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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동안 일어난 일(3)
“단장님. 대장님 연락은 아직 없는 겁니까?”
한적한 공터. 부엉이들의 울음소리만이 들리는 어두컴컴한 장소에서 자경단 가면을 쓴 낯선 이가 물었다.
“아직은 없네.”
그와 아무도 모르게 정보를 공유하는 이는 이에로였다.
“수감실에 많은 자경단 단원들이 붙잡혀 고문을 당하는 상태입니다. 얼른 대책 논의라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대장님이 있는 곳이 어디인지도 모르십니까?”
“···대장님의 행방은 단장인 나도 모르네. 그러나 곧 연락이 닿을 것이니 조금만 참고 수감실에 갇힌 동료들을 지켜봐 주시게나.”
이에로에게 부탁을 청하는 이는 그녀와 같이 가까스로 도망쳐 나온 자경단의 일원이었다.
“이해해 주게나. 자경단을 계속 이끌어 가려면 비밀 보장은 필수이니.”
“저에게 대장은 단장님입니다. 단지 저는 얼굴도 모르는 대장이 저희 동료들을 부디 가엾이 여겨 구해 주셨으면 하는 바람뿐입니다.”
“꼭 지키겠네.”
“그건 그렇고 나머지 일원들은 어디 있습니까?”
“내가 머무는 판자촌에 몸을 숨기는 중이네. 안전한 곳이니 걱정하지 말게나.”
“다행이군요. 그러면 대장님과 연락이 되는 대로 꼭 전해 주십시오. 그동안 전 수감실에 갇힌 동료들의 동태를 계속 주시하겠습니다.”
“그래. 고생이 많네.”
이에로에게 정보를 공유한 뒤 자경단은 안개처럼 사라졌다.
홀로 남은 이에로.
가면을 쓰고 있음에도 침울한 감정이 그녀의 아우라에서 느껴졌다.
* * *
한편 하루도 거르지 않고 수련에 임하던 하민이 오늘도 역시 체력이 동난 듯 바닥에 맥없이 쓰러졌다.
“괜찮아?”
쓰러진 적이 한두 번이 아니리 난 형식적으로 그의 상태를 물어봤다.
하민은 재능이 거의 제로에 가까웠지만, 끈기는 어떤 천재보다도 좋았다.
끈기의 천재라고 불러도 될 만큼 하민은 쉬지 않고 한 주 동안 달려온 것이다.
그렇게 오늘 드디어 아카데미 출전 학생을 정하는 D-Day가 찾아왔다.
“이에로, 너는 같이 안 가?”
난 안방에서 할머니의 어깨를 주물러 주는 이에로에게 물었다.
퍼플우드 용병 대회 선발전은 그 누구든 참관할 수 있었기에 난 바루나와 함께 하민을 응원하러 가기로 했다.
“되지도 않을 거 기대해서 뭐 해. 난 할머니 모시면서 기다릴게.”
그러나 이에로는 하민을 인정하지 않았다.
물론 새벽마다 수련을 거르지 않고 임한 것에 대한 부분은 박수를 칠 만하지만, 그녀는 나 또한 인정하지 않았기에 내 짧은 훈련을 받은 하민이 선발전에 나가 대표 학생이 되리라곤 꿈에도 생각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우승 상금이 3천만 PT야. 3천만 PT면 거의 1년 연봉인데.”
“너도 괜히 하민에게 괜한 기대감을 품게 하지 마. 기대심이 높으면 높을수록 좌절감도 거대해져.”
“······.”
그녀의 말에 반박하지 못했다.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그때 하민이 나와 이에로의 대화 내용을 듣고 있었는지 현관문을 박차고 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오늘은 선발전이 치러지는 중요한 날인데 가족에게도 인정받지 못했기에 괜히 하민의 멘탈이 걱정되었다.
그러나 다행히도 하민은 강했다. 오히려 선발전에서 1등을 하여 누나의 콧대를 납작하게 만들 것이라 다짐하였다.
“훗. 선발전에서 1등 하면 소원 하나 들어주지.”
그 모습에 이에로는 콧방귀를 뀌며 1등을 하면 소원을 들어주겠다는 약속까지 하였다.
“아자!”
이에로의 내기 때문이었을까? 더 기합이 들어간 하민.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이에로가 나와 다른 방식으로 하민을 챙겨 준 것 같았다.
오히려 하민이 더 불타오르고 있으니 말이다.
* * *
“하민아, 긴장하지 말고 수련했던 기억만 떠올려.”
로체 도시로 내려와 선발전이 치러지는 돔 구장에 도착했다.
하민의 표정을 보니 많이 긴장한 듯 보였다.
그래서 난 선발전 무대로 향하는 하민에게 파이팅을 보냈다. 옆에 있던 바루나 또한 귀엽게 손을 번쩍 들며 오빠를 응원했다.
“이기고 올게.”
그러자 하민이 기합을 넣으며 대기실로 이동했다.
‘영수 형 말대로 긴장만 하지 말자.’
대기실에 도착한 하민이 속으로 다짐하고 또 다짐하며 마음을 다잡았다.
그때 뒤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선발전 기대 학생인 오리진이 친구들과 대기실에 도착한 것이었다.
하민은 막상 오리진과 마주하자 긴장만 하지 말자는 그 다짐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오금이 저릴 만큼 두렵고 무서워하는 찌질한 모습이 되었다.
“얘 보소. 진짜 신청했네?”
오리진 옆에 있던 학생이 하민을 보고 비아냥거리며 입을 씰룩거렸다.
오리진 또한 같이 있던 친구의 말에 하민을 보곤 헛웃음을 지었다.
“죽고 싶어서 신청한 거지?”
“······.”
“말도 못 하네. 너도 할머니처럼 벙어리가 된 거냐?”
“뭐?!”
오리진의 도발에 넘어간 하민이 목검을 들고 자세를 잡았다.
“무기 보소. 목검으로 진검을 이기려 드는 거야? 진심이면 너 많이 심각하다.”
오리진과 주변에 있던 학생들이 비웃으며 하민의 어깨를 치고 무대에 올라섰다.
단 한 명도 하민을 존중하는 학생은 없었다.
그러니 하민의 자존감이 다시 바닥으로 곤두박질칠 수밖에 없는데.
“예선전 시작하니 신청하신 학생 여러분은 무대에 올라와 주시길 바랍니다.”
그때 선발전을 진행하는 MC의 까랑까랑한 목소리에 하민은 혼미했던 정신을 다시 잡았다.
‘정신 차리자.’
하민은 자신의 양 볼을 두 손바닥으로 내려치며 정신을 다잡으려 노력하였다.
그리고 드디어 MC의 진행과 함께 선발전이 시작되었다.
“오빠 저깄다!”
그 시각. 난 팝콘과 음료를 사 들고 관중석에 앉아 하민의 경기를 기다렸다.
그때 바루나가 손을 뻗어 누군가를 가리켰다. 그 손을 따라 시선을 이동시키자 잔뜩 긴장한 듯한 하민이 목검을 끌어안고 무대에 올라가는 모습이 보였다.
“에휴. 잔뜩 긴장했네.”
하민의 모습을 보자마자 난 저절로 탄식이 나왔다.
긴장만 하지 않으면 무조건 선발전은 쉽게 통과하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오빠 열심히 노력했는데. 떨어지면 어떡해?”
바루나도 긴장한 하민의 모습에 불안해하였다.
그러나 난 하민을 믿었다.
아니, 이미 하민은 이런 아카데미 대회에서 질 수 없을 정도로 강해져 있었다.
내가 직접 수련을 시켰기에 알 수 있었다.
“바··· 바로 공격 한 방으로 녹다운이 되었습니다! 승자는 하민!”
선발전이 시작되자 하민은 다른 학생들을 추풍낙엽처럼 물리쳤다.
어안이 벙벙해 보이는 표정을 보아하니 하민 역시 자신의 힘이 엄청 강해졌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나 보다.
“오빠 엄청 강해졌다. 우와.”
당연한 결과였다. 물론 봐주면서 진행했지만, 하민은 마왕인 나와 대련을 밤낮 상관없이 계속해 왔던 인물이다.
나와의 대련도 견뎠던 자다.
아카데미 대회에서 탈락할 아이가 아니라는 뜻이다.
“으아악!”
하민이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아마 기합을 넣은 것 같은데. 방심만 하지 않으면 충분히 선발전에서 1등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방심만 하지 않으면······.
“다 들어와!”
하민이 자신만만한 목소리로 대기하던 학생들을 목검으로 가리킨 채 도발했다.
다른 학생들은 하민이 이렇게 강할 것이라 생각지도 못한 듯 서로 눈치만 살피기 급급한데. 그렇게 또다시 예선전이 치르고 치러졌다.
아침부터 시작되었던 선발전은 노을이 질 때까지 계속되었다.
남은 학생은 딱 두 명.
하민과 오리진이다.
“좋아! 역시 넌 우리 집안의 대들보야! 선발전 이기고 대회에서도 우승해서 돈 벌자!”
이미 확신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하민이 결승전까지 오자 나 또한 온몸에 전율이 돋았고, 흥분도 되었다.
이제 본 대회에 가기 위해선 단 한 걸음만이 남았다.
나와 바루나는 먹고 있던 팝콘도 내팽개치고 하민의 이름을 계속 외치며 응원했다.
“어디서 약이라도 먹었냐?”
한편 무대에선 결승전까지 올라온 하민을 보곤 오리진이 의심하는 듯한 목소리로 물었다.
“약이야 먹었지.”
“뭐?!”
“감기 기운이 있어서 감기약 하나 먹은 게 단데. 그게 뭐 문제가 되나?”
“우쭐대긴······.”
예선전을 모두 통과하고 결승전까지 올라오자 바닥까지 내려간 자존감이 하늘을 찔렀다.
그렇게 하민의 어깨는 한껏 올라가 있었다.
“근데. 내겐 안 통하지!”
진행자의 신호가 들리자마자 오리진이 하민을 향해 돌진했다.
오리진은 마치 황소와 같았다. 빠른 스피드는 물론 위협적이기까지 했다.
그렇게 퍼플우드 용병 대회에 출전할 단 한 명의 학생을 가리기 위한 선발전의 마지막 경기가 시작되었다.
* * *
그 시각. 소용돌이 문양의 가면을 쓴 자경단들이 로체 교도소에 몰래 잠입하는 데 성공했다.
그중엔 이에로도 있었다.
“단장님. 이곳만 지나가면 식구들이 잡혀 있는 수감실입니다.”
“그래. 대장님과도 연락이 된 상태이니 두려움에 떨지 말고 나아가자.”
이에로는 선두에 서서 경비대원들을 살폈다.
주위를 둘러보자 수감실을 맡은 경비대원의 숫자는 생각보다 적었다.
“일이 생각보다 쉽게 풀리겠어.”
이에로는 손짓하며 자경단들에게 명령하였다.
그녀의 손짓에 바로 흩어져서 경비대원들을 제압하는 자경단.
이렇게 쉽게 동료들을 구하나 싶었다.
그러나 수감실에 들어가자 갇혀 있어야 할 동료들의 머리카락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어떻게 된 거야?”
이에로는 당황한 기색을 숨기지 못하고 교도소의 동태를 살피던 자경단 일원에게 지금 이 상황을 물었다.
그러자 그 자경단 일원이 답했다.
“수고하셨습니다. 단장님.”
그의 대답과 함께 숨어 있던 경비대원들이 자경단을 덮쳤다.
이에로가 몸을 강철로 만들어 그들의 기습을 막아 냈다.
그러나 같이 계획을 실행하던 자경단 일원들이 기습에 목숨을 잃어 홀로 살아남은 상황.
죽은 동료들의 시체를 보곤 눈살을 찌푸렸지만, 지금은 맞서 싸울 때가 아니라 도망칠 때이기에 이에로는 교도소 밖으로 달아났다.
“도망칠 수 있겠습니까?”
“제기랄!”
그러나 교도소 밖에도 경비대원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용병들까지 고용한 듯 수적으로 너무 열세인 상황인데.
할 수 없이 이에로는 경비대원들의 공격을 강철의 몸으로 돌파해 정면을 뚫으려 했지만, 고용된 용병들이 준비한 KF 사슬로 몸이 묶였다.
마력을 사용하지 못하는 KF 사슬에 묶이자 강철로 변환시킨 몸 또한 돌아왔다.
“이만 포기하십시오. 단장님.”
함정에 걸려든 이에로는 그렇게 믿고 있던 동료에게 뒤통수를 세게 맞았다.
“그 낡아 빠진 목검으로 날 이기려 드는 거야?”
오리진이 헛웃음을 지으며 물었다. 선발전이 치러지는 경기장엔 오리진과 하민만 남은 상황.
하민이 손에 쥐고 있는 무기는 다름 아닌 나무로 된 목검. 그의 비해 오리진은 5강짜리 대검을 들고 있었다.
퍼엉―
대검을 휘두르자 공기가 찢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크흑.”
자칫하다가 모가지가 날아갈 뻔했다. 겨우 오리진의 일격을 피한 하민은 뒷걸음질 치며 그와의 거리를 넓혀 나갔다.
“살고 싶으면 지금이라도 포기해, 겁쟁이 새끼야!”
오리진은 하민을 도발하며 계속 대검을 휘둘러 승기를 굳히려 하였다. 그러나 생각보다 하민에게 치명상을 입히지 못했다. 오리진이 느린 편은 아니었다. 하민의 반응 속도를 오리진이 따라가지 못한 것이다.
“제길. 그렇게 요리조리 피하다가 날 새우려고?”
그러나 오리진의 말처럼 계속 도망만 쳐서는 승패가 나지 않는다.
하민 역시 오리진을 쓰러뜨릴 수단을 만들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