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속 먼치킨이 되었다-55화 (55/65)

────────────────────────────────────

5년동안 일어난 일(2)

“야! 오늘 아카데미 공고문 봤어?”

책상에 엎드려 자고 있던 하민이 친구의 부름에 반응한다.

“어떤 공고문?”

“네가 기다리고 기다리던 그 공고문!”

“퍼플우드 용병 대회?!”

하민이 책상을 탁! 치며 일어났다. 그리고 친구가 가리킨 방향으로 뛰어갔다.

계속 기다렸던 퍼플우드 용병 대회 공고문이 오늘 아카데미에 전해졌기 때문이다.

로비 벽 제일 꼭대기에 붙어 있는 공고문.

1등을 하면 상금 3천만 PT와 3대 용병 길드 중 자신이 원하는 곳에 입문할 수 있는 특혜까지 보상으로 지급된다.

“뭐야? 너도 신청하게? 괜히 귀찮게 하지 말고 떨거지는 빠져라.”

하민이 공고문에 적혀 있는 글자 하나하나 정성스럽게 읽어 가던 중 뒤에서 그를 비아냥거리며 헛웃음 짓는 한 학생이 나타났다.

“하민? 뭔 듣보잡 학생이냐?”

무리를 지어 다니는 학생 중 한 명이 하민의 이름을 거론하며 무시했다.

그러나 하민은 그들에게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했다.

그들은 하민이 다니고 있는 로흐 아카데미의 최정예 학생들이기 때문이다.

“예전에 나랑 같은 반 애였어.”

그중에서도 가장 강한 학생이 하민을 소개했다. 이름표에 그의 이름은 ‘오리진’이라고 쓰여 있다.

그는 작년 하민과 같은 반이자 짝꿍까지 했을 만큼 인연이 깊은 학생이었다.

하민에게는 인연이 아니라 악연이지만 말이다.

“내가 이름도 모르고 있으면 그냥 따까리라는 거네.”

오리진 옆에서 막대 사탕을 물고 있는 학생이 비웃으며 하민을 능욕했다.

“어차피 아카데미에서 딱 한 명만 나갈 수 있는 대회인데 괜히 나가서 쪽팔림당하지 말고 짜져 있어라.”

하민은 처음 보는 학생인데 초면에 능욕은 물론이고, 무시까지 하니 열이 머리끝까지 올라갔다.

“꺼져.”

그러나 하민은 아무런 대응도 하지 못했다. 점점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오리진 때문이었다. 작년에 짝꿍이 된 이후부터 그의 심부름을 도맡아 했기에 파블로프의 개처럼 자동으로 눈을 내리깔았다.

“병X 새끼.”

오리진을 필두로 그들은 퍼플우드 용병 대회의 안내문을 뜯어 가져갔다.

어떻게 심사가 이루어지는지 아직 보지도 못했는데 말이다.

“괜찮아?”

멀리서 지켜보던 하민의 친구 케프가 위로 아닌 위로를 건넸다.

하민은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오리진이 있는 방향을 주시하며 말이다.

고작 한 달이지만, 새벽부터 일어나 강해지기 위해 죽을 만큼 노력했다.

그러나 마주하자마자 꼬랑지를 내리는 강아지처럼 오리진 앞에선 초식 동물이 되니 그 모든 노력이 물거품이 되는 듯했다.

집에 돌아와서 집안 사정을 알기 전까지는 말이다.

* * *

“이에로가 사정이 생겨서 며칠 정도 일을 못 나갈 것 같아.”

나는 오랜만에 가족들을 모두 불러 회의를 진행했다.

현재 이에로는 용병들의 표적이 되었기에 도시에 내려가기엔 위험한 상황.

그러나 우리를 이제껏 홀로 먹여 살린 장녀였기에 그녀가 일을 못 하니 생활비가 걱정인데.

그나마 어제와 같이 도시에서 진행되는 이벤트 매치가 있으면 급한 불을 끌 수는 있었다.

문제는 그런 이벤트에 참여하면 참여할수록 나의 정체까지 들통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난 긴 시간 동안 고민하고 고민했다.

어떻게 하면 생활비를 걱정하지 않고 살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을 말이다.

“누나 일을 형이 대신한다고?”

이에로가 말하길. 자신이 자경단의 일원이긴 하지만, 그 일은 한밤중에만 이뤄졌고, 매일 아침 도시에 내려간 이유는 진짜로 수산 시장에서 오징어를 팔아 생활비를 보충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괜찮겠어?”

이에로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날 바라봤다. 그녀 또한 내가 5년간 공황에 시달려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낸 것을 직접 봤던 한 사람이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현재 공황 증세도 많이 나타나지 않고, 언제까지 이에로에게 기대며 살 수는 없기에 수산 시장 일을 도맡아 생활비를 충당하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누나는 어떤 사정 때문에 도시로 못 내려가는 건데?”

하민이 묻자 이에로가 말을 더듬으며 핑계를 찾았다.

“하고 싶은 일이 있대. 지금껏 이에로 홀로 우릴 먹여 살렸으니 잠시나마라도 이젠 우리가 돈을 벌어 보자.”

난감한 표정을 짓는 이에로 대신 내가 적당한 핑계를 찾아 하민과 나머지 가족들에게 설명했다.

그제야 하민은 납득이 되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알겠다고 대답했다.

“하긴, 누나가 많이 고생하긴 했지.”

“오빠! 나도 수산 시장 일 도울게.”

바루나가 자신도 돕겠다며 손을 번쩍 들었다.

“너무나 고맙지만, 마음만 받을게.”

어린 바루나를 데리고 간다면 일에 집중하지 못할 확률이 높기에 최대한 기분이 나쁘지 않게 거절을 했다.

“뭐. 형도 많이 강하니깐. 잘하겠지.”

하민이 엄지를 치켜들어 나를 높여 주었다. 나 또한 수산 시장 일이 그렇게 고되지 않으리라고 생각했기에 딱히 큰 걱정은 하지 않았다.

그러나······.

“어이, 형씨!”

막상 일을 시작하게 되니 이곳은 지옥과도 같았다. 수산 시장 특유의 비린내와 손님들의 갑질. 그리고 기존에 있던 상인들의 텃세까지.

마왕의 몸이라 체력적으로는 힘들지 않았지만, 정신적으로 피폐해져 가는 느낌이었다.

‘어떻게 공황 증세를 극복했는데······.’

마치 내 멘탈은 공기가 가득 들어간 고무풍선과도 같았다. 조금이라도 건들면 터질 것 같은 시한폭탄.

비참하지만, 그게 내 현주소였다.

“오빠, 수고했어.”

그나마 유일한 낙은 열 시간 동안 뼈 빠지게 일한 뒤 집에 돌아오면 귀여운 여동생 바루나가 반갑게 맞이해 주는 것이었다.

비린내 때문에 바루나의 눈살이 저절로 찌푸려졌지만, 크게 내색하지는 않았다.

“괜찮냐?”

고작 일한 지 일주일밖에 안 됐음에도 불구하고 다크서클이 광대까지 내려온 내 얼굴 상태를 본 이에로도 걱정이 되는 듯 내게 물었다.

“충분하지.”

그러나 가족회의에서 호언장담했던 모습 때문이라도 일주일 만에 수산 시장 일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비루하다······.’

난 잠시 달빛을 받으며 뒷동산에 올라가 찬 공기를 마셨다.

비린내에서 벗어나니 조금 숨통이 트이는 것 같았다.

그러던 중 나도 모르게 한숨이 저절로 나왔다. 마왕 브라고. 즉 먼치킨의 몸으로 이곳에 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오징어 장사꾼이 되었다니. 비루해진 내 인생에 현타가 온 것이다.

5년이 지난 현재. 이곳을 떠난 뒤 카모라를 찾아 복수할 생각밖에 없었는데. 복수할 대상 카모라가 죽었다는 소식에 내 삶의 방향성을 잃었다.

그래서 잠시 이곳에 머물며 앞으로 어떻게 할지 생각을 정리하려 했는데. 이젠 일 때문에 생각 정리할 시간도 없어졌다.

“에휴.”

그렇다고 지옥으로 가려면 제나가 함께 있어야 하고, 5년간 잠적을 하였으니 쉽게 그들에게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상황이다.

카모라에게 복수하고 위풍당당하게 돌아가려 했는데. 그 계획이 다 틀어진 것이다.

“후유.”

난 또 한숨을 내쉬었다. 일을 시작한 뒤로 한숨을 내쉬는 횟수가 늘어났다. 그만큼 근심이 많았다.

그런데 한쪽에서 나보다 더 큰 한숨이 들려왔다.

땅이 꺼질 만큼 깊은 한숨 소리였다. 그 소리에 반응해 난 고개를 돌려 한숨을 내쉰 당사자를 확인했다.

“하민?”

빨간 머리 하민이었다.

난 그를 몰래 지켜봤다. 뒷동산에서 몰래 검술을 연마하는 하민. 눈빛이 매우 진지하다. 더구나 내가 압박을 주지 않아도 열심히 했다. 아카데미에 다니면서 수련하기 피곤할 텐데 말이다.

“어깨는 내리고 칼끝에 집중해야지.”

그래서 난 하민에게 다가가 검술 자세를 알려 주었다. 수련하기 전에 비해 일취월장한 모습이지만, 아직 크라운의 자세와 비교해 보면 엉망이다.

하긴. 크라운은 대장급 장군들과 싸워도 밀리지 않았던 최고의 검객이니 비교 불가 상대긴 하다.

“좀 더 빨리 강해지는 법은 없어, 형?”

한편 하민이 간절한 눈빛으로 날 바라봤다. 빨리 강해지는 법이라······. 나도 어쩌다가 마왕의 몸으로 깨어났기에 어려운 질문이었다. 그러나 해답은 알고 있었다.

나의 처음이자 마지막인 사부 끼린의 특훈을 받아 봤기 때문이다.

“한 달간 몸을 단련하며 기본기를 탄탄하게 만들었으니 이젠 너만의 색깔을 찾아야지.”

“나만의 색깔?”

끼린 사부가 중요하게 강조했던 말이 떠올랐다. 상대를 한꺼번에 제압 가능한 자신만의 궁극기를 가질 특훈!

그때 당시 나는 게임 세계에서 브라고를 상대했기 때문에 궁극기가 무엇인지 바로 깨달았었다. 끼린 사부의 특훈 방식을 토대로 하민을 가르친다면 그가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좀 알아듣기 쉽게 설명해 줘. 뭔지 아무것도 모르겠어.”

하민은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듯, 답답해하였다. 당연한 이치였다. 말이야 쉽지 자신의 색깔을 찾기란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민의 검술을 봤을 때 연상되는 인물이 있었다.

그리운 내 동료이자 친구.

하민의 검술은 크라운과 비슷했다.

“너한테는 위력보단 스피드, 그리고 힘보단 날카로움이 어울려.”

난 크라운의 검술을 기억해 내며 하민에게 전수해 주었다.

그렇게 한 시간, 두 시간 지나자 하민이 기진맥진한 상태로 바닥에 쓰러졌다.

“헉헉, 죽겠다. 난 재능이 하나도 없는 걸까?”

검술은 생각보다 빨리 늘지는 않았다. 그래서인지 하민은 침울한 표정으로 자신이 든 목검을 하염없이 바라봤다.

“그래도 체력이 많이 좋아진 탓에 봐줄 만한 정도까지 올라왔는데?”

하민이 울적해하자 난 그를 칭찬하며 멘탈을 다잡아 줬다. 검술이 늘지는 않았지만, 체력이 많이 올라온 것은 거짓이 아니라 사실이기도 했으니까.

그러나 내 위로가 통하지 않았다.

“지금처럼 열심히 특훈하면 언젠간 최강 용병 자리에 서 있을걸?”

“내가 무슨. 지금 생각해 보니 헛된 꿈이었어.”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근거 없는 자존감이 하민의 매력이었는데 지금은 밑바닥까지 내려간 상태였다.

그래서 난 물었다.

“고민 있어?”

“······.”

하민이 대답을 하지 않자 확신이 섰다.

“고민 있구나. 어떤 고민인데?”

“없어.”

“야. 온종일 오징어 장사하느라 지친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훈련 봐준 형한테 말해 주지 못할 고민이 어디 있냐! 서운하네.”

하민이 끝까지 고민을 말하지 않자 난 내심 서운함을 표출했다. 그러자 녀석이 반응했다.

그는 아직 어린 소년. 내가 서운한 티를 내니 당황한 듯 알겠다며 고민을 털어놓았다.

“2주 뒤에 퍼플우드 용병 대회가 있다고?”

“응. 그 대회는 2주 뒤고 1주 뒤에 아카데미에서 퍼플우드 용병 대회에 나갈 단 한 사람을 뽑는 대회를 진행한대.”

“오. 그래서 신청했어?”

“아니······.”

“엥? 왜? 최강의 용병이 꿈 아니었어? 그런 중요한 대회는 나가 봐야지.”

“···어차피 질 거야. 우리 아카데미에 오리진이라는 애가 있는데 걔는 나와 달리 재능도 있고, 엄청 강해.”

하민의 대답에 난 그를 측은하게 바라봤다. 시작하기도 전에 포기하는 모습이 내 예전 모습을 보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민은 나보다 정신력이 강하다. 그동안 녀석을 단련시켜 주면서 그의 성격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는 재능은 없지만, 그 누구보다도 강해지기 위해 노력했다.

그 노력한 시간을 알기 때문에 난 다시금 하민에게 용기를 불어넣었다.

“뛰어난 재능이 있어도 가장 중요한 게 없으면 최고의 자리에 올라서진 못해.”

“뭐. 그게 노력이라는 뻔한 얘기를 해 주는 건 아니겠지?”

“아니. 재능도 노력도 아닌 지켜야 할 사람이 있는 것!”

“응?”

난 종이 하나를 하민에게 보여 주며 말했다. 그것은 하민이 지쳐 바닥에 쓰러질 때 주머니에서 흘린 종이.

“우승 상금 3천만 PT······. 넌 오늘부터 우리 집안의 대들보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