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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돌이용병(3)
불행 중 다행으로 할머니의 시체는 그들이 모시고 있었다.
마지막 가는 길. 그 길을 지키며 끝까지 자리하고 있어야 하는데. 또다시 누군가를 잃었다는 슬픔에 잠겨 가슴 통증이 심하게 찾아왔다.
“하아.”
난 한숨을 푹푹 쉬었다. 지금 이에로도 없는 마당에 가장 어른은 나뿐이다. 그런데 약한 모습을 끝까지 보이다니. 비참했다. 자괴감에 빠지고 탓했다. 나약한 내 몸 뚱아리를 보곤.
물론 그전과 비교하면 많이 좋아진 거지만, 그래도 할머니의 마지막 가는 길을 보지 못한 채 구석에서 심장을 부여잡고 있어야 한다니.
“괜찮습니까?”
키라가 복개차를 건네주었다. 복개차를 마시니 거짓말처럼 공황 증세가 나아졌다. 그러나 또다시 슬픔과 불안감에 잠길 때 복개차가 없다면 돌이킬 수 없을 만큼 공황 발작에 시달릴 것 같았다. 그래서 이 한 모금을 마지막으로 복개차에 의지하지 않으려 했다.
그래도 지금은 복개차를 마시는 한이 있더라도 할머니의 마지막 가는 길은 배웅해야 하니 말이다.
“할머니!”
하민의 울부짖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옆에서 바루나도 훌쩍거리며 흐느끼고 있다. 난 그들의 손을 꽉 잡고 할머니의 마지막 모습을 마주했다. 나도 울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할머니는 좋은 곳으로 가실 거야. 꼭. 이렇게 하민과 바루나를 멋있고 예쁘게 키웠잖아.”
“할머니 너무 보고 싶은걸. 이제 영영 못 보는 거야? 엄마 아빠처럼?”
바루나의 물음에 마음이 좋지 않았다. 이렇게 어린아이가 또다시 보호자를 잃는다는 게 큰 상처가 될 터이니 말이다. 누구보다도 해맑은 바루나의 웃음을 지켜 주고 싶었다.
“아니. 할머니는 우리 가슴에 영영 남을 거야.”
“진짜?”
“응. 우리가 기억하면 할머니는 우리 가슴에 영영 남는 거야. 그러니 죽을 때까지 할머니를 기억해 줘야 해. 알았지?”
“응!”
다행히 바루나가 내 위로에 눈물을 그쳤다. 역시 씩씩한 아이. 이제 남은 건 하민인데. 그는 나보다 훨씬 어른스럽게 컸다.
“울면 할머니가 슬퍼하겠지?”
울음도 그치고 할머니의 마지막 가는 길을 끝까지 배웅해 주는 하민. 그의 꽉 쥔 주먹에서 엄청난 슬픔이 느껴졌다.
“마지막 인사 끝났으면 장례 시작하겠습니다.”
키라가 다가와 할머니의 장례를 도맡아 주었다. 목숨을 잃은 자경단 일원들과 함께 하늘로 떠나보냈다.
키라는 고개를 숙여 묵념했다. 우리도 그를 따라 하며 마지막 가는 길에 명복을 빌었다.
“감사합니다. 장례도 도맡아 주셔서.”
장례가 끝나고 난 키라에게 찾아가 감사의 인사를 건넸다. 그리고 본격적인 계획을 세우려 했다. 아직 이에로가 잡혀 있다. 이에로는 꼭 구해야 한다.
“방화범과 파레타 용병이 관련된 거 맞습니까?”
“확인해 봐야겠지만, 그런 거 같습니다. 그러나 누군가의 사주를 받고 움직이는 것 같습니다. 저희가 3년 동안 자경단을 자처할 때만 해도 파레타 용병과 부딪친 일이 없었으니 말입니다.”
“사주라······.”
“그나마 최근에 파레타 용병 고츠의 비리를 밝힌 적이 있는데 고츠가 운영진이지만, 따지고 보면 총수였습니다. 3대 용병 길드에 명성까지 완벽한데 총수의 비리가 밝혀졌다는 이유로 이렇게 큰 보복을 할 길드는 아니라는 거죠.”
“그럼 누군가의 사주가 있었다는 거군요.”
“아무리 명성과 권력이 있어도 용병은 돈으로 움직이는 법. 아마 파레타 용병 길드 뒤엔 흑막이 존재할 거라 생각됩니다. 그래서 저희가 지금껏 활동하면서 건드렸던 제국의 왕족을 확인해 봤습니다. 지금 최고의 권력을 거머쥐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제국의 왕족 사람들이니까요.”
2차 세계대전 이후 제국 라노키아의 승리로 루기아는 신분 제도화가 되었다. 그로 인해 빈부 격차가 심해지고 타 종족의 차별은 날이 가면 갈수록 심해졌다 들었다.
그러나 의문점이 하나 있었다.
“범죄 집단 헨드릭스가 연관되었다면 무슨 일일까요?”
분명 파레타 용병 길드에서 나온 헨드릭스 4군주 아르곤을 목격했었다.
소문에 의하면 집행자 소사이어티 군주들은 멸했고, 바로 헨드릭스와 흑사협 또한 기나긴 전투에 지친 데다 정신적 지주였던 대군주 카모라의 죽음으로 백기를 들었다고 하던데.
왜 아르곤은 파레타 용병에 있었을까? 궁금했다.
“정말 그곳에서 나온 사람이 헨드릭스 군주였습니까?”
“네. 당신의 계급을 맞힌 것처럼 전 상대의 정체를 알아내는 능력이 있거든요.”
키라는 내가 그를 마주하자마자 바로 대장급 장군이라는 사실을 맞혔기에 믿어 주었다.
“헨드릭스와 관련된 적은 단 한 번도 없긴 한데. 한번 알아봐야 할 것 같네요.”
“저도 돕겠습니다. 혹시 남은 자경단 단원들은 어디 있습니까? 제가 홀로 정보를 알아내는 건 벅찰 것 같아 죄송하지만, 도움을 받고 싶은데.”
“그게······.”
키라가 머쓱한 표정을 지으며 시선을 옮겼다.
나도 키라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하민, 바루나와 유치하게 싸우는 까불이가 보였고, 그 뒤로 드워프 종족인 마누스, 하민과 바루나를 구해 준 활잡이 가브리엘이 해맑게 놀고 있었다.
“설마 이곳에 있는 단원이 전부입니까?”
아무리 허름한 사옥이라도 단원이 키라를 포함해 네 명인 것은 말이 안 됐다.
“그래도 이들은 정예 구성원입니다. 아, 그리고 이에로도 포함해서 다섯 명입니다.”
“이에로는 붙잡혀 있는 상태잖아요.”
“흠······. 그럼 네 명이군요. 그래서 제가 그들이 방심할 때 구하자고 했던 겁니다.”
아무리 정예 구성원이라고 한들 네 명은 너무했다. 그래도 용병 길드인데 길드원이 길드장 포함해서 네 명이라니.
더구나 정예 구성원이라고 불리는 용병들도 어딘가 이상했다.
“내 간식 또 뺏어 먹었어?!”
“먼저 먹는 사람이 임자거든!”
하민과 똑같은 정신 연령으로 보이는 까불이.
“과자 가지고 그만 싸우고 청소 좀 돕지?”
“싫은데, 땅딸보야!”
“뭐? 까불이 이 자식, 요즘 처맞지 않아서 그런지 제정신이 아닌 것 같다?”
아이도 참을 만한 유치한 도발에 넘어간 드워프 마누스.
“두 분이 길드에 계시면 하루도 조용한 날이 없네요.”
“아차!”
“지금 뭐 하는 겁니까?”
“아니, 실수.”
그나마 활잡이는 가장 멀쩡한 것 같았지만 곧 착각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마누스가 도끼를 까불이한테 던지다가 방향이 잘못돼서 활을 망가뜨리자 똑같이 개싸움에 참전한다.
“정말 저 세 분이 정예 구성원입니까?”
“하하. 크흡.”
내 물음에 키라는 도망치듯 어디론가 사라졌다. 후. 차라리 혼자 정보를 캐고 다니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확신으로 다가왔다.
* * *
“오, 정말? 하민 씨가 로체 도시 대표로 용병 대회에 출전한다고요?”
저녁이 찾아오고 오랜만에 떠돌이 용병 길드원들과 옹기종기 모여 앉아 밥을 먹었다.
“애송인 줄 알았는데 꽤 치나 보네?”
마누스가 하민의 팔 근육을 만지며 엄지를 치켜들었다.
“이번 연도엔 로체 도시에 인재가 드럽게 없었나 보다.”
“뭐?!”
까불이는 역시나 조용히 넘어가지 않았다. 또 하민과 싸우는 까불이. 그러나 말리는 사람 없이 우린 대화를 이어 나갔다.
“지금은 하민의 대회보다는 이에로의 구출 계획을 더 면밀히 세우는 게 중요해요.”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네?”
“우승 상금이 3천만 PT라고 하더군요.”
키라의 물음에 나머지 용병들의 눈빛이 달라졌다. 왠지 짐승처럼 침도 질질 흘리는 것 같았다.
“3천만 PT?!”
그들의 눈빛이 마치 먹잇감을 발견한 하이에나처럼 변했다.
“저희에게 의뢰가 들어오지 않은 것도 3개월이 다 되어 갑니다. 그만큼 운영비도 박살이 났죠. 그래서 저흰 우승 상금도 중요하다 생각합니다.”
난 그때 느꼈다. 이곳에 멀쩡한 사람은 없다는 것을.
“저와 기영수 군은 이에로의 구출 작전을 세워 보고 나머지 우리 정예 구성원들은 하민이 용병 대회에서 우승할 수 있도록 수련을 시켜 주세요.”
* * *
새벽녘. 파레타 용병 개인 수감실에서 홀로 외로이 1평짜리 미니 감옥에 갇힌 이에로.
그녀 앞으로 점점 다가오는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그 인기척에 꾸벅꾸벅 졸고 있던 이에로가 눈을 뜨며 고개를 들었다.
이에로 앞으로 한 남성이 섰다. 남성의 그림자가 그녀를 뒤덮었다. 이에로는 고개를 들어 그의 정체를 확인하고 나서야 말을 이어 나가지 못할 정도로 상실감에 빠졌다.
“상태를 보아하니 그래도 괜찮아 보이네.”
“···배신이냐?”
이에로 앞에 선 낯선 자가 바로 같은 자경단 구성원인 활잡이 가브리엘이었기 때문이다.
* * *
자명종 시계가 울렸다. 그러나 일어나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 겨우겨우 참다가 내가 일어나 알람을 껐다.
‘이럴 거면 왜 알람을 설정한 거야?’
떠돌이 용병 사무소의 아침은 조용했다. 아무도 일어나지 않는 용병들. 이러니 의뢰인이 오고 싶어도 안 오지.
난 한숨을 내쉬고 가면을 뒤집어쓴 채 밖으로 나와 용병 사무소 입구의 팻말을 뒤집어 오픈 표시로 바꾸었다.
“일찍 일어나셨네요?”
가브리엘이 용병 중에서 가장 먼저 일어나 마당에서 스트레칭을 했다. 그나마 이 중에서 멀쩡하게 생긴 녀석이니 첫인상이 나쁘지 않았다.
그는 사옥에 앉아 명상도 했다. 명상이란 공통점이 있으니 조금 친근하게 다가오기도 했다.
“쿨쿨쿨.”
그런데 명상은커녕 앉아서 코를 골며 잠에 다시 빠지는 가브리엘. 다시 한번 느꼈다. 이곳에 제정신은 없다고.
그의 코 고는 소리가 하도 커서 명상에 집중이 안 됐다. 잘 거면 방에 다시 들어가서 잘 것이지. 난 한번 가브리엘을 곁눈질로 째려보고 사무소에서 나가 로체 도시의 아침을 맞이했다.
로체 도시의 아침은 이곳과 다르게 바빠 보였다.
의뢰인을 모시며 용병 사무소로 데려가는 용병들. 뭐, 난 떠돌이 용병 길드원이 아니기에 상관없었지만, 괜히 의뢰인들이 많이 찾아가는 용병 사무소들이 보이면 궁금하기도 했다.
“흐음.”
로체 도시 중앙에 떡하니 자리 잡고 있는 시계탑 위로 올라갔다. 이곳에서 가장 높은 건축물이라 그런지 로체 도시가 한눈에 다 들어왔다.
이곳까지 올라온 이유는 파레타 용병의 거처를 살펴보기 위함이다. 이에로가 잘 있는지 너무나 궁금했고, 헨드릭스 군주 아르곤이 왜 그곳에서 나왔을까 하는 궁금증도 폭발했다.
혹시 아르곤이 살아 있으면 헨드릭스 대군주 카모라도 살아 있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도 증폭됐다.
그러나 오히려 좋다. 복수의 대상만 바라보며 칼날을 갈고닦았는데 그녀가 살아 있으면 내 삶의 이유도 다시 생기는 것이니깐.
“대낮부터 관음하시는 겁니까?”
그때 키라의 목소리가 들렸다. 기척도 없이 내 뒤에 서 있어 눈치채지 못했다.
“그게 아니라 걱정돼서요.”
“다행히 이에로는 좋은 가족을 두었군요.”
“취재는 언제부터 하시는 겁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오늘부터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