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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에서 살아남는 법(4)
“할머니, 오늘 하늘 봤어? 진짜 예뻤는데.”
잠자리에 들기 직전 하민은 오늘 보았던 하늘이 너무 예뻤는지 할머니에게 자랑하듯 물어보았다.
저렇게 보면 아직은 애긴 애다.
그나저나 난 이에로가 아직도 집에 돌아오지 않아 걱정되었다.
유일하게 가족 중에서 일하느라 나와 가장 접점이 없는 인물이긴 하지만 난 이에로에게 제일 비싼 선물을 하고 싶었다.
이렇게 헌신하면서까지 책임감 있게 가족을 먹여 살리는 장녀는 이에로뿐일 것이다.
그리고 배울 점도 많은 친구였다. 나이는 나보다 어려 보이지만 그녀가 가장 노릇을 하는 것도 그 어른스러운 면모 때문이었다.
“언니 왜 안 와?”
바루나도 걱정스러운 말투로 내게 물었다.
그런데 그때.
쨍그랑―
여름인데도 불구하고 갑자기 세찬 바람이 집으로 들어와 현관에 있던 도자기를 건드렸다.
그 영향으로 도자기가 바닥에 떨어져 깨졌는데. 뭔가 불길하다.
“내가 한번 나가 볼게.”
* * *
“누나 아직 안 왔어?”
하민이 눈을 비비며 물었다. 피곤한지 목소리가 갈라진다.
“걱정하지 말고 얼른 자. 내일 개학이잖아.”
난 피곤해 보이는 하민에게 다가가 이불을 덮어 주고 괜찮다며 자라고 말했다.
그리고 다시 마당에 나가 이에로가 오는지 목을 뻣뻣이 세워 주변을 바라봤다.
그러나 이에로는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았다.
거의 새벽이 다 되어 가는 시간.
“오빠, 잠이 안 와.”
바루나가 마당으로 나와 잠투정하듯 내게 다가왔다.
아마 막내도 언니가 오지 않으니 걱정되는 듯 잠을 설치는 것 같은데.
“내가 한번 내려가 볼게.”
“같이 가자.”
“너무 늦었어.”
“혼자 갈 수 있겠어?”
시골이라 그런지 가로등 하나 없이 컴컴한 길목.
너무 어두컴컴해 두려움이 내 마음을 증식했다. 그러나 바루나에게 의지하는 건 너무 창피한 일이었다.
“괜찮아. 걱정하지 말고 있어.”
난 바루나마저 다시 방 안으로 들여보내고 심호흡했다.
‘괜찮다. 죽지 않는 병이야.’
한창 공황을 극복하려 노력했을 때 나는 그렇게 되뇌었다.
상담 선생님께서 공황장애는 힘들어도 죽지 않는 병이라며 위로 아닌 위로로 해 준 말이었는데.
그 말을 되새기며 그나마 버텨 왔기에 두려운 앞날이 보이면 속으로 죽지 않는 병이니깐 괜찮다며 혼자 위로하듯 속으로 삼켰었다.
“후우.”
난 손전등에 의지한 채 어두운 길목을 향해 나아갔다.
그러면서도 계속해서 죽지 않는 병이니깐 괜찮을 거다, 5년이란 세월 동안 멘탈 관리를 해 왔으니 괜찮을 거라고 속으로 되뇌었다.
뭔가 심장이 간질거리는 기분 나쁜 느낌이 들었다. 극도의 긴장 상태 때문이라 그런지 마치 악마의 손이 내 심장을 부여잡으려는 것 같았다.
난 엄지손가락으로 심장 쪽을 마사지하듯 꾹 눌러 긴장을 풀어 줬다.
그렇게 천근만근 무거운 걸음을 하나씩 떼며 정신을 부여잡고 이동했다.
“휴우.”
5년간 멘탈 관리한 효과가 있긴 한가 보다. 이젠 단잉의 반지 없이도 이런 어두컴컴한 길목을 혼자 지나오다니.
과거 게임 세계에 들어오기 전 대낮에 한 정거장 가기도 두려워 버스를 못 탄 시절을 생각하면 괄목상대(刮目相對)한 것인데.
로체 도시에 들어서니 어두웠던 시골길과 달리 새벽에도 이곳은 화려한 불빛들로 빛나고 있었다.
“내가 경비대들이랑 친해서 들은 고급 정보인데 최근에 고츠 비리를 밝힌 자경단이 오늘 잡혔대.”
“헐! 누구래?”
“거기까지는 못 들었는데······.”
“저기요!”
심각한 표정으로 얘기하던 두 남성에게 수산 시장 가는 방향을 물어봤다.
더 나아가 수산 시장에서 오징어를 판매하는 곳이 어딘지를 상세히 물어봤다. 저번과 같이 길을 헤매지 않기 위함이었다.
내 질문에 두 남성은 경계하며 날 쳐다봤다.
아마도 얼굴을 가리고 있는 언데드 가면 때문인가 보다.
“당신 누구요?”
“저기 동산 위 시골집에 사는 사람인데요. 수산 시장에서 일하는 친구가 보이지 않아서 그런데 죄송하지만, 수산 시장에서 오징어 판매하는 곳이 어딘지 알 수 있을까요?”
난 다시 공손히 나를 소개하며 수산 시장의 위치를 물었다.
그제야 남성이 경계심을 풀고 수산 시장으로 가는 방향 쪽을 가리키며 알려 주었다.
“그런데 지금 가도 못 찾을 겁니다. 이제 새벽이니 시장 문이 닫혀 있을 거요.”
“흠······. 감사합니다.”
그들은 이미 시장 문이 닫혀 있으니 소용없는 짓이라 말했다. 내가 아는 이에로의 정보는 수산 시장에서 오징어를 판매한다는 것뿐. 5년간 같이 살았던 가족인데 생각보다 그녀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그나저나 소문에 의하면 자경단이 파수꾼이라는 얘기가 있던데 그건 아닌가 보네.”
남성들이 알려 준 방향으로 다시 이동하려던 찰나. 그들의 대화 내용에 다시 걸음을 멈추었다.
“파수꾼이요?”
내가 설립한 세력의 이름이 파수꾼이었기 때문이다.
“뭐. 또 용건이 있소?”
“파수꾼에 대해 뭐 아는 거 있으세요?”
“하하. 파수꾼 모르는 사람이 있소?”
남성이 호탕한 웃음을 지으며 마치 나를 과거 세계에서 온 사람 취급했다.
“혹시 냉동 인간이시오? 이것도 모르오?”
그는 내가 모르는 정보를 알려 줄 때마다 희열을 느끼는 듯 신난 표정으로 이때까지의 루기아 세계의 전반적인 큰 사건들을 알려 주었다.
“아서왕이 새롭게 67대 아기루 황제가 되면서 제국 라노키아 세력이 4대 세력 중 으뜸이 되었소. 세계 정부를 등에 업었으니 말이지.”
“아서왕이 황제가 되었군요.”
그 자리는 동료였던 크라운의 것이었는데. 그의 말을 들은 난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그게 중요한 게 아니오. 그다음이 중요하지. 아서왕은 세계 정부 총사령관 바우트를 파면시키고 그린우드 출신 대장 달리를 그 자리에 앉혔는데. 그는 아서왕의 꼭두각시처럼 세계 정부를 제국 라노키아에게 바치듯 행동했소.”
“아서왕은 전쟁에 미친 놈이지. 그것 때문에 우리 대륙이 급성장했지만.”
수염이 덥수룩한 남성이 이야기를 늘어놓으면 옆에 있던 남성이 토스 받는 듯 덧붙이며 설명했다.
그들의 이야기를 조합해 보면 아서왕이 세계 정부를 등에 업고 전쟁을 일삼았기에 퍼플우드의 용병들이 전쟁이 일어나는 곳으로 파견 나가서 돈을 많이 벌었다고 하는데.
내겐 딱히 중요한 정보가 아니었다.
난 파수꾼의 행방이 궁금했기 때문이다.
“잠시만요. 그래서 파수꾼은요?”
신나게 떠들어 대던 남성의 말을 잠시 멈추고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파수꾼에 관해 물었다.
“파수꾼은 예전 집행자 소사이어티의 역할을 해 주고 있지. 덕분에 제2차 세계대전도 잠시 멈췄고.”
“2차 세계대전이요?”
“이 청년. 진짜 어디에서 냉동되다 왔나 보네. 5년 전에 아서왕이 세계 정부 대장급 장군들을 한데 모아 집행자 소사이어티를 급습했잖아.”
“그게 2차 세계대전 시발점이었지.”
그들이 말하길. 약육강식을 추구하던 헨드릭스와 흑사협 세력과 신분 제도를 추구하던 라노키아 세력의 힘의 균형을 맞추던 집행자 소사이어티를 아서왕이 세계 정부를 등에 업고 급습해 모두 토벌했다고 한다.
“그런 큰 사건이 있었다고요?”
“이봐. 여기서 놀라긴 이르다고. 그 이후 일주일 만에 헨드릭스와 흑사협도 아서왕의 손에 정리됐어.”
“······?!”
난 그들의 말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나의 동료를 죽인 헨드릭스 대군주 카모라가 아서왕의 손에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
“그게 정말입니까?!”
“이미 뉴스에 대서특필된 사건이야. 찾아보면 다 나와.”
난 떨리는 가슴을 추스르고 그들의 이야기를 계속 들었다.
“아서왕의 독재가 시작된 지도 벌써 4년이 넘었어. 뭐, 기득권자들은 좋겠지만, 우리 같은 평민들은 살기 힘들어졌지. 2차 세계대전 이후로 세금이 많아졌거든.”
“헨드릭스가 몰살되었다니 믿기지 않네요.”
“헨드릭스 찬양파였나? 뭐, 나도 굳이 따지자면 그들의 사상이 더 좋긴 했어. 아무튼, 아서왕의 독재로 천민들은 거의 생명체 대접도 못 받고 사는데. 파수꾼이란 세력이 천민들을 돕는 자경단이 되었다고 하더군.”
5년간 일어난 사건들을 듣자 난 복합적인 감정이 들었다.
일단 살아 있는 동료들이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파수꾼이란 세력이 아직 활동한다는 소식에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동안 범죄 집단 헨드릭스를 피해 도망친 사람은 나 혼자뿐이라 생각해 아직도 죄책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크라운과 핫스퍼를 죽인 카모라가 죽었다는 소식에 기뻤으나 한편으로는 직접 복수할 기회를 날린 것 같아 울분이 남았다.
“난 파수꾼이 고츠 비리를 밝힌 자경단이라 생각했는데 오늘 잡힌 거 보니 아닌가 보더라고.”
“그치. 최고의 세력인 라노키아와 맞붙는 유일한 세력인데 고작 우리 도시에서 잡히겠어?”
“자네, 고츠 비리는 뭔지 아나?”
그들은 파수꾼의 소식을 다 전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 끊이지 않았다.
내 반응이 재밌는지 무언가 계속해서 알려 주고 싶은 모습이었다.
“고츠 비리가 뭡니까?”
그들의 눈에 ‘더 물어봐 줘!’라고 적힌 것 같아 난 딱히 궁금하지 않았지만, 고츠 비리에 관해 물어봤다.
그래도 그들로부터 5년 만에 동료들의 행방을 들은 것이 고마웠기 때문이다.
“2차 세계대전이 길어질수록 우리 대륙은 급성장했어. 용병의 대륙이니 말이지. 그러나 그 탓에 용병들의 콧대가 하늘을 찔렀지. 이젠 로체 시장보다 상급 용병의 직권이 더 높을걸?”
“고츠가 직권 남용을 엄청 해 댔지.”
고츠는 상급 용병의 이름이었다. 그것도 로체 도시 최고의 용병 길드이자 퍼플우드 3대 용병 길드에 속한 파레타 용병의 운영진.
그런 최고의 용병 고츠가 3년간 비리를 저지르며 몰래 세금을 갈취했다는 사실을 이 도시의 자경단이 밝혀낸 것이었다.
“그런 상급 용병의 비리까지 목숨 걸어 밝혀낸 자경단이었는데. 오늘 붙잡혔다니 아쉬울 따름이지.”
“안타깝네요.”
영혼 없는 대답이었다. 자경단이 대단한 것은 확실하나 이미 파수꾼의 정보를 다 얻은 상황에서 내 이목은 이에로의 행방에 쏠렸기 때문이다.
“그럼 전 이만 가 보겠습니다. 좋은 정보들 알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래서 난 또 다른 이야기를 하기 전에 황급히 도망가듯 두 남성에게 인사하며 자리를 빠져나왔다.
“이에로는 도대체 어디 있는 거야?”
일단 난 혹시 모르니 이에로가 일하던 수산 시장 쪽으로 향했다.
그러나 그곳에 도착하자 역시나 남자들의 말대로 수산 시장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으윽.”
그때 심장 쪽에 짜릿한 전류가 흐른 듯 아려 왔다.
공황 증세인 것 같은데. 홀로 도시에 와서 혼란스러운 소식을 많이 접하다 보니 무리가 온 것 같았다.
그래서 할 수 없이 난 발길을 돌렸다.
“미치겠네······.”
이에로를 찾아야 하는데. 아직 완전히 공황을 극복하지 않았기에 집으로 돌아갔다.
계속 무리를 하면 겨우 잠재웠던 공황 증세가 다시 나타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때!
“누구세요?”
상처를 입은 듯 절뚝거리며 동산을 올라가는 수상한 사람이 보였다.
자세히 보면 소용돌이 같아 보이는 문양이 각인된 가면으로 얼굴을 가렸고, 검은 망토를 입은 낯선 자였다.
난 그자를 보자마자 경계를 했다.
그런데 갑자기 내 앞에서 힘없이 쓰러지는 낯선 이.
조심스럽게 다가가 가면을 벗겨 보자 낯익은 얼굴이 내 눈에 담겼다.
“이에로?!”