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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병대회
“뭐? 제일 싼 검이 100만 PT라고요?”
“150만 PT요. 무슨 과거에서 오셨나. 그게 평균이에요.”
무기 가격에 놀라 난색을 표하는 마누스. 당황한 듯 덥수룩한 수염에도 땀이 맺혀 상태가 가관이었다.
“갈까요?”
오히려 하민이 눈치가 보이는 듯 무기점에서 나가자 말을 꺼냈다. 그러나 마누스는 그 어떤 사내보다도 자존심이 강한 남자. 돈 때문에 애들 앞에서 아무것도 사지 못하고 용병 사무소로 돌아가는 것은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렇게 호언장담까지 하고 무기점에 왔는데 아무것도 못 산 채 들어가면 까불이가 얼마나 놀릴지 두렵기도 했다.
“이건 어때?”
마누스는 검이 아닌 다른 무기를 가리키며 물었다. 그러나 그가 가리킨 장소엔 검술만 익힌 하민에겐 낯선 무기들밖에 없었다.
“오빠, 이건 좀 검 같지 않아?”
그때 옆에서 구경하던 바루나가 무기 하나를 들고 물었다. 여동생이 골라 준 무기라 그래도 예의상 유심히 상태를 확인하는 하민. 그런데 생각보다 가볍고 손에도 딱 맞았다.
“괜찮은데?”
“그건 30만 PT네.”
30만도 싸지 않은 가격대이긴 한데. 그래도 100만, 150만에서 30만까지 내려온 게 어디냐. 마누스는 하민의 마음이 다시 바뀌기 전에 그 무기를 바로 구매했다.
“애들 어디 갔어요?”
한편 나는 키라에게 들킨 후 다시 시계탑에서 염탐하다가 그가 파레타 용병 사무소에 들어간 것까지 확인하곤 떠돌이 용병 사무소로 돌아왔다.
뺀질해 보여도 어떻게든 파레타 용병에 들어가는 키라를 보니 살짝 믿음이 갔기 때문이다.
그런데 갔다 와 보니 하민과 바루나가 사라진 거 아닌가?
“황소한테 잡혀갔어.”
까불이가 뚱딴지같은 소리를 하길래 옆에 있던 가브리엘에게 다시 한번 물었다. 그러자 가브리엘이 현관문 쪽을 눈짓으로 가리켰다.
그의 눈짓에 뒤를 돌아 현관문을 바라보자 야채 호빵을 호호 불며 먹고 있는 하민과 바루나가 보였다.
“약속은 지켰다.”
마누스가 가브리엘에게 야채 호빵 하나를 집어 던졌다. 그리고 나의 눈치를 보며 헛기침을 하였다.
“저게 마지막인데 혹시 배고프니?”
“아······. 전 괜찮습니다. 근데 어디 갔다 오시는 거예요?”
“아니, 대회가 며칠 뒤인데 하민이한테 마땅한 무기가 없어서 내가 엄청난 무기 하나를 사 줬지.”
“안 그러셔도 되는데······.”
이미 신세를 지고 있는 상태인데 무기까지 사 줬다는 말에 감사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눈치가 보였다.
“너무 부담 갖지 마. 투자한 거니깐. 하민이 우승 상금 타면 반반이다. 알겠지?”
내 속내를 읽은 듯 마누스가 장난식으로 풀었다. 그런 마누스가 고마웠다. 이곳에서 멀쩡한 사람은 없다고 느꼈는데. 이 일 때문인지 마누스가 그나마 괜찮은 사람 같았다.
“앙!”
마누스의 손에 들고 있던 야채 호빵을 까불이가 입을 갖다 대 뺏어 먹어 한바탕 난리가 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역시 이곳에 정상인은 없어.’
마누스가 까불이를 잡으러 용병 사무소에서 날뛰자 그의 힘을 이기지 못하고 낡은 바닥이 내려앉았다. 그러자 위기를 감지한 마누스와 까불이가 서로 눈치 보며 창고에 있는 카펫으로 내려앉은 바닥을 가렸다.
“아후, 저 화상. 내가 상대하지 말아야지.”
“네 코끼리 같은 무게에 가라앉은 건데 내 탓은, 에휴.”
바루나도 안 할 것 같은 유치한 말다툼에 난 주제를 바꿔 분위기를 환기하려 했다.
“그나저나 하민아, 무기가 특이해 보이는데 뭐 산 거야?”
케이스만 보면 무기보단 기타가 담긴 것 같았다. 그만큼 크고 길었다. 대검인가도 싶었지만, 그렇다고 대검의 크기까지는 아니었다.
그렇게 의문만 쌓이던 중 하민이 케이스 지퍼를 내리며 무기를 꺼내 들었다.
“그건 펜싱 칼 아냐?”
하민이 꺼내 든 건 펜싱 칼이었다. 무기라고 하기엔 좀 그렇지만, 하민은 마음에 들어 하는 것 같았다.
“웬 펜싱 칼? 검객이 꿈 아니었어?”
“왜, 어울리기만 하는구먼.”
“펜싱 칼로 대회에서 어떻게 이겨. 생각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차라니 단단한 목검이 낫지.”
까불이가 마누스를 또 도발하려 했다. 까불이의 말에도 일리가 있었다. 펜싱 칼은 가볍기만 하지 치명타를 입히거나 베지도 못하는 칼이었으니 말이다.
“전 좋아요. 일단 가벼워서.”
그런데 하민이 펜싱 칼을 자유자재로 휘두르며 검술을 보였다. 확실히 목검을 들던 때보다 움직임이 한층 가볍고 날카로웠다.
“어디 대련해도 그 무기에 만족하는지 볼까?”
까불이가 목검을 들고 하민 앞에서 자세를 취했다. 까불이의 검술을 봤기에 하민의 손을 들어 주고 싶었지만, 펜싱 칼은 목검을 이길 수 없었다.
그런데 재빠른 하민의 공격에 까불이가 당황한 듯 뒷걸음쳤다.
속도를 특기로 한 하민의 검술에 펜싱 칼은 너무나 잘 맞는 무기였다.
그의 공격이 내 눈으로도 따라가기 힘들 정도로 매우 빨랐다.
“크윽.”
얼마나 빠른 공격인지 펜싱 칼로도 까불이의 광대에 상처를 입혔다.
“제대로 간다!”
자존심이 상한 까불이도 목검을 들어 하민을 향해 내리꽂았다. 목검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는 펜싱 칼에 단점을 파고든 것 같은데. 그러기엔 하민의 재빠른 공격을 따라가지 못했다.
하민은 약 오를 정도로 치고 빠지기를 하며 펜싱 칼로 까불이를 제압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가장 공기에 저항받지 않는 사선으로 자세를 다시 고치며 왼손은 뒷짐을 지고 펜싱 칼을 든 오른손으로만 공격해 나갔다.
“으아악!”
계속되는 얄미운 하민의 공격에 짜증이 솟구쳤는지 까불이가 기합을 크게 질렀다. 그러나 행동은 36계 줄행랑이었다.
말로는 자기 몸속 깊은 곳에 봉인된 흑염룡이 나올 뻔해서 우리가 위험할까 봐 자리에서 벗어났다고 하는데 누가 봐도 하민의 상대가 되지 않아서 도망간 모습이었다.
“내 몸 깊은 곳 안에 흑염룡이 나오면 천하제일 검 버서커도 날 막지 못한다니깐!”
“우와!”
그나마 천사 같은 바루나가 까불이의 말도 안 되는 말에 좋은 반응을 해 줘서 넘어갔다.
“으, 피곤하다. 의뢰인은 있었어?”
저녁 시간이 찾아오자 취재에 나갔던 키라도 돌아왔다. 나는 그에게 물어볼 것들이 한가득하였지만, 피로에 찌든 모습 때문에 잠시 쉴 시간을 주기로 했다.
* * *
“크, 좋다!”
떠돌이 용병 사무소는 모든 공간이 다 낡았지만 그래도 목욕탕은 넓었다. 마치 찜질방에 있을 법한 대형 목욕탕인데. 그곳에서 몸을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고 여유를 느끼면 잠시지만 고민거리들이 싹 사라졌다.
“그래서 이에로는 괜찮습니까?”
그러나 지금 태평하게 반신욕을 즐길 때는 아니었다. 난 탕에 있는 물로 세수하곤 정신을 차린 뒤 물었다.
“그곳에서 헨드릭스 군주였던 아르곤을 목격했습니다. 분명 범죄 집단 헨드릭스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세계 정부로 인해 멸했다고 들었는데 말이죠.”
“···헨드릭스 군주를 본 적이 있습니까?”
키라가 놀라운 기색으로 날 쳐다봤다. 아차! 헨드릭스는 4대 세력이라고 불리던 최고의 세력인데. 그런 세력의 군주 얼굴을 일개 판자촌에 살고 있던 내가 알아봤으니 키라는 이상하게 생각했을 것이다.
“당신이 대장이란 것을 알았던 것처럼 제겐 예측 능력이 있습니다.”
그래서 난 서둘러 둘러댔다.
“오호. 관심법이 있냐는 말은 그냥 한 말이었는데 진짜 그 능력이 실재하다니. 처음 봅니다. 살면서 그 능력은.”
“그런가요······.”
“흠. 그보다 영수 님 말대로 헨드릭스 군주가 연루된 거면 우리 이에로가 생각보다 더 위험한 상황에 놓인 거일 수도 있겠네요.”
“분명 헨드릭스는 멸했다고 들었는데 어떻게 살아 있는 거죠?”
“저도 소문으로만 들어서 정확하진 않지만, 2차 세계대전 때 반대 세력의 수뇌부 대부분은 다 죽었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입니다. 아마 최근에 목격한 군주는 그 당시에 도망친 사람인가 보죠.”
“···그러면 혹시 대군주도 살아 있을까요?”
“대군주라면 카모라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아니면 흑사협의 대군주 세이시로? 그것도 아니면 집행자의 대군주 탄주?”
키라의 입에서 카모라의 이름이 나왔다. 이름만 들어도 소름이 끼쳤다.
“어떤 대군주인지는 몰라도 그들은 다 죽었을 겁니다. 그들이 진정한 반대 세력의 수뇌부들이니깐 말이죠. 그러니깐 전쟁이 세계 정부의 승리로 끝나지 않았을까요?”
다시 한번 카모라가 죽었다는 말을 듣자 뭔가 안도감과 아쉬움 그 사이의 감정이 내 머리를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설마 아르곤이 파레타 용병 길드장인 거 아니겠죠?”
“혹시 기영수 님이 말하는 헨드릭스 군주 아르곤이 여자입니까?”
“아니요.”
“그러면 동일인물은 아닌가 보군요. 다행인지 불행인지는 모르겠지만, 파레타 용병 길드장은 여성이거든요.”
* * *
D-Day 3.
시간은 느리게 흘렀지만, 하루는 매우 빠른 속도로 지나갔다.
그렇게 드디어 퍼플우드 용병 대회가 치러지기 3일 전.
간단한 점심을 차린 뒤 아이들을 깨웠다. 오늘은 함박 스테이크와 베이컨 위에 계란 프라이를 올려 흰 우유와 함께 세팅했다.
다행히 아이들은 맛있게 먹었다. 뒤이어 용병들도 부스스한 모습으로 맛있는 냄새가 난다며 눈도 제대로 뜨지도 않은 상태로 식탁에 앉아 음식을 먹었다.
“오늘도 역시 의뢰는 없네.”
점심 식사가 끝나면 용병들은 마당에 놓인 벤치에 누운 듯 앉아 일광욕을 즐기며 여유를 만끽했다. 일광욕까지 끝이 나면 용병들은 한둘씩 하민을 불렀다.
“아저씨, 오늘은 뭐 하면 돼요?”
“오늘은 내가 가르치지.”
용병들은 어느 순간 하민의 스승을 자처하며 그의 수련을 봐주었다. 처음엔 우승 상금을 얻기 위해서나 의뢰인이 없어 시간을 때우자는 목적으로 봐주는가 싶었는데 가르치는 용병들의 표정을 보면 그들도 즐거움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일단 힘은 어떻게 쓰는가부터 알아야 해.”
오늘 하민을 가장 먼저 가르칠 선생은 드워프인 마누스였다. 그가 도끼를 나무에 힘껏 내리치자 한 방에 종이 자르듯 갈라졌다.
“저도 해 볼래요.”
하민도 따라 도끼를 들어 나무를 힘껏 내려쳤다. 그러나 나무는 쓰러지지 않고 도끼는 그대로 박혀 있었다.
“힘만 준다고 해서 그 힘이 100% 발휘되지 않아. 하체 힘과 허릿심도 쓰면서 내려찍어야지.”
마누스가 자세를 교정해 주자 하민은 눈에 띄게 힘을 쓰는 요령을 터득한 듯 곧장 나무를 쓰러뜨렸다.
그 모습에 마누스도 뿌듯한 듯 박수를 치며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난 바루나와 놀아 줄 겸 로체 도시 주변을 걸었다. 물론 파레타 용병 사무소가 있는 골목길도 조심스럽게 가 봤다.
많은 취재진과 카메라 때문에 멀리서 지켜보기만 했지만, 저런 분위기에서 이에로를 어떻게 하긴 힘들다고 생각하여 조금은 안심한 뒤 다시 떠돌이 용병 사무소로 돌아왔다.
“언니도 같이 산책하면 좋을 텐데.”
바루나가 시무룩한 표정을 지으며 언니를 그리워했다.
그런 바루나의 침울한 표정이 내 마음을 약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난 바루나의 눈높이에 맞춰 앉아 조그마한 목소리로 얘기했다.
“바루나만 알고 있어. 이에로 언니 잘 있다고 연락 왔어. 그런데 아직 다른 용무가 있어서 바로 오지는 못한데.”
“진짜?!”
“응. 근데 이건 우리 둘만의 비밀이야. 이에로가 말하지 말라고 했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