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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돌이용병(2)
새벽에 할머니가 나물을 수레에 싣고 간 곳은 시장이 아니라 굴다리였었다. 그리고 그곳에 웅크려 자고 있던 이에로에게 따로 가져온 이불을 덮어 주었다. 사라진 이불의 행방 또한 그때 알게 되었다.
이에로는 그런 할머니의 모습에 처음엔 경계심을 품었지만, 이불의 따스함 때문인지 할머니의 따스함 때문인지 오랜만에 느껴 보는 온기 덕분에 계속 혼란스러웠던 마음이 잠시 차분해졌다고 했다.
혼란스러웠던 것이 잠시 멈추니 이성적인 판단도 할 수 있게 되었다고 말했다. 좀 더 시간이 흐르고 살려고 여기에 들어왔다던 이에로의 말뜻이 나와 같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바로 복수심. 그녀는 용병이었던 부모님이 전장에서 죽고 홀로 남겨졌다고 했다. 사촌들과 친척들이 있었지만 그들은 이에로의 부모님이 남긴 재산으로 싸움을 했다고 했다.
그 모습에 이에로는 사람이 싫어졌다고 답했다. 그리고 원래는 부모님을 따라 죽으려고 굴다리에 갔다고 말했다.
그러나 우리가 그녀의 모습을 우연히 보았기 때문에 자살 시도는 잠시 미루고 다시 집으로 돌아갔을 때 청천벽력 같은 비밀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그 비밀은 부모님의 죽음에 관련된 것이었다. 전장에서 목숨을 잃었다는 얘기만 들었는데 사촌 어르신이 따로 얘기하던 대화 내용에선 다른 사건이 있었다.
“그러니깐 장로님께서 독극물을 먹였다는 거죠?”
“그 의뢰는 진행되면 안 됐을 의뢰라고 하더군. 그래서 그 의뢰를 받은 용병들은 독극물을 먹어 사망했다. 내가 들은 얘기는 그게 전부야.”
“장로님이 죽였다니. 이거 참.”
그때 사촌 어르신께서 분노만 했으면 이에로가 변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의 조카가 억울하게 죽었다는 사실을 알았음에도 돈만 밝히며 대화를 이어 나갔다고 했었다.
“그럼 장로님에게 그거로 조금 어필하면 돈을 더 받아 낼 수 있지 않을까요?”
“그래. 그러니깐 친척 귀에 들리지 않게 조용히 비밀로 해.”
충격적인 대화 내용에 이에로는 살아갈 원동력을 찾게 되었다고 말했다. 복수심. 피를 나눈 가족인데도 돈만 갈구하는 사촌 어르신들과 부모님을 죽인 당사자. 장로.
“장로가 누군데?”
“그건 모르겠어. 그런데 뒤를 캐면 알 수 있을 거야.”
이에로는 나와 같이 복수심을 원동력으로 삼아 생을 이어 나간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가난한 집안을 조금이라도 일으켜 세우려고 수산 시장에 나가 오징어를 팔며 생활비를 전부 책임졌던 장녀였고, 나는 공황 증세로 아무 일도 못 한 채 밥만 축내는 백수였다.
이에로는 홀로 생활비를 충당하는 것에 대해 불편한 기색을 표출했던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오히려 하민과 바루나가 자신과 같이 부모를 잃은 고아였다는 사실을 알고는 더 잘해 주었다.
나 또한 면밀히 따지자면 고아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게임 세계에선 떠돌이가 된 상태이기에 냉랭했던 이에로가 나까지 이해하며 잘해 주었다.
그녀는 그렇게 강인한 여성이었다.
그리고 이번에 수산 시장에서 뼈 빠지게 일했음에도 불구하고 복수를 하기 위해 자경단에 들어간 사실까지 알았기에 그녀는 나의 생각 이상으로 강한 사람이라 느꼈다.
그런데 그녀가 감옥에 갈 정도로 죄를 지었다니. 난 믿을 수 없었다.
이에로를 태운 미니 감옥은 수감실이 아닌 다른 길목으로 지나갔다.
“이곳은 민간인 출입 금지입니다!”
계속 뒤를 쫓아가자, 그들이 도착한 곳이 파레타 용병 길드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러자 난무했던 소문이 사실로 밝혀지기라도 한 듯 시민들이 그녀를 향해 비난하며 손가락질했다.
난 무성한 소문보다는 죄를 지었다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수감실이 아닌 파레타 용병 길드로 잡혀간 이유에 대해 의문이 들었다.
그러던 그때! 파레타 용병 길드에서 나온 한 사내를 보고 흠칫 놀랐다.
마스크를 쓰고 있어 얼굴을 정확히 보진 못했지만, 머리 위로 떠오른 칭호를 보고 알 수 있었다.
그가 아틀란티스까지 와서 우리 동료를 무참히 죽인 범죄 집단 헨드릭스의 4군주 아르곤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범죄 집단과 암살 집단은 라노키아와 세계 정부로 인해 멸했다고 들었는데······.’
소문과 달리 헨드릭스 군주가 살아 있는 모습에 난 표정 관리를 하지 못한 채 그곳으로 성큼성큼 다가갔다.
* * *
한편 하민은 바루나와 손을 잡고 불타 형태조차 알아볼 수 없는 판자촌 주변을 전전긍긍하며 돌아다녔다.
“형! 기영수 형!”
“영수 오빠! 뿌에엥!”
갑자기 사라진 영수와 불타 없어진 집을 보자 과거 고아였던 시절에 길에서 주저앉아 하염없이 울었던 기억이 PTSD로 찾아왔다.
바루나는 오열했고, 하민 또한 두려운 듯 떨리는 목소리로 계속 가족의 이름을 불렀다.
그러던 중 험상궂은 용병과 부딪친 하민.
“뭐야, 이 애송이는?!”
뭔가 기분이 나빠 보이는 용병은 하민이 건들자 예민하게 반응하였다.
“그만 처울어! 죽고 싶어?!”
그리고 울고 있는 바루나까지 위협하며 거대한 대검을 들었다. 그러자 하민은 여동생을 보호하기 위해 자세를 갖춰 대검을 막아 냈다.
불과 몇 시간 전 오리진과 싸우느라 체력을 모두 소모한 탓에 거친 호흡을 내쉬었다.
“애송이가 어딜 반기를 들어!”
또다시 거대한 대검이 하민의 머리통으로 내리꽂혔다.
쉬이익―
그때 대검의 방향을 비튼 누군가의 화살. 덕분에 대검은 하민이 쓰러진 바로 옆 바닥에 내리꽂혔다.
“누구야?!”
우락부락한 용병이 소리치며 화살이 날아온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하민 역시도 시선을 옮기며 생명을 구해 준 은인의 모습을 확인하는데.
깔끔히 정돈된 흰색 정장을 입고 안경을 쓴 활쟁이 청년의 모습이 눈에 담겼다.
그가 다시 한번 활시위를 잡아당겼다.
용병 역시 활쟁이와 맞서 싸우기 위해 땅에 처박힌 대검을 다시 추켜올렸지만 화살의 위력 때문일까? 대검을 들자 칼날이 산산이 조각나며 부러졌다.
“사태 파악되시면 삼십육계 줄행랑치십시오.”
이름 모를 활쟁이가 한번 선심 써 준다는 듯 말했다. 그의 말에 용병의 자존심을 버리고 남자는 재빠르게 도망쳤다. 자존심보단 목숨이 더 중요했기 때문이다.
쉬이익―
그러나 도망치는 용병의 뒤통수에 활이 꽂혔다. 아무렇지 않게 살인한 극악무도한 자가 웃으며 하민과 바루나에게 손길을 내밀었다.
* * *
그 시각. 나는 파레타 용병 건물에서 나온 헨드릭스 4군주 아르곤에게 복수하기 위해 스킬을 발동시키려 했다.
아무리 동료를 죽인 장본인이 헨드릭스 대군주 카모라라고 쳐도 그녀를 도와준 다른 군주들도 용서할 수는 없었다.
무엇보다도 이날을 위해 공황을 다스렸다. 지금은 단잉의 반지가 없어도 공황 발작의 빈도가 낮은 상황. 이길 수 있다.
“지금 나서면 이에로가 죽을 확률이 높아집니다.”
그때 낯익은 자가 이에로를 언급하며 나를 저지했다. 확인하니 아까 나를 안전한 곳으로 옮긴 키라라는 자.
그의 망토가 바람이 부는 곳 반대로 휘날렸다. 아무리 은퇴했다 쳐도 대장급 장군. 행색은 그저 게으른 낭인과도 같은데 뭔가 강력해 보이는 보랏빛 아우라가 그를 감싸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이에로에 대해 어떻게 아십니까? 그리고 죽을 확률이 높아진다니요? 전 이에로를 구하려고 쳐들어가는 겁니다.”
“무리입니다.”
“생각보다 전 강합니다.”
“자신을 과대평가하는군요.”
그가 자꾸 시비조로 나를 긁었다. 그래서 보여 주고 싶었다. 마왕 브라고의 힘을.
그런데 또다시 나를 막는 키라.
“이에로를 안전하게 살릴 수 있는 계획이 있습니다.”
“저도 계획이 있어요. 무계획이요.”
“이에로의 가족이라 들었는데 그녀와 달리 멍청하시네요.”
그의 비아냥거리는 어투에 난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다가 한 가지 의문점이 들었다.
“제가 이에로의 가족이라는 것을 어떻게 아시죠?”
그는 이미 내 정체를 알고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이에로도 알고 있다니. 난 키라의 정체가 궁금해졌다. 그도 내 속내를 알아차린 듯 자신의 정체를 솔직하게 밝혔다.
“이에로가 자경단으로 활동하시는 건 아시죠? 들었습니다. 가족 중 둘째에게 들켰다고.”
“···이에로가 자경단인 것도 알고 있었습니까? 당신 도대체 누구입니까?”
키라는 내 물음에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당연히 알 수밖에요. 제가 그 자경단의 수장이거든요.”
자경단의 수장이라니.
대장급 장군이라 범상치 않은 인물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너무나 터무니없는 일이 아닌가?
갑작스럽게 나타난 인물이 이에로와 깊은 관련이 있다니.
너무나 수상하니 경계할 수밖에 없었다.
“뭐. 자경단 수장이라 소개해도 이해할 수 없네요. 그러면 지금 당장 이에로를 구하려 드는 게 정상 아닌가요?”
“이에로가 갇힌 곳은 3대 용병 중 하나인 파레타 용병 길드. 내버려 두는 게 아닙니다. 위험 요소를 최대한 배제하려는 거죠.”
“배제하다뇨?”
“조만간 퍼플우드 용병 대회가 열립니다. 그 대회의 우승자에게는 3대 용병 길드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는 보상이 생기는데 그런 시스템으로 대회를 진행하는 동안엔 무조건 길드장이 참가해야 합니다. 그때 구하자는 겁니다. 길드장이 사무소에 없을 때.”
그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었다. 굳이 길드장과 맞서 싸우는 것보다는 그들이 방심할 때 구하는 것이 더 안전한 것은 사실이니깐.
그러나 그동안 이에로가 고통받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간과해선 안 된다. 그동안 그들이 그녀에게 무슨 짓을 할지 모르는 상황이니 말이다.
상대는 범죄 집단 헨드릭스 군주다. 극악무도한 자이기에 잠시라도 이에로를 그곳에서 머물게 하기 싫었다.
“생사도 아직 모르는데 걱정 안 할 수가 없죠.”
“그게 걱정이시면 안도하세요.”
키라가 시선을 파레타 용병 길드로 옮겨 말을 이어 나갔다.
“용병 대회는 퍼플우드에서 가장 큰 대회입니다. 방송국 또한 우승자를 영입할 3대 용병 길드를 취재할 것이죠. 카메라가 많이 붙을 것입니다. 즉 저기도 무턱대고 움직이지 않을 것이란 말입니다.”
“취재라니······. 그런 알량한 것에 이에로의 운명을 맡긴다고요?”
그의 답에 실망했다. 아무리 취재가 계속된다고 해도 기자들만 믿고 기다리자니. 터무니없는 계획에 난 혀를 내둘렀다.
“그럼 홀로 무식하게 박으려고요? 아마 골목에도 진입 못 한 채 붙잡히실걸요.”
“그래도 멍청하게 방치하는 것보단 나을 겁니다.”
“누가 방치한답니까? 계속 주시할 겁니다. 그래서 잠복도 할 거고요.”
키라가 내게 명함 하나를 건넸다. 그 명함엔 ‘NPC 기자 키라’라고 쓰여 있었다.
“취재는 제가 24시간 내내 할 겁니다. 그러니 걱정하지 마세요.”
키라의 저지에 이성을 되찾고 난 떠돌이 용병 길드 사무소로 거처를 옮겼다. 판자촌이 다 불탔기에 집도 잃은 상황.
한편 까먹고 두고 왔던 하민과 바루나도 생각났다.
“영수 형!”
그런데 이미 이에로의 가족을 보호하기 위해 움직인 듯 떠돌이 용병 사무소로 다시 돌아가자 하민과 바루나가 안정을 취하고 있는 모습이 눈에 담겼다.
그들은 내게 다가와 안기며 눈물을 흘렸다.
“할머니가······.”
키라는 이에로의 신분이 노출된 것을 알아차리고, 그녀의 가족들을 황급히 대피시켰다고 대답했다. 나 또한 대피시키기 위해 판자촌에서 이곳으로 데려온 것이다.
그러나 할머니는 구하지 못했다. 그리고 판자촌에 몸을 숨기던 자경단 대원들까지 목숨을 잃었다고 슬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