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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병대회(2)
바루나의 얼굴에 화색이 바로 돌았다. 쓸데없는 기대심은 독이 될 수도 있었기에 이에로의 얘기를 하민과 바루나에게 하지 않았지만, 이젠 D-day도 3일밖에 남지 않았기에 살짝 귀띔해 준 것이다.
바루나가 예전과 달리 우울하게 있는 모습을 보기도 힘들었고.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언니인 이에로까지 사라졌으니 어린아이의 멘탈로는 견디기 힘들었을 것이다. 나조차도 견디기 힘든데 말이다.
더구나 바루나는 내가 공황으로 힘들었을 적 많이 도와준 아이. 그 당시 해맑던 아이의 모습이 요즘엔 보이지 않아 내가 가장 싫어하는 희망을 품게 만든 것이다.
‘헛된 희망이 되지 않게 내가 잘 구할게.’
그래서 바루나를 위해서라도 이에로를 꼭 구출하는 데 성공해야 했다. 난 속으로 다시 다짐하며 용병 사무소로 들어갔다.
“아직도 훈련하고 있어?”
사무소에 들어가자마자 마당에선 쉴 틈 없는 까불이의 음성이 들려왔다. 정신이 나갈 정도로 하민의 자세를 지적하며 펜싱 칼을 사용하는 자세를 교정해 주는데. 마누스의 훈련과 다르게 까불이의 훈련은 마찰이 잦았다.
“이걸 만 번 이상 하라고?”
그저 찌르기로 보이는 간단한 동작을 만 번이나 반복하게 시키니 하민은 석이 나갈 수밖에 없었다. 고작 대회는 3일밖에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자세로 나가면 어차피 광탈이야. 검술은 기본기가 중요해. 그 기본기는 자세에서 나오고.”
그러나 까불이는 우직했다. 계속 까불거리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보이지 않고 훈련을 시킬 때만큼은 검객 피렌체 같았다.
“드디어 내 차례인가?”
노을이 지고 어두컴컴한 밤이 찾아왔을 무렵. 까불이가 내 준 숙제를 드디어 끝낸 하민이 녹초가 된 듯 벤치에 쓰러져 살려 달라 애원했다.
그러나 자기도 훈련시키기 위해 많은 시간을 기다렸다며 하민을 일으켜 세우는 한 사람.
바로 가브리엘이다.
“저녁 준비 다 됐는데 조금만 하고 오세요.”
난 바루나와 함께 장을 본 재료로 저녁을 준비했다. 그리고 아이들과 용병들을 불러 모았다.
그러나 가브리엘은 하민을 붙잡았다.
“나는 기술을 가장 중요하게 보는 사람이라 마누스나 까불이처럼 시간만 잡아먹는 반복적인 훈련은 시키지 않아. 그러니깐 조금만 견뎌.”
가브리엘은 기술을 가르쳤다. 우연히 펜싱 검객이 된 하민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기술이었기에 그 또한 저녁을 거르는 한이 있더라도 가브리엘의 훈련에 집중하였다.
“힘이나 자세도 중요하지만, 가볍고 날카로운 펜싱 칼을 잘 활용하기 위해선 스피드가 가장 중요해.”
가브리엘이 갑자기 허리에 차고 있던 활을 잡고 활시위를 당겨 하민을 위협했다. 한순간이었다. 활시위를 당기는 데까지 든 시간은 3초? 아니, 1초라고 할 정도로 빨랐다.
“어떻게 한 거야?”
하민은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두 손을 들고 항복했다. 그러자 가브리엘이 활을 다시 제자리에 놓고 그의 질문에 대답했다.
“스피드를 빨리 올리는 방법은 간단해. 미리 내가 어떻게 싸울지 머릿속으로 구상해 놓는 법. 그것만 깨달으면 상대방의 템포보다 더 빠르게 공격할 수 있어.”
가브리엘은 얘기했던 것처럼 간단명료하게 설명을 끝낸 뒤 저녁을 먹으러 식탁에 앉았다. 그러나 하민은 홀로 스피드를 높이기 위해 끼니도 거르고 훈련하였다.
자신을 증명할 수 있는 대회. 이런 기회는 흔치 않았고 하민의 꿈은 최강의 용병이니 그는 누구보다도 노력했다.
“마당이 왜 이렇게 개판이야?”
늦은 밤이 돼서야 아침 일찍 기자로 잠입했던 키라가 돌아왔다. 그는 돌아오자마자 엉망이 된 마당을 보고 머리를 긁적였다.
키라는 정장을 벗고 편한 옷으로 갈아입은 뒤 대나무 삿갓을 쓴 채 마당에 앉아 달빛을 바라봤다.
* * *
D-day 2.
3대 용병인 정통 길드와 마천 길드의 길드장과 고위 운영진이 로체 도시를 찾았다. 파레타 길드까지 합하여 오랜만에 3대 길드가 다 모인 것인데. 그렇기에 오늘은 도시 분위기가 소란스러웠다.
한편 새벽부터 떠돌이 용병 마당에서는 기합 소리가 들렸다. 잠귀가 밝은 키라가 그 소리의 근원지를 확인하기 위해 부스스한 옷차림으로 마당에 나왔다. 하민이 새벽부터 훈련하는 소리였다.
“밤새우신 겁니까?”
“아! 아저씨, 죄송합니다.”
“아저씨는 아닌데······. 뭐, 그건 그렇고 대회 이틀 남지 않았나요? 훈련도 중요한데 휴식도 중요합니다.”
“그게··· 두려워서요. 그래서 빨리 눈이 떠지더라고요.”
“뭐가 두려우십니까?”
“제가 재능이 하나도 없거든요. 아마 각지에서 선발전을 뚫고 온 학생들은 재능들이 출중한 학생들일 거예요. 그런 애들을 이기기 위해선 죽어라 노력하는 수밖엔 없더라고요.”
“부족한 재능을 노력으로 채운다는 말씀입니까?”
“뭐. 그렇죠.”
“쓸데없는 걱정이네요.”
키라는 하민의 걱정이 아무것도 아니라며 성장기엔 수면이 가장 중요하다고 들어가 자라 명령했다.
하민은 자신의 마음도 몰라주는 키라가 미웠다. 그래서 그의 말을 무시한 채 훈련에 다시 임했다. 그런데 키라의 말이 자꾸 떠올라 훈련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그때 또다시 새벽부터 나갈 채비를 하는 키라와 마주쳤다.
“아직도 자러 안 갔어요?”
“말했다시피 재능이 없어서요. 아저씨는 쓸데없는 걱정이라 하지만, 제게 있어선 가장 중요한 기회이거든요. 지금이.”
“재능이라······.”
“제가 알아서 할 테니 상관하지 마시고 오늘도 일하러 가시는 거 같은데 파이팅입니다.”
“말 안 듣는 청소년 같으면서도 힘내라고 하는 것 보면 밉지만은 않네요.”
나갈 채비를 마치고 현관문을 열려던 키라가 발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뒤를 돌아 지금 하민에게 필요한 조언을 캐치해서 말했다.
“재능이 없었다면 여기까지도 올라오지 않았을 거예요. 하민 씨가 힘든 훈련에도 버티며 지금까지 달려온 것도 재능이라면 재능이에요. 그러니 너무 자기 자신을 낮추지 마세요. 오히려 낮은 자존감이 자신을 약하게 만들 뿐입니다. 하민 씨는 그 누가 뭐래도 로체 도시를 대표하는 학생입니다.”
그 말을 끝으로 태연하게 일하러 나가는 키라. 하민은 키라의 조언에 많은 생각이 든 듯 한참 동안 마당에서 서 있었다. 그리고 끝내 하민은 펜싱 칼을 케이스에 넣고 그의 말대로 잠을 청하러 방에 들어갔다.
* * *
나는 깊은 밤에도 시계탑에 올라가 파레타 용병 길드의 동태를 살폈다.
이렇게 시계탑에 올라간 지도 벌써 일주일이 넘었다. 이젠 루틴이 된 듯 시계탑 꼭대기는 보금자리처럼 느껴졌다.
오늘은 다른 때와 달리 새벽 세 시임에도 로체 도시는 시끌벅적하였다.
아마도 오늘 치러질 용병 대회 때문인 것 같았다.
“후우.”
공기가 무겁고 차갑게 느껴졌다. 낯선 장소와 밀폐된 공간이라 그렇게 느낀 것 같다.
“오랜만에 뵙네요.”
떠돌이 용병 사무소 말고도 자경단은 작은 아지트를 소유하고 있었다. 6평 남짓한 작은 공간에서 언제 꺼질지 모를 전구 하나가 깜박거렸다.
그 아지트에서 드디어 오늘 이에로의 구출 작전을 세우려고 자경단의 수장 키라가 생존한 자경단을 불러 모았다.
“열두 명이라······. 그때 사건으로 많은 동료를 잃었네요.”
약속 시각이 다다르자 남은 자경단 수가 열두 명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생각보다 적은 인력. 떠돌이 용병 마누스와 가브리엘을 제외하면 열 명도 채 되지 않는 수였다.
“다 모였나요?”
“피렌체가 안 보입니다.”
“아, 까불이는 내일 있을 대회에 보호자로 동행하기에 부르지 않았습니다.”
자경단원들이 까불이에 관해 묻자 키라가 잘 포장해 주며 답했다. 실상은 내일 아침부터 경기장에 가야 한다며 귀찮다고 회의에 불참을 선언했기 때문이다.
뭐, 키라도 까불이를 그렇게 고급 인력이라 생각하지 않는 듯 내일 하민이 외롭지만 않게 케어 잘하라는 말을 끝으로 그를 놓고 왔다.
“다 모인 것 같으니 한 분을 소개해드릴게요. 이쪽은 이에로의 동생이자 자경단의 멤버로 들어오고 싶다는 기영수 님입니다.”
“가면을 쓰고 있어서 왠지 친숙하네요. 반갑습니다.”
“흠······. 지금 상황이 어지러운데 새로운 단원을 뽑는 건 이르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소개되자 나를 바라보는 자경단원들의 생각은 다양했다. 이에로의 남동생이면 믿을 만할 것이라는 의견을 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지금 동료들을 많이 잃은 탓에 혼란스러운 와중에 새로운 단원을 받는다니 거부감을 드러내는 단원들도 있었다.
“알다시피 저희는 폭파 사건으로 많은 동료를 잃었습니다. 동료를 구하기 위해선 한 명이라도 중요해요. 실력은 보장하죠.”
“뭐, 수장님이 그렇게 생각하신다면야. 잘 부탁드립니다.”
그러나 그들은 키라에 대한 신뢰감이 높은 듯 그를 믿고 나를 맞이했다.
“이제 소개도 끝났고, 제가 세운 구출 작전 한번 들어 보시지요.”
“질문 있습니다. 중요한 작전인데 굳이 하루 전에 계획을 짜는 건 무슨 이유입니까?”
“기습은 비밀 유지가 생명이죠. 그래서 하루 전에 모은 겁니다.”
자경단원 중 한 명이 목숨을 건 중요한 구출 작전임에도 불구하고 굳이 하루 전에 계획을 공표하는 것에 의문을 가졌다. 물론 키라의 대답에 바로 수긍을 했지만 말이다.
기습. 그의 말대로 우린 대회가 치러지는 날 길드장이 자리를 비우면 그때 파레타 용병 길드에 잠입할 것이다. 이 작전에서 가장 중요한 건 키라의 말대로 비밀 유지였다.
“그럼 이에로 구출 작전을 어떻게 계획했는지 발표하겠습니다.”
계획은 이러했다.
―길드장이 퍼플우드 용병 대회에 참관하러 나간다.
―우리는 조용하면서도 빠르게 파레타 용병 경비대를 기절시킨 후 그곳에 잠입한다.
―마지막으로 수감실에 갇힌 이에로를 구출한다.
심플한 계획이지만, 키라가 기자로 잠입해서 파레타 용병 길드를 취재하러 갔을 때 건물 구조를 모두 찍어서 인쇄했기에 어떤 곳으로 갈지도 세세하게 설명해 주었다.
“완벽하네요.”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취재만 하러 돌아다니는 줄 알았는데 건물 구조를 찍고, 인쇄까지 해 온 정성에 키라가 달리 보였다.
계획도 완벽했다. 인쇄된 건물 구조에 경비대원들과 용병들이 몇 명 있는지도 적혀 있었고, CCTV가 어디 있는지도 표시되어 있었다.
난 그저 위급 시 마왕의 힘이라도 쓰려 했는데 계획대로만 진행될 수 있다면 정체를 밝히지 않고 이에로를 구할 수 있다는 희망도 생겼다.
그런데 한 가지 고민해야 할 점이 있었다.
“그래서 이에로를 구출하는 데 성공하면 저희는 어디에서 지냅니까?”
이에로의 구출이 우선이었지만, 그 뒤도 중요했다. 이미 이에로는 정체가 다 들통난 상태. 그런 이에로를 데리고 계속 이곳에 머무르는 건 언제 터질지도 모르는 시한폭탄 옆에서 사는 것과 같았다.
그래서 키라는 자경단원들에게 물었다.
“이에로를 구하고 저흰 퍼플우드를 떠날 것입니다. 물론 자경단도 그만둘 것이고요.”
마누스와 가브리엘도 이미 생각을 정리한 듯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고향이긴 하지만, 이곳도 더는 지겹고, 자경단 활동도 지겨워.”
“저도 뭐, 같은 생각입니다.”
마누스와 가브리엘은 이미 키라와 같은 생각이었다.
그들의 말에 다른 자경단원들도 심히 고민하였다. 그들의 말대로 이에로를 구출하고 난 뒤 퍼플우드에서 자경단 활동을 계속하는 건 너무 위험한 일이니깐 말이다.
그러나 그들은 고향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다 생각하는 듯 긴 시간 동안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그때 키라가 나에게도 물었다.
“영수 님은 어쩌실 생각입니까?”
나도 이에로 구출만 생각하고 있었지 그 이후 계획은 딱히 세우지 않은 상태였다.
그래서 대답을 바로 하지 못했다.
“저는 남아 자경단 생활을 이어 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