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속 먼치킨이 되었다-61화 (61/65)

────────────────────────────────────

떠돌이용병(4)

시간은 빠르게 흘러 벌써 오후가 되었다. 그제야 용병들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한편 하민과 바루나는 이미 일어나 나와 함께 용병 사무소 청소를 하고 있었다.

“편히 있어도 됩니다. 이번 주 청소 담당이 제가 아니라서.”

키라가 청소하는 아이들에게 농담 삼아 얘기했다.

“어차피 손님 없어서 닦고 닦아도 먼지는 계속 쌓여. 어찌나 낡은 건물인지. 에휴.”

일어난 까불이가 말을 더하며 한숨을 쉬고 지나갔다.

그러자 하민과 바루나는 사무소의 분위기를 살펴보았다.

파리만 날리는 사무소. 의뢰인은커녕 사옥에 단 네 명의 용병뿐이니 휑하다.

“옷 갈아입으셨네요.”

“취재 기자로 아르바이트하러 갑니다.”

키라는 검은 망토를 두르고 카메라를 들고 있었는데 누가 봐도 수상해 보였다.

그때 키라가 몰래 눈을 찡긋하며 신호를 주었다. 나에게 주는 사인인가 싶었지만, 이미 다른 용병들은 알고 있는 눈치였다.

“취재라······. 어디 잠입하러 가기에 딱 좋은 아르바이트긴 하네.”

까불이가 또다시 지나가면서 말을 덧붙였다.

“하하. 그럼 전 아르바이트하러 갑니다. 뭐, 의뢰인이 오진 않겠지만, 만약 오신다면 남아 있는 친구들에게 맡겨 주세요.”

“저기! 저도 같이 가시죠.”

“음······. 말했다시피 아르바이트라 같이 가긴 어려울 것 같네요. 눈에 잘 띄기도 할 테고요. 제 말 무슨 말인지 아시겠죠?”

이미 복장 때문에 수상하게 여겨질 것 같지만, 그의 말에 일리가 있기에 또다시 말을 꺼내진 않았다.

“잘 다녀오세요.”

“그래, 숙녀분.”

그렇게 키라는 바루나의 인사에 화답하며 사무소 밖으로 나갔다.

“검술이 너무 형편없는데?”

한편 청소를 끝낸 하민이 마당에서 목검을 들고 검술을 연마하고 있는데 주변에서 훈수들이 난무했다.

“오른쪽 어깨가 너무 올라갔다.”

“위력도 없어 보이는 걸?”

“진짜 로체 도시 대표로 뽑힌 용병 맞아?”

용병들의 훈수들 때문에 하민이 검술에 집중하지 못하고 화를 내었다.

“그렇게 답답하면 어디 시범 한번 보여 주세요.”

하민의 말에 용병들이 서로 눈치 보기 급급했다. 그때 마누스가 먼저 선수 치며 까불이를 지목했다.

“그래도 검술은 검객이 직접 시범 보이는 게 낫지 않겠어?”

마누스의 말을 들어 보면 까불이는 검객인 것 같다. 짧은 시간이긴 하지만, 그의 행동을 계속 돌이켜 보면 크게 기대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까불이는 자신만만하다는 듯 하민의 목검을 뺏어 자세를 잡았다.

“내가 그래도 한때 천하제일 검이라고 부르는 버서커를 이긴 적이 있던 사람이야.”

“푸웁.”

아뿔싸. 웃음을 참지 못했다. 그런데 그의 말이 너무 웃겼다. 버서커는 크라운도 이기지 못했던 천하제일 검이었기 때문이다.

“오메. 못 믿는 거 같은데 한번 제대로 보여 줘야겠네. 퉤, 퉤.”

까불이는 양손에 침을 뱉고 목검을 다시 쥐고 검객의 자세를 잡았다.

“아으, 드러. 내 목검······.”

하민은 그의 행동에 눈살을 찌푸렸지만, 처음 보는 그의 진지한 표정에 마른침을 삼켰다.

“얍! 얍!”

그러나 조금이라도 기대했던 나 자신이 싫어질 만큼 그의 검술은 형편없었다. 더구나 얇은 모깃소리 같은 기합에 힘이 빠졌다.

“됐어. 혼자 할게요!”

하민이 다시 목검을 빼앗아 홀로 검술을 연마했다.

“오랜만에 해서 그래. 다시 줘 봐!”

“아, 저리 가요!”

목검을 두고 싸우는 하민과 까불이. 너무나 유치한 싸움에 난 눈을 가린 채 바루나와 함께 늦은 점심을 준비했다.

“할머니랑 언니 보고 싶어.”

바루나가 주방에서 토스트를 굽다가 할머니와 언니가 해 준 토스트 요리가 떠올랐는지 울음을 터뜨렸다.

씩씩하게 금방 그쳤지만, 바루나는 아직 어린아이.

난 꾹 참지 말고 울고 싶으면 울어도 된다고 말하였다.

“언니는 어디 있어? 괜찮겠지?”

그러자 바루나는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며 이에로의 행방을 물었다. 애들에게는 이에로의 행방에 대해서 자세히 말하지 않은 상태였다. 뭐라고 해야 할지 생각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실대로 파레타 용병 수감실에 갇혀 있다고 말하면 큰 사고를 칠 것 같기도 했고, 그렇다고 거짓말을 하기엔 그들에게 못 할 짓을 하는 것 같았다.

“여기 있는 삼촌들이랑 계속 찾고 있어. 이거 먹고 오빠도 나가서 찾을 거야.”

그래서 행방을 모른다고 말했다.

“나도 나갈래!”

“안 돼.”

“왜! 나도 언니 찾을 거야.”

“위험해.”

스테인리스 프라이팬에 굽고 있던 토스트 한쪽이 타 버렸다. 바루나와 말다툼을 하다가 신경을 미처 쓰지 못한 탓이다.

“후우. 다 태워 먹었네.”

한숨이 저절로 나왔다. 애들을 챙기랴 이에로의 구출 작전을 도우랴. 정신적 피로도가 파도처럼 몰려오는 기분이 들었다. 할머니 장례식도 최근에 치렀기에 너무 무리했나 보다.

“알았오. 대신 언니 꼭 찾아줘.”

바루나가 내 눈치를 힐끔 살폈다. 공황 발작이라도 올까 두려워하는 표정이었다. 하긴, 하민과 바루나는 내가 무력하게 살던 시절을 다 봤었던 인물이기에 내 한숨 한 번에 두려운 표정을 짓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미안해. 꼭 찾을게.”

괜히 죄책감이 들었다. 아직 어린애인데 내 한숨에 저리 눈치를 살피니. 투정이나 생떼를 부릴 나이에 이미 그들은 성숙해져 있었고, 난 그런 애들의 모습이 안타까웠다.

“나갔다 올게.”

늦은 점심을 다 차린 후 난 키라가 취재하러 간 파레타 용병 길드 쪽으로 이동했다. 키라가 걱정하지 말라 했지만, 그렇다고 용병 사무소에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지 않은가.

어차피 떠돌이 용병 사무소는 드나드는 의뢰인이 없었다.

파리만 날리는 곳에 있을 바에 차라니 나가서 동태라도 살피는 게 낫다 싶었다.

“C급 의뢰 100만 PT입니다.”

로체 도시의 오후는 시끄러웠다. 용병의 대륙이라 그런지 이곳을 들락날락하는 외부인들이 많았다. 그들은 용병 사무소에 가서 용병들을 고용하기도 했고, 가격 흥정에 실패해 말다툼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떠돌이 용병 사무소만 한가하네.”

나는 다시 시계탑에 올라가 파레타 용병 길드 쪽 동태를 살폈다. 역시나 3대 길드답게 의뢰인들이 붐볐다. 그리고 오늘은 취재까지 있는 날이라 골목에 사람이 미어터졌다.

그때 보이는 한 사람. 누가 봐도 수상해 보이는 정장에 벙거지를 쓴 키라.

아까만 해도 호언장담했던 사람이 골목 근처에도 들어가지 못하며 카메라를 높이 들고 붐비는 사람들 사이로 지나가려고 꾸물대는 모습에 고개가 저절로 저어졌다.

아무리 前 대장이라 하지만 꼴을 보면 한낱 졸개 같았기에 그에게 모든 걸 맡기고 손가락만 빨기엔 리스크가 컸다.

그래서 난 도약했다. 아무도 모르게 파레타 용병 길드 옆 골목까지 순식간에 이동했다. 붐비는 길거리와 달리 건물 옥상은 쾌적했기에 경비대들의 눈초리를 피하며 점점 가깝게 다가갔다.

“걸리면 계획에 차질이 생깁니다.”

그런데 그때 내 뒤로 키라의 음성이 들렸다. 또 기척을 느끼지도 못한 채 난 그에게 뒤를 내어 준 것이다.

“저만 믿으라니까요.”

“그 골목에도 들어가지 못하시던데. 걱정돼서 와 본 겁니다.”

“기영수 님은 가면을 썼기에 발각이라도 되면 누가 봐도 의심할 겁니다. 몰래 잠입을 하려면 그 가면부터 벗으세요.”

“그건······.”

5년 동안 바깥에서 가면을 벗은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처음엔 카모라가 무서워서 썼지만, 지금은 정체를 들킬까 두려워 쓰고 있다.

천리안을 지닌 하늘 섬 요괴들에게 내가 어디 있는지 들통이라도 나면 어쩌나. 그들과 마주하기엔 내가 준비가 덜 되었다.

“누군가에게 쫓기는 중입니까?”

“숨고 있는 겁니다. 아직 준비가 덜 돼서.”

“흐음. 아무튼, 그 가면을 쓰고 이곳에 있으면 너무 눈에 띄니 절 믿고 기다려 주세요.”

키라는 다시 내려가 기자 행색을 하며 파레타 용병 길드 사무소로 들어가려 발악을 했다. 저리 보면 한없이 가벼운 사람처럼 보이는데 아까 마주할 땐 대장 포스가 느껴질 정도로 주변 공기가 무겁고 차가웠다.

* * *

“NPC 기자입니다. 용병 대회 때문에 취재 나왔습니다.”

키라가 드디어 파레타 용병 사무소에 발을 들였다. 노을이 질 만큼 대기 시간이 길었지만, 의뢰인들이 많이 찾는 메이저 용병 길드였기에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많이 기다리셨죠?”

“아닙니다. 뭐, 본업은 하셔야 하니깐.”

“인터뷰만 하면 되는 거죠?”

“네. 그런데 혹시 길드장님이 직접 인터뷰하는 것은 어렵겠습니까?”

키라의 물음에 난처한 표정을 짓는 대리인.

“뭐, 어쩔 수 없죠. 길드장 대신 대리인분께서 짧게 이번 대회 참가자 중 관심 두는 학생이 누구인지 말해 주시면 됩니다.”

“로체 도시에 있는 용병 길드인데 당연히 하민 학생이죠.”

그때 생각지도 못한 인물이 사무소에서 나와 키라의 질문에 답변했다.

질문에 답변한 사람은 파레타 용병의 길드장.

어두운 망토를 뒤집어썼지만, 음성만 들어도 성별은 구별할 수 있었다.

파레타 용병 길드장은 여성이었다.

* * *

“근데 목검으로 우승할 수 있겠어?”

파리만 날리는 떠돌이 용병 사무소에선 하민의 기합 소리만 울려 퍼졌다.

하민은 오로지 그 대회만 준비하며 실력을 갈고닦는 중이었다.

“진짜 열심히 하긴 하네.”

처음엔 그의 엉터리 검술에 혀를 차던 용병들도 하민의 노력에 어느 순간 감탄했다.

“왜 이렇게 열심히 하냐?”

그의 수련을 돕고 있던 마누스가 먼저 지친 듯 헐떡이며 물었다.

“소중한 사람들을 지키고 싶어서요.”

“낭만 있는 사내자식이었구만. 보상이다. 무기점에서 무기 하나 뽑아 줄게.”

“진짜요?!”

하민의 노력에 감동한 듯 마누스가 통 크게 그의 새로운 무기를 하나 사 주겠다고 선언했다.

“설마 하민이보다 먼저 지쳐서 쉬려는 속셈 아니고?”

까불이의 비아냥으로 수련이 길어질 뻔했지만, 마누스는 그깟 도발에 넘어가지 않는다며 콧방귀를 뀌고 지갑을 가져왔다.

“진짜야. 무기점 닫기 전에 얼른 가자.”

“나도 갈래!”

바루나도 사무소에만 있기 답답했는지 같이 간다고 졸라 댔다.

“뭐. 그럼 다 같이 나가자. 어떻게, 나간 김에 오랜만에 외식이라도 할까?”

마누스가 지갑을 확인하고 잠시 머릿속으로 계산을 때린 뒤 오늘 자신이 맛있는 것도 사 준다며 아이들을 불러 모았다.

“나도 갈래!”

“의뢰인이 올지도 모르는데 넌 여기서 대기해야지.”

“오겠어? 세 달 동안 소식이 없는데. 차라니 너의 성격 때문에 집 나간 여편네가 돌아오는 게 빠르겠다.”

이번엔 타격이 큰 듯 마누스가 기합을 내지르며 까불이의 멱살을 잡아 하늘로 높이 던져 버렸다. 괴력이 얼마나 센지 던져진 까불이가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가브리엘, 너도 가고 싶어?”

“귀찮아. 올 때 야채 호빵만 사 와.”

“너라도 정상이라 다행이다.”

마누스가 호탕하게 웃으며 야채 호빵은 사 온다고 호언장담하였다. 그렇게 마누스는 하민과 바루나를 데리고 무기점으로 향하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