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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동안 일어난 일(4)
“오빠, 하민이 오빠 엄청 날쌔다!”
“매일 모래주머니를 달고 수련했으니 아마 하민의 속도를 따라잡는 학생은 존재하지 않을 거야. 그런데 대회 전에 무기 하나 살 걸 그랬다. 무기 차이가 생각보다 아주 심하네.”
한편 난 하민의 선발전을 보곤 후회했다.
물론 무기 살 돈조차도 없는 것이 우리 집안 형편이지만, 3천만 PT가 걸려 있는 대회이니만큼 투자도 중요했다. 피지컬적으로 보면 무기만 조금 받쳐 주었어도 이미 승기는 기울였을 전투였다.
그러나 하민의 무기는 목검. 아마 상대의 대검과 1합이라도 맞추면 목검은 맥없이 댕강 잘려 나갈 것이다.
하민 역시도 그것을 알고 있는지 요리조리 피하며 1합이라도 맞추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었다.
“그럼 하민 오빠 1등 못 하는 거야?”
내가 입맛을 다시며 후회를 하자 옆에 있던 바루나가 안절부절못하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난 바루나의 물음에 미소로 답했다.
“무기 차이로 승패가 결정 난다면 아까 끝났을 거야.”
덩치 큰 오리진이라도 대검을 계속 휘두르면 체력이 급격히 떨어질 것이다. 내 생각과 똑같이 오리진이 헉헉거리며 잠시 숨을 고르고 있었다.
그때 하민이 목검을 거꾸로 잡았다. 마치 이때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하민이 단검을 잡는 것처럼 목검을 잡자 주변 공기가 약간 무거워진 듯 대기가 바뀌었다.
“결투는 아직 시작도 안 했어.”
난 하민의 주특기를 스피드로 만들었다. 힘보다는 속도. 중압감보다는 날카로움이 하민과 어울렸기 때문이다. 그러니 하민의 검술 자세도 바뀌었다. 긴 검으로 승부 보는 검객이 아닌 단검으로 빠르게 베어 버리는 섀도우처럼.
슉―
“뭐야?!”
관중들로부터 저절로 탄성이 나왔다.
“갑자기 사라졌어!”
바루나도 놀란 표정으로 하민을 가리키며 내게 환호성을 질렀다.
아마 관중들 또한 바루나처럼 하민의 속도를 눈으로 따라가지 못했을 것이다.
저기 하민의 일격에 쓰러진 오리진처럼 말이다.
“이··· 이번 선발전의 최종 승자는!!”
진행자 또한 얼떨떨한 표정으로 쓰러진 오리진을 바라봤다.
불과 1분 전만 해도 분명 하민을 잡아먹을 것처럼 위풍당당했던 모습이었는데. 하민의 일격 한 방으로 이렇게 맥없이 쓰러지다니.
“로체 도시 대표로 퍼플우드 용병 대회에 참가할 학생은 바로 하민입니다!”
진행자가 하민을 가리키며 박수를 유도했다.
관중들 또한 하민의 경기를 감명 깊게 본 듯 그의 이름을 연호했다.
거대한 돔 구장에 자신의 이름이 울리니 하민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경기장에 서 있었다.
“제가 진짜 우승자인 거예요?”
하민은 다시 한번 진행자에게 물었다. 진행자가 박수로 답을 대신하자 그제야 하민은 실감이 난 듯 복받치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했다.
그렇게 로체 도시 용병 대회 선발전의 최종 우승자는 하민이 되었다.
그의 노력을 알았기에 난 하민이 최종 승자가 될 줄 예상하였지만, 막상 녀석이 경기장에 홀로 서서 울고 있는 모습을 보자 마음 한쪽이 아렸다.
“고생했다!”
그래서 난 하민을 향해 엄지를 치켜들며 관중들과 그의 이름 석 자를 크게 외쳤다.
그런데······.
쾅― 쾅―
가장 행복한 날에 가장 큰 불행이 찾아왔다.
나를 비롯한 돔 구장에 있던 관중들과 도시 사람들이 남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갑자기 남쪽에서 큰 폭발음이 들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폭발음이 들린 지점을 육안으로 확인하자 우리가 살고 있는 판자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
판자촌의 형태도 알아보지 못할 만큼 폭발은 계속 이어졌다.
폭발이 멈춰도 그곳엔 불길이 남아 있었다.
아주 먼 곳이지만, 도시까지 불길의 뜨거움이 느껴질 정도로 아주 큰 산불이었다.
“바루나, 여기 꼼짝 말고 있어!”
“오빠!”
아직 어린 바루나를 홀로 놔두는 것은 잘못된 판단일 수도 있겠지만, 난 바로 판자촌을 확인하려 가장 높은 건물로 점프해 올라섰다. 바루나가 소중한 것처럼 판자촌도 나에겐 소중한 장소였기 때문이다.
“연기 때문에 안 보여······.”
그러나 불길과 연기에 가려 판자촌 상태를 모르는 상황.
그렇기에 할 수 없이 그곳으로 뛰어갔다. 바루나를 혼자 두었다는 사실을 망각한 채 말이다.
그때 난 그저 속으로 하나만 생각하고 있었다.
“할머니!”
집을 지키고 있는 할머니와 이에로가 무사하길 빌었다.
* * *
최대한 빠르게 이동하니 멀리 있던 판자촌까지는 고작 3분 안에 도착하였다. 로체 도시와 판자촌은 생각보다 멀리 있어 내 정신을 혼란스럽게 만들었던 도시 시민들의 아우성이 더는 들리지 않았다.
그러나 시끄럽던 아우성은 사라졌지만, 계속 번지는 불길 때문에 상황 파악이 빠르게 되지 않았다.
누가 폭발을 일으켰으며 판자촌은 괜찮은지.
“할머니! 이에로!”
난 소리치며 집 방향 쪽을 맴돌고 또 맴돌았다. 그러나 들리지 않는 가족들의 목소리. 난 목이 갈라질 때까지 소리치며 제발 무사하길 빌었다.
그런데 그때!
피융―
화살 하나가 나를 향해 매섭게 날아왔다. 다행히 피했지만, 활시위 당기는 소리가 가까이에서 들렸다. 분명 폭발과 관련된 사람일 것이다.
난 활시위 소리가 들린 쪽으로 빠르게 방향을 틀었다.
그러나 불길 때문에 쉽사리 확인되지 않았다.
“가면 청년!”
그때 판자촌 이웃 사람이 나를 보고 살려 달라 울부짖었다.
옆옆 집 할아버지인데. 왼쪽 팔이 폭발로 인해 날아간 듯 팔 한쪽이 보이지 않았다.
마치 전쟁과도 같은 비극이었다.
할아버지는 고통에 신음하다가 내 앞에서 무릎을 꿇은 채 쓰러졌다.
“할아버지!”
난 정신을 차리고 할아버지에게 달려가 상태를 확인했다. 그러나 이미 늦은 뒤였다.
피를 너무 많이 흘렸고, 피부가 다 벗겨질 정도로 화상을 입었으니 그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돌아가신 것이다.
“하아. 하아.”
평온한 마을이었는데. 자연을 바로 맞이하는 장소. 그리고 무엇보다 이곳은 공황 증세를 극복한 뜻깊은 장소다. 그런 소중한 장소가 누군가가 일으킨 폭발로 한순간에 사라져 버렸다.
난 이를 갈았다.
그리고 오랜만에 스킬을 사용했다.
“옥타비아누스.”
굉음과 함께 대지가 갈라졌다. 내 스킬에 불길이 더 번졌다. 중력 에너지가 불의 원동력이 되어 더 강해진 것 같았다.
그러나 높은 불기둥이 중력으로 내려가 넓은 시야를 확보할 수 있었다. 그리고 마주한 낯선 이들.
칭호를 보니 로체 도시 소속 용병들이었다.
“공격하라!”
불기둥을 깔아뭉개 정체를 알아 버리자 용병들은 난감한 기색을 표하며 나를 공격해 왔다.
불이 번져 발밑까지 다가오는 와중에 용병들의 공격까지 더해지니 정신이 혼미해졌다.
그래서 난 봉인했던 스킬을 하나 더 사용했다.
“블럭!”
용병들을 향해 중력 에너지 탄을 날렸다. 그러자 용병들의 몸을 뚫고 에너지 탄은 저 멀리 있는 산까지 파괴했다.
“당신 뭐야?! 가면을 쓴 거 보니 아직 살아 있는 자경단인가?!”
가면을 쓴 날 보곤 그들은 자경단이냐 물었다. 그러나 그들의 목소리는 내 귀에까지 닿지 않았다. 시야도 흐릿해지며 앞도 잘 보이지 않았다.
물론 흥분을 최대한 가라앉히려 했지만, 불기둥이 사라지고 낯익은 마당과 집이 있던 위치를 보니 감정을 통제할 수 없었다.
분명 저곳에 판잣집이 있어야 하는데 이미 불타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할머니!”
명상으로 감정을 통제하려 노력했던 5년간의 세월이 한순간에 물거품이 되는 날이었다. 나를 거둬 준 할머니와 마을이 하루아침에 폭파됐기 때문이다.
그 이후부터는 기억나지 않는다.
시간이 지나고 눈앞이 다시 선명해졌을 때 내 주변엔 용병들의 시체만 가득했다.
* * *
기억이 아른거린다. 이곳에 처음 왔던 때의 기억은 흐릿하다.
제나의 도움으로 홀로 도망치듯 다른 대륙으로 순간 이동한 나는.
이곳이 용병의 대륙 퍼플우드라는 것도 처음엔 알지 못했다.
그저 갑자기 색맹이 된 듯 세상이 온통 흑백으로 보였다.
푸른 하늘과 평화로운 들판도 내겐 회색빛이었다.
그렇게 난 떠돌이처럼 홀로 그 자리에 고개 숙인 채 눈물만 흘렸다.
달그락―
그때 빈 수레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내 앞에서 소리가 멈췄다. 고개를 들어 보니 내게 손길을 건네주는 할머니가 보였다.
‘죽은 것인가?’
공황 발작으로 인해 속이 울렁거렸고, 귀에서 나는 이명 소리도 내 뇌를 자극했다. 그러던 와중에 나에게 손을 내미는 한 노인. 그때 당시에 난 게임 세계에서 죽어 하늘나라로 온 줄 알았다.
“우웩!”
속이 계속 울렁거리자 저절로 토가 쏠렸다. 난 바닥에 힘껏 토를 했다. 그때 내 등을 쳐 주는 할머니. 그 손길이 닿자 공황 발작으로 인한 내 떨림이 잠시 멈췄다.
이명 소리가 멈췄다. 그리고 평화롭게 지저귀는 새소리가 내 귀에 닿았다.
다시 고개를 들어 할머니의 손을 잡았다.
손을 잡자 흑백 세계로 보이던 세상이 밝아졌다.
뭐, 바로 공황이 나아지진 않았다. 거동도 불편해 보이는 할머니가 빈 수레에 나를 태우고 힘들게 판잣집으로 올라서는데 난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했다.
그저 빈 수레에 머리를 기댄 채 눈을 감았다.
잠시 후 지저귀는 새소리에 머리가 맑아지는 기분을 느꼈다.
“할머니, 누구야?”
이곳에 오고 처음 내게 말을 건 사람은 하민이었다. 그때 당시에 하민은 엄청 어렸었다. 뭐, 지금도 그렇지만 말이다.
그는 씩씩하게 포댓자루로 바루나를 등에 업은 채 할머니를 반겼다. 그리고 날 신기한 듯 쳐다봤다.
“형, 어디 아파?”
할머니가 언어 장애인이고 바루나는 말도 제대로 못 하는 갓난아기라 하민은 외로웠었는지 매일 밤 내게 말을 걸어왔다.
이곳에 온 지 일주일이 되었음에도 난 집 밖으로 나가지 않고 구석에서 심장을 부여잡고 공황을 다스렸다.
범죄 집단 헨드릭스로부터 동료들이 위협받고 있음에도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거의 폐인처럼 그냥 판잣집 천장만 바라봤다.
어느 때는 판잣집 천장에 그려진 문양의 개수를 세어 봤고, 어느 날은 그냥 멍만 때리며 살아갔다.
마치 시체처럼 세월을 낭비하며 말이다. 그땐 이렇게 살 바에는 그냥 죽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우울한 생각도 가졌다.
그러나 내게 말을 걸어 주는 하민을 비롯해 바루나의 애교와 할머니의 손길이 위로로 다가왔다.
“오늘은 쫌 나가자!”
어느 날엔 하민이 심심하다는 듯 폐인처럼 집구석에만 처박혀 있는 나를 억지로 내보내려 한 적이 있었다. 그가 강제로 내 몸을 끌어당기자 공황 증세가 나타났다.
“건드리지 마!”
고작 어린아이의 투정인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러나 하민은 말을 듣지 않는 아이였다. 내가 짜증을 부려도 또는 화를 내도 그의 투정은 계속됐다.
그래서 잠시 집에만 있으니깐 답답함에 숨이 쉬어지지 않아 하민의 부탁을 들어준 날이 있었다. 확실히 나가니깐 숨이 트였고, 답답함도 사라졌다.
“나오니깐 좋지?”
“난 행복하면 안 될 사람이야.”
그러나 난 소중한 동료를 지키지 못하고 홀로 살아남은 패배자였기에 태연하게 바깥 공기를 마실 수가 없었다.
“왜 행복하면 안 되는데?”
하민이 물었다. 그 물음에 난 고개를 숙이고 다시 집에 들어갔다.
“벌써 들어가?”
“아파.”
“어디가?”
“몰라도 돼.”
난 잠시 숨통만 틔우려고 바깥에 나온 거라 하민이 원하는 산책은 하지 않고 다시 집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하필 집에 들어서니 바루나의 울음소리가 집 안 가득 울려 퍼졌다. 그날따라 할머니가 달래 주면 바로 뚝 그치는 아이가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
뇌가 울렸다. 이명도 다시 들렸고, 숨도 쉬어지지 않았다. 속도 울렁거렸다.
고통. 그리고 발작.
난 다시 도망치듯 바깥으로 나왔다.
“쟤는 오늘따라 왜 계속 울어?”
하민에게 짜증 난다는 어투로 물었다.
“오늘 부모님 돌아가신 날이야. 바루나가 어려도 이날은 기억하나 봐.”
그렇게 그들의 가정사를 우연히 듣게 됐다. 하민이 오늘만큼은 바깥에 나가자고 떼를 쓴 이유가 이것 때문인가 싶었다. 그러니 마음이 살짝 약해졌다.
“나가자.”
그래서 난 처음으로 하민의 손을 잡고 주변을 천천히 거닐기 시작했다. 공황 증세로 속이 울렁거리고 불안감에 멀리는 나가지 못했지만, 그래도 하민은 밝게 웃으며 좋아했다.
그의 웃는 얼굴을 보자 덩달아 나도 기분이 좋아졌다.
“어때, 좋지?”
“······.”
“아빠 엄마도 살아 있었으면 같이 산책하는 건데.”
그의 혼잣말에 어둠으로 덮였던 내 마음이 흔들렸다. 살아 있으니깐 고통도 겪고 공황 발작도 오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니 죽고 싶었다. 그런데 돌이켜 보면 살아 있으니깐 이렇게 걷는 것이고, 숨도 쉴 수 있었다.
그리고 살아 있으면 복수도 할 수 있었다.
“형은 아프지 마!”
하민의 외침이 내 심금을 울렸다. 오늘은 유난히 하늘이 맑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