를 찾으러 가야 하기 때문이라고 둘러댔다.

약간의 거짓이 섞여 있기는 했지만 이해해 주길 바랐다.

한편으로는 하민이 가장 고대하던 대회에 응원을 가지 못해 미안한 마음이 컸는데, 녀석은 어젯밤에도 괜찮다며 오히려 누나 걱정을 했다. 그리고 내게 부탁했다. 누나를 꼭 찾아 달라고.

그래서 난 하민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답했다. 꼭 찾을 테니 대회에서 우승하라고.

“내가 왜 보호자로 참석해야 하는데.”

“보호자 한 명이 무조건 참석해야 한다고 쓰여 있잖아.”

한편 까불이는 잠이 덜 깬 채 투덜대며 현관문을 나섰다. 말로는 귀찮다고 하지만, 그도 하민을 가르친 선생이라 그런지 긴장한 모습이 역력했다.

“형, 가 볼게!”

“잘하고 와.”

그렇게 하민과 바루나 그리고 보호자로 가게 된 까불이가 먼저 현관문 밖으로 나섰다. 그리고 남은 세 사람.

아직 경기가 시작되기 다섯 시간 전. 시간은 충분했기에 나와 키라는 주변 분위기를 확인하러 오늘도 시계탑 위로 올라갔다.

“다시 와도 이곳만 한 곳이 없네요.”

키라는 시계탑 꼭대기에서 한눈에 들어오는 로체 도시의 전망을 보며 감탄했다.

나 역시도 처음엔 파레타 용병 길드의 분위기를 보려고 이곳에 올라온 거지만, 로체 도시의 멋진 풍경도 보았고, 아름답게 빛나는 밤하늘의 달빛도 보았다.

이곳에 올라오면 숨이 트이는 기분도 들었기에 계속 찾은 감도 있었다.

“그나저나 같이 가기로 한 건 변함없는 거죠?”

키라가 다시금 물었다. 오늘 새벽. 난 키라의 제안에 깊은 고민에 빠졌었지만, 그들을 따라가기로 마음먹었다. 이에로도 자경단 출신이고, 하민과 바루나도 이에로와 떨어지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생각했기에 내린 결정이었다.

“이유에선 기영수 님의 생각은 없네요.”

그때 키라가 또다시 물었다.

“계속 물어봐서 죄송합니다. 그런데 한번 벗어나면 돌이킬 수 없으므로 그런 겁니다. 그 선택에는 기영수 님을 위한 목적이 없나요?”

“제 생각은 중요하지 않아요.”

“이에로에게 들었습니다. 피를 나눈 형제는 아니라고. 그런데도 아이들을 위해 희생하는 겁니까?”

“······.”

“같이 가지 않는다고 말해도 전혀 섭섭해하지 않을 것입니다. 자경단원 중에서도 같이 가지 않는다는 이들이 훨씬 많았지만, 그들의 마음을 이해했기에 괜찮았습니다. 그들은 자경단 활동을 계속하고 싶을 거니 말이죠.”

키라의 말대로 이곳에 남는 자경단원들이 열에 아홉이었다. 그만큼 자경단 활동을 유지하고 싶다는 뜻이겠지. 그들이 자경단 생활을 계속 유지하고 싶어 하는 이유는 2차 세계대전이 한몫했다.

“자경단원 대부분 2차 세계대전에서 가족이나 친구를 잃은 피해자입니다. 떠돌이 용병 단원들도 그렇고 이에로도 마찬가지입니다. 지옥 같던 전쟁이 끝나도 기쁨보다 슬픔에 젖은 친구들이었죠.”

키라가 말하길 용병의 대륙 퍼플우드는 돈만 좇으며 생활했기에 같은 공간에 있으면서도 서로 다른 세력들의 의뢰를 받았다. 그러니 중심지인 레드우드보다 2차 세계대전 때 퍼플우드는 더 지옥처럼 변했고 동료라고 생각했던 사람에게 배신을 당한 사례도 많았다고 전해 들었다.

“이에로도 부모를 다른 세력을 지지하던 친구 때문에 잃고 고아가 된 아이입니다. 마누스 또한 퍼플우드 내전에서 하나뿐인 아내를 잃었고, 가브리엘은 가장 믿고 있는 가족에게 죽임당할 뻔했던 친구였습니다. 까불이조차 2차 세계대전 때문에 기억을 잃은 친구이고요.”

“그런 사정이 있었군요.”

“이곳에 남는 자경단원들 또한 슬픈 사정들이 있는 피해자들입니다. 그래서 위험을 무릅쓰더라도 이곳에 남으려고 하는 것이고요.”

그들과 같이 슬픔을 겪은 퍼플우드 시민들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 단체. 키라의 말을 들으니 자경단원들이 얼마나 더 대단한 사람들인지 실감 났다.

“그런데 폭파 사건으로 많은 동료를 잃고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언제까지고 과거에 얽매일 수는 없는 법. 살아난 자는 그래도 어떻게든 살아야죠. 그래서 남은 생이라도 행복을 찾으러 가려는 겁니다. 위험이 가득한 곳이 아닌 평화로운 곳으로요.”

“살아난 자는 그래도 어떻게든 살아야 한다라······.”

“영수 님도 그만 가면은 벗어 던지고 새로운 삶에 도전하시죠.”

복수의 대상도, 현생으로 가는 방법도 모든 길을 잃은 내가 게임 세계 속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아직도 구체적으로 답이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한 가지 깨달은 건 그래도 계속 살다 보면 답은 나온다는 거였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 공황 발작으로 죽고 싶었지만, 그래도 동료와 단잉의 반지가 존재했기에 버텼었고, 5년 전 홀로 동료들을 놔두고 왔던 시절에도 공황장애와 우울증으로 삶을 포기하고 싶었는데 복수심 하나만으로 지옥과도 같은 병을 극복했었다.

그래서 난 키라에 말대로 새로운 삶에 도전해 보기로 다짐했다.

“잘 부탁드립니다.”

이제 앞으로 같이 지낼 키라에게 잘 부탁한다는 인사를 건넸다.

인사를 전한 뒤 고개를 다시 들자 키라 뒤로 저 멀리 퍼플 용병 대회가 진행되는 돔 구장에 화려한 불빛이 켜지며 그 아름다운 불빛이 내 눈에 담겼다.

시끌벅적한 소리. 어수선한 거리. 모두들 오늘 로체 도시의 최대 화젯거리인 용병 대회로 인해 들떠 있었다.

“자자, 1년에 한 번밖에 치러지지 않는 대회입니다. 신중히 걸어 봐요.”

아직 경기가 시작하기 세 시간 전. 나는 대기하고 있는 장소를 맴돌며 주변 분위기를 확인했다.

유달리 시끄러운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퍼플우드 용병 대회의 승자를 맞히는 도박이 진행되고 있었다.

“이번 대회는 너무 정배 아닌가?”

“인생 한 방을 원하신다면 역배를 노려 봐도 좋죠.”

“그래도 십여 년 만에 3대 용병 길드가 한 학생만을 노리고 있다며. 실력 차이도 엄청 크다던데. 봐 봐.”

대낮부터 1,000cc가 훌쩍 넘어 보이는 대형 맥주잔을 들고 한쪽 팔로는 오징어를 뜯는 그 남성이 가리키는 쪽으로 나도 모르게 눈을 돌렸다.

덥수룩한 수염과 배 나온 남성이 가리킨 곳은 오늘 치러질 용병 대회 학생들에게 걸린 배당률이었다.

유독 한쪽으로 치우친 배당. 1.02배라는 따도 그렇게 많이 가져가지 못하는 배당률 위로 눈에 띄는 학생의 이름이 보였다.

난 하민의 배당률은 몇 배인지 확인했다. 그래도 로체 도시 출신인데 중위권 안에는 들었을 것으로 생각하며 말이다.

그런데 하민은 참여하는 학생 중 가장 높은 배당률 8.4배를 기록했다.

“이번 우리 도시를 대표하는 학생 이름은 진짜 처음 들어 보네.”

“쟤가 진짜 오리진을 이긴 거 맞아요? 그래도 오리진을 이길 실력이면 어느 정도 이름은 들어 봤을 텐데.”

“한번 걸어 봐요. 혹시 몰라요. 저 학생이 우승하면 8.4배를 드시는 거예요.”

“차라니 땅에 돈을 버리라고 해라.”

로체 도시 시민들도 하민의 실력을 기대하지 않는 듯 그를 무시했다.

같은 도시 출신임에도 하민을 천대하는 시민들의 모습에 오히려 내가 기분이 나빴다. 그래서 난 배당을 거는 곳으로 성큼성큼 걸어가 주머니에 있는 전 재산을 하민에게 걸었다.

“뭡니까?”

“하민 학생에게 걸려고요.”

“그··· 500 PT가 전부인 거죠?”

그러나 내 전 재산은 단 동전 하나. 성큼성큼 걸어가서 대뜸 걸기엔 창피한 액수였다.

“뭐, 접수는 해 놓죠.”

카운터에 있던 남성이 배당금이 표시된 용지를 건네주었다.

주변 사람들도 내 행동을 보곤 아주 적은 금액을 하민에게 걸었다.

“뭐, 이 정도는 버려도 될 액수니깐.”

“되면 좋고 안 돼도 괜찮죠.”

내 의도는 그게 아닌데······. 창피한 나머지 나도 모르게 가장 높은 건물로 몸을 숨겼다. 그래도 다시 생각해 보면 하민의 배당이 내 행동으로 조금이나마 걸렸다. 그거로 만족했다. 그래서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가려는데.

낯익은 얼굴이 동쪽 저 멀리 보였다. 그자는 떠돌이 용병의 활잡이 가브리엘이다.

‘대기 장소랑 완전 반대 방향인데 어디 가는 거야?’

나는 의문을 가지고 가브리엘의 동태를 살폈다. 분명 가브리엘은 서쪽에 있는 상점 앞에서 대기하고 있기로 되어 있는데. 어딜 저리 급히 가는지 그는 재빠르게 이동했다.

그래서 난 그의 뒤를 쫓았다. 그가 가는 방향이 파레타 용병 길드였기 때문이다.

“길드장에게 전해 주쇼.”

설마 했다. 배신자가 있을 줄은. 가브리엘의 뒤를 따라가자 그가 파레타 용병 소속으로 보이는 경비대에게 쪽지 하나를 건네는 모습이 발견되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